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기도할 문제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하나님아들 2020. 2. 6. 23:1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교회를 위한 변명   

2019. 4. 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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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성경학자인 매튜 헨리는 평생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했다. 그는 매일 성경을 읽고, 연구하며, 기도하며, 묵상하다가 발견한 놀라운 진리들을 그의 주석에 기록했다. 마침내 그의 임종이 다가왔을 때, 자신의 사명을 다한 매튜 헨리는, 그의 친구 일라그쎄에게 말하기를, "자네는 임종시 남기는 유언을 익숙하게 기록해 왔던 사람인 줄 아네, 이것이 나의 유언일세. ‘하나님을 섬기며 그와 교제했던 삶이야말로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에게 가장 편안하고, 가장 기쁜 삶이었다네’." 매튜 헨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삶을 삶으로써 놀라운 성취감과 만족감을 누렸다.

매튜 헨리의 유언과 볼테르의 유언을 대조해 보자. 볼테르는 18세기의 프랑스의 합리주의 학자였다. 그는 생전에 교회를 비평하는 많은 소책자를 썼다: 다른 종교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기독교는 100년이 지나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종교가 될 것이고, 성경 역시 단순한 동화 이야기 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볼테르의 임종이 다가오자 그의 상태는 매우 악화되어서 그의 비그리스도인 친구들조차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꺼려했다. 마침내 볼테르는 그의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울부짖었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서 버림받은 채 죽는 것이 틀림없다." 그의 임종을 지켜보던 간호원은 이렇게 말했다. "유럽의 모든 부를 다 준다고 해도, 결코 임종시의 무신론자의 침대 곁에는 가고 싶지 않다. 너무나 무시무시한 경험이었다." 매튜 헨리와 볼테르의 경험은 얼마나 다른 것이었는가? 한 사람은 기쁨과 만족으로 가득 찼고, 다른 한 사람은 괴로움과 절망으로 가득 찼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가져왔는가? 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했다. 그런데 볼테르와 연관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볼테르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한 저택에서 살았는데, 그가 죽은 후 정확히 100년 후 영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모인 성서공회가 볼테르가 살았던 바로 그 집에다 사무실을 차렸다. 이 성서공회는 단지 볼테르의 옛집으로 이전해 온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집을 성경을 인쇄하는 인쇄소로 사용하였다. 아무 것도 하나님의 능력을 거스를 수는 없다.

시편 18편의 앞 부분에 이 시의 설명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이 시가 다윗이 왕이었을 때 지은 시라는 것이다.

왕으로서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면서, 주님께서 베푸셨던 은혜를 기억하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고난으로 표현한다. 모세와 같은 경우도 인생에 대해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단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어떤 이들은 감사 가운데 인생이 더욱더 성숙하고 발전되어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늘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자신의 삶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인생이 더 나은 인생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다윗의 삶이 뛰어난 점은 그가 평생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고, 평생을 감사하면서 살았고, 하나님 앞에 그 마음이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라는 말로 요약이 될 수 있다.

이것은 그가 왜 평생 동안 변함없이 하나님을 의지해 왔는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장밋빛 인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인생은 결코 낙관적인 것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라는 말씀처럼, 자신의 인생이 흑암처럼 캄캄하고 알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흑암 가운데 하나의 등불이 켜지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등불, 곧 희망을 켜시고, 앞날을 밝혀 주셨다고 고백을 하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위험한 양치기를 하던 목동이었고, 사춘기를 지나던 시절부터는 더욱더 위험한 군인의 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적군과도 싸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왕이었던 사울의 위협 속에서도 쫓겨 다녀야만 했던 사람이었다. 가족 간의 상잔을 경험했던 사람이었고, 아들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던 일도 경험했던 사람이었다.

우리 중에 다윗과 같은 고난을 겪은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빛이 되시고, 자신에게 희망을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희망이 있을 때 산다. 희망이 사람들에게 힘이 솟게 만들고, 희망이 사람들을 지혜롭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29절에서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시 18: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그리고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며, 희망을 주시는 분이시다. 다윗이 전쟁 중에서 그렇게 용기 있게 뛰며,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하나님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용기가 다윗은 능력 있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종종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가면 돈이 나오냐 먹을 것이 나오냐고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믿으면 돈이나 먹을 것보다 중요한 삶의 원리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삶의 원리는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서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관심을 기울일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이러한 삶의 원리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다.

