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앞

하나님아들 2020. 4. 13. 18:05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앞

 

요한계시록 4:1-11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구속사의 완성인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주 예수께서 재림으로 구속사를 마치시는 이유는 먼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있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 십자가의 대속을 친히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은 구속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 계획을 이루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네 생물과 모든 구원 받은 백성을 대표하는 이십사 장로들이 경배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사도 요한에게 앞으로 전개될 구속사의 완성과 세상 끝에 나타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를 알려주시기 전에 영원한 하늘보좌를 보여주십니다. 그곳에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피 흘리신 어린양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이시기 때문에 오직 상징으로만 표현되고, 반면 성육신하셨다가 십자가 상에서 구속을 이루고 부활 승천하여 영광을 얻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며 동시에 완성된 사람이기에 피조물에 속한 어린 양으로 간접적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보좌 앞에 계신 어린 양은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을 얻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구약의 선지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보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그 자리에는 어린 양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습니다.

 

이제 사도 요한은 하늘 보좌를 봅니다. 이전에 사도 바울도 한 때 하늘 보좌를 본 적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가 본 것을 기록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 12:1-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하늘 보좌를 보여주신 후에 그 본 것을 계시록으로 표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본 것과 사도 요한이 본 것은 같은 하늘, 즉 하나님의 보좌 앞입니다.

 

구약에서도 하늘 보좌를 본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다니엘도 하나님 보좌를 보았고( 7), 에스겔도 하늘 보좌를 보았습니다( 1-2). 이사야 선지자 역시 하늘 보좌를 보았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6:1-3).

 

그러나 구약 선지자들이 하늘 보좌에서 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의 역사 가운데 십자가 상에서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받는 장면입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5:11-14).

 

그러므로 구약 선지자들은 보지 못하고, 오직 사도 요한만이 볼 수 있었던 환상은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역사의 종말까지 있게될 구속사의 일곱 인을 떼는 장면입니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5:3-5).

 

이는 구속사의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은 구속을 이루신 하나님의 어린양인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계획을 하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계시록 전체에서 이제 앞으로 요한이 보는 환상은 하늘 나라에서 발생하는 일들과 이 땅에서 발생하는 일들, 이렇게 두 종류입니다. 그런데 그 특징은 하늘 나라에서 본 환상이 이 땅의 역사 가운데 발생하는 사건들과 연관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땅의 역사 가운데 발생할 일들에 대해 우리는 하늘 나라의 환상과 연결할 줄 알아야 이 땅에 대한 환상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타나는 하늘 나라의 환상에는 삼위 하나님이 각각 상징으로 보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보이고, 성령 하나님이 보입니다. 또한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구속을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신 어린양이 그의 신성과 함께 보이고, 천사계가 보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보입니다. 네 생물도 보이는데 네 생물은 천사계의 피조물 및 구원함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 외의 모든 피조물을 대표합니다.

 

한편, 땅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한 환상으로는 주의 백성들과 그들을 핍박하는 불신 자들의 연합 세력인 세상 나라들과 제국이 보이고, 그리고 마귀가 조종하는 왕들이 보입니다. 이때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은 구속사를 위한 것으로써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과 주권에 달려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성도들의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6:9-10).

 

계시록 4장과 5장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성도들의 기도처럼 이 땅에 진행될 사건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보좌에서 계획하고 의도하는 대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확증해 줍니다.

