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요한계시록 파노라마 1

하나님아들 2014. 5. 3. 15:11

 

1. 요한계시록 파노라마

[읽기만 해도 쉽게 열리는 요한계시록]

 

그 동안 난해하기로 유명한 성경이 요한계시록인데, 이 요한계시록은 사실 성경학자들도 조금은 어려워하는 책입니다.


종말론은 사실 제대로 해야 될 논의 중의 하나인데, 그 동안에 한국 사회나 미국사회에 매우 잘못된 종말론이 퍼져 있었습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가 지금까지 살펴본 종말론이라는 것은 하나의 논의라고 하는 것이고, 논리이기 때문에 누가 말해도 그것은 어느 것이 절대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종말론을 하기에 앞서서 가장 중요한 “종말론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을 바로 이해한 다음에, 이에 대한 재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명확한 이해가 된 다음에 종말론이 논의가 되어야 했었는데, 지금까지 서구 신학자들이 종말론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하지 못한 것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못했기 때문에 종말론이 아주 큰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는 한국과 미국에 퍼져있는 종말론이 매우 보수적이고 성서적인 것 같은 종말론이 퍼져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성경을 많이 인용하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해하고 있는 그런 부분이 많습니다. 그것은 이른바 세대주의적 종말론이라는 것인데, 성경을 많이 인용은 하지만 성경을 많이 인용한다고 그것이 성서적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이단들은 성경을 완전히 다 외워 가지고 성경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성경적인 것이 아닌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우리 기독교의 정통적인 학설도 아니고, 또 우리 기독교의 전통도 아니었습니다. 이 학설을 주창한 사람은 “존 넬슨 다비” 라는 사람인데, 존 넬슨 다비는 1800년에서 1882년까지 살았던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개인으로는 매우 경건하고 학문적 열정이나 신앙의 어떤 열정이 굉장한 인물이었는데, 열정적인 사람이 때로는 과오를 범할 때는 치명적으로 열정을 불태워가지고 잘못된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아주 중요한 것이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또 다른 종말론 하나와 결탁이 되면서 이것이 미국의 종말론이 되었는데, 또 다른 종말론은 “비밀스러운 휴거”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휴거” 라는 책이 한 때 많이 나왔지 않습니까?


그 휴거라는 책이 역시 성경을 인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성경에서 많이 멀어진 책인데, 그 휴거라는 책은 원래 우리 기독교적인 서적이 아닙니다. 그것이 어디서 나온 책인가 하면 로만 캐돌릭 쪽인데, 로만 캐돌릭 중에서도 로만 캐돌릭이 아니고 스페인 캐돌릭입니다. 스페인 캐돌릭을 대체로 제수익 교단이라고 하는데, 제수익 교단이라는 이 교단에 속한 이 사람의 본명은 “임마누엘 라쿤자”라는 사람이었는데, 1801년에 스페인의 예수회의 신부였던 임마누엘 라쿤자가 쓴 책이 휴거라는 책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책의 권위를 더하기 위해 마치 유대인 랍비가 예수를 믿어 가지고 쓴 것 같은 그런 가명을 썼었습니다. 그 사람이 썼던 가명이 “랍비 벤 에스라”, 역시 구약성경의 에스라가 학자이니까 “랍비 벤 에스라”, “에스라의 아들 랍비다” 이렇게 자기 가명을 쓰면서 이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이 1812년에 스페인어로 출판되었고, 1816년에 런던에서 출판된 것이 서구 신학 서구 종말론을 잘못된 곳으로 이끌어 간 것입니다.


