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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삶의 균형을 이루삶

하나님아들 2019. 2. 23. 17:49

삶의 균형을 이루삶

여호수아 14:6-15 // 2002-10-13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아주 먼 나라 - 예를 들어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를 가기 위해서 한 밤중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가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조종사들은 어떻게 앞도 보이지 않는데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분, 앞도 보이지 않는 그 한 밤중에 어떻게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비행기 안에 있는 계기판 때문에 가능합니다. 비행기 조종사들은 이 계기판이 없으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비행할 수도 없습니다. 이 계기판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타고 있는 비행기가 상승하고 있는지 하강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비행기 조종사들은 비행훈련을 받는 동안 자신이 공중에서 볼 수 있는 것이나 느끼는 것이 아닌 기계를 신뢰할 것을 교육받는다고 합니다. 비행을 할 때, 자신의 감각을 의지해서는 결코 안전하게 비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계기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비행기의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조종사는 계기판을 통해서 비행기의 균형을 잡고 목적지까지 비행기를 조종해 갈 수 있습니다. 계기판이 고장 나 비행기가 균형을 잃게 되면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비행기가 균형을 잡아야 하듯 우리의 삶도 균형 잡힌 인생이 되어야 목적지에 안전하게 이를 수 있습니다.



1. 균형 잡힌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현대인들이 균형 잡힌 인생을 잘 살고 있지 못하다고 합니다. 왜, 현대인들이 균형 잡힌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일에 바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일에 바쁘기 때문에 삶의 균형이 깨지는 것일까요? 물론,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지나칠 정도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남보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삶의 환경을 가지려고 하는 것도, 그리고 남보다 많은 재산을 가지려는 것도, 많은 경우 비전을 이룬 결과의 산물이라기보다 다른 사람이 나의 존재를 알아주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살아갑니까? 일에 얽매이게 됩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자기 가정보다 직장을 우선시한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요즘 가정문제가 얼마나 심각합니까?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한데(물론, 어머니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아버지들이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보다, 자녀들과 사랑스런 말로 대화하기보다, 직장에서 일하느라 바빠서 아이들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들이 어떻게 합니까? 자녀들이 용돈 달라고 하면, 시간을 함께 보내주지 못한 미안함이 있어 용돈을 많이 주게 됩니다. 더 이야기 하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요? 성도 여러분, 한 개인의 삶이 균형 잡힌 삶이 되지 못하면, 가정이 흔들리고, 직장이 흔들리고, 사회가 흔들리고, 국가의 운명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점을 한 개인의 삶에 적용시켜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성도 여러분,

개인적 삶이 진전이 없고 균형이 잡히지 못할 때 어떠한 문제가 나타날까요?



첫 번째로 불균형은 우리를 좌절하게 합니다.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서커스 구경하신 적 있으시죠? 꼭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접시돌리기입니다. 여러 개의 접시를 돌릴 때 어떻게 합니까? 먼저, 하나를 돌립니다. 그리고는 다음 것을 돌리고, 이어서 몇 개의 접시를 계속해서 돌립니다. 그러다가 맨 처음 돌린 것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재빠르게 다시 힘을 가해 돌게 해줍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 것을 돌리고, 또 그 다음 것을 돌리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이런 접시돌리기 식으로 운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바로 여기에 좌절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일에 전념하기보다, 이것저것을 가까스로 처리해나가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IMF 당시 왜 구조조정을 해야만 했습니까? 대기업들의 방만한 문어발식 경영이 그 주된 이유가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한 번에 많은 일을 하다보면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갈렙이 헤브론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12절 말씀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헤브론이 어떤 땅입니까? 그곳은 아주 비옥한 땅입니다. 이 말은 곧 쉽게 차지할 수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갈렙 이외에 다른 지파에서 이 땅을 유업으로 받는 것을 꺼려하는 것 아닙니까? 거저 준다면, 쉽게 얻을 수 있다면 모를까 정복해서 차지해야 만 하는 땅이라면 자신의 힘으로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땅을 생각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갈렙을 보세요.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갈렙은 무려 45년 간이나 이 땅, 헤브론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균형있는 집중이 있었습니다. 그의 각오를 들어보세요.

성도 여러분,

지금 혹시 여러분의 삶이 좌절을 맛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여러분의 삶을 되돌아보세요. 혹시, 내 욕심으로 한 번에 많은 것들을 가지려고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세요.



둘째, 불균형은 우리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차 바퀴의 공기압력이 맞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한쪽으로 쏠리게 되어 있습니다. 결코 편안할 수 없습니다. 공기압력이 서로 맞지 않는 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해보세요. 아마 얼마 못가서 몸이 뻐근할 것입니다. 그래요. 불균형은 우리를 쉽게 지치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갈렙을 보세요. 그는 균형잡힌 삶을 살았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0절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0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11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무슨 뜻입니까? 사십 대였을 때나, 팔십 오세가 된 지금 똑같은 건강상태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하면 갈렙과 같이 균형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2.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합니까?