 

계시록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점은 계시록이 사용하는 묵시 형태는, 즉 상징을 사용하여 환상을 묘사한 것은 그 내용을 어렵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독자들로 하여금 더 분명한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수수께끼 같은 책이 아니라 더 많은 풍성한 계시를 알려주기 위한 책입니다. 특히 계시록을 푸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계시록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상징이 이미 구약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계시록을 정확하게 보려면 역사 끝, 곧 그리스도의 재림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할 때 묵시적인 상징들의 의미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그 이유는 계시록은 초림과 재림 사이의 구속사적인 일들을 나타내기 위한 계시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 초림을 상징으로 그렸던 구약에서 그 상징의 의미를 찾아내고, 구속사의 결론을 미리 아는 가운데 계시록을 볼 때 요한이 본 환상의 의미가 뚜렷하여진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영광을 얻으신 후에 구속사가 진행될 동안 있게 될 모든 교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땅에서의 교회는 교리를 강조하다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잃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하고, 발람의 교훈인 니골라 당의 이단적인 교훈에 물들지 않아야 하며, 자칭 유대인이라 불리는 거짓 기독교의 위협을 당할 것이지만 이겨야 하고, 짐승으로 대표되는 세상 나라의 박해로 인한 환난과 궁핍을 견뎌야 하며, 자칭 여선지자 이세벨의 교훈에 빠져 영적인 교만과 신비 체험과 접신의 유혹에 물들어서는 안 되며,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진 세속에 물든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며, 성령과 생명의 역사가 사라진 죽은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가 없는 배교의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을 경고하면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믿고 순종하며 죽도록 충성할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2장과 3장의 내용입니다.

 

한편, 2장과 3장에서 발견되는 참 교회와 성도의 원수는 이 땅에서 역사하는 원수들로서 크게 둘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세상 권력과 자랑을 손에 쥔 짐승이며 다른 하나는 거짓 교훈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 세상 정부와 인본주의 종교입니다. 이 두 원수가 하려는 일은 마귀의 영으로 가득한 어떤 인물을 주와 하나님으로 믿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 당시에는 그 인물이 로마 황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기 직전에는 마귀의 성육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적그리스도가 온 세상으로부터 영광와 예배를 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과거 로마 시대에 로마 황제를 하나님과 주로 고백하기를 거절한 성도들이 고문과 감금과 사형에 처하게 하였던 것처럼 초림과 재림 사이의 교회들은 비슷한 일들을 계속 당할 것이며, 특히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등장한 후부터는 노골적인 핍박 및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 죽도록 그리스도 예수께 충성하는 자들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상을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2:7),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2:1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2:1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26-28),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3:5),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3:1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3:21).

 

특히 계시록 3 21절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아계신 사실을 계시하면서, 이기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기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 왕노릇할 것이며 금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더욱이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성도들을 향해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에 죽음 및 고난을 당하는 상황 가운데 있던 신자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보면서 얼마나 큰 위로와 확신을 얻었겠습니까? 마치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 하나님의 보좌를 볼 때, 복음의 능력이 죽는 그 순간까지 나타나면서 주님을 향한 충성을 죽기까지 보일 수 있던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7:55-57, 59-60).

 

, 계시록 4장과 5장을 믿음으로 보는 자는 스데반과 똑같이 이 세상의 환난과 핍박과 미움의 유혹을 능히 이겨내고 죽기까지 주께 충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계시록 4장과 5장의 환상을 통해 지금 이 세상에서의 신자의 죽음은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반드시 마귀가 패배하고 신자들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확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좌를 보았던 자들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이제 본문을 보겠습니다.

1절에서 이 일 후에라는 말은 계시록 1 19절의 내용에서 볼 때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에 대한 사건들로서 네가 본 것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보고 체험한 환상으로써 일곱 금 등대 사이에 거니시는 인자 같은 이에 대한 환상이며 지금 있는 일은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받던 그 당시에 실제 역사 가운데 존재하였던 일곱 교회와 관련하여 주어진 메시지를 말합니다. 따라서 이 일 후에는 계시록 1장부터 3장까지 해당합니다. 그리고 4장부터는 계시록 1 19절에 의하면 장차 될 일에 대한 것입니다. 4 1절은 이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환상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계시록 1 10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어떤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인자 같은 이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때 그리스도 예수님은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으로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계시록 4장은 사도 요한이 새로운 환상을 보는데, 하늘에 열린 문을 봅니다. 그런데 그 환상을 보고 있을 때 처음 환상, 즉 그리스도 예수님의 환상을 볼 때 들었던 똑같은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을 듣게 됩니다. 물론 그 음성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그 음성은 요한에게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게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계십니다. 그러니 이리로 올라오라는 것은 하늘 나라로 사도 요한을 옮기시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요한에게 장차 될 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환상으로 보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이제 역사 가운데 진행될 일들을 환상으로 보여주실 것입니다.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을 들은 즉시 사도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하늘 보좌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4 2절부터 11절까지는 요한이 환상 가운데 본 하늘 나라의 상태에 대한 묘사입니다.

