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행복을 만드는 여선교회

하나님아들 2020. 6. 5. 14:23

행복을 만드는 여선교회(1710.11.28.지방여선교회 계삭회 설교) 벧전 3:10-12

김영윤 2015. 12. 21. 15:47

http://blog.daum.net/sangjugamlichurch/13437330

 

행복을 만드는 여선교회(1710.11.28.지방여선교회 계삭회 설교)

벧전 3:10-12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버리시지도 않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주시고 살게 해주시는 사랑입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상한 마음에 하나님의 위로함을 주시고 삶에 지치고 문제 있는 것이 예배중에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치나기를 축원합니다.

 

지방여선교회 회원 여러분 상주교회를 방문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선교회 회장님은 제가 2년간 감리사를 하는 동안에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셔서 감리사 직임도 잘 감당할 수 있었음을 이 시간을 빌어서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립니다.

 

지방여선교회가 이렇게 잘 모여지고 은혜롭고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은 여러분의 열심히 참여한 덕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도 지방 여선교회가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행복을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들이 광고도 안해주고 돕지도 않고 있는 교회도 있지요. 그러면서 지방에서 뭘 하려고 하면 여선교회 동원하려고 하고, 돈 내라고 하고. 목사님들도 지방 여선교회를 도우면서 협조를 구해야 마땅한 것이라고 봅니다.

 

성도여러분 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고 좋지 않는 날도 있지요. 사실 모든 날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날입니다만 모든 날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날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비록 좋은 날이라 할지라도 누리는 사람에 따라 좋은 날이 되기도 하고, 좋지 않는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날을 좋은 날처럼 누리며 살아가는 자가 있고, 좋지 않는 날처럼 불행하게 살아가는 자도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모든 날은 좋은 날이 되도록 행복을 만들어 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좋은 날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날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은 날이요, 장차 우리 주님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들이키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그 날은 그리스도인들의 생애에 가장 행복한 날임과 동시에 장차 주어질 가장 영광스럽고 복된 날이기도 합니다. 또한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일생의 모든 날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날이 됐든지, 일상에 주어지는 모든 날이 됐든지 좋은 날인 것은 분명합니다. 모든 날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떤 날도 주님 안에 있으면 최고로 좋은 날입니다. 때문에 성도는 좋은 날이 항상 미래에 주어지는 날이라는 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반드시 미래에 주어지는 날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하루하루 주어지는 모든 날을 좋은 날로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항상 좋은 날을 사모하며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꿈꾸는 좋은 날은 어떤 날을 말하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병장수하고 자녀형통하며, 근심걱정이 없고, 물질적인 어려움이 없으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시각으로 볼 때는 그렇게 단순한 날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좋은 날은 우리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좋은 날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고 영혼이 소생하는 기쁨의 날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날입니다. 때문에 성도는 주일만 좋은 날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날을 다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날은 좋은 날인 것입니다. 신부는 신랑과 함께 하는 날이 가장 좋은 날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에게 가장 좋은 날은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그 날은 최고로 즐겁고 행복한 날인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최고로 좋은 시간이요, 주님과 함께하는 날이 최고로 행복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모든 날이 최고로 좋은 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질병과 절박한 필요들로 가득차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집없이 떠돌아다니고 헐벗고 병마에 시달리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독과 허무와 좌절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생에는 중요한 목적이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인생을 사랑하지도 즐기지도 못합니다. 그들에게 인생은 즐거움이라기 보다는 무미 건조한 고역입니다. 어떻게 인생을 사랑하고 누릴 수 있는가? 행복을 만들어가며 누리며 살았으면 합니다.

 

성경에는 없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행복을 주셨는데 그 행복을 제멋대로 사용해 천사들이 행복을 회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행복을 어디다 숨겨놓아야 할지 의논을 했습니다. 한 천사가 제안했습니다. ‘저 깊은 바다 밑에 숨겨놓으면 어떨까요천사장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건 안 돼. 인간은 머리가 비상하기 때문에 바다 속쯤은 금방 뒤져서 찾아낼 거야’,‘그러면 저 산꼭대기에 숨겨 놓으면 어때요’,‘인간의 탐험정신 때문에 아무리 높은 산 위에 숨겨두어도 찾아내지한참 고민을 하며 의논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두기로 합시다. 아무리 저들의 두뇌가 비상하고 탐험심이 강해도 자기들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좀처럼 찾아내기 어려울 거요. 그래도 찾아내면 그 사람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지요지어낸 이야기지만 좋은 교훈입니다. 행복은 마음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행복이 있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냥 마음이 아닙니다. 본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을 원문으로 보면 마카리오스인데 이 말은 하나님의 행복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모시는 마음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바로 모시기 전까지는 진정한 행복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낱말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이 유명한 것은 그 말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의 오만함을 비웃으며 교훈 삼거나 혹은 그 문구로 재미있는 파생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 문구를 바탕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사전에는 불행이란 단어는 없다정말 예수 안에서 성령의 은혜 속에 산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천국은 곧 너희 안에 있느니라하셨습니다. 그런데 행복한 사람은 그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잘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일까요?