그리고 1826년 켄터베리 대 주교였던 매이터 랜드 박사가 “예언서”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리고 1827년에는 꽤 유명하게 알려진 성서학자 “에드워드 어빙”이라는 사람이 영어로 번역하면서 서방세계에 퍼져나갔고, 그 후 온 세상으로 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까지 별로 종말론에 관한 유명한 책들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면 “존 칼빈” 같은 위대한 성경학자가 “요한계시록은 3장까지는 내가 어느 정도 이해하겠는데 3장 이후로는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하고 주석을 쓰다가 붓을 꺾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칼빈 같은 대 학자가 붓을 꺾은 책을 하물며 범부가 다룬 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거기다가 마르틴 루터 같은 분은 “계시록에는 그 단어 수만큼이나 수수께끼가 많은 책이다” 하고 계시록을 어렵게 말해 버리니까 대부분 그 후배들은 그만 “아예 손을 안대는 것이 예의다” 이런 식으로 해서 계시록을 좀 적극적으로 알려고 노력을 하지 안 했던 것이 기독교의 큰 잘못이었기도 하고, 잘 모르면 남의 책도 함부로 소개해서는 안 되는데 영국과 미국이 “존 넬슨 다비”의 “세대주의적 종말론”과 “랍비 벤 에스라”라는 가명으로 “임마누엘 라쿤자”가 쓴 “휴거”라는 책을 가지고 미국과 한국의 종말론을 완전히 세대주의적 종말론으로 흐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종말론이 들어왔을 때 한국에서 끝까지 “이것은 잘못되었다. 이것은 성경에 맞지 않다”고 우기고 아주 고집스럽게 성경적 종말론을 주장하던 분이 지금은 주님께 갔습니다만 보수 교단의 거두였던 박형룡 박사님 혼자서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잘못되었다.” 하고 외롭게 투쟁하시다가 하늘나라 가셨고, 그 어른도 떠나시고 나니까 오순절 교단이라든지 일반적으로 신약성경을 전공한 분들 가운데 상당히 많은 분들이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마치 성경적이고 보수적인 종말론인양 받아들인 것입니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아주 권위가 있는 학교인데, 존 월버드 같은 분이 학장을 지냈던 달라스 신학교가 역시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수용하고 있고, 무디 성경연구원에서도 역시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다가 빌리 그레함이나 빌 브라이트 같은 분들이 거의 세대주의적 종말론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한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그런 분들이 거의 다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성서적인 종말론으로 수용을 해버렸기 때문에 한국 교회 전체가 잘못된 종말론으로 인해 지금까지 번번이 몸살을 앓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들은 아예 “계시록은 아직 우리 현실에 안 나타났기 때문에 그만 덮어놓고 내 평생 손 안대겠다” 이렇게 결단을 하시고 아예 계시록을 손대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목사님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참 조심스럽고 사려 깊은 생각이기는 한데, 문제는 계시록을 알지 못하면 종말론적인 문제가 교회에 발생했을 때, 어떤 이단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속수무책입니다. 

 

그래서 저도 성경과 계시록 연구 자료를 모아보고 또 성경 자체를 보고 하면서 “정말 계시록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책인가?” “이것이 도대체 기록될 때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이 책이 기록되었는가?” “정말 이것은 요한의 어떤 생각을 기록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계신가?”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면 어떻게 모르게 했을까?” 그런 것을 고민하다가 계시록을 연구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부분도 성경의 난해한 부분이 있어서 성경을 다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계시록은 여전히 수수께끼가 많은 책처럼 남아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책들이 나오기는 했는데 역시 계시록을 해석하는 분들이 계시록을 잘 알지 못하고 해석을 하게 되고, 심지어 성경을 번역 하신 분들 중에서도 계시록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번역을 하게 되니까 (번역의 단어가 이렇게도 번역할 수 있고 저렇게도 번역할 수 있는 그런 단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을 알면 다른 내용으로 다른 번역이 나왔어야 되는데) 그 번역까지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계시록에 대해서는 성경 번역하는 분들도 이해를 하지 못한 채 번역을 한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몇 시간에 걸쳐서 이 계시록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다 듣고 나시면 계시록이 그렇게 어려운 책이 아니라 쉬운 책이며 누구나 읽기만 해도 열리도록 편집된 말씀이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것이고, 그러고 나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이단 사이비 종말론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 어디서 잘못 본 것인가? 하는 것도 금방 드러나게 될 것이고, 또 세대주의적 종말론이나 휴거라는 책이 어떻게 성경에 맞지 않는가 하는 것을 쉽게 이해하실 줄로 압니다.


이것을 모를 때는 참 어려운 책입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나면 계시록처럼 쉬운 책도 없습니다. 이만한 분량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렇게 계시록처럼 단번에 전체로 다 보일 수 있는 책이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따로 떼어서 한 두 구절 설교하는 것은 안 하는 것보다 나을지 모르겠지만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계시록은 적어도 세 가지 내용을 가지고 기록이 되었는데 이 세 가지 내용을 거의 동시에 다 봐야만 전체가 바로 보이고 또 부분도 바로 보이는데 전체가 바로 안 보인 분들은 사실 부분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그렇습니다만 전체를 바로 본 사람은 부분도 바로 볼 수 있는데 전체가 옳게 보이지 않는 분들은 부분도 옳게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또 특별히 무슨 책이든지 1장 1절에서 마지막 장 마지막 절까지 전체로 보는 안목이 굉장히 중요하고, 특히 요한 계시록은 다른 어느 책보다 전체로 이해하지 못하면 요한계시록을 알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다음 시간에는 계시록의 기록된 배경과 내용을 좀 차분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서 마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서초 베데스다 치유센타
글쓴이 : 현주아빠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