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고전2:6-16

하나님아들 2019. 5. 1. 14:02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고전2:6-16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교회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바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늘 기도하고,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체널을 통해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침반으로 삼을 때 성공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것입니다. 어떤 위기 상황라도 하나님 음성을 듣고 인도함 받는다면 겁날 이유가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양들이며,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을 특권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십니까? 들으려고 하셨습니까? 여기에 우리의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43:8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 급변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바르게 사는 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중요하고 더 귀한 것은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러나 사는 것이 그리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양이 목자를 따라만 가면 되듯이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기만 하면 된다,

예)창28장을 보면-야곱이 형 에서의 미움을 받아 하란으로 가다가 노숙합니다. 야곱의 그 때 심정은 매우 상했고, 미래에 대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숙하는 잠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고-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합니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보다 더큰 위로와 힘이 어디 있겠는가? 감격한 야곱은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은 하나님 음성을 듣고 삶의 자신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영적 사람이라면 이제 집중해서 성령님의 음성듣는 법과 교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성령과 의논하는 삶을 시작하며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 그 영광에 이르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럼, 하루 아침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가? 아니다. 성령님의 말씀 듣는 일을 사모하라, 훈련하라. 그분은 언제나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신다. 지난 주일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통로 몇가지 소개했다. 1)성령, 2)꿈, 3)환상 4)환경 5)생각 등 소개했다.

오늘 주제: 성령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떻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예수님의 공생애==많은 이적과 기사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됨(메시야)임을 증거하셨다. 그러나 바리새인!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면서도 믿지 않고 또 다른 표적으로 메시야임을 증거하라 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믿지 않는 저들의 완악한 마음을 증거한 것입니다.(요12:37-40) 그 때 예수님 마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굳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답답하신 예수님은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셨다. 요나의 표적이 무엇인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동안 갇혔다가 살아난 부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저들은 어떤가? 믿는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첫째, 성령의 음성을 듣는자가 되기 위해서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할 때 성령이 오셔서 영혼을 살려주신 사람을 말합니다. 성령을 좇아 살기 위해 성령과 의논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원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영은 영으로 풀어집니다. 육의 사람이 영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고전2: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느니라” 13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모든 것이 시작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하려면 영적인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의 영을 살리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요6:63) 우리의 영은 성령과 닮은 생명, 인격, 성품을 받아서 다시 태어난다. 성령이 말씀하시는 상대는 영이지 육이 아니다. 바울은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 하셨다. 그래서 성령은 먼저 우리의 죽었던 영을 살리신 후에 말씀하신다.

2)성령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기에 우리 영의 인격에 말씀하십니다. 우리 영은 성령과 교제할 만큼 성령과 닮은 탁월한 인격과 성품과 생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 생각이나 감정의 좌소는 마음이나 성령이 거하시는 좌소는 영입니다. 성령은 우리 영에 영원히 거하시며, 우리 영과 함께 살아 주십니다.(요14:16-17) 성령과 우리 영은 동질이기 때문에 완전한 연합이 가능하다. 영이란 단어 “퓨뉴마”는 영어에 성령을 대문자, 우리 영을 소문자로 구분한다, 이는 우리 영이 성령을 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3)성령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며 모든 지혜의 근원이시며 모든 힘의 원천이시다. 그분 자신이 우리 영에 거하신다. 그것을 알고 믿어야 한다. 요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근심, 훼방하지 마십시오,

성령은 오직 제사장만이 성막안의 지성소에 들어가 성령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희생 제물 없이는 불가능했으며, 죄인의 자리에서 두려움에 떨며 만나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분 자신이 우리를 성전 삼으시고 우리 안에 와서 사신다. 믿는 자에게는 동일하게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신다. 이것이 성도의 특권이다. 이것을 알고 깨닫는 차이가 행복의 차이입니다. 우리의 눈이 열려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사신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때, 나의 인생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 안에 역사하신다. 그래서 바울은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말했다. 지금 어떤 상황에라도 성령이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사는 것보다. 더 위해다게 사는 길은 없다.

둘째, 성령님과 교제하라

내 안에 성령이 사는 것을 안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령과 함께 교제하며 살아야 한다.

아무리 위대한 성령을 모시고 있어도 성령과 교제하지 않는다면, 성령과 함께 사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성령은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지 홀로 살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성령을 통해서만 이 세상에서 멋진 삶을 살 수 있다. 마12:29 “사람이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이 세상은 마귀가 다스립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 남는 길은 마귀를 멸하신 예수님을 믿고 그의 영의 인도(교제) 따르는 길 뿐입니다.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는 신분을 가졌다. 언제든지 성령님과 교제하라 그리하면 진리의 영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령과 교제가 깊을수록 더욱 기름부음은 강력할 것입니다.

예)부부가 어떻게 맺어졌나? 교제를 통해서 내 인생을 맡겨도 되겠다는 확신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충분히 교제해 보아야 실수하지 않는다. 사랑을 해보지 않으면 사랑을 알 수 없으며,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노래를 알 수 없다. 그처럼, 성령과도 계속 교제하지 않으면 성령이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없으며 성령이 주는 지혜와 능력도 맛볼 수 없다.

예)만약 대통령이 나의 집을 방문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가장 존경하는 분이 당신 집에 오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분을 환영하는 연회를 베풀고 그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앉아 그를 더 알고 그에게 당신을 알리려고 하지 않겠는가? 지금 나를 찾아오신 위해한 성령에 대해 그렇게 환영하고 교제하고 있는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과 교제하며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1)영과 영이 만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만남 자체가 행복입니다. 성령이 우리 영에 거하시지만 우리는 그분과 늘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님과의 만남은 우리가 순수한 영으로 자신을 드릴 때만 이루어집니다. 영적인 만남은 내 영이 성령과 연합하는 순간 순간을 말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위로와 용기를 얻으며 기쁨과 감격을 경험합니다. 포근함과 부드러움이 내 안에서 넘쳐 납니다. 성령은 사랑 많은 어머니 같아서 우리 영을 감싸 안아 주시는 때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연합이며, 사귐입니다. 임재와 기름 부으심입니다.

