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능력 있는 기도를 위한 다섯 원리

하나님아들 2020. 5. 2. 22:13

능력 있는 기도를 위한 다섯 원리

 

당신은 좀 더 만족스러운 기도 생활을 원하십니까?

당신의 기도는 응답 받고 있습니까?

당신의 기도에는 세상의 어두움을 밝힐만한 능력이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그 기도를 배우고 그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된 사역 중에서 물러나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무리들 곁을 떠나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기도하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기를 마치신 후에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하는 예수님의 기도 생활에 대해 알고 싶어 했으며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러한 요구에 즉시 응답하시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가르침에 기꺼이 따르겠습니까?

[기도 학교(School of Prayer)]에 입학하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은 기도하는 법을 완전히 터득하여 그것을 실천하겠다는 각오가 되어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슥 12:10)이신 성령의 무한한 능력을 의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 예배와 경배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즉각 주신 대답은 누가복음 11:1~2절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하라 아버지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도의 방법을 따르자면 하나님께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일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지 않는 가도는 전혀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과 믿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의 첫 번째 요소는 하나님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경배]란 “굽혀 절을 함” 혹은 “엎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배는 그리스도와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높이며 그분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경배는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경배는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옵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면 경배도 부족하게 됩니다.

경배는 무엇을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외의 다른 목적이 하나님과 자신들을 욕되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 뿐예요”라는 찬양 가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고, 나를 사랑하시고 택하셔서 그 사랑가운데 거하게 하신 은혜가 감사해서 드리는 예배와 경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배란 하나님 그 자체와 그분의 역사 방법을 진정으로 찬미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겸손과 경외심 가운데 영적으로 하나님께 깊이 복종하는 것입니다.

 

경배는 말을 하지 않고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 52:5절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배에는 말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에 압도되어 그분 앞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단 한마디로도 경배의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치 마리아가 “랍오니여”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진정한 경배란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자신은 종의 자리에서 주종 관계의 선을 분명하게 긋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더욱 생생한 경배를 드리려면

우리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과 초월적인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 가운데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운 성품은 계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고후 4:6)에서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온전한 빛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골 1:19),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므로 예수님을 높이지 않는 경배는 하나님께 결코 열납 되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39절은 "너희가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증거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자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기도 책인 시편이 특히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말씀들을 읽은 것으로 당신의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다시 말하자면 약속의 말씀을 토대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개인 경건 시간에 적당한 찬송가를 택해 부르는 것도 경배의 커다란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감정이 표현의 결핍을 성령이 주신 선물인 찬송가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찬양의 습관을 가지십시오.

 

참된 경배는 헌신적이며 사랑으로 충만한 섬김이 전제될 때에만 가능합니다.

 

 

2. 감사 

기도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혹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시는 은혜와 복을 기쁨으로 깊이 인정해 드리는 행위인 감사입니다.

감사는 기도의 필수 조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감사와 경배를 구별해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자비를 기쁜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일 뿐 하나님의 완전하심으로 충만한 상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매일 베푸시는 은혜와 복 속에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경배를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감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은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편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말지어다”

시편 118:1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엡 5:20 “범사에 감사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감사는 엄격한 의무요 명령입니다.

 

감사하는 일에 대해 그것을 쉽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능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사무엘 러더포드(Samuel Rutherfoed)의 말처럼 “오 나는 주 예수께서 대신 당하신 아픔과 능욕과 채찍에 무한히 빚진 자로다”라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감사의 결핍은 성령의 역사를 제한합니다.

“기도와 감사는 서로가 절친한 친구, 기도에는 감사가 늘 함께 하네”라는 2행으로 된 고전시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기도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감사는 곧 감사하는 생활”이라고 죤 뉴튼(Jhon Newton)은 말하면서 감사를 실제 삶을 통해 표현하며 살았습니다.

 

우리가 장차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거할 때는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기도의 다른 내용은 다 그치고 오로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만이 영원히 계속 될 것입니다.

 

 

3. 자백  

감사치 않는 것은 단순히 표현하지 않는 소극적인 잘못이 아니라 엄연한 죄입니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는 “배은망덕!, 너는 양심에 화인 맞은 악마로구나”라고 했으며, 루터(Luther)도 “감사치 않는 것은 곧 절도 행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진 코우트니(A. Jean Courtney)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무한히 찬양하는 책이 대부분 회개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실로 놀랍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바로 회개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더욱 생각되지요.

