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제사장 예수님[9] 성경: 히브리서4:14-16절 미국의‘월스트리트저널’이 여론조사에서 '당신은 무엇이 성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① 좋은 부모가 되는 것95% ② 행복한 결혼 생활90% ③ 좋은 친구를 갖는 것83% ④ 자기 분야에서 정상이 되는 것80% ⑤ 권력이나 영향력을 소유하는 것16% ⑥ 부자가 되는 것12% ⑦ 명예를 얻는 것8%
두 번째 질문은 '당신은 지금 무슨 일에 가장 시간을 많이 쓰고 있습니까?' 이었고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돈 버는 일95% ② 명예를 얻기 위해90% ③ 권력과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일에 83% ④ 행복한 결혼생활 20% ⑤ 좋은 친구관계를 위해 10% ⑥ 좋은 부모가 되는 일 7% 사람은 이와 같이 중요하다 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 또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예수님을 가만히 계시는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과 사건을 행하시는 실제적인 분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대 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아론 혈통의 대 제사장은 매년 7월 10일 대 속죄일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렸는데, 제사를 드리는 대 제사장 자신도 불완전한 인간인지라 매년 동일한 제사를 반복적으로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서 단 한 번에 속죄제를 드림으로 모든 인간의 죄를 속하신 대제사장이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율법의 아론의 속죄를 믿고 있는 유대교에 유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은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과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부탁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살펴봅니다.
1. 죄를 해결 하신 분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는 한국 사람들을 감시하고, 탄압하려고 그들의 호적부 빨간색 줄을 긋거나 붉은색 스탬프를 찍거나 또는 빨간 펜으로 점을 찍는 등의 형태로 표시를 했는데 이것이 '호적에 빨간 줄긋는다.'라는 말로 유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죄를 짓고 형을 받으면 그 전과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벌금형보다 무거운 형을 받은 사람의 본적지 시, 구, 읍, 면사무소에도 그 내용이 송부됩니다. 회사나 공무원 특별 기관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신원조회를 요청하면 해당 기관에서 수형 인명 표를 조회한 뒤 의뢰한 측에 그 내역을 회신해주는데 이 과정에서 채용예정자의 죄지은 여부가 다 들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통사고 당한 것이나, 아무데나 차를 세워서 과태료 낸 것이나, 신호를 위반해서 딱지를 땐 것까지 경찰서나 법원 컴프터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교회 봉고차를 폐차할 때 수십만 원의 과태료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다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데나 교회차를 세워놓고 주차위반이 누락되면 다 내 이름을 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성경은 인간은 누구나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벌금을 면 됩니까? 선행을 하거나 기도나 봉사를 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구약에는 인간이 죄 때문에 수많은 양들이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피가 뿌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하기위해서 속죄의 양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대 제사장이시라는 말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죄를 당신의 몸으로 해결했다는 말입니다.죽음으로, 당신의 피로써 해결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그 효과가 발생합니다. 비행기는 200만개의 부속으로 조립된 기구입니다. 그 구조나 내용을 우리는 모릅니다. 단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것에 몸을 실으면 목적지에 간다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나 그 구조를 아는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요, 믿음이요,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러면 비행기는 목적지에 우리를 내려다 놓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죄가 없으신 그분이 죄인인 당신을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속죄의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값을 주님이 대신 치러 주신 것입니다.
2. 연결 하신 분 어떤 사람이 세계에서 큰 다리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막대한 건설비용이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독재자 살라자르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살라자르’(Salazar) 다리는 7천 5백만 달러, 뉴저지 글로스터 시티의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다리는 9천만 달러가 들었습니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베라자노 내로우즈’(Verrazano Narrows) 다리는 3억 2천5백만 달러가 소요되었습니다.그가 조사한 다리 가운데 가장 값비싼 다리는 일본 시코쿠에 있는 5개의 섬을 잇는 ‘세토 오하시’ 다리입니다. 그 다리의 건축 비용은 8억 3천만 달러입니다.(이것은 우리 돈 1천억입니다.)