2)성령과 의논하며 사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을 가지셨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소멸치 않고 성령의 깨달음에 순종하는 자에게 더욱 큰 깨달음을 주십니다. 성령님은 영이지만 나와 동행하심을 잊지 말고 인정하고 대접하고 사십시오, 성령님을 모셔 놓고 푸대접, 무시하면 성령님은 슬퍼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인도와 음성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멋대로 살고 결국 망하게 됩다. 롬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나는 성령님께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순종할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항상 귀를 기울인다면 언제 어디서나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음성 듣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체널을 통해서든 말씀하십니다.

셋째,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라

1)우리가 왜 성령님의 감동에 순종치 못하는가?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1)깨달음이 없거나 2)깨닫고도 세상을 더 사랑하고, 아직 자아(고집) 깨어지지 않았기 때문 3)믿음의 의지가 약해서입니다. 믿음의 담력이 필요합니다. 갈5:16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순종하지 못하는 더욱 큰 문제는 육체의 타락한 본성이 새존재(성령)의 사람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다.(롬8:15) 고전12:3 이것이 은헤입니다.

그러나 내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것이 그냥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에 마음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매사에 이렇게 성령의 뜻에 입만이 아니라 전체 생활을 그렇게 살기만 하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충만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의 비밀입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자기의 모든 계획을 알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그 외에 성령은 우리 안에서 가르치는 분, 증거하시는 분, 알게 하시는 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요15:26, 16:8,13)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성령님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말씀해 주십니다. 이제 우리의 할 일은 내주하시는 성령이 감동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할 마음이 있는가? 그러면 당신이 묻지 않아도 주님은 늘 지시하실 것입니다(요2:5) 예)가나의 혼인잔치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요2: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가나의 기적은 순종으로 왔습니다. 순종치 않으면 기적의 기회를 잃을 수 있습니다. 언제 하나님의 기적이 나의 것이 될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2)하나님은 계획자이시며 연출자이시다. 드라마는 작가가 계획한 작품을 연출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연기자는 연출자가 시키는 것에 충실하면 된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가 나의 인생의 계획자이심을 믿는가? 성령이 아버지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연출자이심을 믿는가? 또한 나는 연출자이신 성령이 지시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연기자가 되겠는가? 그렇다면 나의 삶은 위대한 드라마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모든 것을 계획,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주인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역사에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우리를 동참시키며, 우리를 통해 영광받으시고 복주시기 위해 성령님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다”(엡1:8-9)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면서도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주시지 않으셨다(신29:2-4). 그럼, 주지도 않고 순종하라하셨을까? 안 주신 것이 아니라 이는 역설적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큰 이적과 많은 기사를 베푸셨고, 그것의 의미를 깨닫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완악한 마음 때문에 큰 이적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보지도 듣지도 깨닫지도 못한 것이다. 연출자의 뜻에 순종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3)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고후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며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하신 그 창조의 빛과 똑같은 빛을 우리 영혼에 비춰 주심으로 하나님의 비밀과 계시를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두신 계획자이며, 성령은 그것을 행하게 하시는 연출자이고 우리는 실제로 행하는 연기자이다.

4)예수 믿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깨닫는 영과 아는 지혜와 총명까지 주셨다. 이제 하나님의 손길(뜻)을 깨닫고 순종하며 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란 이름을 가졌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면 광야에서 죽는 것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광야에서 죽으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가나안의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다. 살려면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왜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가? 육체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이기기 위해서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새술에 취해야 한다. 은혜를 맛보기 식정도로 알아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금은 무언가 아는것 같아도 결정적 사건이 터지면 나자빠진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다. 가정생활에서 성령충만하지 않고는 가정 천국을 이룰 수 없다. 교회가 성령의 전으로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려면 특별히 교회 중직자들이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 론

‘빙고’라는 한 남자가 플로리다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여러 시간동안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침울하고 근심에 싸여 있었다. 초조하게 보이기도 했다. 어느 친절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는 마침내 굳게 닫혔던 입을 열고 자기 마음을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죄를 짓고 4년 동안 뉴욕 형무소에서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바로 지금 형량 만기로 석방이 되어서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나는 너무나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기에 4년 전에 아내에게 나를 잊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아내로부터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출감일이 가까워지고 갈 데도 마땅치 않은 나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내 집은 브로크릴이라고 하는 마을에 있는데 그 곳은 차가 지나다니는 길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는 큰 참나무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이 차를 타고 지나갈 때, 만일에 당신이 나를 영접해준다면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하나 매달아놓으라고, 그것이 나를 영접해주는 표시인 줄 알고 집에 들어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에 손수건이 없으면 이미 당신은 다른 사람과 결혼한 줄로 알고 그저 지나쳐서 내 갈 곳으로 가겠노라고 했습니다.

이제 내가 살던 집에 거의 다 왔는데 걱정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같이 초조해졌다. 모두들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제나 저제나 참나무가 보이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불현듯 차 안에서 함성이 터졌다. 그 큰 참나무가 온통 노랗게 꽃피어 있는 것이다. 손수건 하나만 묶으면 혹시 남편이 못보고 지나 갈까봐 아내가 그 나무에 온통 노란 손수건을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말씀의 내용도 잘 이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