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말씀하시는 9가지 방법 히1:1-3
인간관계에서도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1. 우리 영을 일으키신 후에 말씀하신다. 겔2:2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하나님의 신은 피곤한 육신과 지친 영혼을 먼저 일으키신 후에 말씀하신다. 예)하나님의 신은 로뎀나무 아래에 피곤하여 쓰러진 엘리야를 두 번씩이나 어루만져 일으키셨다. 먼저 그에게 떡과 생선을 먹여 기력을 회복시킨 후에 말씀하셨다(왕상19:5,8,12). 또한 이상을 보고 기운을 잃고 쓰러진 다니엘에게도 먼저 어루만져 힘을 주신 후에 말씀하셨다(단10:19)
오늘도 성령은 말씀하시기 전에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영혼을 소생시키고 영혼의 잠을 깨우신다.
누가 잠자는 자에게 말하겠는가? 성령은 먼저 우리 영혼을 일으켜 세우신다. 피곤하고 지친 육체를 어무먼져 힘을 주시고, 멍든 가슴에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실망한 영혼에 소망의 빛을 비추시고, 닫혔던 영의 창문을 열어 주신다. 그리고 주님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신 후에 말씀하신다. 영혼의 갈증(갈망)을 일으키신 후에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내게 순종할 심성을 일으키신 후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피곤하거든 먼저 쉼을 누리라. 기력이 쇠하여졌거든 먼저 기력을 회복하라. 성령은 그 후에야 말씀하시기 시작할 것이다. (주의 품에 안겨라, 말씀과 기도)(예배에 충실하라) 영을 일으키는 지름길이다.
2. 영의 인격에 말씀하신다. 성령은 우리 영에 인격적으로 말씀하신다.
첫째, 성령은 영의 자각을 통해 말씀하신다.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여기서 깨닫지 못한다는 말은 자연인은 경험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성령이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의 지각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성령으로 중생한 사람은 이 지각을 갖게 된다. 따라서 육의 사람은 성령의 일을 깨닫지 못한다. 영의 사람이 영적으로만 깨닫고 분별한다. 영이 산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의 성품(형상)을 회복하게 된다.
그래서 골3:10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새롭게 가진 지식을 통해 성령의 뜻을 깨닫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가 가진 의문에 갑자기 해답을 주기도 하고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우리가 질문하지 않을 때에도 성령은 우리 영이 지적으로 깨닫게 하신다. 이것이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는 것이다. 육의 지식은 배움을 통해 아는 것이다. 그러나 영의 지식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셔서 아는 지식이다. 영의 지식은 성령이 말하는 것을 깨달아 알 수 있는 능력이다. 영이 살아 있는 사람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을 성령이 깨닫게 하시는 것을 자주 경험할 것이다.
어느 목사의 간증: 전도사시절, 김천교회에 예배를 인도하러 가는 길에 상주 옥산에 있는 자근 외삼촌 댁에 잠깐 들렀다. 그런데 두 살도 안되는 아이가 죽어가고 있었고, 가족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 무모한 기도를 드렸다. “이 아이를 살려 주실 때까지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기도한 것이다. 또한 살려주시지 않으면 주님이 나를 쓰시지 않은 줄 알고 주의 종의 길을 그만 두겠다고 기도했다. 기도하는 중에 내 귀에 ”할렐루야“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보니 가족이 모두 기뻐하며 할렐루야를 외치고 있었다. 파랗게 죽어가던 아이 얼굴에 화색이 돋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아이가 일어나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나는 집회를 인도하러 갔다. 그런데, 다음날 그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확히 24시간 만의 일이었다. 나는 주님께 ‘이렇게 데려가실 것을 왜 그때는 살려 주셨습니까?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주님은 내게 두가지를 깨닫게 하셨다. ”사랑하는 종아, 생명에는 내가 정한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하루 연정한 것은 너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생각나게 하다”는 말은
“일깨우다, 상기시키다, 기억나게 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영적으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을 말한다.(롬8:5) 이처럼, 성령은 때로는 나도 모르던 죄를 생각나게 하셔서 회개시키거나 나도 모르던 할 일을 생각나게 하셔서 하게 하신다. 또한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던 것을 일깨워 주신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을 다시 생각나게 되는 것과는 다르다. 이렇게 생각나는 것은 지식과 기억에 근거한 것이다. 성령이 깨닫게 하시는 영적 깨달음은 전혀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며, 영적으로만 분별할 수 있다. 롬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라는 말씀대로 성령은 영적인 생각을 하도록 도우신다.
