신학논문 소논문

초기기독교 공동체의묵시적 종말론 이해

하나님아들 2022. 11. 9. 18:25

     서울신학대학교신학대학원

     1992       학    년   도

     석  사  학  위   논   문

 

 

  초기기독교 공동체의묵시적 종말론 이해

 

              - 어록 자료를 중심으로 -

 

             성서신학 전공       이  상  기     1993

 

 

 

                         목     차

 

 

. 서론

 

  1. 문제제기 및 연구사

 

  2. 연구범위와 방법

 

. 헬레니즘적-로마세계의 문화적, 종교적 배경

 

   1. 정치적 상황

 

   2. 사회적 상황

 

   3. 종교적 상황

 

 

    1) 묵시문학

    2) 유대종파 운동

 

. 어록 자료에 반영된 삶의 정황

 

  1. 사회 경제적 요인을 통해서 본 정황

 

  2. 사회 생태학적 요인을 통해서 본 정황

 

  3. 반 사회적 요인을 통해서 본 정황

 

 

 

. 예수어록자료에 반영된 묵시 종말사상

 

  1. 어록자료의 묵시종말 사상

 

  1). 임박한 종말의식

  2). 축복의 선언

  3). 큰 잔치 비유

  4). 인자 기독론

  5). 원수사랑 계명

  6). 제자직의 실천

  7). 심판과 구원

 

  2. 어록자료의 종말사상 요약

 

 

 

. 결론

 

 

부 록

참고문헌

 

 

 

. 서론

 

  1. 문제 제기 및 연구사

신약성서를 이해하려고 할 때 다루어야할 문제는 첫째, 유다이즘(Judaism)과 기독교라고 하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문제이며, 둘째는 사도시대의 성격 즉 다양성과 통일성의 문제와 세째로는 성서언어의 성격 즉 텍스트와 의미의 문제 일 것이다.1)

 

신약성서가 보여주는 기독교와 유대교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거론한 불트만은 그의 책 초대교회의 정황에서 그는 기독교의 구약적 유산, 유대교와의 관계를 논의 하면서도 기본적으로 그가 취한 입장은 기독교가 처음부터 혼합주의'형태에서 파생해 나왔고 유대적 맥락의 밖에서 처음 기독교를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 그러나 그의 불연속성에 대한 강조는 후속 불트만(R. Bultmann) 학파와 현대성서 학계로부터 대폭적 수정을 받고 있다. 사해 문서가 발견됨으로써 기독교 발생당시 유대교자체의 다양한 면모가 드러났고 이는 불트만의 이론을 수정하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3)

유대적 전승중 묵시종말론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가장 뚜렷하고 중요한 기독교 신앙의 표현들 중의 하나였다.4) 예언에 관한 연구에 묵시문학적 종말론의 관점으로 연구한 이는 바이스(Jonannes Weiss) 와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이다. 슈바이처와 바이스에 의하면 묵시문학적이 아닌 예수는 존재하지 않는다.5)

 

슈바이처에 이어 반세기후 케제만은 묵시문학을 신약성서와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임을 재천명한다. 그는 묵시문학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어머니 6) 라고 까지 선언하였다. 케제만(E. Kasemann)의 주장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 사람은 그의 스승인 불트만이다. 불트만은 케제만을 비판하기 위하여 우선 묵시문학과 종말론을 구별한다. 신약성서속에 묵시문학의 잔재가 일부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예수에게서 극복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묵시라는 말을 종말론이라는 말로 바꾼다면 케제만에게 동의할 수 있다고 한다.7)

또한 묵시문학을 조직신학적인 사고의 구조속에 최초로 도입한 사람은 판넨베르그이다. 그는 묵시문학을 구약의 합법적인 상속자로 본다. 또 신약을 위해서는 그것의 멧세지를 준비해주는 중간매체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그는 신약성서의 멧세지에서 묵시문학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요소로 말한다.8) 그리고 판넨베르그보다 현대의 역사과정에 묵시문학적 미래의 희망을 강조한 학자는 몰트만(J. Moltmann)이다.9)

 

이같이 원시 기독교와 묵시종말론의 관계를 논하지 않고는 오늘날 신약학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10) 필자는 신약성서중 가장 전형적인 묵시적 기독교로 나타나는 신약성서의 네부분 즉, 1) 예수의 어록자료, 2) 바울과 그의 서신들속에 나타난 묵시적 시나리오들, 3) 마가 13장과 그 평행구절들, 4) 요한 묵시록11) 중  예수어록을 중심으로 연구할 것이다.

  슈테그만(W. Stegemann)에 의하면 이들 예수어록에 나타난 복음전승 집단은 프토코이(ptochoi), 극빈자들로 팔레스틴에서 예수를 따랐던 1세대와 2세대의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주로 주후 1세기 중반 (유다와 로마전쟁이 있기까지)의 인물들로 규정한다.12)

리어만(Dieter Luhrmann)역시 어록자료에는 유대전쟁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어록자료의 최종적 편집단계를 주후 60년으로 말하고 있다.13)

어록자료는 전승의 단편들을 편집적 의도에 의해 일정한 배열로 되어 있는 데14) 전승적으로 하나의 관심사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새시대의 도래에 대한 준비이다.  그러한 종말론적인 기대가 어록자료에 나타나는 특징이다.15)

 

이같은 어록자료에 나타난 종말론적 특징은 다분이 당시 묵시문학운동과 깊은 관계를 맺고있다.  페린(N. Perrin)은 그의 책 에서 그리스도교는 고대 유대교안에서 하나의 묵시적 종파로 시작되었다 16) 고말한다.  클로펜보그(John S.Kloppenborg)는 어록자료에 나타난 묵시적 언어를 연구하면서 그것의 기능을 반(反) 구조적(antistructure)인 윤리의식과, 경계를 구분짖는 도구(a  tool  for  boundary definition)로 설명하였다.17) 즉 어록공동체는 독특한 자의식과 그에따른 윤리의식을 가지고 살았다.

필자는 본 논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어록자료에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종말론적 특징은 당시 어록 공동체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종교적 구조로 부터 소외된 극도로 가난한 현실이 그들의 삶의 자리'였고, 그들은 당시 유대 사회에 만연된 고통과 좌절의 희망없는 상황인 이 시대'의 철저한 파멸과, 새롭게 변혁될 새 시대'의 도래를 대망하는 유대 묵시종말론에 깊이 심취하게 었다.  따라서 어록 공동체는 묵시적 종말사상에 사로잡혀 임박한 심판과 회개를 선포하였고, 반 구조적(antistructure) 윤리를 따라 살았고, 그러므로 이세상의 구조들로부터 소외와 고난을 당하는 자신들이야말로 새 시대'를 건설할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산 공동체였다.

 

 

2.연구 방법 및 범위

지난 25년 동안 신약학계 내부에서 성취한 진정한 진보는 신약과 관계되는 배경역사, 특히 여러 종교사의 분야이다. , 신약학자들은 원시 기독교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있어 초기 기독교 당시의 철학적, 종교적 이념들 뿐 아니라 전체적인 사회, 문화, 정치적 삶에 대하여 재발견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8)

, 초기 기독교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있어 이같은 사회학적 연구는 현대 신학학계의 새로운 흐름과 관심이라 할 수 있다. 19) 이분야의 괄목한 만한 연구로는 타이센(Gerd Theissen)과 피터버거(Peter Berger) 그리고 게이저(John G. Gager)를 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학적 고찰은 구체적으로 유대 묵시적 저항운동의 사회학적 자리를 밝혀준다.  예수 이전의 유대인들의 묵시적 저항운동은 바로 예수의 운동이나 복음서 저자들의 직접적인 삶의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20) 그 점에서 오늘의 신약학자들은 신구약 중간기의 묵시문학 작품들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신약성서를 문학사회학적 방법을 통해 연구함으로 초기 기독교의 모습을 이해하려고 한다.

 

 신약성서를 문학사회학적으로 연구한다 함은 신약성서 택스트의저자들과 전달자들과 전수자들의 인간사이의 전형적인 행동의 의도들과 제약조건을 살피는 것이다.21) 본서는 두 자료설의 가설을 전제로 하며, 예수 어록자료에 한하여 역사적 예수 연구에 접근하려고 한다.

1794년 아이히호른이 맨처음 마태와 누가 복음서에서는 마가에서 유래된 공동자료이외에 특정한 문서자료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학문적으로 주장한 이래22)  마태와 누가복음이 함께 전하고 있는 예수의 어록전승에 대한 연구는 서구 신학계에서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23)  른캄이 어록전승들의 신학적 동기들에 주목하고 어록의 배후에는 특수한 선교집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 이후24)  이 가설은 호프만, 류어만, 그리고 폴라그등 주로 카톨릭계 신학자들에 의해서 지지되어 지금은 거의 모든 유럽 신학자들이 이를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25)

지금까지 예수어록의 연구는 그것의 문학양식, 재구성의 문제, 순서의 위치, 편집, 전승사, 어록의 신학 그리고 마가와의 관계성등에 집중되어 왔다.26)

 

스트리터(Streeter)나 킬 패트릭(Kilpatrick)은 어록의 원래적 범위를 마태와 누가의 문서에 거의 완벽하게 보전되어 있다고 보았다.27) 그에 반하여 호너(Honre)는 마태와 누가에 나타난 어록은 원래의 어록자료의 10.5퍼센트에서 14퍼센트 정도 밖에는 않되는 것으로 말한다.28)  (Calston) 이나 놀린(Norlin) 22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29)

필자는 클로펜보그(Kloppenborg)의 범위의 규정을 따랐다. 그는 어록의 범위를 마태가 누가가 공유하는 비마가 자료와 함께 마태와 누가속에있는 각각의 특수자료에 있는 일부분을 포함한다고 보았다.30)

어록의 순서에 있어서도 마태의 것보다는 누가의 순서를 따랐다. 어느것이 원래적인가하는 끊임없는 논란이 있지만 대부분의 견해가 누가복음서의 순서를 어록자료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31)

물론 하르낙이나 모팻트는 어록의 원래적 순서를 마태의 견해가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32)

본 논문은 이 가설들을 전제로한다.

Ⅱ장에서는 헬레니즘-로마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배경과 유대 종교운동으로 묵시문학과 유대종파운동을 살핌으로 원시기독교 배경이 된 주변세계를 고찰한다.

 

Ⅲ장에서는 어록에 나탄난 사회적 상황들을 근거로 하여 어록공동체의 삶의 자리와 그 모습을 밝힌다.

Ⅳ장에서는 묵시적 종말론의 사상적 특징을 따라 어록의 본문에 나타난 묵시 종말적 주제들을 분석함으로 어록공동체와 묵시 종말사상과의 상관관계를 규명한다.

Ⅴ장에서는 본 논문의 간단한 요약과 함께 결론을 맺으려한다. 참고문헌과   H. C. Kee교수의 어록의 범위와 양식을 부록으로 실었다

. 헬레니즘적-로마세계의 문화적, 종교적 배경

 

모든 시대는 언제나 전환기 이다.  세계는 결코 정지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시대에는 유독 변화가 빠른 것처럼 보인다.  갖가지 사상들이 횡행하고 인구는 급격히 동요하며 사회계층들은 더욱더 가변적이되며 하룻밤 사이에도 상황이 바뀌며 정치적 경제적 제도들이 극적으로 수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종류의 급격한 변화는 늘 개인과 단체를 일탈시키며 불안과 위기의 분위기를 조성한다.33)  같이 변화가 많이 일어나는 과도기는 안정을 약속할 수 있는 종교나 철학이 득세할 수 있는 시기이다.34)  예측 불허의 혼란한 세상에서 방황하다보면 사람들은 공통의 관심사와 기대를 갖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그 안에서 안정을 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탄생했고 후에 그리스도를 낳게한 운동이 비롯된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와 목마름의 시대였기 때문이다.35)  피상적으로 예수가 태어나고 그리스도교가 시작되던 때의 세상이 평온하고 통일된 세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모든 문명의 세계는 로마제국이라는 단일 세력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는 헬레니즘적-로마제국하의 정치,사회, 종교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피어 그 상황이 원시 그리스도교 형성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정치적 상황

주전 6세기 이래 바벨론, 페르샤, 희랍 그리고 로마의 순으로 이들 모든 나라들이 유대를 지배하였다.  이 나라들의 지배는 언제나 종교생활에는 위협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전 4세기에 알렉산더에 의한 팔레스티나 지역을 포함한 근동지역의 희랍화는 팔레스티나에 있는 유대인들의 종교생활에 방해를 주게되었다.  주전 333년 팔레스티나를 지배한 후, 주전 323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죽게되자 그의 각료들 사이에 권력투쟁이 일어났다.  이 투쟁은 에집트의 프톨레미 왕가와 시리아 안디옥에 근거를 둔 실루커스 왕가 사이의 완충지대를 팔레스티나에 남겨놓게 되었다.36)

 

