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요10:27-29)

하나님아들 2019. 5. 1. 14:23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요10:27-29)




사람이 왜 초조해 하는가? 왜 불안해하는가? 근심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는 해결방법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앞이 캄캄하기 때문이다.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통계에 의하면 하루 평균 잡아 40-50여명이 자살을 한단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포기할 정도로 괴로웠겠는가? 세상은 삭막하다. 온 사방에 우리 인생을 망가뜨리고 한방에 날려버릴 지뢰가 묻혀있다.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어져 있다.

이 세상은 마치 빛이 없는 캄캄한 밤중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두려워하고 공포에 붙잡혀 산다, 이런 삶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이런 세상을 우리가 산다. 그래서 사람들의 얼굴(인상)이 어둡다. 시장이나 사거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얼굴에 근심과 걱정이 꽉 차 있다. 뭔가에 눌러있는 느낌.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어져 있다. 세상에 괴롭고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무엇인가 대책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 낙심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살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기쁨과 희망의 싸인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싸인이 있을 때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는 안도할 수 있고, 희망과 위로와 안식 할 수 있고,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예)요11장 나사로가 죽었다. 죽은 가족들은 모든 것이 끝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살아나리라” 그러나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 내가 아니이다-이에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물으셨다.

하나님의 싸인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행복이 시작된다. 듣는 귀가 있어야 복 받는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들을 줄 알 때-안전하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양은 위험하다. 인간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목자를 향한 귀를 열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큰 사고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주님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우리가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양이 아니던지 한눈 팔아 삯군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예)어떤 어린 아이가 엄마를 따라 공원에 갔다. 놀이기구와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랑 먹을 것, 탈 것,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엄마가 아이를 의자에 앉혀놓고 먹을 것 사러 잠간 갔다가 오는 사이에, 너무 재미있는 것에 홀려서 따라가다가 보니 한참 와 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곁에 엄마가 없다. 겁이 덜컥 난다. 아무리 돌아봐도 엄마가 없다. 앞이 캄캄하다. 무섭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울기 시작. 한참 울고 있는데 어디선가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큰-소리로 대답한다. 소리 나는 곳을 향해 달린다. 엄마를 만났다. 엄마 품에 안겼다. 모든 근심, 걱정이 한꺼번에 싹-물러간다. 너무나 행복하다.

아이는 엄마의 음성을 듣고 자라야 행복하다. 내 영혼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싸인이 보여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1.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부르신다. 자기 백성들에게 싸인을 주신다. 다양한 상황에서 부르신다. 즉,

말씀, 환상, 꿈, 환경, 생각 등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가 예수 믿고 오늘까지 신앙생활하게 된것도 주님이 부르심을 듣고 순종한 결과이다. 중요한 것은 한번-두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생활속에 부르심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순간이라도 듣지 못하면 실족하여 공든탑을 잃을 수 있다.

부르심을 듣지 않고 하는 일은 사고난다. 열매가 없다. 예)모세는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태어나면서 나일강 물에 빠져 죽을 운명에서 바로 왕의 공주 때문에 살아 난 사람이다. 공주의 양아들이 되어 궁중에서 자라났다. 40대가 된 어느 날 자기 민족인 유대인이 어떤 애굽 간부에게 처절하게 얻어맞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 그 애굽 사람을 죽여버렸다. 그 일이 탄로가 나서 광야로 도망을 쳤다. 광야에서 40년간을 나그네로 살았다. 젊어서의 살인-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행동이었나아니다. 내 혈기였다. 그러나, 80이 된 어느 날 모세는 자기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이때부터 모세의 진짜 인생이 시작 된다.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돌아가 백성을 구해 내었다.

2.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하늘의 싸인을 볼 때 비로소 사명을 발견한다. 사명에 잡힌 사람은 하늘의 능력으로 세상을 산다. 가야 할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이 열리기 시작한다. 길이 열린 사람에게 감격이 있다. 기쁨이 있다. 새로운 용기와 힘이 솟아난다. 이런 사람의 내면에 행복이 있다.

