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코프 조직신학 신론 1
하나님의 존재
1. 하나님의 존재
교의학에 있어서 신론의 위치
교의학 혹은 조직신학에 관한연구는 대개 신론으로부터 시작한다. 신학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라는 전제일때 그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교의학의 연구에서 시종일관 철저히 하나님만 연구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신학연구에는 두가지 전제가 있다.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계신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자신을 그의 신적인 말씀 속에서 계시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연구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연구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사람들은 새로운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신학의 학문적인 특성을 연구하려 힘을 쓰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권위있는 말씀으로서의 성경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고, 인간 스스로의 감정적이거나 혹은 합리적인 이해에 근거한 인간의 통찰이 종교적인 사상의 표준이 되었다. 그로인해 종교는 점차로 신학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의학의 연구에서도 신론으로 시작하는 것을 부적당하다고 믿기 시작했다.
B.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성경의 증거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는 신학의 위대한 전제이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가정이 없다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은 만물의 근원이시며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면서, 동시에 만물의 모든 부분에 내재하시며 자존적이며 자의식적이며 인격적인 존재가 계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가 아무도 반문할 수 없을정도로 전혀의심의 여지가 없을정도로 논리적으로 설명되어진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이 사실이 진리라는 이 것은 결국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는데 왜 합리적이라고 이야기 하는가. 그러나 믿음으로 받아들이는데 동시에 신뢰(납득)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기독교인, 즉 신자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진리를 신앙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신앙은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 증거에 기초한 신앙이며, 그 증거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인 성경안에서 발견된다. 이차적으로는 자연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 속에서 발견된다. 이런점은 명백한 논리나 선언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성경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단논법을 생각해보자.
우주는 존재한다
우주는 스스로 존재하지 못한다
우주는 하나님에 의하여 존재한다.
우주가 존재하는한 하나님은 존재한다
성경에는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설명하지 않는다. 증명된 과정으로 하나님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듯한 본문은 히브리서 11장6절 일것이라고 본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 히11:6
창조주로, 위대한 구속의 주관자로, 절대적인 주권자로의 하나님을 구약과 신약의 여러 구절들이 증거한다. 하나님은 말씀과 행동으로 스스로 계시하기 때문에 성경의 각 장마다 말씀하신다고 보면된다. 각장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우리의 신앙의 근거이며 우리의 신앙을 온전히 합리적인 신앙으로 만들어 준다. 한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고 계시의 내용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성령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서 가능한것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8-9)
믿음은 전적인 은혜로 부터 오는 선물과도 같은것이다. 신학적 논리적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그래서 누구도 자랑할 수 없으며 그것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알수가 없다.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다.
이책에서 배우게 되는 신학적 논증들이 믿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수 있다. 불신의 세상가운데서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전하는 그런 방법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신앙을 비판하는 자들에게는 입을 다물게 하는 방어가 되는 무기가 될 수도 있겠다.
C.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다양한 이론들
비교 종교학자들과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관념이 실제적으로 인류에게 있어서 보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는 견해들은 많은 역사의과정가운데서 여러 형태로 존재해 왔다.
1.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부인
일반적으로 무신론자는 실천적 무신론자와 이론적 무신론자로 구별된다. 전자는 단순히 불경건한 자로서 실천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후자는 대체로 더 지적인 사람의 부류로서 그들의 부인은 합리적인 추론의 과정 위에 기초한다.
하나님은 그의 형상대로 지으신 그의 창조 사역속에서 모든 인간에게 종교의 씨앗을 심겨주셨다. 그러나 무신론과 같은 하나님에 반하는 이론과 철학은 높은 존재를 추구해나가는 마음의 염원들을 의도적으로 눈멀게 하고 억압한다. 무신론자는 인간의 왜곡된 도덕적 상태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하려는 인간의 욕망으로 부터 유래한다.
실천적 무신론자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만나려고 생각하기를 무서워하며, 하나님을 잊어버리려고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론적 무신론자들은 합리적 논증에 의하여 하나님이 없다는 주장을 정당화 하는데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말할 수 있다. 신적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단호히 부인하는 독단적 무신론과 회의적인 무신론 그리고 비판적인 무신론으로 구분된다. 이론적 무신론은 일반적으로 과학적이거나 철학적인 이론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여러형태의 유물론적인 일원론과 무신론은 대개가 서로 손을 맞잡고 행동한다.
범신론은 자연과 초자연, 유한자와 무한자를 하나의 실체로 혼합시킨다. 이 이론은 대담하게 만물이 신이라고 선언하며, 신에 관하여 너무 지나치게 이해하게 된다. 범신론은 성경의 하나님을 배제하며 그런 점에서 분명히 무신론적이다.
2.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부인을 포함하고 있는 현대의 여러가지 그릇된 신에 대한 관념들
오늘날에 사용되는 그릇된 관념들이 몇가지 있다. 이것들은 유신론적인 하나님의 관념에 대한 부인도 포함하고 있다. 이 그릇된 관념들 가운데서 몇가지를 알아보도록 한다.