희랍화의 본격적인 프로그램은 안디오커스 4(Epiphanes)에 의하여 이뤄진다.  안티오커스 4세는 종교의 획일성과 희랍문화를 통하여 그의 제국의 단결력을 갖추고자 하였다.  그래서 주전 176년에 자기자신을 유대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통치자로 인정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는 주전 169년에 예루살렘의 성전 지성소에서 향단, 촛대, , 보화들을 거두었으며,  군대를 통해 예루살렘 성벽을 헐고, 주택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에 이방인들을 입주시켜 주둔한 관리로 하여금 엄한 통치를 하게하였다.  예루살렘 신전을 제우스 신전으로 바꾸었고, 제단에 돼지고기 재물을 올리는가 하면, 유대인의 할례, 안식일, 축제, 성경휴대를 금하고, 왕을 숭배하지 않는 자에게 사형을 집행하였다.37) 이와같은 과격한 조치에 유대인 정통주의자들은 폭력과 폭동으로 맞섰다.  결국 마타티아스라는 사제와 그의 아들들이 안티오커스에 대한 저항으로 일어난 혁명이 마카비 혁명이었다.  마카비 가족에 의하여 주도된 혁명의 결과 팔레스틴에 있는 유대인의 독립이 주전 141년 시몬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마카비 혁명의 세력은 주전 63년 폼페이의 주도아래 로마인들의 출현될 때까지 하스모니아 왕가를 이루게 된다.38)

 

로마의 파레스틴의 통치는 유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로마는 주전 40년에 헤롯을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하였고, 가이사(Caesa)와 안토니(Mark Antony)가 그를 후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을 멸시한 자, 헬라화를 저지한 바리세인들을 고문, 살해한 자등으로 알려져 그가 죽게되었을 때 저항세력들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지방에서, 뵈레아에서, 갈릴리에서, 각각 메시야라고 호칭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독립투쟁이나, 테러행위가 등장하게 된다.  이때(주전 4세기) 수리아 총독 바루스(Quinctilius Varus)가 이들중 2,000명의 유대인들을 잡아 예루살렘에 서 십자가에 처형하였다.39)

주전 4년 헤롯의 죽음후에 헤롯의 왕국은 분열되어 그의 아들 아켈레오가 주후 6년까지 유대를, 다른 아들 헤롯 안티파스가 주후 39년까지 갈릴리를 다스렸다.  그리고 필립은 갈릴리와 베다니를 주후 39년까지 다스렸다.  그러나 주후 6년에 유대에 문제가 있어서 아켈레오의 영토를 로마가 직접다스리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많은 유대인들이 혁명당으로 들어와 공개적으로 또는 비밀리에 폭동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주후 66년에 로마에 저항한는 조직적인 폭동이 일어난다.  이 유대전쟁은 훈련된 로마제국의 막강한 힘을 제압하지 못하고,로마의 배스파시안(Vespasian)과 디도(Titus)에의하여 주후 70년에 종식되고 말았다.  전쟁으로 예루살렘 도시는 심한 상처를 입었고, 성전전체는 파괴되었다.40)

이같은 연속되는 정치적 참담함 속에서 그들은 무었인가의 철저한 변화를 요청하게 된다.  바로 이 사회의 현상은 도래할 새세상'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41)

맨슨이 지적했듯이 그들은 생사를 걸고 새질서에 대한 이상을 품고 싸웠다.

   이 기간동안 내내 유대인들은 싸웠다.  그것은 현대인들이 말

 하는 그러한 어떤 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의 조직은 복합적인 것이었다.  , 유일

 신 신앙, 성전과 회당에서의 제사, 토라에 기록되어 있는 율법

 

 과 관습들, 포로후기에 발전된 정치적인 제도들, 성지의 소유권

 주장, 그리고 이방 제국들의 통치권을 종식시키고 이스라엘의

 꿈꾸워온 세계지배를 실현하는 것이었다.42)

 

2. 사회적 상황

이 시대는 한 마디로 급속한 변혁의 시대였다.  이 전환기에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전통적 권위주의는 무너지고 대신에 자유와 인간경험이 확대되었다.  사람들은 불안해지기 시작였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관심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세상은 자꾸 변하기 때문에 자기의 뿌리를 찾고자하는 열망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걱정하였다.  또한 전통적 가치관이 몰락함에 따라서 도덕성이 상실되고 기존적 세계관이 도전을 받았다.43)

이러한 상황하에서 헬라의 종교들은 혼합주의의 형태로 시대의 위기에 응답하게 된다.  철학들은 그 순수한 형태들을 유지하지 못하고, 세계의 흐름에 따라 각종 철학들이 뒤섞였다.44)  스토아철학(Stoicism), 플라톤철학(Platonim)을 비롯하여 많은 신비종교들(이시드, 미드라등)이 이를 말해준다.

 

더불어 이 시대의 종교들은 신비적 요소를 띠었고, 우주적인 관심은 점성술에 인간의 운명을 맡기게 하였다.45)   전통적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과거는 더 이상 과거의 논리나 종교적 권위의 힘으로 누를 수 없게된다.  따라서 설득하고 변증하고 주장하는 특색을 지녔다.  사람들은 권위가 아닌 자질을 따라 종교를 선택하게 되었다.46)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인은 심각한 신학적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지중에 안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여러 민족들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안디옥에서, 로마에서, 유대인들은 이집트인들도 만났고, 헬라인도 만났고, 페르시아인들도 만났다.  이들은 유대민족의 적들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상황은 변했고, 이웃집에서, 길거리에서, 시장바닥에서, 그들은 적들을 만나고 같이 삶을 나누어야했다.47)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도 변화하였다.  지금까지 믿고, 따르면 번영하고, 축복받고, 힘있는 나라가 된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경험은 이러한 신학을 뿌리채 흔들었다.  하나님을 믿지않고 거부하는 민족이 더 힘이 셌고, 어 풍요롭고 더 잘 살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인가?  만일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정말문제가 있다.  전통적 신관은 깨어져 나가고 새로운 신학의 형태를 요구하고 있었다.48)

 

이러한 변화와 전환기적 시대에 사는 사람은 융통성과 응답성을 가진다.  전통적 종교관, 세계관을 극복하는 사상에 목말라 하는 것이다.

3. 경제적 상황

로마 국가에의해 잘 정비되어 있고 원활하게 기능하는 사회라는것이 실제로는 억압자 빈자들에 의해서 한계성과 불만을 폭로받고 있었다.49)  그리고 초기 제국에 야심있는 빈자들'이 소요를 야기하곤 하였는데 그 근본 원인이 피보호민 제도라는 유명한 로마제도에 있었던 것이다.50)  초기 공화국시대에 생긴 이 제도는 빈자와 부자 사이의 사회적 경제적 관계가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관계가 되도록 하는데 본래의 의도가 있었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들은 빈자를 보호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으며 그 댓가로 빈민자(貧民者)들은 그들 앞에서 굽신거리며 총애를 구걸해야만 하는 유급 하인(피보호민)들로 전락하게 되었다.51)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유급하인들중 대다수가 옛날에는 명망이 있는 부자들이었으나 여려가지 이유로 인해서 기껏해야 비굴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한 자들이었다는 점이다.52)  그러므로 이체계에서는 정말로 귀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비호 귀족들에게 굽신거리고 살아야만 했다.  그러므로 가난자체가 이 계급에게는 불만족을 품게하는 주요원인이 아니였으며,  그 주요원인은 가난때문에 저절로 겪어야만 했던 사회적인 경멸이었던 것이다.  정치적인 지위를 획득할 가망성은 거의 없었으며 좋은 결혼을 할 기회란 아주 없는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도시생활의 모든 두려움과 불쾌한 것은 다 겪어야 했으며 도시생활의 축복에서 배재되었다.53)  그러므로 좋은 의미에서 출발한 피보호민 제도는 그것이 한계점을 노출하며 그 제도의 불이익을 당하는 계층의 불만을 여러면에서 노출시키고 있었다.

 

 로마가 권장하고 지지하는 사회 정책으로부터 빈민을 소외시키는 파괴적인 작용은 아마도 도시 노동자 계급의 경우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다.  농민들과는 달리 소상인, 수공업자, 도시 노동자들은 도시의 문명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었으나 도시사회를 발전시키는 이득과 특권이 이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국내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이류계급의 시민이거나 아니면 국외자라고 느꼈다.  즉 이들은 노동과 그들이 생산한 상품을 통해서 시민적인 이상을 실현하는데 기여하지만 인격적이고 사회적인 영역에서는 시민적인 이상과는 무관한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현상을 유지하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54)

그리고 오랫동안 지배계급에 불만과 증오심을 품어왔던 또다른 집단이 소농들 이었다.  초기 제국에서 농민들의 주된 불만은 그 어느시대나 마찬가지로 수탈때문이었다.  이러한 수탈은 도시의 피보호민 제도와 거의 똑같은 구조에서 자행 되었다.  따라서 일반 농민들은 겪어야했던 굴욕과 사회적인 예속을 그들도 강요당했던 것이다.55)

 

그러므로 도시의 피보호민들이 격어야 했던 굴욕과 사회적인 예속을 그들도 강요당햇던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그들속에 깊이 뿌리박힌 사회적인 제도들로부터 그들을 분리시키려는 시도에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시의 지배적인 문화와 사회에 이념적으로 동화되는것을 거부하면서 제국적인 로마의 사회적인 이념을 붕괴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래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농부들의 소요가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적이었던 초기제국의 시대에도 있었다는 사실은 자주 망각되어 왔다.56)

다음으로 로마제국의 대표적인 하류계급에 속하는 자들로는 노예를 들 수있다.  노예들은 일반적으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주인마음대로 처리할 수있는 신분이었지만 다른 불만 계층과는 다른 분위기 였다.57)  왜냐하면, 첫째로 이 시기에는 노예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는 상태였으며, 둘째로 노예를 보다 더 인간적으로 취급하는것이 흔히 사회적인 책임으로 인정되었으며, 세째로 가장중요한것은 노예해방에 관한 비교적 자유주의로운 정책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노예들은 안전의 사회보다 자신들에게는 더 유리한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예들 중에는 이러한 낙관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 유일한 계급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농업 노예들이었다.  이들은 자유 소작인들과 거의같은 입장을 취하였었기 때문에 불만이 가중되었던 것이다.58)

 

이상에서 볼 때 로마의 호의적인 목적이 단지 부자들에게만 유익했기에 하류계층의 불만은 증가 되었고, 또 그들은 사회의 금권정치적인 도시화를 통해서 혼돈을 바로 잡으려는 로마의 꿈과는 무관했던 것이다.

 

3.  종교적인 상황

 

1) 묵시운동

 

)  묵시, 묵시주의, 묵시문학의 태동

주전 587년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의 멸망은 유대 민족의 역사를 포로기의 시대로 이끌었다.  이 주전 587년의 사건을 유대인들의 정신사조의 측면에서 읽을 때, 우리는 거기에서 한 위기의식'의 탄생이 조성되고 있음을 본다.  죄에 대한 심판으로 야훼께서 유다백성들을 파멸로 내보내 셨다는 신명기 역사관만으로는 저들의 비극이 다 설명될 수 없는 신학적 위기가 자기 땅을 잃고 남의 땅에 더부살이'하게 되는 디아스포라들 사이에서 조성되게 되었던 것이다.  곧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이 땅 위에  마련하셨던 하나님의 처소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는 사상에서 하나님의 신적 권위가, 이스라엘의 자기이해가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59)  로기의 예언자들- 이를테면 이사야( 40-45), 에스겔( 33-48)-은 이같은 위기상황에 대한 예언자적 반성을 보도한다.  그들은 공동체의 붕괴, 국가의 파멸, 성전의 훼파에서, 온 우주에서 한마디로 포로기의 혼란을 평정시키는 우주적 구원의 드라마'였다(예를 들어 사51:9-11;47:1-12).  혼돈에 처한 하늘과 땅에 새로운 질서가 조성되며,원수의 세력은 축출되고 파멸에 이른다.  여호와가 새로운 창조의 질서를 조성시키기에 땅의 풍요와 정의로운 사회, 정치, 종교가 회복되게 될 것이다.60)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 그것은 포로기 예언자들이 제시한 이같은 종말론적 사회구원의 비전이 퍽이나 낙관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에스겔이나 이사야의 민족. 국가 회복의 예언에는 우주적 환상이 역사적 실재로서 현실 속에 통합되고 있다.61)

주전 538년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유대 민족들은 고향 땅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국가의 회복을 외쳤던 예언자들의 비전은 그 땅 위에 실현되지 않았다.  하늘은 비를 그쳤으며, 땅은 이슬을 못 내었고, 사람들 사이에는 겁탈과 강포, 시기와 분쟁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1:2-4;4:12-17).  수난의 역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역사에 대한 선대(先) 예언자들의 낙관주의적인 신뢰가 회의와 실망, 분노와 저항으로 바뀌게 된다.  여기에서 예언자들이 전했던 회복에의 꿈이 포기되게 된다.  그리고 그 포기된 자리에 신화의 세계에서나 엮어낼 수 있는 것 같은 비관적인 묵시(Apocalypse)62), 시주의(Apocalypticism)63), 리고 묵시문학적 종말론이 태동되게 되는 것이다.64)

 

)  묵시문학 운동- 그 종말론의 성격

 

묵시문학의 사상적 특징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종말적 역사이해에 있다.65)  이같은 묵시적 종말론(Apocalyptic Eschatology)은 희망과 절망의 산물이다.  그것은  희망과 절망에서 나온 것이다.  ,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의 그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대한 희망뿐 아니라, 세계내 인간 역사의 현재과정에 나타나는 절망이 바로 그것이다.  한분이며 참된 하나님은 창조자이며, 그속의 만물을 다스린다는 것이 유다 신앙의 으뜸가는 신조였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부딪치고 있는 실제 경험은 파국적인 것이었다.66)