예)행9장 사울이 나온다. 아주 똑똑한 청년이다. 집안도 좋고 학벌도 좋고 로마 시민권까지 가진 사람이었다. 자기가 신봉하는 유대종교의 이데올로기에 잡힌 사람이었다. 자그러나 기 종교를 반대하는 사람을 도저히 용납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당시 사도들로 인하여 복음이 예루살렘에 순식간에 퍼진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기 시작한다. 사울이 살기가 등등했다. 분노, 살기, 미움. 등 참을 수가 없어서 멀리 다메섹가지 믿는 자 잡아다가 처형하고 감옥에 넘기려고 원정 갔다. 그러다가 다메섹 길에서 하늘의 빛을 본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너무 강한 빛이 둘러싸여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주님의 음성이 들린다.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변했다. 복음의 사도가 되었다. 그는 복음을 위하여 엄청난 박해와 고난 중에서도 감사함으로 복음과 함께 살고 복음을 전하고 살았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저를 통해 일하셨다. 이것이 부르심을 듣고 사는 자의 행복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변한다. 절망이 희망, 사망이 생명으로, 악이 선, 실패가 승리로 변한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달려가야 할 목적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려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감동으로 다가오고 또 아멘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축복이다. 바로 그것이 싸인이기 때문이다. 요10:27-28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믿어지는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됨의 영광(자랑)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감동으로 다가오고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연결시킨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롬12:1-2) 이 때부터 내게 순종이 부담이 아니라 자원함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음성은 진리이기 때문에 거듭난 내 속 사람이 강력하게 역사하여 말씀을 순종하도록 활동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달려갈 길, 해야할 일이 보이기 시작한다.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고 나간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생명의 말씀이 심겨진 가슴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는 강력한 소원과 소원을 이루려는 열망이 있다. 이런 열망을 가질 때 주변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존재의 가치가 상승한다. 예)요4장 수가성의 여인-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예수가 메시야임을 알게 되고, 창녀의 삶에서 전도자의 삶으로 바꿨다. 예)베드로-어부였지만 그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 예)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 저들은 광야에서 죽었다. 예)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는 것은 영성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모든 삶의 시작은 하나님 음성을 들음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삶의 감격과 삶의 의미 그리고 사명에 눈을 뜬다. 예)구세군을 창성한 사람이 있다. 윌리엄 부스. 그는 젊은 날에 하나님을 만나고 생명 안에서 존재의 이유와 인생의 목적을 깨달았다. 사명을 붙잡았다. 열정적으로 살았다. 어느 날 병이 찾아왔다. 진단 결과 중병으로 판명되었다. 의사가 심각하게 충고했다. “이런 몸으로 전도생활을 계속하면 1년도 살지 못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부스는 깊이 생각한 후 마침내 죽음을 각오했다. 그리고 더 열심히 전도생활을 계속했다. 마침내 그는 병을 이기고 구세군을 창설했으며 건강하게 84세를 살다가 부르심을 받았다. 부스의 고백 “내가 젊었을 때 의사가 나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도 의사를 버렸습니다. 대신 나는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되었다는 말이다.

신약시대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시고, 부르신다. 오늘 우리에겐 성령으로 주님을 증언하신다. 요16:13-5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하나님의 사람의 삶의 열매를 맺는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1. 하나님은 계획자이시며 연출자이시다. 드라마는 작가가 계획한 작품을 연출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연기자는 연출자가 시키는 것에 충실하면 된다. 나는 하나님이 나의 인생의 계획자이심을 믿는가? 성령이 아버지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연출자이심을 믿는가? 또한 나는 연출자이신 성령이 지시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연기자라는 사실을 이해하는가? 그렇다면 나의 삶은 위대한 드라마가 될 것이다.

시키는대로 연기자로 연출하는가? 자기 멋대로 바꾸어 연기하지는 않는가? 왜! 우리가 불행한 삶을 사는가? 아직도 연출자의 의도를 모르고, 오해하고, 자기식대로 살려고 고집 부리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역사의 모든 것을 계획,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주인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역사에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롬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우리를 동참시키며, 우리를 통해 영광받으시고 복주신다. 이 일을 위해 성령님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다”(엡1:8-9)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그러나 알리셨다는데 우리가 얼마나 알고 그 뜻을 따라 살고 있는가? 알면서 안 따르는가? 모르기 때문에 못 따르는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성경은 분명히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고 하셨다. 왜, 딴 길로 가고 있는가? 믿음이 없고, 교만하고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누굴, 무엇을 믿고 따른가? 세상을 따른다는 것은 세상임금(마귀)를 따른 것이다.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잘 알고 따르라, 주님이 오라하시는 길은 생명과 풍요의 길이다. 주님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 의심하지 말라, 주님은 사람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다

3. 예수 믿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깨닫는 영과 아는 지혜와 총명까지 주셨다. 이제 하나님의 손길(뜻)을 깨닫고 순종하며 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란 이름을 가졌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면 광야에서 죽는 것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광야에서 죽으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가나안의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다. 살려면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왜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가? 육체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이기기 위해서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새술에 취해야 한다. 은혜를 맛보기 식정도로 알아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금은 무언가 아는것 같아도 결정적 사건이 터지면 나자빠진다. 예배를 통해 무슨 음성을 들었는가? 들은 말씀이 나의 삶을 지배하는가? 귓가의 감동으로 끝인가?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다. 가정생활에서 성령충만하지 않고는 가정 천국을 이룰 수 없다. 교회가 성령의 전으로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려면 특별히 교회 중직자들이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안된다.

4.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사모하라 하나님은 역사속에 자신의 능력을 계시(일반계시)와 특별계시(예수 보내심)하시고, 이적과 기사를 보여 주셨지만, 마귀에게 잡혀 귀가 막히고 눈이 어두워 보지도 듣지도 깨닫지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연출자의 뜻에 순종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고후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잘 생각해 보라, 조용히 그분을 느껴보라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며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하신 그 창조의 빛과 똑같은 빛을 성령께서 우리 영혼에 비춰 주심으로 하나님의 비밀과 계시를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두신 계획자이며, 성령은 그것을 행하게 하시는 연출자이고 우리는 실제로 행하는 연기자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사명을 부여받았다. 꼭 목사가 되어야 주의 일하는게 아니다. 우리는 다 동역자이다

몸의 각기 다른 지체이지만 중요한 지체요 없어선 안될 지체이다. 우리 가정-우리 교회가 건강하고 능력있는 삶을 살려면 지체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맡은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

과연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온전히 듣고 매일 매순간 100%로 순종하며 온전한 삶을 사는 자들이 몇이나 되는가? 성령에 순종하는 훈련을 하라. 하나님 음성 듣기를 원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자녀들에게 들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방법은 다양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못들었요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대로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고난중에도 말씀하시고, 형통한 중에도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