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제사장 예수와 멜기세덱(히7장1-10)

하나님아들 2020. 5. 2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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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예수와 멜기세덱(71-10)

성경본문: 히브리서7:1-10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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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고 그 분을 주로 고백하는 여러분들은 얼마나 예수를 생각하고 또한 그 분을 얼마나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까?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기자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생각하라(3:1)!”라고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제사장! 하면, 당연히 최초의 제사장인 아론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는 이러한 당연한 역사를 뒤집어엎는 놀라운 논리를 동원하여 제사장 예수를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히브리서 5장과 6장에서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5:8-10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 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우리는 이러한 구절을 통하여 저자의 집요함과 탄탄한 논리적 구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와 멜기세덱! 과연 이 두 인물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기에 이처럼 히브리서는 계속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날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말씀은 많이 하지만, 성경은 이 십자가의 대속의 진리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나요? 이 점이 오늘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내용입니다.

1. 멜기세덱 (1-3)

발음하기가 좀 어려운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Mal chi che dek"이며, 헬라어로는 ”me chi se dek"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문자적으로는“My King is Che dek, 나의 왕은 세덱!” 입니다. 그런데 본문 2절에서 이 이름을, 의의 왕으로 해석합니다.

 

그 이유는 세덱, 짜디크 라고 하는 말이 의로움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살렘 왕을 평강의 왕으로 해석합니다. 이 역시 아시는 대로 샬렘이라는 말이 안전, 평화, 평강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은 예루살렘을 뜻합니다.

 

본문 1-3절에서 이 인물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 7:1-3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 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그러면서 4절에서 강력하게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 사람인가를 생각하라!” 주장합니다.

* 7:4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참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더 높은 인물인 멜기세덱에게 예물을 드렸다는 주장에 대하여 흥미를 갖지 않을 없는 주장입니다.

 

창세기 14장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발견합니다.

* 14:17-20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이 기사의 배경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대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져 택한 소돔과 고모라성이 주변 다섯 왕국과 전쟁 상태에 놓이게 되고, 결국 조카 롯의 가정이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사병 318명을 동원하여 이들을 추격, 공격하여 조카 롯과 그 일행들을 도로 찾아오고 또한 전리품을 빼앗게 됩니다( 14:8-16).

 

이렇게 사웨 골짜기 즉 왕의 골짜기에서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살렘왕 멜기세덱이 나와 축하하고 그의 군대에게 떡과 포도주를 제공하고 아브함에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아브람의 복을 빌며 축복합니다. 이에 아브람은 그의 제사장 직을 인정하고 그의 축복에 응답하여 전쟁에서 취한 전리품 가운데 1/10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히브리서는 이 사건을 인용하면서 초두에, 이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요 살렘 왕, 곧 평강의 왕이요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이 왕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인물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항상 있는 제사장입니다. 문자적으로는 never ending priesthood, 결코 끝이 없는 제사장입니다. 둘째는 이 영원한 제사장은 하나님이 아들과 방불한 인물이다.’ 여기서 방불하다는 표현은 make like 비슷하데 만들어 진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은 멜기세덱을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와 비슷하게 닮은 존재로 등장시키신 것입니다. 즉 여기서 멜기세덱은 예수의 예표적인 인물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유명한 메시야 예언의 시인 시편 110편에서 다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즉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예표적인 인물로 아브람에게 나타났고 아브람은 이 멜기세덱에게 1/10을 드렸습니다.

 

참고적으로, 그래서 이 멜기세덱에 대하여 쿰란 공동체를 비롯한 다양한 유대인 분파들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알려진 바로는 쿰란 공동체는 그를 하늘의 재판관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2. 멜기세덱의 위대성을 생각함(4-10)

저자는 4-10절에서 이러한 아브라함과의 관련성을 갖고 있는 위대한 멜기세덱을 그의 제사장 직과 관련하여 좀 더 깊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7:4-10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느니라.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이 설명에서 우리는 아주 흥미로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아주 재미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제사장 하면, 당연히 레위지파, 그리고 아론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자의 논리를 이러한 유대인들의 기존 상식을 뒤집어엎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취한 행위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위대성을 부각시키려는 강력한 주장인 것입니다.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멜기세덱의 위대성(majesty)

* 7:7-8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고, 그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의 이 행위를 지적하며 주장합니다. 멜기세덱은 레위 지파가 아닌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항상 살아있는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그런 그에게 레위 지파의 조상 중에 조상인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고 예물을 드린 것은 아브라함 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축복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사실은 레위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그 역시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는 레위,- 재미있는 유대인적인 표현입니다,- 역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위대한 레위 지파의 제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위대한 제사장인 멜기세덱보다 낮은 셈이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예표하는 멜기세덱에게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예물을 드린 것은 곧 구약의 그 어떤 제사장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위대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세 가지의 위대성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첫째, 그는 유대인의 유일한 족장입니다. 이 말은 위대한 이삭, 야곱 그리고 다윗과 같은 위대한 유대인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조상으로서 유대인의 기원을 이루는 인물입니다.

 

둘째, 그는 또한 가장 먼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인물입니다. 땅과 나라 그리고 자손을 하나님으로부터 보장 받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능케 한 조상입니다. 그로 인하여 유다 지파와 레위 지파를 비롯한 유대인 모든 12지파를 가능케 한 위대한 조상입니다.

 

이런 조상이 예수를 예표 하는 멜기세덱에게 예물을 드리고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예수의 제사장직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예수를 믿을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2) 멜기세덱의 사역(ministry)

이 위대한 대제사장인 멜기세덱의 사역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축복 사역과 십일조를 받는 사역입니다. 이 두 가지 사역은 제사장의 당연한 사역이요, 특권입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으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십일조를 드렸던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의 제사장 직을 인정하여 그에게 십일조헌금을 바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예표적인 멜기세덱의 사역입니다.

 

결론

오늘날 성도들은 히브리서의 대상인 유대파 기독교도들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에 대하여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하여 생명을 무릅쓰고 사명 318명을 거느리고 전쟁을 하여 마침내 승리하였습니다. 생명을 건 이러한 전쟁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웠겠습니까?

 

전쟁하러 가기 전에도 아니고 승리하여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이라고 하는 살렘 왕이 나타나 축복하는 이 행위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순순히 멜기세덱에의 제사장 직을 인정합니다. 그의 축복을 기꺼이 받습니다. 그에게 그 피와 같은 전리품의 일부를 정성을 다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서 참으로 피나는 노력과 노동을 통하여 피와 같은 돈을 법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와서 헌금을 합니다. 그것은 교회라고 하는 단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부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의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은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대속 사건 즉 십자가에서의 희생 제물로 죽어주셔서 영원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주신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에 대한 감사와 고백의 행위인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과 감사의 행위인 것입니다. 교회는, 모든 성도는 이러한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으로 우리의 구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섬기며 그 분께서 주신 영원한 축복을 마음껏 누려야 할 것입니다.

 

*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