앗시리아와 바벨론의 정복, 포로, 페르샤의 지배, 헬라인들의 지배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의 지배, 전쟁, 부역, 점령, 헬라화의 강요, 그리고 제국주의 권력이 부과하는 세금 등은 견딜 수 없는 소외감과 무력감을 체험케 했다.  인간 역사는 실제로 지옥에로의 추락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주권자이기 때문에 인간 역사의 비극적인 사건들은 반드시 하나님에 의해 미리 예정된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67)

 

 그러므로 역사의 공포가 정점에 이름을 통해 만물이 변화될 것이라는 신적인 어떤 계획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희망은 세계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 살 수 있는 처음과 같은 낙원이 될 것이라는 데 있다.  참담한 역사와 우주적인 파국에 의해서 이 변화는 도래하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변화에 대비하여 스스로 준비해야만 했고 파국이 도래하는 표지들을 지켜보아야 했다.68)

이 묵시적 종말론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묵시문학은 현세계를 악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로 보고 있다.69)  언문학에 있어서 현세계는 하나님의 재배의지가 관철되고 있는 무대였다.  반면 묵시문학에 있어서는 현세계의 자체적 발전 가능성은 전혀 없고, 현실의 부당함은 오직 현세계의 파국을 통해서만 극복 가능하다.70)

  이 파국은 세계 외적인 힘이 세계 안으로 개입하여 옴으로써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세계 자체에는 발전 가능성이 있는 힘이 존재하지 않기 때분이다).  물론 이 힘의 근원은 세계 밖에 존재하는 하나님이다(이사야27:1).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세계 안으로 개입할 때, 그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71)

(2)  묵시문학이 말하는 파국과 새 세계의 도래는 철저하고 궁극적인 것이다.  그것은 시간적인 면에서 철저한 단절이며, 공간적인 면에서 유다 지역뿐 아니라 전세계를 포괄한다.72)

 

(3)  묵시문학은 현재를 파국이 임박한 때로 보고 있다.  이러한 임박성은 비상한 결단을 암시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상한 결단의 내용은 그 편차가 다양할 수 있다.  극단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것도 있을 수 있고, 극단의 탈속적 결단을 요청하는 것도 있을 수 있으며, 또 이 양자가 긴밀히 결부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73)

(4)  이 임박한 파국은 역사 외적인 힘에 의한 철저한 변혁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럼으로써 도달하게 되는 새 세계는 세계 밖에 존재하는 피한의 세계가 아니다.  새 세계는 역사의 무대 안에서 이루어지는 궁극적인 세계이다.74)

지금까지 이세상속에 유전되어온 모든 사회문화적 구조들은 낡고, 무기력하며, 스스로를 회복시킬 어떤 가능성도 없다.75)

그러므로 새창조, 부활, 대재난, 우주적인 심판등을 나타내는 묵시문학의 용어들은 인간세계만에 국한되지 않고, 우주전체의 범위를 포함한다.76)

(5)  묵시문학은 심판의 대상과 구원의 대상을 이원론적으로 철저히 구분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이 양자 사이에 모호하게 존재할 수 없다.  오직 구원의 대상과 심판의 대상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심판의 대상은 악이 재배하는 현세계 아래서는 지배자이며, 구원의 대상은 그들에 의해 고난 당하고 있다.77)

 

(6) 역사의 결정론역시 묵시종말론의 특징이다.  시간의 징조들과 수자의 단위들은 마지막 시간의 계산을 위한 역사를 도식적으로 나누는 수단들로 사용된다.78)

(7) 묵시주의는 사회적기능을 담당한다.  , 권고나 위안을 준다.  모든 묵시적 구조가 박해의 기간에 일어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으나, 많은 예들은 의심할바 없이 확실하다.79)  박의 상황들로부터 일어나는 이같은 아노미적 현성들은 현실의 진실된 의미성과 미래의 이상적 구조들을 추구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묵시적 이상들은 위기의 극한 상황의 한복판에서 인내할 수 있게하였다.80)

죤 콜린스는 묵시적 상징의 기능은 현실의 상황을 예리하게 지각하도록 만들며, 그것의 개혁을 위한 행동의 근거를 제공해 준다고 하였다.81)

 

2) 유대종파운동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의 헬라주의적 독자들에게 기원후 1세기초에 유대교안에 있었던 집단들과 공동체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세 종류의 철학파가 있었다.  즉 바리새파

 

 사람들이 한 학파를 형성하고, 사두개파 사람들이 다른 한파를

 형성하고, 특히 엄격한 규칙을 따라 살았던 소위 엣세네파 사

 람들이 세번째 학파를 형성한다. (Discher Krieg, p.119)82)

 

) 사두개파83)

사두개라는 이름은 솔로몬 시대(주전 10세기)에 대제사장 사독으로 부터 유래된 것으로, 이 집단은 대부분 사독 계통의 제사장들로 이루어졌다.  사두개이인들은 처음에는 이 사독계 사제와 마카누스 1(John Hyrcanus I주전 134-104)와 관련해서 언급되었다.  주후 70년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분명히 사제 그룹과 그들의 문서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사두개인들에 대해서는 이차적 자료인 고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문서들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모든 문서의 진술들은 사두개인들이 영향력있는 예루살렘 가문들의 구성원들 이었으므로 상류 계층들  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 충돌하게 되었고 정치적, 종교적인 이유로 그들을 반대하게 되었다.  제사장들인 사두개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제사를 드렸고, 산헤드린을 지배했으며, 정치 지도자로서 로마의 지배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보수적인 정치적 견해는 종교에 대해서 보수적인 경향을 띄게 된다.84)

 

사두개인들은 토라를 좀더 문자적으로 읽기를 고수하였는데, 토라는 그들에게 오경이었으며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이 주장한 구전 전승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두개인들은 또한 포로 후기의 성서들 속에서 발전 된 대부분의 비오경적인 견해들, 천사들과 악마들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사도23:8;마르12:18-27)같은 것을 거부했다.85)

또한 사두개인들은 바리세인들이 운명과 자유의지의 연합을 시도한 반면, 사두개인들은 인간의모든 일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적 결과로 보았다.

   사두개인들은... 운명을 부인한다... 사두개인들은 인간이 선

 과 악의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각 개인은 그

 가 따를 것을 선택한다.  사두개인들은 죽음후에 영혼의 불멸

 과 저승에서의 벌과 보상을 부인한다.86)

그러므로 사두개파의 종교적 성향은 묵시 또는 종말사상에 대하여 반대한다.  그들은 천사와 귀신, 악한 영, 죽은 자의 부활등을 믿지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친 로마적 경향때문에 묵시적 소망과 종말론적 사상을 반 로마적 민족주의의 모습으로 여겨 두려움과 증오의 눈길로 바라보았다.87)

 

 

)  바리새파88)

바리새라고 하는 이름은 히브리어 perushim 과 아람어 perishaya 로 부터 온 것인데, 그것은 분리된()'를  의미한다.  무엇을로부터 혹은 누구로부터 분리된 것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사두개인들과 같이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처음에는 지지했으나 나중에는 결별하였던 마키비인들 아래서 주전 2세기 후반에 출현하였다. 요한 히르카누스가 그의 어머니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비난 때문에 바리새인들에게 피의 복수를 가한 후, 그들은 다시 알렉산드리아(Aiexandra, 주전76-69)여왕 아래로 들어갔으며 점차 성장하게 되었다.  사두개인들과 달리 바리새인들은 사제들이 아니었으나, 그들은 위에서 언급한 구전 법률 전승의 보존과 그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평신도 학자들이었다.  이리하여 바리새인들은 회당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으며, 경건한 생활(구제, 십일조, 기도, 금식)과 토라의 해석, 특히 정결법, 추수, 안식일과 축제, 그리고 가족의 임무들과 같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러한 분야에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위한 울타리 를 만들었다.89)

 

  사두개인들과의 뚜렷한 차이는 바리새인은 천사들, 악마들,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 등과 같은 견해에서 뿐 아니라 성서에 대해서도 보다 넓은 새로운 개념을 받아 들였다는 데서 나타난다.  신약성서는 예수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과의 논쟁을 자주 묘사하고 있는데, 아마 서기관들은 여전히 다른 분리된 분파를 형성하였던 것 같다.90)

바리새인들은 여러 다양한 학파 들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주후 1세기에 있었던 힐렐과 샴마이 학파였다.  가장 존경받는 교사들은, 비록 이 용어 사용의 시작에 대해 역시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라삐들이 되었다.  그리고 사두개인들과는 다르게 많은 바리새적인 전승들이 소위 라삐 문학에서 보존되어 왔는데, 그 이유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야브네(Javneh,얌니아)의 연안 도시에서 바리새적 계통을 따라 유다교를 재조직했던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얌니아에서는 유다 성서가 결정되어졌고, 구전 전승들이 수집되어졌으며 그리스도인들과 이교도들에 대항하는 기도가 유다인의 기도의 중요한 항목으로 첨가되었던 것이다.91)

 

바리새파 사람들은 구전을 통해 주전 2세기 이후부터 점점 중요해진 묵시적 종말론적 개념들을 자신들의 사유에 통합시켰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런 도래라든지, 메시야의 도래, 죽은자의 부활등에 대한 기대가 바리새파의 사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모든 인류의 역사를 흔히 두시대' , 이시대' 새시대'의 관점에서 생각했다.  바리새인이 이시대'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은 악한 세력과 불의한 자들이 하나님의 목적과 의지를 좌절시키려하는 현시대 상황이다.   이시대'에서 한가지 확실한 길은 토라에 순종하는 길이다.  그 길을 통해 죄와 유혹의 세력은 극복될 수 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새시대'가 오게 할 터인데 그 시대는 죄와 악에대한 하나님의 최후의 승리가 인간에게 나타날 것이며, 새로운 존재 질서가 인간의 삶을 규정할 것이다.92)

바리세파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에 묵시사상을 받아들여 당시 시대적 고난의 상황에서 종말론적인 이시대의 파멸과 새시대의 희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새시대에 대한 소망은 율법에의 절대적인 순종에서 찾으려 했다.

 

)  에세네파

 

에세네인들은 라삐적 문헌, 혹은 신약성서에서는 언급되고 있지 않으나 고대 사가인 필로, 요세푸스 그리고 장로인 플리니(Pliny)에 의해서 언급된다.  에세네인들은 마카비 가문의 대제사장 요나단(Jonathan, 주전 161-143/2)치하에서 최초로 나타나며, 그 후에 로마와의 전쟁 기간에, 즉 주후 약68년경에 없어진다.  약간의 에세네인들은 마을들과 도시들에 살았을지라도, 1947년에 사해 문서들의 발견과 그 이후의 키르벳 쿰란(Khirbet Qumran / 와디쿰란 가까이에 있는 사해 연안에 세워졌다가 파괴된 유다 수도원 )의 계속되는 발굴은 현대 학자들에게 대부분의 문서들이 에세네인들에 의해 쓰여졌고 복사되었으며, 플리니가 말했던 에세네인 공동체가 분명히 그 근처 벼랑의 동굴에 있었다는 것이 옳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93)

 

에세네 (Essene)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는 Essenoi, Essaioi이고 이것은 Hasayyah 경건한 사람들  또는 asayyah 치유자들 을 의미하는 아람어와 같다) 주전 167년에 있었던 항쟁 때에 마카비 가문들과 잠시 잠정적으로 연합했던 하시딤(Hasidim), 경건한자들 에서 그 기원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어쨌든 그 공동체의 성립자는 주전 2세기 후반에 사악한 사제 (요나단?  아니면 시몬일 것이다)라는 마카비가의 한 사제에게 저항했던 사독계열 사제의 한 이의 교사일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세례자 요한이 예언했다는 이 구절(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라.... 이사야40:3)의 성취를 위해 그 교사는 그의 추종자들을 사해로 이끌고 나가 제사장 지향적, 서기관적 그리고 묵시적 공동체를 설립했는데, 그들은 일하고, 종교적인 문헌들을 복사하고, 종교적인 서적을 쓰고, 그들의 달력과 관습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세례를 베풀고, 공동식사를 하며 정결하고 더럽혀지지 않는 금욕적인 삶을 살고자 애썼다.94)

 

 이들의 문학, 공동체 조직, 그리고 종말론의 강조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발생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쿰란에 거주하던 에세네파는   엄격한 규율속에 살았는데 공동체의 규칙에 보면, 그들은 노동의 시간을 가졌고, 각기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 소유물 중에서 가져다 썼다.  공동체에 가입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공동재산으로 내놓았다.  이들의 규율의 특징중 하나는 가난을 서원했고, 자신들을 가난한 자의 회중이라고 부렸다.95)

감사의 두루마리에 보면, 예배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는 데 토라를 읽고 주석하는 일이 예배의 중심부분 이었다.  1년의 저녁 시간중 1/3이 토라를 낭독하는 시간이었다.  『수칙에 기록된 공동식사 행위는 의미있는 것이었다. 식사는 제사장앞에서 제사장의 축복기도속에 행하여 졌는데 이것은 에세네파가 참여를 기대하는 메시아의 종말적 잔치에 대한 의식였다.96)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 사이의 전쟁이란 문서는 세계를 지배하는 악한 천사들과 하나님의 군대와의 우주적이며, 이원론적 묵시 종말사상을 강하게 보여주고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악한 영들의 지도자인 벨리알이 정해진 시간에 멸망할 것을 말한다.