 

1. 대인 관계를 잘하는 성도가 행복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8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이 말씀에서 성도들이 같은 형제들에게 네 가지 행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음을 같이하며 체휼하며성도들이 세상에 사는 것은 많은 대적들 가운데 포위되어서 사는 것입니다. 죄악과 사단의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살고 많은 우상과 복음 진리를 핍박하는 대적자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들과 싸워 이겨야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가 되어 서로 동정을 같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같이하고 뜻을 같이하고 일치단결하여 서로 동정을 해야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며대인 관계에 있어서 형제 사랑이 제일 귀합니다. 사랑하되 그리스도인된 성도들은 동지애, 전우애를 가지고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의 생명이 내 생명이요, 형제가 삶으로 나도 살게 된다는 뜻을 가지고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 편지를 쓸 때는 적어도 그런 뜻에서 형제를 사랑하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핍박자들 십자가의 원수들이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우리 성도들 앞에 많은 마귀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공동 운명을 가진 전우애로서 형제를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동성애법으로 인하여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있어서 많이 불안합니다. 에이즈가 제일 많이 빈번하게 전염이 되는 것이 바로 동성애라고들 합니다. 어떻게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상대로 육체의 쾌락을 탐할 수 있습니까? 이제 세상이 망해져 가려고 악마의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쌍히 여기며형제의 생명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돌보며, 궁휼을 베풀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믿음이 약한자를 온유한 마음으로 더욱 불쌍히 여겨 도우라는 것입니다. ‘겸손하며서로가 겸손한 마음과 태도로 형제를 대하라는 것입니다. 서로가 형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면 겸손해 지고 멸시하는 마음을 가지면 오만 불손해 집니다. 오만 불손해 지면 사람 앞에도 미움을 받고 하나님 앞에도 물리침을 당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형제를 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형제에게 사랑받고, 존경 받고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습니다. 이렇게 형제에 대해서 네가지를 지켜 행할 때 은혜를 받고 복을 받습니다.

 

핍박자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욕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하심이라당시 핍박자들이 악하게 성도들을 괴롭히고, 욕하고 비난하고, 멸시와 천대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너희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을 한다고 욕하지 말고 오히려 저들에게 복을 빌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5:39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 대라’, 바울도 살전5:15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도모하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여유있고 멋있는 정신입니까? 같이 욕하고 때리면 둘 다 악인이 됩니다. 도리어 이 박해자, 악하게 나오는 저들에게 복을 빌라고 하였습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그렇게 하셨고, 스테반 집사가 순교했을 때, 바울과 베드로 사도가 그랬듯이 오히려 핍박자들에게 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이럴때 복을 유업으로 받게 된다는 것이고 이 복은 영원한 복, 천국의 복, 하나님 나라에 가서 받는 영광을 의미합니다. 이소망때문에 우리는 형제관계도 잘하고 핍박자들에게도 복을 빌며 살아야 합니다.

 

2.본인의 입술을 통하여 행복을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52:4-5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 먹는 모든 말을 좋아 하는도다 그런즉 하나님이 너를 영영히 멸하심이며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라간사한 혀를 멸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악한 말을 하지 말고 궤휼 곧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원설교에 벌금을 메긴다는 사람들도 이 말씀을 두려워 하고 중시해야 할 것입니다. 악한 말은 다른 사람도 해치지만 그 말이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망하게 합니다. 침묵이 금입니다.

