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스크랩] 믿음을 적용하는 삶 히브리서 10장 37-39절 //

하나님아들 2019. 2. 23. 17:45

믿음을 적용하는 삶 히브리서 10장 37-39절 //

생전 예수를 믿으면서도 “믿음은 믿음대로 내 생활은 내 생활대로”따로 따로 믿음과 생활을 별개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을 내 생활에 순간순간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비결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보이는 대로 행치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 “우리가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의존하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은 늙고 머지않아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보이지 않는 영혼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신고로 눈에 안 보이지만, 안 계신 곳이 없으며(無所不在), 모르시는 것이 없으며(無所不知), 못하실 것이 없으신(無所不能) 분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이 못 보시는 줄 알고, 하나님이 안 계신 줄 알고, 제멋대로 죄짓고 일을 행하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바보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보이는 대로 행동하다가 범죄하고 타락했습니다.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쳐다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지라” 이렇게 보이는 대로 행동하여 자신과 인류에게 큰 불행과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기도 만능주의자 조지 뮐러(George Müller)씨는 평생 5만 번 이상 기적적인 기도 응답을 받은 분인데, 그 옛날 영국 돈으로 백만 파운드 이상 돈을 받아 쓴 분입니다. . 참 믿음은 보이는 것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며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며 불가능한 것을 받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으며, “작은 믿음은 당신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지만, 큰 믿음은 천국을 당신의 영혼으로 이끌어 준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can)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꼭 하실 것(will)을 믿는 것이다”라고 말한 이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믿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눈으로 보는 대로 판단하지 말고 믿음으로 판단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4장 3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2. 감정에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을 적용하며 살기를 원한다면 보이는 것을 의존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감정도 의존해선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정, 느낌이란 굴곡이 심합니다. 어떤 때는 몹시 기쁘고 흥분해서 산꼭대기에 올라간 것 같다가도, 어떤 때는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것같이 감정이 메마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은 감정, 기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태양은 항상 변함없이 떠 있지만 때로는 구름이 가리우고 안개가 가리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 기분이란 구름이나 안개와 같은 것이므로 그것에 의존해선 안됩니다. 고통과 환난이 밀어닥치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이 의심하기 쉽습니다.

가령 성령의 불을 처음 받을 때, 온 몸이 불덩이 같이 뜨거운 체험을 하게되고, 기쁨이 용솟음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꼭 뜨끈 화끈해야 응답이 오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뜨끈 화끈하지 않아도 말씀에 굳게 서서 나갈 때 주님이 함께 하시고 승리하게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의 생활은 감정, 기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오직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일관하는 것입니다.

가령 교회에 가고 싶을 때에만 교회에 오고 가고 싶은 기분이 안 날 때에는 안 나오는 신자라면 그는 언제 타락할 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참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싶을 때에만 기도하고 기도하기 싫을 때는 기도하지 않는 신자가 있다면 그는 참 기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헌금하고 싶을 때에만, 헌금하고 십일조 드린다면 그런 사람은 참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교회에 가기 싫을 때 그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교회에 나가면 더 큰 은혜를 받고, 감사할 수 없을 때 억지로라도 감사하고, 십일조 할 수 없을 때 십일조 하면 그 다음에 축복이 옵니다. 기도하기 싫을 때야말로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가 막힐 때는 기도로 뚫어야 합니다. 참 믿음의 사람은 감정, 기분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3. 계산과 타산을 의존하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비싼 옥합을 몽땅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 드릴 때 계산이 빠른 가룟 유다는 “그것을 왜 허비하느뇨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면 좋을 텐데”하고 마리아를 책망했지만, 그는 결국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먹고 목매달아 자살하고 지옥 갔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두고두고 칭찬 받고 축복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잡아 번제로 드리라고 할 때, 그것은 계산에도 맞지 않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타산에 어긋나고 불합리한 명령에 순종했을 때,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하면서 영육 간에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계산법, 영적인 타산법은 혼의 계산법과는 배치될 때가 많으므로 계산 타산에 의존하지 않아야 믿음으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4. 행위를 의지하지 않고 은혜를 믿는 것

많은 교회에 부흥회를 다니다 보면, 목사님들 중에 복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평생 목회 하는 분이 꽤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복음의 핵심은, 우리가 죄 사함 받고 구원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나 우리의 선행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된다는 사실입니다.

중세기 암흑시대에 기독교가 타락하여 면죄부까지 팔아먹을 때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일어나 종교개혁을 일으켰는데, 그 개혁의 가장 큰 이슈가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라는 것입니다. 면죄부를 산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착한 행실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율법을 다 지켜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죄를 대속하여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마르틴 루터가 주장한 슬로건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행위로 구원받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 조지아 주로 선교를 떠날 때에도 나는 선교하러 가는데, 내 영혼을 구원할 자는 누구인고 하고 탄식했던 사람인데,1738년 5월 24일 수요일 저녁 억지로 모라비안(Moravian)교도들이 모여 예배 드리는 곳에 갔다가 목사도 아닌 평신도가 마르틴 루터가 쓴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는 가운데 구원은 믿음으로 값없이 받는다는 내용의 글을 들으면서 중생 하여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했습니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나 히브리서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로마서는 믿음으로 얻는 생명을 강조하고, 갈라디아서는 구원받는 믿음에 강조점을 두고,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전체가 강조하는 것은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고, 신구약 성경 전체의 요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나 공로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출처 : 오동석목사
글쓴이 : 오동석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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