 

하늘 나라의 중심에는 보좌가 있고. 그 보좌에 어떤 분이 앉아계십니다. 그분은 말할 것도 없이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이 환상 가운데 본 성부 하나님의 모양은 벽옥과 홍보석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지개가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 무지개의 모양은 마치 녹보석 같았습니다.

 

그 보좌 둘레에는 스물 네개의 보좌가 있고, 그 보좌 위에 각각 이십사 장로가 흰옷을 입고 그들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

 

보좌 앞에 일곱 등불이 켜 있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계시록 1 4절은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으로 성령을 묘사하였습니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옵니다.

 

보좌 앞은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습니다.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로 눈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세세토록 살아계신 성부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네 생물은 찬양으로 경배하고, 이십사 장로들은 찬양으로 경배하면서 자기들의 면류관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드립니다.

 

4장에서 요한이 본 환상에는 아직 어린 양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 하나님, 그리고 말씀 하나님이며 성자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영광과 예배를 받으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분들은 창조주이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네 생물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고 합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는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주 여호와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묘사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주 하나님은 영원하신 영이시며 창조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주 하나님을 결코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는 불가능합니다. 주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것은 유한이 무한을 설명하려는 것과 같으며, 시간이 영원을 설명하려는 것과 같고, 피조물이 창조주를 설명하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선포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18).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 4:12).

 

따라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오직 상징으로만 묘사됩니다. , 그분의 영광이 상징적으로 묘사될 뿐입니다.

 

이에 보좌에 앉으신 성부 하나님에 대해 벽옥과 홍보석 같다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께 대해서 벽옥과 홍보석으로 상징된 바는 말로 표현못할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무한하고 영원한 최고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녹보석과 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보좌에 둘린 것은 노아의 언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새언약, 즉 복음에 따른 언약에 완벽하게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무지개는 홍수로부터 노아의 가족을 구원한 이후 새로운 세상에 나타난 하늘로부터의 약속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으로 시작한 하나님의 나라는 무지개의 약속에 따라 어느날 이 땅에 임하여 완벽한 새하늘과 새땅이 될 것입니다.

 

이제 피조물의 세계와 관련해서 천사계가 있고, 구원 받은 백성들의 영혼들이 있습니다. 천사계는 네 생물이 그 대표로 되어 있고, 그 외 셀수 없을 만큼의 천사들이 있습니다. 네 생물은 성경에서 그룹들과 스랍들로 나타납니다. 이 특이한 존재들은 사자와 송아지와 사람 얼굴과 날아가는 독수리의 상징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그 능력과 지혜와 권세와 통찰력에 있어서 엄청나다는 뜻입니다. 또한 앞뒤로 눈들이 가득한 것은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보좌를 죄와 악령들로부터 지키고, 주님의 재림 때까지 생명 나무를 지키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고, 악한 영들을 대적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일을 합니다. 그들에게 내려지는 지령은 하나님 아버지와 영광을 얻은 어린양으로부터 나옵니다. 결국 그들은 구속사가 완성되는 그때까지,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때까지 특이한 사명을 감당하는 최고의 천사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피조물을 향해 보호와 공격, 그리고 제거 등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악령들과 싸워 그들을 무저갱에 가둘 수 있습니다.