 

유대 나라의 어떤 사람이 장생불사 약을 사라고 다니니까, 랍비 요나의 딸이 듣고 아버지에게 전하니 그 사람을 데려 오라고 명하여 데려왔습니다. 랍비 요나가 묻기를 당신이 파는 장생불사약이 무엇이요라고 물으니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곧 장생불사약이라고 했답니다. 장생불사와 행복이 입에 있습니다. 곧 선한 말을 하는데 있습니다.말을 잘못해서 불행해 지고 망하는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항상 입을 주의하여 선한 말만 해야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혀를 금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랑하고 누기기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혀를 금하는 것입니다. 훈련되고 젤제된 혀는 거의 없습니다. 개부분 혀가 느슨하게 풀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날 뛰게 됩니다. 악한 말을 하는 자기 혀를 금할줄 알아야 합니다. 10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이 말씀처럼, 여러분들이 정말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신다면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 비 성경적인 것들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 eire-ne-, . shalom; 복지, 번영, 안녕을 구하며. Zeteo; seek, 찾다그것을 따르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6:2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12:13-14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21:23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민14:28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그대로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 가운데 생명과 복을 고백한 사람들은 단 한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다 생명과 복을 경험하게 되었고, 사망과 저주를 고백한 사람들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다 사망과 저주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믿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만큼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르지 않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며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한 말과 같이 입으로 믿음을 고백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바를 입으로 고백할 때 엄청난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혀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함부로 말하고 혀를 잘못 놀리면 좋은 날을 볼 수 없습니다.

 

말이 씨앗이 된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씨를 심으면 좋은 열매를 거두고, 나쁜 씨를 심으면 나쁜 열매를 거두듯이 좋은 말, 복 받을 말, 칭찬하는 말, 진실한 말을 하는 사람은 축복의 열매를 거두고 성공의 열매를 거두지만, 악한 말, 저주의 말, 거짓말, 남 비판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하고 행복한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밑천 안 든다고 말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을 하는데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누에가 입에서 나오는 실로 집을 짓고 들어가 살 듯이, 사람은 평소에 하는 말대로 환경이 조성되고 그 안에서 살게 됩니다. 18:20-21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좋은 말, 진리의 말, 지식의 말, 바른 말, 긍정적인 말, 격려하는 말, 존중하는 말, 장점을 발견하여 전해 주는 말, 건설적인 말, 감사하는 말, 화목하는 말, 겸손하는 말, 성의 있는 말만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좋은 말 한 마디가 행복을 만들고 함부로 한 말 한 마디가 불행을 만듭니다.

 

하나님 앞에서 뿐 아니라 공중 앞에서도 시인하고 고백해야 됩니다. 그런데 체면 때문에 고백을 못하고 핍박받을까봐 두려워서 고백을 못하는데, 그래가지고는 구원을 완성하지 못합니다. 29:25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10:32-33예수께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님 되심을 하나님께도 고백해야 하며,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여러분의 가슴 깊이 새기시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좋은 행동의 선행을 통하여 행복을 만들어 갑니다.

 

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악에서 떠나 선을 행해야 됩니다. 악을 행하고, 대인 관계에서 남을 괴롭히고, 손해를 주고, 물을 흐려트리고, 많은 사람에게 심적, 물질적, 육체적으로 해를 끼치며 악을 행하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해야 복을 받고 좋은 날을 보게 됩니다. 동성애는 악입니다. 마귀들의 놀이입니다. 하루 빨리 이런 마귀의 놀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동성애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가족들이나 자녀들이 그런 길을 걸어봐야 정신을 차릴 것입니다.

 

선행이 무엇입니까? 대립보다 양보를, 약자를 돕고, 고집보다 이해, 낙심한 자에게 용기를, 고통 당한 자에게 위로를, 믿음이 약한자에게 권면을, 모르는 자에게 가르침을, 불신자에게 전도를, 형제에게 친절을, 받는 것보다 주면서 살면 곧 사람에게 좋은 일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좋은 일하는 것입니다. 형제와 이웃, 다른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회와 국가의 유익을 위해 선을 행할 때 복을 받습니다.

 

세상에 행복한 악인은 없습니다. 57:21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하셨습니다. 악행이 자기를 불행하게 합니다. 자신의 신세를 망치게 합니다.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한마디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라는 말입니다. 화평은 평안과 평강을 의미합니다. ,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아무리 고운 말을 할지라도 마음의 상태가 바르지 못하면 좋은 날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심령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씩 저 사람은 심보()가 좋지 못해서 못된 일을 당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심보()가 좋아야 좋은 날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화평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선물입니다. 고전14:33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화평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때문에 마5: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화평케 하는 사람입니다. 어디로 가든지 화평을 만들고, 누구를 만나든지 화평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화평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5:22). 세상 어디에서도 이 화평을 얻을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화평은 오직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마음의 선물입니다. 이 화평이 주어지므로 성도는 마음가짐을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날을 볼 수 있습니다.