기도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사람은 교만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당하는 법이 없습니다”

 

[자백]이란 뜻을 나타내는 헬라어에는 “자신의 죄를 고소 당하는 자가 그 죄를 시인 혹은 선포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곧 자신이 저지른 일의 죄악성과 심각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동의하는 행위입니다.

 

시편 32:1~5절에서 다윗의 고백을 보면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 내 죄를 아뢰고‥‥ 숨기지 아니하였더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거나 솔직하지 않은 자백은 하나님의 귀에 들리지 않을뿐더러 양심의 가책을 잠잠케 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1:9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우리의 죄 고백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하나로 묶어 대충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한의 죄를 열거하며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회개를 하되 다음 기회로 미루지 말고 자신의 범죄 행위를 깨달은 그 순간에 해야 합니다.

다소 과민하거나 지나치게 양심작인 사람에게는 자백의 정도를 정하는 것이 하나의 문제로 대두됩니다.

그러나 죄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듯이 그에 대한 고백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비밀스러운 자백

하나님께만 지은 죄라면 고백 역시 하나님을 향해서만 해야합니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할 경우 당신의 죄를 하나 더 알게 할 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2) 사적인 자백

죄에는 하나님은 물론 인간에 대해 짓는 것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법칙에 의하면 자백은 죄의 성격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능한 한 하나님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힌 당사자에게도 자신의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23~24절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먼저 가서 화해하고 그 다음에 예물을 드리라는 것이 순서입니다.

 

3) 공적인 자백

공적인 영역, 즉 어떤 집단이나 교회에 대해 죄를 지었을 때는 그것에 대한 고백도 공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죄의 용서와 확신과 관계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공적인 자백 행위만이 죄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보면 돌로 때려죽이는 일을 공개적으로 한 이유와 같은 것입니다.

 

죄에 대한 뉘우침이나 회개에는 진정한 죄의 고백이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회개의 대표적인 모습을 누가복음 15:19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진정한 뉘우침이란 그것으로 인해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될 만큼 죄에 대해 사무치도록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4. 간구와 도고  

성경에 “기도”란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열두 개이고, 헬라어에는 다섯 개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에서 우리는 디모데전서 2:1절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기도에 대한 네 가지 의무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 기도 도고 감사를 하되”

이제 간구(petitions)와 기도(prayers)와 도고(intercessions)에 대해 좀더 상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1) 간구

[간구]란 단어는 원래 “간청하다” 혹은 “부족하다”는 뜻의 헬라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말에는 길가에 앉아 있는 거지가 왕자에게 구걸하는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단어에는 애원하여 도움을 청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간구해야 할 문제들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아무 공로가 없기에 하나님의 긍휼하심만을 의지한채 겸손과 소망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갑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무조건적인 은혜의 초청을 받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간구란 절실히 느끼는 명백한 요구 조건에 대해 그것의 공급을 갈구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간구에는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형편이 언제나 수반됩니다.

 

2) 기도

기도는 간구란 말보다 훨씬 넓은 의미의 단어이며 오직 하나님을 향해서만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기도란 다른 사람의 앞과 옆에서 비는 소원으로서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물론 여기서 다른 사람이란 하나님 아버지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기도”와 관련해서 생각할 한가지 중요한 것은 간구와는 반대로 우리에게 항상 필요한 것들, 즉 하나님께서만 베푸실 수 있는 죄사함이나 권능을 구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분께 자기의 소원을 고할 것을 권하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습니다.(마 14:12)

 

3) 도고

간구와 기도는 자신의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수단입니다.

그러나 도고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필요한 것과 유익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고란 비이기적이며 이타적인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도고란 헬라어의 의미는 “OOO와 조화를 이루다, OOO와 마음껏 대화하기 위해 가까이 가다” 또는 “가까이 갈 수 있는 자유를 갖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상소하기 위해 왕 앞에 나아가는 신하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고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가 됩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기도(창 18:23~33)와 모세의 기도(출 3:1~14)와 같은 것입니다.

도고에는 중보기도의 대상자에게 임하는 직접적인 유익은 물론 기도하는 자가 받게 되는 반사적인 축복이 함께합니다.

우리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중보기도가 있기에 그 은혜의 커다란 위로와 격려가 있음을 믿습니다.

 

실제 적용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의 풍성한 기도 생활을 위해 당신은 매일 기도를 관찰하여 경배, 감사, 자백, 간구, 도고가 조화를 이루도록 힘써야 합니다.

경배와 간구와 도고는 이른 새벽에 하는 것이 좋고 고백과 감사는 밤늦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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