   진리와 의를 상속받은 만큼 불의를 미워하고

 또한 불의의 운명을 상속받은 만큼,

 

 악을 행하고 진리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결정된 종말과 새 창조의 때까지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기 때문이다.97)

이같은 에세네파의 모습은 유대종교사상에 종말론적 소망과 묵시적 미래관을 전파하고 배양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  어록자료에 반영된 삶의 정황

 

본 장에서는 Ⅱ장에서 살펴본 일반적인 사회 상황을 바탕으로 어록에 나타난 사회적인 조건들을 살펴봄으로써 어록자료를 보존하고  전승하였던 구성원의 모습을 나타낼려고 한다.  원시 기독교에서의 예수 말씀의 전승은 무엇보다도 예수가 자신의 말씀을 문헌으로 고정시키지 않았기에 하나의 사회학적인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구전전승은 그 전승의 전달자와 전수자의 관심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 전달자와 전수자가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사실때문이다.98)  그렇기에 어록자료에 나타난 사회적인 조건들을 살피면 역으로 그 전승을 가능케 하였던 구성원이 어떠한 계층의 사람이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장에서는 어록자료의 사회경제적인 요인들- 생계비, 직업, 사회계층 -을 통해 나타나는 어록공동체의 구성원을 밝히고, 도시환경과 시골환경과 같은 사회생태학적인 요인을 통해서 어록공동체의 주된 활동의 거주지를 밝히며, 어록자료의 반사회적인 요인을 통하여 어록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처해있었던 사회적 여건들을 밝혀보고자 한다.

 

 

1.  사회 경제적 요인을 통해 본 정황

매우 소박한 사회경제적 요인, 즉 생계유지의 문제는 어록전승에서 어느정도 분명하게 취급되고 있다.  어록자료를 통해서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여행을 하는데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 지팡이나 전대나

 빵이나 돈이나 두벌의 속옷을 가지지 말고 길가다가 누구에게도

 인사하지 말라.(9:3)

여기서 특이한것은 전대와 지팡이와 빵과 돈을 지니지 말라고 한것이다.  왜냐하면 외투와 전대와 지팡이는 견유학파99) 라고 불리운 떠돌이 철인들의 특징적인 소유물 이기 때문이다.100)  또한 길을 가다가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한것은 가난을 외적으로 표시하지 말라고 한 의미로 해석되어질 수 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응답되어질 수 있다.

 

   너희는 한 집에 머물러 있어 거기서 주는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것은 마땅하다.  이집 저집 옮겨 다니지

 라.(10:7)

위의 구절을 통해서 보면 어록자료의 전승자들은 자기들을 자발적으로 부양해줄 사람들이 항상 있을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자선적인 인심에 호소했던 것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에 호소했던 것이다.  , 병고치는 일과 종말론적인 선포를 하는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것이 정당하다는 이유라고 생각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좀 더 높은 수준의 동냥으로서 생계의 문제를 다만 부수적으로 문제삼는 그리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6:33)라는 구절에 따라 생계의 문제가 어느정도는 저절로 해결 된다고 신뢰하는 카리스마자들101) 의동냥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 동냥이라고 표현은 하고 있지만 이것이 문제되지 않는것은 어록전승자들은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요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말씀의 선포였기 때문이다.  그러했기에 그들은 박해와 여러 고난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인내할 수 있었다.102)

 

  그것은 종말론적인 선지자인 예수의 순교가 그들의 원형이었기 때문이다.103)  하지만 때때로 어록전승자들은 아무도 영접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굶기도 했던것 같다.  그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뜨내기들 처럼 종종 내 쫓김을 당하기도 하였던 것이다.104)  에대하여 어록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말하건데 너희들이 이스라엘 동네들을 다 돌기 전에 인자가 올

 것이다.(10:23)

그러므로 어록전승자들은 이 말씀에 자신을 위로하며 자신들의 사역에 힘을 돋우어 떠나야할 다음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제자라고 자부하는 그들이 예수의 대리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길을 떠났으므로 영접이든 배척이든 그들이 받는 반응은 곧 예수의 세상에 대한 반응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의 완전한 전권대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105)

 

이상의 어록자료의 사회 경제적인 내용을 통해서 나타난 정황을 본다면, 그들은 생계비조차 없었었으며 직업이라야 예수의 말씀을 선포하며 증거하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있었고, 그들은 곤궁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을 말씀으로 축복해 주고 그들에게서 의식주를 도움받았기에 사회계층에서도 중심세력이 아닌 주변부 계층임을 알 수 있다.

어록자료에 보존되어 있는 공동체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소종파적 모습이다.  이것은 문화적 유산이나 가정의 전통등 기존의 제도들로 부터 일탈하려는 의식적인 결단 때문에 사람들이 참여하는 집단이다.  이러한 공동체는 환경이나 사회체제가 기존의 당연시 되던 의미체계를 붕괴시키고 그럼으로써 그 의미체계가 더 이상 타당성을 갖지못할 때 발생한다.  그때 다양한 집단이 일어나 새로운 의미군과 정체성을 만들어 낸다... 106) 사회질서의 붕괴로 말미암아 무기력해지고 위협감을 느낀 사람들은 현재의 무질서를 미래의 사건에 비추어 해석하는 적절한 방식 107) 을제공하는 메세지나 전달자에게 매달린다.

그러므로 이들이 사회의 제도에 순응하며 체제를 유지시켰다기 보다는 오히려 현사회를 인정치 않고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 며, 새 세상'에 대한 묵시 종말적 대망이 그들을 무력감으로 부터 구원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2.  사회 생태학적인 요인을 통해 본 정황

먼저, 사회생태학적 요인이라 함은 생활환경의 위치적 요인을 언급하는 것이다. - 도시환경이나 시골환경 등 -  그런데 어록자료속에는 일반적으로 시골지역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비유의 상징을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소농, 삯일꾼, 소작인, 목자, 표도원 주인등이 비유에 종종 등장하며 파종과 추수, 경작지와 잡초, 양떼와 물고기등도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108)  또한 시골환경이 어록자료의 주된 사회 생태학적인 요인이라는 것은 다음에서도 관련이 있다.  , 도시의 공동체들은  그 규모에 있어서 조직과 각 직제가 필요 했었다.  그러나 어록전승의 전달자들은 시골 공동체에서만 그들의 권위를 지킬 수 있었다.  이것은 어록전승이 소규모 공동체들을 고려에 넣고 있다는 데에서 도 알 수 있다.   두 세 사람이 내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내가 그들과 함께 있다 (18:20) 는 구절이 어록자료에 나타난 것은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특별한 권위 구조들이 필요하지 않기에 그들의 상황과 부합시키기 위해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록자료에 보면, 하루정도 걸리는 길을 갈 때에만 식량을 휴대해도 된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시골환경을 전제로 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큰 도시들은 서로간의 거리가 보다 멀기 때문이다.109)

 

이상의 사실을 통해 볼 때, 고대의 기독교가 대개 하나의 도시적인 현상이 었다는 점과 달리, 어록전승이 시골환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어록자료의 전승자들은 시골환경에 익숙한 자들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3.  반 사회적 요인을 통해 본 정황

어록자료에는 독특하게 반사회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반사회적인 내용은 먼저, 제자직에 관한 어록위 3부분에서 표현되고 있다.  그 구절을 살펴보면 다음과같다.110)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

  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집

  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둘곳이 없다. (9:57-58)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가서 하나님

 의 나라를 전파하라. (9:59-60)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

 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하락하소서!  예수께서 이

 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

 라에 합당치 않다.(9:61-62)

 

이 첫번째 말씀에서는 예수를 따르려고 선택한 자들이 가정도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잠을 잘 수 있는 장소도 가정도 가지고 있지않기 때문이다.  두번째 말씀에서 예수는 거의 모든 감성도 부정 하신다.  왜냐하면 예수의 급박한 부름은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 장례도 허용치 않는 즉각적인, 그리고 전체적인 응답을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세번째 말씀은 누가의 특수 자료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어록자료로 취급할 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다분히 그 내용은 반사회적이다.  왜냐하면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가족에게 작별인사조차 하는것을 허락치 않기 때문이다.  가족관계성에 관한 문제는 아래의 구절을 통해 한층 더 충격을 가져오게 한다.  이곳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그 가족의 구성원을 증오해야함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오하 처자와 형제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14:26)

이러한 과격한 내용들을 툐해서 볼 때, 과연 누가 이것을 듣고 받아들이며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는가?  어떠한 사회적 상황이 그러한 반 사회적인 메시지를 낳게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만약 보존되어지고 전승되어진 이러한 자료들이 일반적으로 전달자의 감응에 의해서 받아 들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전달자가 사회의 주변에 위치한 사람들이고 주변자로서 경험한자들 이었으며 가난과 집이 없음과 가족의 관계성을 거절하고 길가의 삶을 필요로하는 상황에로 기울어진 자들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 주변 그룹은 그 자체가 정착되지 못했고 의심할  바 없이 사회 안정에 정착하지 못한 그룹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반사회적인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간직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달해 주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반 사회적인 내용을 통해 나타난 어록공동체의 구성원은 집과 가까운 가족과 유대관계, 재산, 그리고 안전을 포기해 버린 방랑하는 카리스마적인 예언자들이 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  어록공동체가 지닌 대표적 묵시종말사상

 

 

본고는 Ⅱ장, Ⅲ장 통하여 어록공동체의 모습을 어느정도 규명해 보았으며 그 공동체가 처한 상황이 묵시적인 상황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음을 추론해 왔다.  , Ⅲ장 전체를 통하여 나타난 어록공동체의 모습은, 당시의 정치적 또는 종교적인 지배계층으로 부터 배척 소외당하여 왔으며 그들과 분리된 집단이지만 그 그룹안에는 독특한 다이나믹이 있어 그것이 그들 특유의 종말적인 묵시 사상에 의존하게 했음을 유추하였다.  그러므로 본 장에서는 실제 어록자료안에 나타나는 묵시적인 주제를 어록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살펴볼 것이다.

묵시문헌은 일반적으로 역사진행과정에 대한 비관주의, 하나님과 사단, 지상세계와 하늘세계, 현세대와 오는 세대사이의 이원론, 역사의 마지막을 임박한 것으로 보고 미래의 사건을 예시함, 하나님의 최후의 승리에 대한 신앙, 부활과 최후심판에 대한 믿음등의 특징들로 나타난다.111)  Kee 교수에 의하면 어록공동체가 전승하고 있는 65개의 예수의 어록들 가운데 43개가 직접혹은 간접적으로 묵시문학적인 마지막때 의식을 반영하고 있고 그중에 29개는 직접적으로 종말론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112)   또한 52개 이상의 담화중에서 4(7:2-3, 6-10; 16:13; 11:34-36; 17:3b-4b) 만이 종말론적인것이 아니라고 간주한다.113)  그러므로 어록 자료의 전반적인 내용이 묵시적 주제와 깊이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어록자료의 묵시종말 사상

 

1)  임박한 종말의식

어록자료는 특히 마지막 때가 세례요한부터 시작하여 사람의 아들인 예수를 거쳐서 지금 어록공동체의 시대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보았다.114)  그러므로 어록공동체 구성원들은 그들이야말로 마지막때의 마지막에 살고 있다는 자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록공동체의 이러한 종말론적인 시대의식은 그들이 몸담고 이었던 팔레스틴의 사회들에서 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주전63년 폼페이우스가 팔레스틴을 점령한 후 로마를 헬라화, 도시화정책을 수행함으로 여호와신앙 전통으로 뭉친 이스라엘 촌락 공동체의 해체를 겨냥했고 이를 통해 그들은 팔레스틴을 수월하게 지배할 수 있었다.  헤롯대왕은 소농에 적대적인 정치를 수행하여 그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이를 대지주들에게 매도함으로 대규모 사유재산의 집중을 초래하였으며115)  소량의 소작농 농노 그리고 실업자를 생산하였다.  특히 과중한 세금제도는 팔레스틴 인구의 70%를 차지했던 소농과 소작농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협하였고116)   로마 반 헤로대왕가 저항운동을 일으키는데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설상 가상으로 클라디우스(주후46-47)하에 계속되었던 기근과 한발은 주변부 민중을 더욱 위협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어록공동체의 종말론적인 시대의식은 자신들 역시 주변부에 속한 자들이었기에 이 억압과 불만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식은 어록공동체로 하여금 사회와 연관된 선교적인 실천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록자료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3:9)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을 분별할 줄 알면선 어찌

 

  이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12:56)

여기서 나타난 선포의 내용은 이세대의 철저한 멸망이 임박하였다는 것이다.  바로 이시대는 묵시문학이 표현하는 바 최후의 순간에 서있는 것이다.