 

5: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화평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화평을 만들고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화평이 깨어지면 절대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좋은 날을 볼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내가 머문 곳이 화평의 현장이 되게 해야 합니다.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화평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좋은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12:18할 수만 있거든 너희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때문에 성도가 머문 곳은 그 어디나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화평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10:36). 그러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좋은 말을 하고,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며, 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좋은 날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세상의 어떤 날이라도 좋은 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어떤 날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저 하루하루가 기쁘고 즐겁고 좋은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날을 보기 원하신다면, 좋은 말을 하고, 좋은 마음가짐을 가지며, 바른 행동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행동은 자기 마음에 담아 둔 것이 밖으로 분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도가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바른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이른바 행동을 바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우리에게 무조건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악에서 떠나라고 주문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악을 품고서는 절대 선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악을 제거하지 않은 채 선을 행하게 되면 꾸정물통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선을 행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 것보다 힘이 듭니다. 때로는 선을 행하면서 낙심하고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선한 일을 판단하고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애꾸눈 사람들만 사는 세상에서 정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장애인 취급을 당하는 시대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누가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간에 마땅히 선을 행해야 합니다.

 

화평을 구하고 좇아야 됩니다. 분쟁을 일으키고 화평을 깨뜨리고 다니는 자는 복을 받지 못하고, 화평을 구하고 적극적으로 화평을 도모하기 위해 화평을 추구하는 자는 형제와 형제 사이를 화평케 하고, 어느 곳에 가든지 화평의 분위기에 조성하고 가정이나 교회, 이웃, 사회, 직장 어디서든 화평을 이루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어느 곳에 가든지 웃음꽃이 피도록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선을 행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눈 밝으신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끔 선한 뒤끝은 있어도 악한 뒤끝은 없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이 말은 반드시 선한 것에는 열매가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선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좋은 날을 보게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절대 선을 행하고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때가 이르면 반드시 거두기 때문입니다(6:9). 오히려 다른 사람의 선행을 격려해야 합니다(10:24). 다른 사람이 선을 행하면 시기나 질투하여 모함하지 말고 위로와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본문 13절은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날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당신의 일생에 좋은 날 보기 원하십니까? 성경대로 하십시오. 가장 먼저 좋은 말을 하십시오. 또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리고 행동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러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좋은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4. 회개의 기도생활로 행복을 만들어 갑니다.

 