 

한편, 구원 받은 백성들의 대표들인 이십사 장로들에게는 보좌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십사 보좌가 마련되어 있고, 그들 역시 완전한 의를 상징하는 흰 옷을 입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천국에 와 있는 자들입니다. 이십사 장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운 토대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열두 지파 및 신약의 열두 사도에 의해 세워진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에 이십사 장로는 구약과 신약에 있어서 믿음으로 이긴 참 신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주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승리의 면류관을 받은 최고의 신자들로서 신구약의 모든 구원 받은 성도들을 대표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쓴 금 면류관은 원어로 볼 때 승리자에게 주는 면류관입니다. ,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해 믿음으로 승리한 신구약의 최고의 성도들입니다.

 

이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3:21)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한편, 계시록은 신구약을 통해 구원 받은 모든 성도를 땅에서 속량 받은 십사만 사천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모든 천사들과 또한 속량함을 받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전부 하나님과 그분의 어린양 예수께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영원토록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5절과 6절에 보니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또한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 소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세상 바다는 노아 때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바다 속에는 리워야단이라는 꼬불꼬불한 용이 자리를 잡고 활동합니다. 또한 바다로부터 온 세상을 장악할 더러운 짐승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 세상 바다는 사라지고 오직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만이 하나님 보좌 앞에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는 죄가 없고 소란과 반역이 없는 완전한 질서와 완벽한 조화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이 어린 양의 피를 뒤집어 쓴 후에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뵙는 장면이 있습니다. 물론 이 때도 하나님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그 장면에서도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습니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24:8-11).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심판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죄악들과 악한 영들과 불신자들을 향해 보좌로부터 번개와 우렛 소리와 증언하는 하늘의 음성들이 나와서 그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으로, 우리가 계시록 4장과 5장을 통해 특별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은 예배에 대한 교훈입니다.

 

십계명에서 제 2 계명은 예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20:4-5).

 

우리는 이 땅에서의 우리의 예배의 패턴으로 하늘 예배를 삼아야 합니다.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4:8-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5:11-14).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새 날, 즉 주의 날에 모여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에게 경배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영원한 보좌에서 드려지는 천성의 예배에 연합되어야 합니다.

 

어느날 우리는 죽음과 함께 하나님 보좌 앞으로 이끌릴 것이며, 그곳에서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의 구속주이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예배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천성의 예배를 보니, 예배는 성령 안에서 하늘의 하나님과 그분의 어린양께만 드려져야 함을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사람들이 모여 찬양이라는 공연을 들으러 오는 것도 아니고, 쇼를 즐기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하늘의 천사들과 장로들과 네 생물과 이미 세상을 떠난 허다한 신자들과 함께 하나님과 그분의 어린양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중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초점에 둔 예배는 거짓 예배입니다. 사람들의 필요를 맞추어 가는 예배는 부패한 예배입니다. 인간이 고안한 방법으로 예배하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예배입니다. 오직 성경에서 제시된 천성의 예배의 패턴을 따라 하나님과 어린양을 예배할 때 참 예배가 됩니다.

 

예배는 아이돌을 세워 군중을 모으는 탈런트 쇼가 아니며, 멋진 고전 음악 공연도 아니고, 심지어 영화나 연극 관람은 더더욱 아니며, 댄스나 장기 자랑 공연 무대가 아닙니다.

 

말씀 증언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하고, 예배자는 대언된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그러할 때 새언약에 따라 하나님과 어린양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하기 위해 모인 무리들에게 말씀을 통해 하늘의 신령한 복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과 자기 백성을 구속하신 어린양께 경배와 영광과 찬송을 돌릴 때,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생수의 강인 성령이 흘러 넘쳐 주의 백성들이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살며 빛 가운데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이 세상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가장 큰 복입니다. , 생명이며 신령한 능력이 예배를 통해 부으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인 것입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22:1-5).

 

오늘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의 왕이시며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 그분들이 보내시는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영원토록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이 예배에 하나님과 어린양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성령의 생명의 강이 차고 넘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