   세계의 젊음은 상실되었고, 피조물의 세기는 이미 오래전에

 종말을 고했다.  세대의 진보는 이제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왜냐하면 물동이는 샘물가에 대상(the caravan)은 도시에 그리

 고 생명은 그 종말에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117)

 

쿰란문서도 세계의 파멸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때 벨리알의 홍수가 가파른 뚝을 덮칠 것인데, 모든 것을

 삼키는 불과 같을 것이며... 그들의 경로를 통하여 모든 풀과

 마른 나무들이 파괴될 것이라.  타오르는 불꽃으로 덮치되 더

 이상 마실것이 없을 정도가 될 것이며 진흙의 근원과 마른 땅

 

 의 끝까지 삼키워질 것이라. 산의 근원이 타오를 것이며 부싯

 돌의 뿌리가 송진의 강이 될 것이며, 심연까지 삼키운바 되리

 라.118)

이같은 종말에 대한 언급은 먼 미래적 개념이나 또는 역사적인 철저한 종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이해 되어졌다.119)  4 에즈라서 7:112-13에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이 현재의 세계는 종말이 아니다.  충만한 영광이 그안에 거

 하지 아니하도다.  그러므로 강한 자는 약한자를 위해 기도했

 다.  그러나 심판의 날이 새대의 끝이 될 것이며, 불멸의 시대

 의 첫 시작이 될것이다.  그 안에서 타락은 없어지리라.

이것은 어록공동체가 이세대의 고난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살았던 종말적 역사관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2)  축복의 선언.

 

가난한 사람에 대한 축복선언 (6:20이하) 은 마태의 산상설교와 누가의 들의설교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예수의 어록으로서 공관복음에서 가장 오래된 전승층에 속한다.120)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난한자는 복이 았나니 천국이 저희것임이요, 주린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입을 것임이요, 우는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이요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하여 버릴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위의 내용에서 특이한 점은 어록자료가 경제적으로 소외계층에 대한 축복선언을 그의 신학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이다.  여기에 프토코이'(가난한 사람들)이란 일차적으로 물질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을 의미한다.121)  동시에 이는 궁핍에 처한 자, 억눌린 자,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자,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주변의 민중을 나타내는 총체적인 개념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시대에 누가 프토코스'에 해당하는가?  뵈젠에 의하면 이들은 월 수입이 최저 생계비(9면가족) 200디나르에 미치지 못하는 절대 빈곤에 처한 생활보호 대상자를 지칭하는데 이들은 팔레스틴 주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였다.122)  바로 그들(프토코이)에게 어록자료는 행복하다고 하는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그들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하나님 나라'는 미래적, 종말적 해방에 대한 약속을 내장하고 있다.123)

쿰란 공동체는 스스로를 가난한 자들로 규정하려 하였었다.(1QM ⅩⅣ. 7; 1QS . 3; 1QS . 8.)

이같은 묵시적인 성향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임이라는 선포에서 더 뚜렷히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가 종말론적인 개념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광신적인 헬라주의자 안티오쿠스 4세의 야훼종교 말살정책하에서 수난과 박해를 당하고 그의 폭력정치에 항거했던 이스라엘의 주변부 계층의 종국적인 승리에 대한 기대가 사람의 아들과 함께 통치할 하나님의 나라상에서 현재화 하였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빈곤과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스라엘 주변부 민중에대한 하나님의 연대성에 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124)

 

어록공동체는 현실의 한 복판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수난과 박해를 받으며 우는 자들에게 묵시 종말론적인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여 그들의 승리를 제시하며 용기를 복돋우기 위한 목적으로 축복의 선언을 하고 있는것이다.

 

3)  큰 잔치 비유

누가복음14 15-24절과 마태복음22 1-14절의 잔치 비유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의 구원을 잔치와 비유 한다는 관념을 지니고 있다.125)  여기서 잔치는 하나님의 마지막때의 구원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주인은 사실상 하나님이다.  초청을 전달하는 종은 하나님의 사신이라고 보면 될 듯 싶다.  여기서  원 손님'(부자)들의 거절은 표상에 불과하지만 그 현실적인 차원에서의 의미를 갖는다.  , 부자들의 일상적인 용무는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소유지향적이기 때문이다.  또 대신 온 손님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지향하는 거리의 빈자들이다.  집이 채워졌다는 것은 표상이지만 현실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구원으로부터 제외된 원 손님들에 대한 심판으로 파악될수 있다.  그러므로 이 비유에서 불변하는 하나의 주제는, 하나님이 인간을 그의 행동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며 또 하나님의 왕권이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 될것이라는 주제와 원 손님'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잔치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약속이라는 주제이다.126)

 

 다시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다.  잔치에 실제 참여한 국외자들은 손님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유대전통에서는 흔히 잔치가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고 또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불러 모으는 기쁜 날이므로 이비유는 종말론적인 견지에서 계약백성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 내린것 이라는 점이 분명해 진다.127)

몇몇 묵시문서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축복을 공유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시빌의 신탁(the Sibylline Oracles)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때에 모든 섬들과 도시들이 말할 것이다.  얼마나 영원자가

 이사람들을 사랑하시는가! ... 그의 성전으로 줄을 지어 나아가

 자.  그는 유일한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나라로

 부터 사람들이 위대한 하나님의 집으로 유향과 선물들을 가지고

 올 것이다.128)

 

쿰란 공동체에서도 식사행위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는데 식사에 참여하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이 된 자의 특권이었고, 공동체의 식사는 하나님의 최후 승리가 실현될 성대한 메시야 잔치를 내다보는 종교의식이었다.129)

그러므로 어록자료는 이 비유를 통하여 현실의 중심부에서 억눌리고 가난하며 소외된자들에게 새로운 계약의 주체가 그들임을 상기시키고 종말의 메시야연회를 대망하도록 희망을 주었다.

 

4) 인자 기독론

사람의 아들은 어록전승 뿐만 아니라 마가복음, 요한복음 그리고 마태오와 루가의 특수자료에도 등장한다.130)

 어록에서 보여주는 가장 묵시종말론적 표상은 인자로서 하늘로 부터 오는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기대이다(누가 11,30; 12,8-9; 12,40; 17,24; 17,26.30).131)  드 에드워드는 이 여섯가지 담화들 가운데 네개가 어록공동체 자체내에 있는 예언자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것을 보여주었다.132)

인자로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예수에 대한 기대의 기원은 다니엘서 7장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나는 밤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고적부터 계신 이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되었다.

 그의 주권은 쓰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133)

어록 공동체는 종말의 심판을 집행하기 위해서 권세를 가지고 인자로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수의 재림을 기대했다(누가 12,8-9). 그는 갑자기 그리고 예상치고 않은 때에 올것이다(누가12,40).  이러한 기대에 형식과 내용의 필요를 느꼈을 때에 공동체의 예언자들은 과거의 유다 역사로 돌아가서 그것은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간것같으며(누가11,30), 번개가 치는것 같을 것이며(누가17,24) 혹은 노아와 롯과 관련된 심판의 재앙(누가17,26.30)과 같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특정한 방식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시대에 그들의 종말적인 희망은 다른 묵시적 예언문학으로부터 묵시종말적 관념과 표상들을 끌어왔다.134)

 

어록에 등장하는 사람의 아들 표상은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도래할 사람의 아들 표상과 현존하는 사람의 아들 표상이 그것이다.  마가  복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수난과 부활의 사람의 아들표상은 어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수난의 사람의 아들 표상은 비교적 후기 작품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여기는 수난과 부활에 관한 신학적 반성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135)  래할 사람의 아들 표상과 현존하는 사람의 아들 표상은 이에 반해서 비교적 전기의 전승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도래할 사람의 아들 표상은 묵시문학적 사람의 아들 상에 근접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136)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람의 아들 표상은 묵시문학문서, 특히 다니엘7장에, 에디오피아 에녹서37-71장 그리고 제4에스라 등에 등장한다.  사람의 아들 상과 관련된 이 문서들은 주전 162년 안티오쿠스 4세가 야훼제의 금지령과 유다교 말살정책을 수행했을 때 구성되었는데, 여기에는 이스라엘 주변부 민중이 외세에 의해서 당하는 박해와 고난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마지막 때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 강자들, 권력자들, 억압자들을 심판할 것이고 그들에 의해서 박해와 고난을 당하던 경건한 자들, 의인들, 성도등 이스라엘의 주변부 민중이 구원받게 될 것이다.  강자에 대한 심판과 약자에 대한 종말론적 구원을 주 내용으로 하는 사람의 아들 표상은 묵시문학문서들에서는 신화적 언어로 채색되어 표현되어 있다.137)

 

어록이 전승하고 있는 도래할 사람의 아들 표상은 그 기원에 있어서는 묵시문학적인 사람의 아들 표상을 전제하고 있는데, 어록에서는 묵시문학에서 특징적인 사람의 아들에 대한 신화적 표상들이 퇴조하고 그의 '에 관한 돌연성'이 강조된다.138)  이와 더불어 어록에서  종말론적 심판자로서의 도래할 사람의 아들은 지상 예수와 동일시되지 않고 항상 3인칭 단수로 표현된다.139)

이와 반면에 어록의 현존하는 사람의 아들 표상에서는 종말론적 심판자로서의 사람의 아들의 기능보다는 소유도, 고향도, 거처도 없이 빈궁한 삶을 살아야 하는 카리스마적 떠돌이 예언자로서의 특색이 부각되어 있다.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

 되 오직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 하시니라 (누가9:58).

 

여기에는 지상 예수의 떠돌이 운명과 이스라엘 주변부 민중의 현실이 투영되어 있다.  카리스마적 떠돌이 예언자요 사람의 아들인 지상 예수는 올 자요, 이사야에서 예언된 종말론적 해방의 담지자이다.  현존하는 사람의  아들은 따라서 지상 예수와 일치한다.141)

 

어록의 예수 이해에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고린도전서 15 17절 이하와는 달리 예수를 수난의 케리그마의 빛에서 조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어록 전승에는 예수의 이해를 위한 다윗자손 메시아론(젤롯당),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론(예루살렘 교회와 바울로 교회), 그리고 신--그리스도론(마가 복음)도 발견할 수 없다. 예루살렘 교회-바울로 교회의 전통에서는 지상 예수가 부활의 그리스도로 선포되고 신앙 및 예배의 대상으로 되며 복음의 내용이 된다. 지상 예수는 케리그마화되고 비역사화된다.142)

이와는 달리 어록공동체에서 예수는 대망, 따름, 실천의 대상이다.  예수 선포의 재선포, 예수 실천의 재실천,  즉 어록에서 예수는 운명과 삶을 더불어 나누어야 할 대상이다.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론이 헬레니즘도시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원시 그리스도교 예수운동의 핵을 이루고 있는 데 반해서 역사적 예수론은 이스라엘의 북부 변경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어록공동체 예수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43)

 

5)원수사랑 계명

 

원시그리스도교 어록공동체의 종말론적 자의식은 원수사랑 계명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원수사랑 계명은 원래 고립적인 전승층에 속한 것이었으나 어록의 편집단계에서 예수의 다른 로기온들과 응결되어 소위 원수사랑 계명군(마태5:38-48;루가6:27-36)을 형성하고 있다.144)  록의 전승관계에서 편집된 이 계명군의 순서는 아래와 같이 복원될 수 있을것이다.

(1)  원수사랑 계명(마태5:43이하/ 루가6:27이하)

(2)  하느님의 아들됨(마태5:45/ 루가6:35이하)

(3)  폭력포기(마태5:39-41/ 루가6:29)

(4)  극빈자와의 연대(마태5:42/ 루가6:30)

(5)  황금률(마태7:12/ 루가6:31)

(6)  자비의 실천(마태5:98/ 루가6:36)

 어록공동체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당시 자신들의 교회가 처해있는 종교, 정치, 사회적 삶의 자리'의 조건속에서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145)

원수사랑 계명의 실천을 통해서 어록공동체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는 각성을 가지게 되고 이런한 어록공동체의 하나님의 아들 의식은 폭력포기, 극빈자와의 연대, 손님 접대, 자비의 실천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어록공동체는 어떤 상황에서 원수사랑 계명군을 전승하고 있는 것일까?

 

일련의 서구 신학자들이 146) 주장하는 바와 같이 , 원수사랑 계명과 폭력포기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젤롯당적 저항운동을 반대하고 로마제국과의 비폭력적 평화를 꾀하였던 원시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정치적'동기로 읽을 수 있는가?147)  , 원수사랑 계명은 어록공동체의 반젤롯당적 정치적 삶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가?  그러나 어록전승 전체의 맥락에 비추어 볼 때, 원수사랑 계명에서 어록의 정치적 동기를 읽기는 어려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넷째 축복선언은 원시 그리스도교  어록공동체에 의해서 편집된 것으로서(이 로기온은 예수에게 소급시킬 수 없다)  그가 처해 있던 상황을 암시하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을 제외하고는 누가에 비해서 마태 가 보도하고 있는 본문이 비교적 어록의 원형에 더 충실하다. 어록 의 원형은 다음과 같이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148)

그들이 너희를 모욕하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박해하고 비방하면

너희들은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왜냐하면 너희 상이 하늘에 크기 때문

이다.  그들은 예언자들에게도 그렇게 대하였다.