그러나 이런 값비싼 다리들을 모두 합쳐도 하나님이 그분과 우리를 잇는 다리를 짓기 위해 지불하신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다리를 건설하시기 위해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건설하신 다리는 십자가를 만든 두 개의 나무로 건설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장 값비싼 재료,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보혈로 적시었습니다. 이 다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다리입니다. 예수님은 다리가 되어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갈 수 있게 하십니다(요14:6절) 3. 도우시는 분 15년 전 쯤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로라라는 소녀가 가출했습니다. 마약을 하고, 문란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백방으로 딸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누가 로라를 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L.A 어디에 술집에서 잡부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L.A 지역이 얼마나 넓습니까,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심정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찾기 위해서 딸의 사진이 들어 있는 전단지를 만드는데,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전단지를 보면, 로라가 얼마나 창피해할까? 나중에 시집이나 갈수 있을까.” 어머니는 고심 끝에 전단지에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쇄했습니다. “이 사진의 엄마가 딸을 애타고 찾고 있습니다.” 3일 후에 딸 로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감동을 한 것입니다. 자기 사진을 넣는 마음, 이것이 은혜입니다. “무너져도 내가 무너지는 것이 낫다. 창피를 당해도 내가 창피를 당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과 태도가 은혜입니다. 이것이 당신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이런 은혜를 체험합니다.
조지 뮬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들의 연약함이 예수님을 체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찬송을 받으실 그분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시지를 않으십니다. 연약함이 크면 클수록 더 가까이 오십니다. 우리들의 궁핍이 크면 클수록, 그가 친히 우리의 친구이심을 믿을 수 있는 더 큰 근거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70여 년 살아온 나 자신의 체험입니다. 시험이 크면 클수록 난관이 크면 클수록, 주님의 도우심은 더 가까이 나타나십니다. 때때로 나는 완전히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더 많은 기도, 더 많은 신앙, 더 많은 인내와 실천이 그 축복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우리들의 마음을 그분 앞에 쏟아놓는 일입니다.그러면 주님께서는 자기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이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⑴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14절) ‘믿는 도리’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으로 교회가 공식적으로 믿고 고백한 진리를 말합니다. 또 ‘굳게 잡으라’는 말은 ‘크라토펜’이라는 말인데 집요하게 달라붙으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죽어도 놓지 않으려고 하고, 또 놓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내 죄를 속하시고 용서하신 예수를 절대로 놓치거나 배신하면 안 된다. 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변해도 좋게 변해야 하는데 나쁘게 변하고, 부정적으로 변하는 것은 불행 중에 불행입니다. 청년 때는 순수하고 진실한 신앙의 사람이었는데 결혼하고 신앙이 떨어지고 예수 중심에서 자기중심으로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군에 가기 전에는 좋았는데 갔다 온 후 술과 담배를 배워오고, 말이 험해지고, 게을러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변했다면 그것은 재앙이요 불행 중의 불행입니다.
성경에는 변심이 커서 배신이 된 사람들이 나옵니다. 삼손을 배신한 들릴라(삿16:18-20), 우리아를 배신한 다윗(삼하11:14-15), 아브넬을 배신한 요압(삼하3:27), 이스보셋을 배반한 레갑과 바아나(삼하4:5-6), 암논을 배신한 압살롬(삼하13:28), 아마사를 배신한 요압(삼하 20:10), 아비멜렉을 배신한 세겜 사람들(삿9:23), 예수님을 배신한 가롯유다(마26:14-16)등 그 누구 하나 잘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해 상대를 배신하는 행위는 악한 것입니다. 그런데 배신이 가슴 아픈 이유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믿는 사람에게 당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 믿는 사람이 없다면, 배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오랜 기간 애정 쏟고, 헌신을 쏟아 부은 사람에게는 배신감을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분 지금 명단을 작성해 보세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 10명, 가장 믿고 있는 사람 10명, 그들이 배신 후보자들의 명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예수님을 배신하는 자의 명단에 들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변하지 마세요.특별히 배신하지 마세요. -나는 끝가지 갑니다. 천국까지 갑니다.-고백
사도요한의 제자요 초대교회의 교부인 폴리갑이 화형을 당하기 전 로마의 권위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떠냐? 이제라도 네가 섬기는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번만 부인하라, 그러면 너는 살아 나갈 수 있다." 천천히 그 로마인을 바라보던 폴리갑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 나를 저 불 속에 던지시오. 어떻게 내가 그를 부인 할 수 있겠소. 그는 86년 동안 나를 한 번도 모른 다고 한 적 이 없는데 내가 어찌 그를 모른다고 할 수 있겠소”그러자 그에게 장작 불더미에 태워져 죽임을 당하게 될 거라고 말을 하니까 “당신이 잠시 타다 꺼지는 불로 나를 위협하지만 당신이 심판 날과 영원한 형벌의 날에 악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불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 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그래서 이 폴리갑 감독은 붙들려 그들이 보는 앞에서 화형을 당해 죽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죽는 모습에 대해서 프랑스 화가 레이몽 페레가 그림을 그렸는데 지금 서머나 교회, 폴리갑 기념교회에 걸려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불을 태우는데 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얼굴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국을 바라보며 이 폴리갑은 불에서 순교했던 것입니다. 죽음 속에서도 신앙과 진실을 지킨 사람입니다.
