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3. 요한계시록 파노라마

하나님아들 2014. 5. 3. 15:12

3. 요한계시록 파노라마

[읽기만 해도 쉽게 열리는 요한계시록]

 

계시록을 공부하면서 역사적인 배경을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절박한 상황이고 또 성도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고, 또 지나치게 예수님이 빨리 왔으면 하는 그런 기대감으로 오해에 빠져있는데, 만약에 그럴 때 “얘들아 내가 앞으로 2000년까지는 갈 수 없다.” 그렇게 메시지가 내려왔다고 하면 그 때 성도들은 낙심천만하고 “여태까지 믿은 것 전부다 헛것이다.” 하고 좌절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의 성도들을 안심하게 하고 또 힘 있게 복음을 증거 하면서 교회가 준비하게 하고 교회가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또 “실제로 예수님이 오실 종말은 어떠한 시대에 어떤 과정을 통해서 오시는가?” 하는 것도 다 동시에 보여줘야 되는데, 요한 계시록은 놀랍게도 이 세 가기를 동시에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일 시급한 것은 그때 당시 성도들로 하여금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것, 놀라지 않게 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 하게 하는 것이 제일 절박한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교회가 예수님 오실 때까지 어떤 모습으로 다듬어 져야 되는 가” “교회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가”도 역시 해야 될 일이고, 또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정말 “역사의 종말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예수님이 오시는 가” 하는 것도 밝혀 알려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예수님이 마지막에 오시는 그 장면이 밝혀지지 못한다면 종말론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이 세 가지, 요한계시록에는 꼭 이 세 가지가 있는데, 계시록은 이 세 가지를 확실하게 이야기 합니다. 그 세 가지를 놓치지 않고 붙잡으면 계시록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계시록 1장을 다 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경 본 바닥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 계시록 1장이 아주 중요한 장인데, 1절부터 3절까지는 서론처럼 인사말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절부터도 쭉 인사가 나오는데, 그 인사 중에서도 4절부터 좀 자세히 보겠습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5절에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줄을 쳐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당시의 성도들은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황제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겁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도미티안누스 황제가 아니고, 로마황제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땅의 임금들의 머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가 있고 평강이 있어야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에 평강이 없고 늘 두렵고 떨리고 하면 어떻게 증거 하겠습니까?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샬롬”, “평강”이 히브리어로는 “샬롬”이고 헬라어로 쓸 때는 보통 “에이레네” 라는 말을 쓰는데, “에이레네” 보다는 “샬롬”이 훨씬 더 원 뜻에 더 가깝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대개 이 “평화”라는 말이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팍스”, 이탈리아식으로, 로마 라틴어 식으로 하면 “팍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피스”가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에서는 “에이레네” 하는 그런 “평화”가 있고, 히브리 사고로서는 “샬롬”인데, “샬롬”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에이레네” 같은 것은 철학적으로 자기의 어떤 사상을 가지고 마음의 안정을 시키는 그런 방법이 되겠고, 어떤 욕구이든지 잠재워버리는, 자기 철학적으로 자기 영혼을 속에서 안정을 하는 그런 정도 밖에는 안 됩니다. “에이레네”, 그리스식의 평화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마음의 동요가 다 가라앉은 상태, 그런 정도입니다.


그리고 “피스”라고 하는 “팍스”라는 로마식, 이탈리아식의 평화라고 하는 것은 전쟁만 없으면, 어떤 사람이 억압을 하든지 말았든지 간에 전쟁만 끝이 나면 평화입니다. 이것은 평화라도 아주 저질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식의 “샬롬”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사이에 죄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진 상태, 아무 두려울 것이 없는 상태, 그런 상태가 “샬롬”입니다. 어떻든 실제로 요한의 마음속에 지금 들려오는 음성은 “샬롬”이지만 기록을 헬라어로 쓰다보니까 “에이레네”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6절,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영광과 능력이 하나님께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어떤 자라고 합니까?