 

사람의 아들때문에 박해당하고 모욕을 받는 사람들은 어록공동체의 떠돌이 예언자들을 지칭하고 있음에 틀림없는데, 이들은 바리사이파의 회당으로부터 축출당하고 삶의 터전을 상실한 채 문전  걸식하면서 오직 하느님의 보호하심만 의지하고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치유했던 선교집단이었다.149)  어록공동체가 예수운동의 선교적 실천 과정에서 바리사이파로부터 받아야 했던 박해와 수모, 떠돌이 생활에서 겪어야만 하였던 생명의 위협 과 끼니에 대한 염려가 다름아닌 원수사랑 계명의 삶의자리'를 형성한다고 불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어록공동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인 원수는 일차적으로 외세인 로마인들(정치적 원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내의 바리사이파(종교적 박해자들) 그리고 떠돌이 선교과정에서 만나야 했던 생명을 위협하는 노상 강도떼들로 볼 수 있다.150)

쿰란의 Manual of Discipline 1,3에는 원수사랑 계명과 원수증오 계명이 나란히 등장한다.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가 선택한 모든 사람들

  을 사랑하고, 그가 택하지 아니한 사람들을 미워하며, 모든 악

  을 멀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또한 쿰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는 분노하는 것(1QS 5,25f) 그리고 복수하는 것(Dam 8,5)이 금지되고 있다.151)

그러나 어록 공동체가 보여주는 원수사랑의 계명은 독특한 형태의 삶의 자리와 신학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그것은 원수 사랑 계명의 실천은 어록공동체의 하나님의 아들됨의 신학적 의식였다.152)  , 이같은 실천은 종말론적 자의식의 지표였다고 할 수 있다.

원수사랑 계명은 그들의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삶의 자리'에서 형성되었다.  우리는이 계명을 불트만처럼 순수하게 실존적 개인적 지평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인이 가져야 할 복종 혹은 철저한 자기권리의 포기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153)  원수사랑 계명은 지상의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실천 과정에서 이스라엘내의 지배집단으로부터 당해야 했던 수난의 현실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록공동체는 이 로기온의 전승을 통해서 그가 예수운동의 전개과정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던 박해의 현실을 전하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원수를 갖지 말라는 의미도 아니요 동시에 원수에게 무조건 순응하거나 복종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이스라엘 주변부 민중을 향한 당파적인 하느님 나라 선포 과정에서 그리고 그들의 해방실천 과정에서 어쩔 수없이 대적자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와 어록공동체가 그들에게 복종하고 그들의 요구에 순응했다면 수난을 당하지도 않았고 죽임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154)

 

예수어록의 원수사랑은 추상적 관념의 원칙적. 이론적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구체적 상황과 연결된 실천적 문제이다. 멕클라인에 의하면 원수사랑의 실천은 죄인을 위하여 종말론적으로 행동하시는 하님의 철저한 사랑의 실천 155) 에근거한다고 하였다.

쇼트로프는 원수사랑의 실천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비폭력적 대응으로 대적자들의 심정의 변화를 일으키게하는 원시그리스도교의 선교의 수단으로 이해하였다.156)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어록공동체는 종말론적인 새로운 자의식을 갖고 주변부 민중의 현실 한복판에서 즉, 고난과 박해 속에서 살고 있지만 원수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그들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

 

6) 제자직의 실천

본훼퍼는 그리스도를 따름 (Nachfolge Christi)이 그리스도인들의 삶, 행위 그리고 사고 전반을 위한 토대개념이 되어야 하고 동시에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 개념에 비추어 그 정당성이 검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57)

 

 따라서 제자직의 형식, 범주 그리고 규범에 대한 물음은 순수학문적인 지평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그리스도교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영역과 신앙의 실천 사이의 연관성에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오늘 그리고 여기'에서 예수와 동일한 삶을 살려는 노력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따름에 관한 어록의 단화(마태8:19-22/ 루가9:57-60)는 원래 고립된 두 로기온이 어록의 전승단계를 거치면서 하나로 응결되어 구성된 것이다.  이 단화가 원시 그리스도교  어록공동체에 의해 형성된 이상적 장면'(ideal Szene)인지 혹은 역사적 장면'(historische Szene)인지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록의 원형은 다음과 같이 복원될 수 있을 것이다.158)

  한 사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예수께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우들들도 그들의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그들의 보금자리가

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누일 만한 곳도 없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허락하소서, 먼저 가

서 내 아버지를 장사지 낼 수 있도록.  예수께서 그에게 말

 

했습니다.  나를 따르라, 그리고 죽은 사람들이 그들의 죽은 사

람을 장사지내게 하라.

지혜문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첫째 로기온의 중심에는 머리 둘 집 한 채 없이 부평초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의 아들'의 떠돌이 운명이 그려져있다.

   지혜는 살 자리를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거처가

 그에게 부여되었다.  지혜는 인간들 가운데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하여 왔으나 거처를 찾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지혜는 그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서 천사들 가운데 그의 자리를 취하였다.159)

여기서 사람의 아들160) 돌이 운명은 거처를 가지고 있는 여우와 새의 운명과 대조되는데 곧 지상 예수의 떠돌이 운명과 동일시된다.   따라서  어록공동체에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사람의 아들인 지상 예수의 떠돌이 삶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유로부터의 단절,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일정한 거처로부터 단절된 떠돌이 예언자들의 에토스는  어록공동체의 특징을 이룬다.

 

첫째 로기온에서는 무명의 제자가 예수의 떠돌이 운명에 참여할 것을 자청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고, 예수는 이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은유법을 사용하여 답변하고 있다.  이에 반해서 둘째 로기온에서는 예수가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고 다른 무명의 제자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   이 로기온은 물론(영적으로) 죽은 자들로 하여금(육체적으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종말의 긴박성 대한 시대의식을 소유하지 못하고 일상성에 매여 생활하는 사람들을 지칭할 것이다.161)  여기서는 일상적(윤리적) 우선권과 종말론적 우선권이 대비된다.  이 로기온에 비추어 볼 때,  어록공동체에서는 종말론적 급박성 아래 일상적 급박성이 상대화되고 있다.

 

예수와 제자들 그리고 예수와 어록의 떠돌이 예언자들 사이의 관계는 예수를 따름'에 의해서 규정된다.  그런데  어록 공동체의 예수를 따름'은 지식(율법및 그의 해석)의 전달을 목적으로 매개되는 유다-라삐적 스승-학생 관계'도 아니요 바울로가 주장하는 것처럼 케리그마를 받아들임으로써 부활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과도 다르다.  그것은 예수와의 동일한 운명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집도 고향도 가정도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선교를 해야 했던 어록공동체의 예언자들은 사람의 아들 지상 예수의 떠돌이 삶에서 그들의 운명을 보고 동시에 그들의 떠돌이 삶에서 예수의 운명을 반추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예수를 따름에는 어록공동체의 종말론적 시대의식이 반영되어 있는데 그것은 일상성과의 철저한 단절을 전제하고 있다.162)

어록 공동체는 스스로를 마지막때에 추수를 곳간에 모으기위해 부름받은 일꾼이요, 제자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종말론적 시대의식이 어록공동체로 하여금 선교활동에 박차를 가하도록 동기를 부여하였는데,163) 그들의 선교적 실천은 계시의 당파적 성격을 띤 하나님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었다.

  하늘과 땅의 주, 아버지, 내가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왜냐하

 면 당신이 이것들을 지혜있는 사람들과 총명한 사람들 앞에서

 

 감추시고 우든한 사람들에게 계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옳습니

 다.   아버지, 그것이 당신의 결의 입니다 (누가 10,21).

유다의 묵시문서에서 계시는 원래 마지막 때에 역사의 비밀이 드러나는 드러나는 사건을 의미하며, 이 때 계시의 수혜자는 주로 지사의 왕들과 권력자들이다.164)  그러나 어록 공동체는 계시의 담지자가 지혜있고 총명한 자가 아니라 우둔한 자요,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이며, 가정도 재산도 포기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 이었다.

그러므로 어록 공동체는 종말론적 시대의식을 가지고 마지막 시대의 계시의 담지자로서 일상적 생활의 우선권보다는 종말론적 급박성의 부름앞에 선교적 결단을 한 무리들이었다.

 

7) 심판과 구원

 

어록에 있어서 예수의 역학중 가장 큰 역할이 현 세대에 대한 심판과 구원이다.  하지만 어록에 있어서 예수는 배척당하고 소외 당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그 큰 이유는 예수가 지혜자체이면서도 (7:35) 지혜있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예수는 영혼의 주가 택하였고(에녹13-8)165)  조 이전에 영혼의 주가 이름을 주었으며(에녹148:7)166)  마음에는 숨겨졌으나 지극히 높은 분의 능력으로 나타난다고 하였으니(에녹162:7)167)  가 구원과 심판의 주로 나타날 것이 명확한 것이다.

에스라 제4  7:32-38에보면 부활과 최후심판의 사건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땅이 그 속에 잠든자들을 돌려보낼 것이며,

 진토도 그 속에 고이 잠든 자들을 그리하겠고

 방들(, 가마)이 그 속에 맡겨진 영혼들을 돌려보내리라.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자가 심판의 자리에 나타날 것이다.

 긍휼의 때는 지나갔고

 길이 참으심도 물러갈 것이다.

 그러나 심판은 그대로 남아있고

 진리는 설 것이며,

 신의는 굳게 자라나리라

 그리고 거기에 보복이 따르고

 

 보상이 나타나리라.

 의로운 행위가 잠을 깨며

 불의한 행위가 잠들 것이다.

 그러면 고통의함정이 나타나서

 안식의 거처는 환란처가 되며

 지옥의 불가마가 열리며

 낙원의 기쁨은 슬픔이 되며

 그 때 지극히 높으신 자가 죽음에서 부활한 모든 백성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지금

 그리고 너희들이 누구를 부정했는가를

 누구의 계명을 멸시했는가를 이해하라

 이 편과 저편을 바라보라

 이 편에는 기쁨과 안식이 있고

 저 편에는 불과 고통이 있다.'

 심판의 날에 그가 이렇게 말씀하시리라.

 19 12-13절의 비유를 통하여서도 예수가 종말에 다시 구원자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사상이 표출되고 있다.

 

 어록은 심판과 구원의 예수를 증거함으로써 자신들이 받고 있는 어려움과 고난을 위로 하였고 새로운 힘을 가질 수 있게 한것 같다.  또한 어록공돌체는 예수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공동체 구성원 스스로가 깨어 있어야 함도 더불어 요청하고 있다.168)

 이것은 눅17:24-30에 걸쳐서 제시되는것으로 임박한 종말을 알리어 공동체 구성원에게 용기와 위로를 해 줌과 동시에 그 종말을 맞기 위해서 동동체가 항상 깨어 있어야함을 강조하고 있는것이다.

 

2. 어록자료의 묵시종말사상 요약

원시 그리스도교 어록공동체에 나타난 공동체는 떠돌이 예언자들, 평화의 아들들, 그리고 주변부 소외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있다.  카리스마적인 떠돌이 예언자들은 공동체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그들의 스승인 사람의 아들-예수의 해방의 선포와 실천을 그들의 현실의 한 복판에서 다시 실천하였다.  그들은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평화의 아들들을 모으고 그들의 지원을 받아 선교를 수행했다.  하나님 나라 선포와 병자치유, 즉 주변부 소외계층을 향한 종말론적 해방의 선포와 종말론적 해방의 실천이 그들이 펼친 선교의 두 핵을 형성하고 있다.

 

어록 공동체의 선교적 장소는 성전도 아니고 회당도 아니고 거리였다. 따라서 어록 공동체의 선교의 주요 대상은 이스라엘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주변적 계층였음을 알 수 있다.  어록 자료의 신학과 실천이 주로 이계층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의 미래의 담지자로서 가난한 사람에게 축복을 선언하고, 하나님의 아들됨의 자의식에 근거하여 원수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며,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였다.  이것은 빈곤, 박해, 질병, 고난의 현실에서 저항과 해방의 의지, 새 세계를 향한 갈망을 가진 공동체였던 것이다.

 

. 결 론

 

J. Weiss  A. Schweizer이후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선교에 대한 이해는 묵시문학의 사상계로 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단지 예수연구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서 탈출하려 한다든지, 혹은 그것을 조금이라도 완화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을 뿐이다.169)

묵시문학은 기독교 신학의 어머니였다'고 한  케제만의 주장은 어느모로 보던지 무시할 수 없는 정당한 이해이다.

 

필자는 원시 그리스도교 발생 초기에 사회, 문화 ,종교적 배경이 묵시사상을 요청하던 시대였다는 것과, 묵시 종말사상이 유대사회에 급속도로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찰하였다.  , 그 시대의 특징은 정치, 사회, 종교적인 모든 국면에서 결정적인 변화와 전환점을 갈망하던 시기였다.  그러므로 예수어록을 통해 추적해 볼 수 있는 원시 그리스도교의 삶의 자리는 빈곤과 박해 질병과 고난의 현실였으며, 그들은 이같은 상황에서도 새 세계'를 향한 저항과 윤리의식을 갖고 임박한 종말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묵시적 종말 공동체 였다.

