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사는목적 사도행전20:22~24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한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참된 행복을 얻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힘쓰지만 행복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행복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그것 때문에 불행을 맛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자기 옆에 행복이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행복이 저 먼 곳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늘 자기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이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시나요?
돈입니까? 아니면 명예와 권력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배우자입니까?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그런 것에서 행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것 때문에 불행해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오는 행복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일시적인 행복은 있을 수 있으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불행한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돈 때문에 행복하다면 가난하면 행복이 없나요?
권력과 명예 때문에 행복하다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다 불행한가요? 아닙니다. 돈 없이도 누릴 수 있습니다. 명예와 권력이 없이도 행복은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행복한 사람일까요?
오직 하나님 한분만 알아주시면 된다는 믿음 속에서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참 행복은 ‘자기가 누구냐?’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 무엇이냐?’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렇게 살아갈 때’ 누려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는 결혼도 못해본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는 부인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다. 더욱이 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말하는 출세도 크게 못해 본 사람입니다. 더욱이 건강도 좋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다가 자기가 하는 일에 반대자들에게 매도 수없이 맞았고 감옥에 갇힌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가정의 행복을 압니까? 자녀의 재롱을 봤겠습니까? 이성과의 뜨거운 사랑을 나누어 보았을까요? 돈을 많이 벌어 돈 맛을 봤겠습니까? 거기다가 건강도 누려보지 못했고 어려서부터 함께 지냈던 유대인들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신자라고 따돌림 받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행복했습니다. 그는 늘 기뻐했습니다.
1. 그는 자기가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확신하며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말씀 살펴보세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모아놓고 고별사를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24절에 보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래서 그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는 겸손과 눈물로 온갖 시험을 참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무릎 쓰고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께 대한 믿음을 전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사십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왜 살고 계시냐고 물으면 그냥 죽지 못해 산다고 대답들을 합니다. 그래서 삶의 목표도 없고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저 살기위해 삽니다. 그러니 사는 것이 힘이 듭니다. 사는 것이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입으로는 행복하다 말은 하는데 실상은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 힘들고 어려우면 쉽게 생명을 포기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는 하는 사람들의 수치가 2013년도 설문통계로 15.6%가 넘었다 합니다. 약 800만 명이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또 재작년도에 자살을 실제로 시도한 사람만 약 10만 명이 넘는다 합니다.
. 자살만 아닙니다. 마약에 빠져 살고, 알코올에 중독되어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목적이 뭔지를 모르니 사는 것에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사명이 여러 가지이니 사람 따라 사명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기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의 길을 평탄케 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포기하는 일로 억울해 하거나 속상해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받은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왜 여러분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그것도 하고 많은 땅 중에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과거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가 민족 증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이 국민교육헌장 외우느라고 고생들 많이 했습니다.
박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나라 발전에 힘쓰자거 강조했지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태어났다고 가르칩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사명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려면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사명입니다. 전도해야하겠다고 생각합니까? 그것도 사명입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싶습니까? 그것도 사명입니다. 선교사를 돕고 있습니까? 그것도 사명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있습니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그것도 사명입니다.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습니까? 찬양을 잘 할 수 있습니까? 성도들을 잘 보살피고 도와 줄 수 있습니까? 그런 것들도 다 사명입니다. 그런 모든 일도 막중한 사명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면 그것이 곧 사명입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먹고 살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그것을 통해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는 자기 앞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명자에게는 여러 가지 환난과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 때문에 주저 않고 포기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큰 복이 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큰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환난이 있고 고난이 닥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성령에 매임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세요.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앞날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나 성령에 매임을 받아 가는 것입니다. 다른 번역본 성경에는 “성령에 강력한 힘에 이끌려” 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그의 앞길에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입니다. 왜죠? 성령에 매여 이끌려서 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면 잡히고 고난당하고 할 것이나 그래도 하나님이 이끄시기에 가는 것입니다.
결국 어찌되었나요?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들에게 잡힙니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로마시민권이 있기에 로마황제에게 상소를 합니다. 그
냥 얼마든지 풀려날 수 있었는데 일부러 상소합니다. 그래서 로마로 압송되다가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을 구원합니다. 그리고 배가 파선되어 상륙한 멜리데 섬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로마에 도착해서 만 2년 동안 마음껏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결국 바울의 꿈은 이루어졌고 하나님의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앞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날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아시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미래를 아십니다.
. 앞날에 닥칠 고난과 환난이 두렵다고 되돌아서거나 주저앉는다면 그 사람은 결코 복된 삶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를 보세요.
시내산에서 부름 받았을 때 그는 두려웠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낸다는 말인가요?” “나는 입술이 뻣뻣하여 말할 줄 모릅니다” 라고 사양합니다. 내가 가서 하나님이 나를 보냈다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로 왕에게 갔을 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이 주어졌기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왕을 항복시킵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십니다. 하나님이 그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누가하나요? 전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모세가 한 것은 앞길을 맡기고 순종한 것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길에도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고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맡기고 가면 하나님이 형통케 하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제일 겁을 내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 죽으려 하고 자기 생명을 최고로 귀하게 여깁니다. 현대인의 최대의 관심사는 ‘건강’입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합니다.
흔히들 말하잖아요. “돈을 잃으면 절반을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은 것을 잃은 것이나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건강도 사명을 위해 있어야지 그 어떤 것도 사명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24절을 다시 보세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생명보다 사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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