“전능한 자”이십니다. 여기도 줄을 쳐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앞에서 예수님 말씀하실 때에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또 “하나님께서는 전능한자다.” “나 여호와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그래서 이 1장은 매우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 그때 당시의 성도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마시고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요한은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 거기 줄을 한 번 그어 보십시오.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이 모습을 가만히 연상하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과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 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그 모습이 어떻습니까? 초라합니까? 위엄 있습니까? 굉장히 위엄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17절을 보면 “내가 볼 때”, 내가는 요한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요한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순간에 얼마나 그 위엄에 압도되었던지 그냥 죽은 자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되매 그가”, 그는 예수님입니다. “그가 오른 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첫 마디가 뭐라고 그럽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왜 두려워 말라고 하느냐 하면 요한이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한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고 그 때 성도들이 다 두려워하고 있었고, 또 각 교회의 교역자들도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그런 때에 예수님의 첫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근거를 제시합니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우리는 보통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님만 믿고 부활하신 살아계신 예수님으로 믿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전에 죽었었습니다.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우리는 보통 “사망과 죽음의 열쇠는 염라대왕이 갖고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들 합니다. 그러나 사망의 열쇠도 죽음의 열쇠도 다 예수님이 갖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죽음의 문을 예수님께서 열어주시지 않으면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고,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무슨 말입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거기다가 1번이라고 표시해 놓으십시오.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그것이 2번, “장차 될 일을” 이것이 3번입니다. 그러니까 세 가지입니다.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 이 세 가지 밖에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어려운 것 같아 보여도 쉽게 말하면 이 세 가지만 보면 됩니다.


“네가 본 것”은 그 뒤에 해석이 나옵니다. 20절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해석이 다 나와 있습니다.


“네가 본 것”은 예수님께서 오른 손에 일곱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곱별이 뭐냐 하면 “일곱 교회의 사자라 일곱 교회의 교역자라.” 이것을 서양의 신학자들과 성경학자들이 잘못 봐가지고, “사자”는 히브리어로 “말라크”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라크”는 “심부름하다” “심부름꾼이다” 그런 뜻입니다.


심부름꾼이 사람으로서 심부름꾼도 “말라크”고, 천사로서 심부름꾼도 “말라크”입니다. 이것을 헬라어로 옮길 때 “앙겔로스”라고 옮기고 나니까 “앙겔로스”를 영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엔젤”로 번역하였습니다. “엔젤”이란 영어를 직역하면 “천사”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표준 새 번역이라든지 몇 몇 성경학자들이 “천사”로 번역한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말라크”는 사람 중의 심부름꾼도 “말라크”고, 천사 중의 심부름꾼도 “말라크”고, 구별 없이 씁니다. 그런데 “앙겔로스”를 “엔젤”로 번역하고, “엔젤”을 영어에서 직역하니까 “천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천사를 내 오른 손에 붙잡고 있다”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고, 또 여기 지금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하는 이 말은 “일곱 교회 교역자들도 내가 내 오른 손에 붙들고 있다.” 그러니까 결론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요한 사도라든지 사도들만 내가 오른 손에 붙들어 쓰는 종들이 아니라 이제 사도들 시대는 끝이 났고, “너희 교회, 지금 시무하고 있는 일곱 교회 사자도 내가 내 오른 손에 붙들고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또 일곱 교회 교역자들에게는 “내가 요한만 내 손에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너희들도, 너희 일곱 교회 사자들도 내가 내 오른 손에 붙들고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내가 하늘에 올라가버린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너희를 위해서 간구하고 있지만 땅에서는 내가 일곱 촛대 사이를 위엄 있는 모습으로 거닐고 보살피고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전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전능한 자니까 사망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이 1장 전체에서 중요한 내용은 “두려워하지 말라” 하는 곳에 걸려 있습니다. 이다음 시간에 우리가 “지금 있는 일”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서초 베데스다 치유센타
글쓴이 : 현주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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