그러나 어록에서 발견되는 묵시 종말적 성향은 묵시문학적 표상을 사용하면서도, 유대교 묵시와는 다른 독특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어록에 나타난 예수의 말씀은 당시 묵시적 종말사상에 열렬한 기대를 가졌던 세례 요한이나 바리새파나 쿰란종파의 배타적 율법주의와는 달랐다.170)

어록자료는 토라를 극단화시켜 율법과 전통을 하나님 대신에 올려놓고 맹목적으로 복종을 요구하는 율법주의의 종교적 환상을 산산히 깨뜨리고 있다.171)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그밖의 모든 채소는 십분의 일을 바치면서 정의를 행

 

 하는 일과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구

 나.(11,42).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사람은 점잖고 종교적인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기쁜 소식과 소외된 자의 영접 그리고 악령에 사로잡힌 자의 해방의 메세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이다.172)

하나님의 심판은 죄인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방해하는 자들에게 있으며, 그는 구원에 참여하는 자가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아니라고 하며, 이스라엘의 특권을 갱신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의 구원의 참여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다.173)

그러므로 불트만에 의하면 예수는 그의 독특한 종말론을 가지고 묵시문학을 시정한 것으로 본다.174)  도 예수를 묵시종말사상을 따르지않았다고 주장한다.175)

그러나 게제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는 예수의 선포속에서 묵시종말론의 핵심이 있다고 하였다.176)

 

어록 공동체는 이같은 묵시문학적 종말사상의 주제를 채택하여 빈곤과 박해의 한 복판에 있는 그들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의 담지자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가난한 자의 축복을 선언했으며, 원수사랑은 곧, 하나님의 아들됨의 표지로 알고 종말론적 윤리를 실천했고, 종말론적 해방을 안겨줄 사람의 아들-예수를 케리그마한 대상으로 보다는 그의 운명과 삶을 더불어 나누는 실천의 대상으로 따랐다.  어록 공동체는 임박한 종말의식을 가지고 그 종말적 해방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것을 선교의 두 핵으로 하였다. 그러나 어록공동체의 예수운동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계속되었는데(A.D 70년 이전), 기독교 역사 2천년동안 교회권내의 중심부로 부터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것은 어록공동체의 모습이 임박한 종말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의 가정과 소유를 포기하는 윤리적 래디칼리즘'177)   때문이다.  예수를 따르라는 부름은 곧 자리의 안주(安住)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트륄치(E. Troeltsch)가 말한 바  기독교 엿사에서의 묵시적 소종파178)  동은 기독교 전 역사에서 몬타너스 주의, 시리아에서의 금욕주의 운동, 중세의 탁발승들 그리고 종교개혁의 좌파에서 되살아 나곤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록자료에 나타난 공동체의 삶의 다이나믹은 묵시종말적 사상에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것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사회 경제적, 정치 및 종교적 삶의 자리'인 비관적 정황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향한 희망(希望)과 실천(實踐)을 배태(胚胎)하는 그들의 신학이었다.

제도화 되어지고, 물량화와 권위주의화 되어가는 오늘의 교회에 어록공동체가 지향(指向)했던 신앙의 모습은 기독교의 진정한 자기이해'를 일깨우는데 계속적인 도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부 록

 

어록자료의 양식의 분류들 *

 

담화들 (Narratives) ------------------------- Na

비유들 (Parables)  -------------------------- Pa

신탁들 (Oracles)  --------------------------- Or

축복들 (Beatitudes) ------------------------- Be

예언의 선포들 (Prophetic Pronouncements) ---- PP

지혜의 말씀들 (Wisdom Word) ----------------- WW

권면들 (Exhortation) ------------------------ Ex

 

PP 3,7-9, 16b-17    요한의 종말론적 설교

Na 4,2b-12          예수의 사탄과의 싸움

Be 6,20-23          축복들: 가난한자들, 굶주린자들, 미움                            을당하는 자들

WW 6,25-36          사랑과 용서에 대한 약속된 보장

 

 

 

* H. C. Kee 교수의  Jesus in History 에서 발췌 (拔萃)

 

 

 

 

WW 6,37-42          제자직에 대한 보상

Pa 6,43-46          윤리적인 열매의 비유들

Pa 6,47-49          제자들은 시험을 이겨야한다.

Na 7,2-3.6-10       백부장의 종을 치유

PP 7,18-23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대한 응답

PP 9,57-58(-62?)    집과 가정을 떠나라

PP 10,2-12          제자들에게 예수의 일을 확장시킬 것이

                    위임됨

Or 10,13-15         회개하지 않는 도시에 대한 심판

PP 10,16            제자들을 거절하는 것은 예수를 거절하                            는것

PP 10,21-22         각 사람의 지혜는 곧 하나님의 선물

Be 10,23-24         축복: 지혜받은 사람들

Ex 11,2-4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위한 기도

WW 11,9-13          자녀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PP 11,14-20         하나님의 나라의 표적으로써 예수가 악                           마를패배 시킴

Or 11,24-26         되돌아온 악령

PP 11,29b-32        요나의 표적과 요나보다 더 위대한 사                            람:예언자 현자인 예수

Pa 11,33-36         빛과 어두움에 대한 비유적 말씀

Or 11,39-40.42-43   바리세이인들에 대한 저주

 

Or 11,46-48.52      율법교사들에 대한 저주

PP 11,49-51         지혜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순교를 예                           언

PP 12,2-3           숨겨진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Or 12,4-5           순교를 두려워 하지 말라

Pa 12,6-7           하나님의 동봄에 대한 비유

PP 12,8-10          고백의 혹신에 대한 증거 / 인자에 대                            한거부

PP 12,11-12         박해받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후원

Pa 12,22-31         세상적인 필요에 대한 근심으로부터의                            해방

Pa 12,33-34         소유로부터의 자유

Pa 12,39-40         준비하라는 비유: 돌아오는 집주인

Pa 12,42-46         신실한 관리인의 비유

PP 12,51-53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예수

Pa 12,54-56         임박한 마지막 때의 표징

Pa 12,57-59         심판을 준비하라는 비유

Pa 13,20-21         누룩의 비유

WW 13,24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

Pa 13,25-29         하나님 나라에서 배척받는 것에 대한                             비유

PP 13,34-35         예언자들의 배척과 하나님의 대리자에                            대한옹호

Pa 14,16-23         종말론적 만찬에의 비유

PP 14,26-27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족관계를 뛰어넘                           어십자가를 지라고 설교함

Pa 15,4-7           기뻐하는 목자

WW 16,13            두 주인 사이에서의 필연적인 선택

PP 16,16            옛 시대가 끝나고 새시대가 예언되다

WW 16,17            하나님의 약속 확신

 

Ex 17,3-4           공동체안에서의 용서

Ex 17,5-6           공동체안에서의 믿음

Or 17,23-37         갑작스럽게 임할 심판

Pa 19,12-13.15-26   귀족의 귀향과 충성에 대한 보답의 비                              유

PP 22,28-30         신실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왕권이 주어                          질 것에  대한 약속

 

 

 

                     참고 문헌

 

 

1. 국외서적

 

Ben-David A., Talmudische konomie, New York, 1975.

 

Bonhoeffer, D.,  Gesammelte Schriften, E. Bethege(Hg.), ed

           I, Munchen, 1968.

 

Bornkamm, G., Evangelien, synoptisch. 2a. Spruchquelle,

           RGG 2, 1958.

 

Bosen, W.,  Galiaa als Lebensraum und Wirkungsfeld Jesu,

           Breisgau,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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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 Henry, New Direction in NT study, (Philadelphia : Westminster Press, 1979), p. 41.

2) R. Bultmann, Primitive Christianity in Its Contemporary Setting,(World Pub., 1956), p. 22.

3) 강요섭, 신약성서 해석의 동향 , 『신학사상』 35, 1981, 겨울호, p. 791

4) J. Dunn, 『신약성서의 통일성과 다양성』, 김득중, 이광호 공역, (서울: 무림출판사, 1991), p. 485.

5) Carl E. Braaten, 묵시문학과 조직신학 , 『신학사상』, 1980. 9, p. 513.

6     ) E. Kasemann, "The Beginings of Christian Theology", JThch, Vol 6,

   p.40.

7) K. Koch, 묵시문학과 종말론 , 『기독교사상』, 1981. 9, p.110.

8) U.Luck, 유대적 묵시문학의 세계이해 , 『신학사상』 30, 1980, 가을, p.453.

9) J. Moltmann, Theolgie der Hoffnung, 1964, p.123.

10) 김연태, 묵시종말론의 시간개념 , 『신학과 선교』 16, 1991, p. 20.

11     ) Normann Perrin, 『새로운 신약성서 개론(상)』, 박익수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1), p. 161.

12) W. Stegemann, 가난한 사람들과 복음 , 『새로운 성서해석』, 김창락 편,(서울: 한국신학연구소,1990), p. 197.

13) Dieter Luhrmann, "THE Gospel of Mark and The Sayings Collection Q," JBL 108/1, 1988, p.59.

14) Ibid.

15) H. C. Kee, 『신약성서의 이해』, 서중석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0), p.125.

16) N. Perrin / D. C. Duling, 『새로운 신약성서 개론』,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2), p.160.

17) John S.Kloppenborg, "Symbolic Eschatology and the Apocalypticism of Q," HTR, 1987. July, p.306.

18) Stephen Neil, Tom Wright, The Interpretation of the New Testment 1961-1986,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8), 2판, pp. 367-68.

19) 김성건, 초기 기독교의 성격 , 『기독교사상』, 1990.11, p.97.

20) 강요섭, 신약성서 해석의 동향 , 『신학사상』 35, 1981. 겨울, p.799.

21) 타이센, 원시 기독교의 예수 말씀전승에 관한 문학사회적 고찰 , 신흥섭 역, p.639.

22      ) J. A. Eichhorn, ber die drei ersten Evangelien, Leipzig,

                        1979, p.159ff.

23) Q의 연구사에 관해서는 S.Schulz, Q. Die Spruchquelle der Evangelisten, Zurich, 1972, pp.11-14.

24) G. Bornkamm, Evangelien, synoptische, RGGⅡ, pp.753-768.

25) 김명수, 원시 그리스도교 Q공동체의 주변부 민중예수 , 『시학사상』 71, 1990.겨울, p.1051.

26) John S. Kloppenborg, The Formation of Q,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7, p.2.

27) Streeter, Four Gospels, p.185, 289-90.

   Kilpatrick, "Disappearance of Q", pp.182-84.

28) Honore, "Statistical Study", pp.134-35.

29) Carlston and Norlin, "Statistics and Q", p.71.

30) Kloppenborg, op.cit., p.88.

31) H. J. Holtzmann, synoptische Evangelien, p.141; B. Weiss, Introduction 2:20; Wernle, Synoptische Frage, p.228; J. Weiss, Schriften, p.36; Manson, Sayings, p.15,30; Edwards, Sign of Jonah, p.70; Fitzmyer, "Priority of Mark", pp.146-47; Vielhauer, Urchristliche Literatur, p.314.

32) Harnack, Sayings of Jesus, pp.172-82.

   Moffatt, Introduction, p.197.

33) Howard Clark Kee, 『신약성서의 이해』, 서중석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0), p.28.

34) Ibid.

35) Ibid., p.29.

36) Christopher Rowland, Chritian Origins: From Messianic Movement to Christian Religion, Mineapolis: Augsburg Publishing House,1985, p.12.

37) 구덕관, 『구약신학』,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p.328.

38) 임창복, 예수 시대의 유대교의 당파들에 관한 연구, 『장신논단』 1990, p.430.

39     ) 구덕관, op.cit., p.335.

40     ) 임창복, op.cit., pp.431-32.

41     ) D. S. Russell, 『신구약 중간시대』, 임태수 역, 컨콜디아사 1991, p.44.

42) T. W. Manson, The Servant-Messiah, 1956, p.5.

43) 김연태, 묵시운동과 신약성서 , 『신학일상』, (부천: 서울신학대학, 1990), p.64.

44) H. C. Kee, 『신약성서 이해』, 서중석 역, 한국신학연구소, 1990, p.39-43.

45     ) Ibid., p.44.

46     ) 김연태, op.cit., p.64.

47     ) 김성건, 초기 기독교의 성격: 종교사회학적 고찰 , 『신학사상』

                 1990. pp.99-100.

48     ) Ibid., pp.64-65.

49) Clarence L. Lee, "사회적 요소와 원시 그리스도교 , 이강실 역, 『신학사상』, 49, 1985, 여름, p.400.

50     ) Ibid., p.402.

51     ) Ibid.

52     ) Ibid., p.403.

53     ) Ibid.

54) A. N. Sherwin White, The Roman Citizenship, (Oxford, 1939), p.167.

55) Clarence L. Lee, op. cit., p. 405.

56) Ibid.

57     ) Eduard Lohse, op. cit., p.183.

58     ) Ibid., p. 409.

59     ) 왕대일, 묵시문학 운동의 역사이해 , 『기독교사상』, 1992, 2,

p.38.

60) 혼돈(chaos)과의 투쟁을 극복하는 것으로서의 창조의 묘사는 고대 근동지방의 창조론에서 읽을 수 있는 주제이다.  이 때  혼돈과의 투쟁이 우주론적인 콘택스트'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 은 자주 사회, 정치적인 콘택스트'에서도 등장한다. 혼돈과의 투쟁후에 이룩될 조화된 질서의 세계'가 창조의 신앙이다. 여기에서 역사란 창조질서의 수행, 또는 성취의 장소이다. H. H. Schmid, "Creation, Righteousness, and Slvation: 'Creation Theology' as the Broad Horizon of Biblical Theology", Creationin the Old Testment,ed. by B.W.Anderson(Philadelphia/London:Fortress/SPCK, 1984), pp.102-17.

