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기도할 문제들!!!

내 사랑하는 주님, 그리고 교회여!

하나님아들 2020. 2. 6. 23:11
내 사랑하는 주님, 그리고 교회여!  교회를 위한 변명   

2011. 7. 3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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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교회들이 오늘도 성장을 향해 달려 가고 있다. 무엇을 위함일까?
아마도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다고 믿고 싶다. 분명 처음에는 그랬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해서 선악과를 먹게 한 뱀의 유혹을 보면 참 교묘하다.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말을 섞어서 유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유혹의 주재료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의 말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틀어 놓는다. 그들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의 일들을 방해하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의 수많은 부흥의 사건들 가운데 혹은 그 이후에는 언제나 이런 마귀의 역사들이 있어왔다. 그 부흥을 방해하고 부흥을 비트는 일들이 언제나 있어 왔던 것이다.

처음 신앙 생활을 할 때 나름대로 청빈한 목회자를 존경하는 시대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나의 좁은 인간관계로 인한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큰 건물과 많은 성도가 있는 목회자가 존경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어디 모임이나 가면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내가 생각했던 교회가, 내가 꿈꾸어 왔던 목회자가 주님을 닮아 있는 것이라면, 내가 생각했던 모습보다도 TV 속에서 발견하는 세상의 모습과 교회가 다르지 않아 불편하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이 부끄럽다. 왜 내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까?

잘 살아 보세! 로 대변되는 70년 대의 가치들, 개인의 달란트와 은사를 생각하지 않고 사회적인 성공만을 신앙의 축복으로 생각하는 교회의 분위기. 물론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러한 것- 부와 명예, 권력-들은 개인적인 성실함과 지혜와 관련이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양심이 알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떠올린다. 내가,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그 분께서는 발가벗기시고 맞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잘 살고 성공을 향해서 달려가는 우리를 위해 말이다. 그래서 부끄럽다. 편안한 것이 부끄럽고, 이 시대의 교회에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해 부끄럽다.

교계의 존경받는(?) 교회에서 하는 세미나는 다녀온 적이 있다. 며칠 간의 일정에 시간에 되지 않아 하루를 참석했다. 가 보니 유명한 목회자들이 강사로 오셨고, 선물도 많이 준비하셨다. 으리으리한 건물에 수 만의 성도들... 그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정말 그들이 말하는 부흥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복음화는 수십 년 전에 이루졌어야 했다-그들의 교회만으로도-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아직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실제는 줄어들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교회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점점 더 세력화 되어지고 있다. 아니 적대적인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참된 부흥이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