둘째, 성령은 영의 직관을 통해 말씀하신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
삼위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자들은 주님과 나누는 사랑의 감정이 신비하리만큼 민감하고 빠르게 교류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적 직관을 통해 마치 전류가 흐르듯 전달되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성령의 감동으로 “알았습니다”라고 고백할 때가 없는가? 예)예수님은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셨다”(마22:43)고 말씀하셨다. 다윗도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시16:7)고백했다. 바울은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행20:22)라고 하였다. ‘심령에 매임을 받았다’는 말은 성령의 강권하심에 사로잡혔다는 말이다.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성령의 감동 때문에 순종할 때가 없는가? 성령이 누르는 중압감에 못 이겨 손들고 항복할 때가 없는가? 성령이 하나님 뜻대로 근심케 하여 회개하게 하실 때가 있지 않는가? 때로는 답답하게 하시고 때로는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시지 않는가? 성령의 감정에 사로잡혀 심령에 온기를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저는 가끔 환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예언기도 할 때-성령이 주시는 따스한 손길, 성령의 간섭하심을 깨닫습니다. 어떤 때는 성령이 기뻐하시는 것과 슬퍼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이 성령의 직관입니다. 이런 훈련을 잘하면 성령의 사람으로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간섭을 받을 때 순종하면 문제가 풀어지고, 기적(응답)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생각을 할 때 평강을 주신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주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평안을 주십니다. “무릇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렝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갈6:16) 라고 말씀하셨다. 이와는 반대로 성령이 원치 않는 것을 행할 때에는 성령이 근심을 주신다. 성령이 주시는 근심은 우리를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려고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뜻을 거역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성령이 근심할 때는 우리도 근심하게 하신다. 그러나 근심이든 불안이든 성령이 주시는 감정이라면 성령은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알게 하시고 그 뜻에 순종하는 마음을 주신다. 그러나 사탄이 주는 근심이나 불안은 이유를 알지 못하므로 결국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성령은 우리를 바르게 세우려고 근심케 하지만, 사탄은 우리를 망가뜨리려고 근심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예)어는 목사님 간증: 부흥회 인도하러 호텔에 묵고 있는데-자기 교회에서 지원하는 개척교회 목사님이 방문-커피를 마시며 교회 사정 이야기들음-그 때 성령은 네 주머니에 있는 50만원을 감동을 주셨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이 돈을 다 주면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갈등하다가 결국 성령에 순종하지 못하고 전도사를 그냥 돌려 보냈다. 그날 오후 옛 친구가 찾아와서 함께 유람선을 타며 한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돌아왔다. 그런데 호텔에 돌아와 보니 지잡이 없었다. 돈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성령께 순종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고 간증했다.
셋째, 영의 의지를 통해 성령은 말씀하신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성령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우리 안에 영의 의지에 말씀하시고, 소원케 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행하게 하신다. 그래서 요16:13 “진리의 성령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고 하신 것이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소원을 주시면 응답하실 징조인 줄 알고 믿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이 소원을 주시지도 않고 행하게 하신 후에 비로소 알게 하시기도 하신다. 예)요셉의 경우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 상인에게 팔려갈 때는 아마 하나님의 뜻을 몰랐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요셉은 애굽 총리가 되었고, 애굽에 형님들이 곡식을 사러 왔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을 보고 창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알지 못하고 가다가 그 길을 다 간 후에야 알게 될 때가 있다. 예)바울의 경우 바울에게는 한 가지 큰 소원이 있었다. 그것은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서반아(스페인)로 가는 길에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서반아는 커녕 로마도 결국 죄수의 몸으로 갔다. 많은 왕과 가이사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순교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그가 미리 알았겠는가? 오늘 우리도 성령이 행하게 하시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음성인 줄 알아야 한다.
3. 그럼, 어떻게 하면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첫째,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할 때 성령이 오셔서 영혼을 살려주신 사람을 말합니다. 영은 영으로 풀어집니다. 육의 사람이 영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고전2: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느니라” 13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성령은 먼저 우리의 죽었던 영을 살리신 후에 말씀하신다. 예수 믿기 전의 영은 마귀의 영의 지배아래 사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에겐 성령의 음성이 들려올 수 없습니다. 대적할 뿐이다. 요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둘째, 성령님과 교제하라 아무리 위대한 성령을 모시고 있어도 성령과 교제하지 않는다면, 성령과 함께 사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성령은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지 홀로 살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성령을 통해서만 이 세상에서 멋진 삶을 살 수 있다.
이 세상은 마귀가 다스립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 남는 길은 마귀를 멸하신 예수님을 믿고 그의 영의 인도(교제) 따르는 길 뿐입니다.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는 신분을 가졌다. 언제든지 성령님과 교제하라 그리하면 진리의 영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령과 교제가 깊을수록 더욱 기름부음은 강력할 것입니다.
예)부부가 어떻게 맺어졌나? 교제를 통해서 내 인생을 맡겨도 되겠다는 확신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충분히 교제해 보아야 실수하지 않는다. 사랑을 해보지 않으면 사랑을 알 수 없으며,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노래를 알 수 없다. 그처럼, 성령과도 계속 교제하지 않으면 성령이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없으며 성령이 주는 지혜와 능력도 맛볼 수 없다.
영접한 자라도 교제를 모르면 큰 힘이 되지 못한다. 마12:29 “사람이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이 세상은 마귀가 다스립니다. 이런 세상에서 승리의 길은 마귀를 멸하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교제) 따르는 길이다.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언제든지 성령님과 교제하라 마음을 열라, 귀를 기울이라,. 그리하면 진리의 영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령과 교제가 깊을수록 더욱 기름부음은 강력할 것입니다.
셋째,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라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자기의 모든 계획을 알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갈5:16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순종하지 못하는 문제는 육체의 타락한 본성이 새존재(성령)의 사람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가나의 기적은 순종으로 왔습니다. 순종치 않으면 기적의 기회를 잃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결 론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성령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응답하며 사는 삶인가?
성령을 거스리며 내 마음대로 결정하며 사는가? 왜 우리가 하나님 음성듣는 공부를 하는가?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사는 짓은 헛되기 때문이다. 나는 영적으로 살아 있는가? 영성이 충만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음성이 들려오지 않는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라??
들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며 살았는가? 그 결과가 무엇인가? 더 이상 삶을 낭비하지 말라. 오늘도 성령은 우리 영에 인격적으로 말씀하신다. 깨닫고 감동하고 외지가 움직이도록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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