12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하나님의 얼굴에는 사랑과 진노의 양면이 있습니다. 여기 주의 눈이 의인을 향하신다는 말은 사랑을 표하시는 뜻입니다. 즉 그 입에서 선한 말만 하고 선을 행하는 화평을 구하는 의인에게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시선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눈빛으로 따뜻히 대한다는 것입니다. 눈이 감정을 제일 잘 표현합니다. 눈을 보며 화났는지, 미워하는지,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의 시선을 보낸다 할 때 그 하나님의 사랑의 시선을 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악행하는 자들을 보고 계십니다. 악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악한 자들은 혀를 통제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악한 자들은 악에서 떠나지 않은 자들입니다. 악한 자들은 화평을 구하거나 좇지 않는 자들로서 분열을 일삼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판하고 뒤에서 험담하고 음모를 꾸미며 싸우고 전쟁을 일삼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고계실 뿐 아니라. 그의 면전에서 대치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7:23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엄히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경건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가시에 발길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고통이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재난을 당하면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셨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기도생활로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다시 12절에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한 예배 외에도 자기의 기도시간을 정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그 전통을 이어 받아 유대인들은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이 전통을 이슬람에게 빼앗겼는데 이 전통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때 비로소 우리 기독교는 또 다시 세계를 복음화하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면 우리를 해하려는 원수 마귀가 물러갑니다. 마음의 고통이 물러갑니다. 시험도 물러갑니다. 환경도 변하고 삶도 변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우리를 돕고 하늘의 평안으로 가득해집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는 의인의 간구와 기도에 기울이시고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의 기도나 다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선한 자의 기도, 의인의 기도 말과 행동이 선하고 화평을 구하는 자, 회개한 성도의 기도, 참 그리스도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 사랑의 눈길을 받으며 살고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사는 것이 현재의 복입니다. 우리는 이 현재의 복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주의 낯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여기 주의 낯은 하나님의 진노의 낯을 의미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 진노의 낯을 향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대신관계에 신앙이 없고, 복음을 거절하고 무 신앙으로 살던가 우상을 섬기며 살거나, 대인관계에서 형제와 이웃에게 해를 끼치며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진노의 낯을 향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형제들에게 사랑으로 대하고 핍박자들에게 오히려 복을 빌고, 선한 말과 행동과 일로 화평을 구하고, 주님의 관심을 모아 현재에서도 복을 받고 살고 미래, 천국에서의 영원한 복을 보장받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 마귀들의 활동이 동성애로부터 이 나라에서도 시작이 되려고 합니다. 철저하게 반대하고 싸워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구원설교를 하면 벌금을 메긴다는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내가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로부터 큰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고 계실 뿐 아니라. 그의 면전에서 대치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7:23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엄히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설교는 엄청나게 잘합니다. 사랑하라고, 용서하라고, 축복받으라고 엄청나게 설교는 잘하는데 밑에 내려와서는 사랑, 용서. 그게 어디 있습니까? 양을 잡아먹으려고 하고, 물고 뜯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주의 종이라고 합니다. 주의 종은 양들을 물고 뜯고 잡아 먹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종은 양을 잘 돌보아서 그 양이 털을 주고 그 양이 고기를 주고, 그 양이 잘 살도록 배려해주고, 보살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양이 말을 안듣는 다고 양을 실컷 두들겨 패는데 그 양이 젖을 줄 수가 있습니까? 좋은 털을 줄 수가 있습니까? 고기를 줄 수 있습니까? 안줍니다. 아니 못줍니다.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선교회 회원 여러분 여러분 교회가셔서 주의 종들에게도 잘하시고 주의 종들이 주의 종의 역할을 잘하시도록 기도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싸우면 교회가 평안하지를 못합니다. 교회를 싸움터로 만들고 교회를 사람 짜르는 곳으로 만들고, 전쟁터로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행복할 리가 없습니다. 거기에 성도들도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밥 그릇 뺏길까봐 그런가도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더 나쁜 것은 다른 장소에 가서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기교회를 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방 여선교회 회원 여러분 신앙생활 행복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종들이 악한 짓 하면 거기에 동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동참하면 나도 그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오실때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겠다는 마음으로 오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 오실때에는 하나님을 잘 경외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오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 오실때에는 오늘 목사님을 통하여 무슨 말씀을 주실까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생활로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다시 12절에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한 예배 외에도 자기의 기도시간을 정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그 전통을 이어 받아 유대인들은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우리 상주교회는 교회를 건축하기 전에 일천시간 기도 시간도 가져보았습니다. 금년 8월에 백두산 천지를 보러 24명이 다녀왔습니다. 지난 일년동안 준비하며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중에 천지를 보여주어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왔습니다. 일정중에 백두산 밑에 중국교회 새벽기도회를 참석하여 통일을 위하여 기도도 했습니다.

 

지난 21일 토요일에는 국내성지를 4군데 나녀 왔습니다. 손양원목사님 생가기념관, 주기철 목사 기념관, 호주 선교사 기념관, 거제 포로 수용소에 45인승 대형버스를 빌려서 총 35명이 다녀왔습니다. 우리 상주교회 성도들이 말을 잘 들어서 백두산도, 국내성지도 은혜중에 다녀와서 다음에 어디를 데리고 갈까, 어디를 보여주면 성도들이 좋아할까 행복한 고민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목사 한사람이 잘 하면 그 교회가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성도 한 사람이 잘하면 교회가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지방 여선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때문에 지방이 평안하고 행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때문에 섬기는 교회가 평안하고 행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엉망진창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신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행복하시고 또 행복을 만들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항상 긍정적이고 좋은 말을 하고, 이웃에게 선행을 쌓고, 진실로 회개하여 하나님 잘 섬기고, 늘 기도하는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육 간과 앞날에 항상 생명으로 풍성하고 일생 좋은 날만 볼 수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요14: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행복, 하나님의 행복을 누리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 것에 얽매이지 말고 다 버리세요. 치료함을 받고 내가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양심의 평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예수 안에서 행복의 하나님을 모시고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행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