61     ) 왕대일, op.cit., 39.

62) 묵시란 문학적 용어를 일컫는 말이다. 곧 시간과 공간을 포함하는 초월적인 실재(transcendent reality)를 사람에게 은밀히 드러내는  형식의 계시를 담은 언어표현이다.

63) 묵시가 묵시문학적 유형을 가리킨다면, 묵시주의란 특정 역사, 사회적 상황에서 종교사회적 현상으로 구체화된 정신사조를 가리킨다. 묵시주의는 공동체의 정체나 역사적 실재의 의미가 묵시주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때 묵시주의를 조직적으로 체계화 시킨 글들을 묵시문학이라 부른다.

64     ) Ibid. p.39.

65) 박준서, 구약 묵시문학의 이해 , 『신학논단』, 13, (서울: 연세대 신과대학, 1982,11), p.35.

66     ) 노만 페린, 데니스 C. 덜링, op.cit., p.64.

67     ) Ibid.

68     ) Ibid., p.65.

69) 왕대일, 묵시문학운동의역사이해 ,『기독교사상』 386(1991.2), p.42,45.

70     ) 박준서, 구약묵시문학의 역사이해 , 『신학논단』 15, 1982, p.15.

71) 그 대표적인 경우가 人子이다. 다니엘서(7,13.14), 에디오피아 에녹서, 제 4 에스드라서에 나타난다. 다니엘의 인자'연구는 콜린스의 다니엘서의 인자와 지극히 높은 성자들 , JBL, 1974, p.93.

 

72     ) 박준서, op.cit., p.16.

73) J. G. Gager, 『초기 기독교 형성과정 연구』, (서울: 대한기독교 출판사, 1980).  게이저는 묵시문학적 꿈이 성취되는 방법을 개별적(탈속적)방식', 공동체적방식' 및 요한 묵시록적 반식'으로 구별한다.

74     ) 박준서, op.cit., pp.15-16.

75) J. S. Kloppenborg, Symbolic Eschatology and The Apocalypticism of Q , HTR, 1987, p.295.

76     ) Ibid.

77     ) E. 로제, op.cit., p.53.

78     ) J. S. Kloppenborg, op.cit., p.295.

79) George W. E. Nickelsburg, "Social Aspects of Palestinian Jewish Apocalypticism,"  BR 19 (1974), p.8.

80     ) J. S. Kloppenborg, op.cit., p.295.

81) John J. Collins, The Apocalptic Imagination: An Introduction to the Jewish Matrix of Chritianity (New York: Crossroad, 1984), p.32.

82     ) Ibid., p.63.

83     ) A. Sundberg, "Sadducees", IDB, vol.4, pp. 160-3.

84     ) 노만 페린, 데니스 C.덜링, op.cit., p.68.

85     ) 임창복, op.cit., pp.441-45.

86) H. C. Kee, The New Testamwnt In Context, New Jersey : Printice - Hall Inc, 1984, p.52에 인용된 요세퍼스의 '유대인의 전쟁' 재인용.

87     ) H. C. Kee, 『신약성서의 이해』, op.cit., pp.80-82.

88     ) E. Rivkin, "Pharisees", IDB Suppl., pp.657-63.

89     ) 노만 페린, op.cit., p.69.

90     ) Ibid.

91      ) Ibid., 부록 5: 그리스-로마세계의 종교적 철학적인 본문들 ,

p.704.

92     ) H. C. Kee, op.cit., pp.85-86.

93     ) 노만 페린, op.cit., p.70.

94     ) 임창복, op.cit., pp.451-55.

95     ) H. C. Kee, 신약성서의 이해, p.96.

96     ) Ibid.

97     ) 1QS 4:24f

98) Ivan Havener, Q. The Saying of Jesus, (Michael Claier, 1987), p.91.

99) 스토아 주의의 창시자 제노는 크라테스의 한 추종자였는데 그 크라테스는 또한 자신을 가리켜서 개 라고 처음에 불리웠던 디오게네스의 제자였다. 그 개 라는 단어에서 견유학파(Cynicism)라 불리는 철학운동이 유래된 것이다.  많은 견유학파들은 음식을 절제하고, 구걸하며, 짧은 외투를 입고, 전대와 지팡이 만을 지니고 다니며, 결혼이나 국가와 같은 사회제도를 거부하며, 부와 권위를 경멸하였다.  사회에 대한 냉소를 가지고 마을을 돌아 다니며 시장 가운데서 장광설을 늘어놓기도 했다.  페린, 『새로운 신약성서 개론』에서 인용, p.130.

100) Gerd Theissen, 원시 기독교의 예수 말씀전승에 대한 사회 문학적 고찰 , 신흥변 역, 『신학사상』, 1987, p.654.

101) 종교사회학자들의 용어로, 남들에게는 예측할 수 없고 무책임한 존재로 보이지만 자신들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Max Weber, On Chrisma and Institution Building, ed. S. N. Eisenstadt (Chi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9).

102     ) Ibid.657.

103     ) H. C. Kee, Jesus in History, (New York, 1970), p.118.

104     ) 타이센, op.cit., p.658.

105     ) H. C. Kee, 『신약성서의 이해』, p.131.

     ?) Hans J. Mol, Identity and the Sacred, New York: Free Press

                     , 1977, pp.181-82.

107     ) Ibid.

108     ) 타이센, op.cit., p.661.

109     ) Ibid., p.663.

110     ) Ivan Havener, op.cit., p.92.

111) D. S. Russell, The Method and Message of Jewish Apocalyptic, (London, 1964), p. 37.

112) Howard Clark Kee, Jesus in history: An Approach to the Study of Gospels (2d ed.; New York: Harcourt, 1977) pp.84-87.

113     ) 노만 페린, 데니스 C. 덜링, op.cit., p. 171.

114     ) 김명수, 원시 그리스도교 Q 공동체의 주변부 민중예수 , 『신학사상』

   71, 1990, p. 1065.

115     ) Josephus, Ant, ⅩⅤ, 11, 307ff. 김명수 재인용.

116) 당시(주후1세기) 팔레스틴 전체인구 125만 가운데 절대다수에 해당하는 90%만이 농촌 프로리탈리아에 속해 있었고 이들은 국민총생산의 70%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극한 상황에서 허덕여야 했다. A. Ben-David, Talmudische  konomie Ⅰ, Hildesheim / New York,

   1975, p.25. 김명수 재인용.

117)  Ⅱ Bar 85, 10.

118)  1QM 7, 4-6.

119     ) 김연태, 묵시적 종말론의 시간개념, p.21.

120     ) ibid., p.1051.

121     ) E. Bammel, πτωχοσ, THWNT Ⅳ, p.888f. 김명수 재인용. 

122) W, Bosen, Galiaa als Lebensraum und Wirkungsfeld Jesu, Breisgau 1985, p.182. 김명수 재인용.

123     ) Ibid., p.1053.

124     ) Ibid.

125) L. Schottroff, 어록자료의 큰 잔치 비유 , 김래기 역, 『신학사상』 59, 1987.겨울, p.895.

126     ) Ibid.

127     ) H. C. Kee, op.cit., p.128.

128     ) Ⅲ. 710 이하, 718, 722.

129     ) H. C. Kee, 신약성서 이해, p.96.

130     ) R. Bultmann, 『신약성서 신학』, 허혁 역, 성광문화사, 1976,

p.31.

131) 노만 페린, op.cit., p.171.

132     ) R. Edward, The Theology of Q, pp.41-42.

133     ) 다니엘서 7장 13-14.

134     ) 노만 페린, op.cit., p.173.

135) 묵시문학에서는 사람의 아들과 종교적, 윤리적 신실성 때문에 박해를 당하는 이스라엘 주변부 민중의 연대가 강조된다. Q에서는 사람의 아들은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이스라엘 주변부 민중과의 연대가 우선적이다.

136     ) 김명수, op.cit., p.1067.

137     ) Ibid.

138) 마태 24,26-28/ 누가 17,23/ 마태 24,37-39/ 누가 17,26; 17,34.

139) F. Hohn, Christologische Hoheitstitel, 2.Aufl, Gottingen, 1964, p.37.

140) 마태 5,11/ 누가 6,11; 마태8,19-22/ 누가 9,57-61; 마태11,2-6/ 누가7,18-23.

141     ) 김명수, op.cit., p.1068.

142     ) Ibid.

143     ) Ibid.

144) 김명수, 어록 공동체의 원수사랑 계명과 폭력이해 , 『신학사상』 75, 1991.겨울, p.880.

145) 타이센은 원수사랑'계명의 신학적동기를 네가지로 제시한다. 1)모방동기(Imitationsmotiv), 2) 제거동기(Abhebungsmotiv), 3)상호성동기(Gegenseitigkeitsmotiv),4)종말론적보상동기(eschatologgisches Lohnmotiv), G. Theissen, Studien zur Soziologie des Urchristentums, Tubingen, 1983, p.161.

146     ) 헹엘, 호프만, 타이센 등이 이계열에 속한다.

147) 여기에서의 정치적'이란 의미는 팔레스틴의 식민지 종주국인 로마에 대한 형태에 국한한다.

148) 김명수, 원시 그리스도교 Q공동체의 주변부 민중 예수 , p.1055.

149     ) 마태 6,25-34/ 누가 12,22-32.

150) 타이센, 『원시 그리스도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김명수 역,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6, pp.141-171.

151) H. Braun, Jesus von Nazareth und die essenische Qumransekte Ⅱ, Tubinggen 1957, p.92. 김명수 재인용.

152) E. Lomeyer, Das Evangelium des Mattaus, Gottingen 1967, p.146.

153     ) R. Bultmann, Jesus, Tubingen, 1951, p.79.

154) 김명수, 원시 그리스도교 Q공동체의 주변부 민중 예수 , p.1056.

155) H. Merklein, Jesu Botschaft von der Gottesherrshaft, Stuttgart 1984, p.274.

156) L. Schottroff,  Gewaltverzicht und Feindesliebe in der urchristlichen Jesustradition Mt 5, 38-412/ Lk 6, 27-36,  Jesus Christus in historie und theologie, Tubingen 1975, p.200.

157) D. Bonhoeffer, Gesammelte Schriften, E. Bethege(Hg.), Bd I, Munchen, 1968,4/1. 본훼퍼는 1934년 4월의 편지에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신앙의 개념안에서 다루어 질 문제가 아니고 저항과 복종을 포함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158) 김명수, 원시그리스도교 Q공동체의 주변부 민중 예수 , p.1059.

159) 에디오피아 에녹서 42:1.

160) H. Merklein, Jesu Botschaft von der Gottesherrschaft, Eine Skizze, SBS III, Stuttgart, 1983, p.158. 사람의 아들은 이중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전권 대행자로서 이방인과 죄인에 대해서 심판의 과제를 수행하며, 이와함께 종말론적 이스라엘 혹은 선택받은 집단에 대한 구원을 가져 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종말론적 선택집단의 천상적 대변자인데, 그의 종말론적 기능에서 지시되는 것은 지상의 선택 집단을 위한 구원 혹은 통치를 수행하는 것이다.

161) 그러나 마샬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예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 일반으로 간주한다. 『국제성서주석』 31-2 『누가복음』 2, 한국신학연구소, 1984, p.36.

162) 김명수, 원시 그리스도교 Q 공동체의 주변부 민중 예수 , p.1061.

163) T. G. Gager, Kingdom and Community. The Social World of Early

   Christianity, 김쾌상 역, 대한 기독교출판사 1980, pp.68-85.

164     ) 에디오피아 에녹서 62,1 ff.

165) Jame H. Charlesworth, The Old Testament Pseudepigrapha, vol.1., pp.14-16.

166     ) Ibid., p.35.

167     ) Ibid., p.43.

168     ) H. C. Kee, op.cit., p.136.

169) 제임스 던, 『신약성서의 통일성과 다양성』, 김득중,이광훈 공역, (서울: 무림출판사, 1991), pp.496-97.

170) 케제만, 원시 그리스도교 묵시문학의 주제 , 『신학사상』 30, 1980.9, P.484.

171)  Ibid., pp.496-97.

172) H. C. Kee, 『신약성서의 이해』, 서중석 역, 한국신학연구소 1990, pp.138-39.

173     ) 김달수, 신약문서들에 미친 묵시사상 연구 , P.133.

174) 전경연, 묵시문학과 상징언어 , 『기독교사상』, 1973.9, P.24.

175) k. koch, 묵시문학과 종말론 , 『기독교 사상』, 1981.9, p.111.

176) H. Gese, 즈가랴서에 나타난 묵시문학의 시작과 끝 , 『신학사상』 30, 1980.가을, p.419.

177) 타이센은 원시 그리스도교회의 세가지 사회적 형태를 지적한다. 영지주의적 극단주의와 방랑의 래디칼리즘 그리고 사랑의 가부장 제도의 세유형을 말한다.

178) 트륄취는 교회역사에 나타난 세가지 유형을 소종파, 제도화된 교회, 심령주의로 구분한다. 그는 양극단인 소종파 운동과 영지주의와 같은 심령주의는 제도화된 교회의 유형에 의해 제압되었다고 보았다. E. Troeltsch, Die Soziallehren der Christlichen Kirchen und Gruppen, 1912.  타이센의 글에서 재인용. p. 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