<마임 - 외줄타기를 통해 삶의 어려운 순간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를 표현>

⑴ 나의 부족함을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채워야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지금 갈렙이 어느 때를 연상하며 말하고 있습니까?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을 때를 연상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때 어떠한 일이 있었습니까? 열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자신들에게 줄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열명의 정탐꾼과 갈렙과 여호수아의 차이점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열명의 정탐꾼은 자신들의 능력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감안해 볼 때, 도저히 가나안 땅에 정착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자신들의 능력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갈렙과 여호수아 역시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정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부족함만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충만하심, 하나님의 능력의 무한하심을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한번 솔직해져 봅시다. 자신의 능력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과연,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혹시 나의 능력으로 거룩해지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신앙생활이 왜 이리 힘든지 아십니까? 자신의 부족함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부족함만을 바라보는데, 무슨 일을 감당해 낼 수 있겠습니까? 모세를 보세요. 모세는 이집트의 학문을 배운 철저한 지식인이요, 뿐만 아니라 광야 생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부르셨을 때 어떻게 대답합니까?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 4:10)"

왜 이런 대답을 했습니까? 자신의 부족함 뒤에 있는 하나님의 충만하신 능력을 보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어떠했습니까? 예레미야 애가 3장 19절로 25절을 봅니다. "19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21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24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25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조국이 바벨론에 의해 짓밟히는 것만을 볼 때에는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됩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보고는 좌절감과 우울증에 사로잡혀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시선을 하나님께 돌렸을 때부터는 오히려 소망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예레미야가 소망이 있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기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충만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능력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결코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승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7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승리자가 되심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나 자신의 불충함, 부족함에 초점을 맞추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에 초점을 맞추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에 초점을 맞출 때 영적 균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적 균형을 이루게 하십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수레바퀴의 중심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만약, 바퀴의 중심이 두 곳으로 분산되어 있다면, 오히려,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중심도 하나이어야만 합니다. 그 하나의 자리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만이 계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요한복음 15장 4절로 5절 말씀에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균형을 이룰 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신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모시고 영적 균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고, 그분이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이 되심을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⑵ 정신적인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정신적인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곧 마음을 지킨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갈렙은 마음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보고했다"는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갈렙의 마음이 건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이 균형 잡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만약, 갈렙의 마음이 다른 열 명의 정탐꾼들처럼 균형 잡혀 있지 못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모두들 절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낙담하고 실의 찬 나날들을 보내야만 했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줍니다. 소망을 간직하며 살 수 있도록 해줍니다. 갈렙의 인생이 그랬어요. 예수님도 그랬어요.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소망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요한복음 14장 2-3절 "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정신적인 균형을 이루십시오. 마음이 건강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같은 땅을 보고도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전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절망 속에서 소망을 전할 수 있는 사람-그가 바로 마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성도는 반드시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정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마음이 건강해야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에 보면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노아 당시의 심판 받을 사람들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악하다는 것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계획이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생각이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음입니다. 즉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에서 계획이 나오고 계획에서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병들면 생각 자체도 병들어 버리고 계획 자체도 병들어 버리고 행동 자체도 병들어 버립니다. 바꾸어 말하면 마음이 악해지면 거기에서 나오는 생각도 악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계획도 악하고 마지막에는 행동이 악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속에 불의가 일어나고 시기심이 일어나고 질투심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악행을 저지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소망 가운데 살고 싶으십니까? 마음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지킴으로 정신적인 균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⑶ 타인을 부요케 하는 삶을 통해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13절로 15절 말씀입니다. "13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15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이 말씀은 갈렙이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뜻, 아르바의 성읍)를 기업으로 얻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갈렙이 헤브론을 기업으로 얻자,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갈렙이 헤브론에 거주하던 아낙 자손들을 완전히 정복했다는 것을 뜻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 그곳 사람들을 이전의 전쟁에서 그랬듯이 완전히 진멸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복이 아닌 정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정복이 아닌 정착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래요, 그마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이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대항할 수 없을 만큼 그 세력이 약화되었고 이에 반해 이스라엘은 강대해졌습니다. 그 결과, 더 이상 가나안 땅에 전쟁이 없게 된 것입니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땅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헤브론 땅을 평화로운 땅으로 만들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입니까? 바로, 갈렙의 믿음입니다. 14절 말씀 하반절에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라는 표현이 있죠? 그렇습니다. 갈렙이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기 때문에 평화가 찾아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는 것이야말로 성도의 힘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을 때, 우리의 힘이 강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온전히 좇는 자를 통해서 그의 삶의 부요케 하시며, 더불어 타인을 부요케 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으로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으로 성공한 사람들만이 타인을 부요케 할 수 있습니다. 신앙만으로는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힘들다고 생각하시는 분 있습니까? 세상의 쾌락을 누릴 수 있어야만 세상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시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만 온전히 좇는 신앙만 가져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신앙으로 성공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주신 부요함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의 생각과 학식과 재능으로 살려고 할 때는 얼마나 공허했습니까? 뭔가 이룬 것 같은데 실패한 것 같고, 뭔가 해낸 것 같은데 불안하고, 다 된 것 같은데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된 적 있지 않습니까?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지 않고 내 능력으로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으로 해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성공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으로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하나님께 돌리기 때문에 설사 실패를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셨던 하나님의 충족함을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증거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순간 우리가 하나님의 부요함을 누리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부요함을 증거하는 도구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만한 능력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5절 말씀을 기억하세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부요함을 우리끼리만 누리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세상 한 복판에 살게 하신 것은 세상의 부요함을 누리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함 많은 세상에 하나님의 부요함을 증거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 그것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선하신 일이 행해지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과 맺어야 할 삶의 균형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정리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균형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삶의 균형을 통해서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모셔서 균형을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이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놓여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여러분의 부족함을 채워주실 수 있는 부요함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적인 것에 중심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영적인 균형을 이루십시오. 갈렙과 같이 하나님만을 온전히 좇는 신앙의 모습을 보시이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줄 수 있도록 마음이 건강, 정신적인 건강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정신적인 균형을 이룰 때, 영원한 소망과 승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을 부요케 하십니다.

증거하세요. 우리가 세상과 맺어야 할 삶의 균형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요함, 예수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바라기는 춘천중앙교회의 온 성도가 삶의 균형을 이룸으로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삶을 살아야 할지 본이 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오동석목사
글쓴이 : 오동석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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