⑵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은 자(15절) 우리 어머니는 합천 사람입니다. 일본에서 살다가 해방이 되어서 한국에 나왔다고 합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을 하였는데 아버지는 결혼 후 군대에 가고 어릴 때 어머니와 아버지 면회를 갔던 생각이 납니다. 가난한 살림에 어머니는 집에 물건을 가져다 놓으면 사람들이 사가는 그런 가게를 하면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군에서 나온 아버지는 가정생활에는 관심이 없고, 또 지을 농토도 없기에 한량으로 살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때 고향에서 살길이 없으니까. 부산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어머니의 고생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릴때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낳이 보았습니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 였는데 어머니는 ‘내 이 고생을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알지’ 그러면서 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소리를 들으셨는가 봅니다. 우리 5남매가 다 초등학교를 다닐 어릴 때 아버지는 우리들을 버리고 멀리 가버렸습니다.그때에 하나님 어머니로 교회로 부르셨고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도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이모님 세분이 다 세상을 떠나셨는데 가장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도 가장 오래 동안 하나님이 살게 하십니다. 지금도 해야 될 기도가 있고, 품어 주어야 할 자식과 손자들이 있기에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고, 배신을 당하시고, 외로움과 고독을 겪으셨기에 그런 생을 사는 모든 사람을 품어 줄 수 있습니다. 부르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깊은 한숨과 애환과 슬픔을 말입니다.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네가 약하고 슬프고,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분이 그 주님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요,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질그릇 같은 나에게 보화를 채우시고, 은혜를 담으시고, 선한 것으로 채우십니다.
⑶ 은혜의 보좌로 나가라.(16절) 현대는 어디를 가나 교회가 있고, 어디를 가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의 시대입니다. 은혜의 문이 활짝 열려 있으며, 누구든지,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많은 사람들이 은혜 없는 무관심 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 받을 기회가 우리에게 오늘의 시간 속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의 기회도, 성공의 기회도, 축복의 기회도, 은혜 받을 기회도 바로 오늘이요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의 보좌로 나가야 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영적인 것을 소홀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여여분의 육신은 백년을 못가지만 영혼은 그야 말로 영원합니다. 잘 먹이고 가꾸어야 합니다. 그저 육신적인 것만 생각하고 사는 분들은 오늘 영혼의 호소를 무시하지 말고 은혜의 자리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생활을 결심해야 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이란 말이 무엇입니까? 은혜는 사는 길은 하나님 앞에 있다는 말입니다. 탕자가 성공하고 멋있을 것같지만 아버지를 떠나는 순간 흉년을 만나고 빈털터리가 되고 돼지처럼 추락하는 것을 보여 주지 않습니까? 당신은 어디를 향해 나갑니까? 하나님 앞으로 아니면 세상입니까? 아니면 왔다 갔다 방황하며 살아갑니까?
오늘 날도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 몰두해서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급한 일에 쫓기기만 할 뿐, 보이지는 않지만 정말 중요한 일은 놓쳐버리고 삽니다. 그 결과 바쁘게 살고서도 빈손의 허전한 인생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에 현대인들의 불행이 있고 허무가 있습니다.
결론 히말라야에서 고미영씨 내려오다가 실족하여 돌아갔습니다. 우리나라는 최초에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사람이 고상돈 씨입니다. 8848미터 세계 제일 높은 산을 1977년 9월 15일 12시 50분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는“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사람도 79년 알래스카 맥킨리라고 하는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다가 그만 실족하여 이일교씨와 함께 그곳에 묻혔습니다. 사람은 잘 올라갔다고 해서 모두 된 게 아닙니다. 한 가지 되었다고 모두 된 게 아닙니다. 끝까지 우리가 잘 갈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기도하며 가는 것입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경기에 마라톤 우승한 에티오피아의 아베베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이 후에 도쿄 올림픽에서도 또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황제가 내려준 폭스바겐 승용차를 선물로 받아서 타고 가다가 41살에 교통사고로 그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이겼다고 모두 된 게 아닙니다. 끝까지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영국의 유명한 스펄전 목사님은 기도하지 않고 성공했다면 성공한 것 때문에 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만 잘 된다고 모두 된 게 아닙니다. 정상에 올라갔다고 모두 된 게 아닙니다. 내려오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은 지뢰밭과 같기 때문에 마음 놓으면 안 됩니다. 모든 일에 끝까지 승리하고 감당하고 평안하고 잘되게 하는 길은 주님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리 확실하고 틀림이 없고 문제가 없다고 해도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안전이 있고, 안식이 있고, 약속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절) 조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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