30절의 하나님의 도에서 도라는 것은 길이나 삶의 원리들을 말한다. 하나님의 삶이 원리가 완전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우리 성도들이 큰 깨닫는 마음이 있어서 오직 말씀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작정이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길에 등이요 빛이 되시는 말씀이다. 오늘 성경의 말씀처럼 그 말씀이 완전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성경이 우리의 삶의 중심에 와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성경이 우리의 삶을 이끌게 하는 성도가 되자.

우리는 삶의 배경이 다르게 자란 사람들이다. 다른 환경, 다른 재산, 다른 재능, 다른 외모, 다른 말씨, 다른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떻게 어우러져 살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 모두에게 그 사람에게 꼭 맞는 삶의 방법을 어떻게 가르칠 수가 있겠는가?

오늘 다윗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에도 이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딤후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세상이 그 분의 원리, 곧 세상에서 완전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의미다. 그래서 그 분의 말씀과 그 분의 원리가 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는 우리가 가지고 있다.

과연 이 보물의 가치를 우리는 알고 있는가? 다윗은 일평생 그 가치를 인정하며 그 가치를 누리며 살던 사람이었다.

언제가 다윗의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살펴본 일이 있었다. 그 결과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데 이 사람은 성경에 나타난 자신의 재능에 관해서 천재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군인으로서 전술이나 전투에 능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지도력, 정치력, 시인으로, 연주가로서, 디렉터로서 모든 방먼에 천재적이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궁금해진 것은, 그가 그러한 천재성을 발휘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지도를 따랐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타고난 것이었을까? 아니면 둘 다 일까? 아니면 그가 하나님의 따르면서 개발되었기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나름대로 결론은 마지막 부분이었다. 그가 하나님을 따르면서 그의 천재성이 더욱더 개발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한 가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다윗의 고백대로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라는 말씀처럼 그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마다 하나님의 완전함과 순수함을 배워나갔던 것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교포가 모처럼 야구 구경을 갔다. 몸에 감기 기운이 있어 잘 아는 의사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오렌지 쥬스를 많이 마시고 집에서 쉬면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으로 식사를 하라고 일러주었다. 이 사람은 돌아와 그대로 했는데 며칠 후 그 의사에게서 계산서가 날아왔다. 집에서 혼자 조치를 했는데, 계산서를 보낼 수 있느냐 하며 화가 나서 잘 아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처방은 의사가 했으니 그 값을 지불해야 마땅하다는 말을 듣고 결국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런 후 얼마 있다가 또 계산서가 날아왔는데, 그것은 변호사로부터 온 것이었다. 전화로 상담을 했으니 그 값을 지불해야 했던 것입니다. 모든 문제와 일은 돈으로만 해결되는 시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의사보다, 변호사보다 더 확실한 처방과 인도를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 분은 돈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자. 그 분을 따르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가 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아륀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신 것처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우리 각자가 습관이 다르고, 자라난 환경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른다면 그가 우리에게 새로운 습관과 새로운 환경을 주실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순종이라고 말한다.

다윗은 어디가서든지 이기는 군인이었다. 그는 백전백승의 유능한 군인이었다. 오늘 본문은 그 비결에 대해서 말한다.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다윗이 승리의 비결이었다. 하나님께서 전쟁하는 법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완전하신 하나님의 길로 행하고, 거기다가 하나님께서 도우시기까지 하시는데 어떻게 그의 삶이 잘 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우리 성도들이 안전한 길로 가기를 소망한다. 그것을 위해 주님과 함께 걸으려고 애쓰기를 소망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선생들이 있다. 저마다 자기가 옳다고 말하고 저마다 자기의 길이 맞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길 중에 하나님의 길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나는 성도들이 안전한 길로 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며, 그가 가는 길이며, 그가 지도하시는 길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그 길은 완전하고 순수하다. 그리고 그 길을 다윗의 전에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같은 사람들이 살았고, 다윗 이후에도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서 인정했던 길이었다. 그리고 예수님 이후에도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 길을 살았고 인정해 왔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오늘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고 정미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를 찾는 자에게 도우시는 하나님이심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의 길로 가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자. 그 길의 끝에는 안식이 있고, 그 길의 끝에는 희망이 있고 그 길의 끝에는 행복이 있다. 우리가 그 길로 가지 않을 이유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자. 그래서 우리의 고난이 끝날 때 우리도 다윗처럼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라고 고백하는 성도가 되자.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