(1) 내재적이며 비인격적인 신
유신론은 항상 초월적이며 동시에 내재적인 신을 믿는다. 이신론은 세상으로부터 신을 배제하였으며, 신의 내재성 대신 초월성을 강조하였다. 범신론은 하나님과 세계를 동일시함으로써, 피조물과 구별 되며 그 위에서 무한히 고귀하신 신적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절대의존 감정에 부합하는 절대 인과율로서 기독교인의 의식 속에 자신을 나타내시며 인간의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신만을 인정했다. 슐라이레르마허-초월적인 신을 완전히 무시, 그는 자주 신을 "우주 Universem" 혹은 "온 세계 Welt-All"l로 지칭하며 신의 인격성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신을 세계와 연속 선상에 두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러한것은 주관적인 관념만 남게 된다. 주관적 견해의 위험은 절대존재에 대한 인식이 주관적이라는 위험이다. 성경을 기준으로 보지 않고 감정과 느낌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2) 유한하며 인격적인 신
유신론은 항상 하나님을 무한한 완전성들의 절대 인격적인 존재로 간주한다. 일원론적인 철학이 우세하던 19세기 동안에는 신학의 하나님을 철학의 절대자와 동일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경에는 하나님의 호칭으로서의 ‘절대자’라는 용어가 인기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그말이 가진 불가지론적이고 범신론적인 의미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철학에서의 ‘절대자’라는 관념에 대한 반대와 신학으로부터 모든 형이상학을 배제하려는 바람 때문이었다. 여러가지 상황과 환경, 철학과 논리가 지식과 능력에 있어서 무한히 선한 하나님을 믿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많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유한한 하나님 관념을 옹호했다.
(3) 단순한 추상적 관념의 인격화로서의 신
신의이름을 어떤 우주적이 과정이나 보편적인 의지나 능력, 혹은 아주 높고 포괄적인 이상을 표상하는 단순한 상징으로 간주하는 일이 유행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의형상으로 창조한다 이제 인간은 그의 형상대로 신을 창조한다. 하나님은 상상속에 있는 하나님으로서 그들에게 신이 되었다.
D. 신의 존재에 관한 소위 이성적인 논증들
시간이 흘러가며 신의 존재에 대한 합리적인 논증들이 개발되었다. 몇가지를 살펴보자
1. 존재론적 증명
안셀름과 데카르트, 사무엘 클라크 등 여러 사람들에 의해 제시되었다. 안셀름은 인간은 절대적으로 완전한 존재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존재는 완전한 속성이므로 절대적으로 완전한 속성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증명은 이미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논리적인 예증으로부터 도출되는 신의 존재에대한 지식을 넌지시 가정하고 있다.
2. 우주론적 증명
한마디로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적절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주 또한 적절한 원리 즉 무한히 큰 원인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기원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추적에 대한 것이다. 이원리는 신에게도 적용되며 끝없는 연쇄사슬로 이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증명은 일반적으로 이성적 논증이 힘들며,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데는 부족함이 많다.
3. 목적론적 증명
일반적으로 설계론적 논증이라고 본다. 우주의 설계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증명은 우주론적인 증명보다는 우월하나 이 증명은 이존재가 세상의 창조주였다는 사실을 반드시 동반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사회 신학자들은 이 증명을 무용지물로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다른 증명들과 함께 거부해버리지만, 신유신론자들은 이것을 보존하고 있다.
4. 도덕적 증명
칸트의 정언적 명령에서 출발하였으며 입법자와 재판관과 같이 인간에게 명령할 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어떤 존재의 실재를 추론했다. 신적인 지성으로 모든 진실여부를 판단하나 도적적 상대적 가치에 따라 절대적 기준이 흔들리게 되며 모든것을 상대화한다는 약점이 있다.
5. 인종학(역사학)적 증명
이증명은 지상의 모든 백성들과 종족들가운데에는 외적인 제사에서 자기를 계시하는 신적인 것에 대한 감정이 있고 이 현상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에 속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보편적인 현상들은 인간 종족의 초기의 조상들 중 한사람의 실수나 오해에서 기원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또한 언급된 종교적 제사들은 원시적인 종족들 가운데서 가장 강력하게 나타나고, 또 그들이 문명화되는 척도에 다라 사라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결론
결론적으로 이러한 이성적 증명들을 평가할 때, 우선 신자들에게는 이 증명들이 필요없다는 사실들이 지적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그들의 믿음은 논증들이 아닌 성경에 나타나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 이증명들을 사용할 때 이것들 중 어떤것도 절대적인 확신을 갖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들은 증명이라기보다는 증언으로 불려야 한다. 이 증명들은 하나님의 일반계시에 관한 해석들로서, 또한 신적인 존재에 관한 합리성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중요하다. 이 증명들은 의심의 가능성을 넘어서 동의를 강요할 수 있을정도로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지는 못하지만 강한 개연성을 확보하도록 해석되어서 많은 불신자들을 잠잠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출처] 벌코프 조직신학 신론 요약 #01 하나님의 존재|작성자 믿음의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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