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2장 1~4절 - 에베소교회 상

하나님아들 2014. 4. 18. 16:10

 

2장 1~4절 - 에베소교

 

에베소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2;1-4)


   계시록 2-3장까지에 있는 일곱 교회에 관한 내용이다. 1장 3절에서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하였다. 지금까지 일곱 교회에 대하여 두 가지의 해석이 있는데, 이런 것은 신자들이 알아두는 것이 영적으로 유익하므로 항상 읽고 듣고 지켜서 복 받는 신자가 되어야한다.


  첫째 해석은; 일곱 교회는 당시, 계시를 주시던 그 시대를 지역적으로 같은 시기에 이미 세워져있던 교회를 향하여 여러 지역의 교회들을 모델로 하는 대표적인 예로 본다.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이 일곱 교회에 비유할 수가 있다는 설이다. 앞으로 모든 세대가 어떤 시대든지 예수님이 오시는 그때까지, 지상위에는 이 일곱 교회와 같은 유형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대한 표본으로 일곱 교회를 들어서 가르쳐주는 내용이라는 주안점으로 해석하는 설이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모든 교회들의 대표적인 모델로 지상에 있는 교회들이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곳에 있더라도 일곱 교회와 같은 유형의 교회들로 구분한다. 그래서 계시록 2-3장에 나타난 일곱 교회를 보면 지상에 있는 교회가 어느 부류에 속해있으며 내가 소속된 교회는 어떤 교회에 속하고 있는가? 이러한 내용을 거울로 삼고 예수님이 오실 때 까지 교회가 준비를 해야 된다는 내용이 첫 번째 해석이다.


   두 번째 해석은; 일곱 교회들에 대한 내용을 시대적으로 배열해서 보는 해석이다. 에베소교회는 주후30-100년경까지 사도시대로부터의 교회로 본다. 서머나 교회는 주후100-313년경까지 초대교회가 핍박을 많이 받고 순교하던 시대로 본다. 버가모 교회는 주후313-590년경까지 교회가 로마제국의 콘스탄 대제가 기독교에 자유를 허락하면서 교회는 자유의 물결과 함께 세속화되고, 세상과 타협하던 교회사를 비취어 본다. 두아디라교회는 주후590-1517년경까지 로마 가톨릭이 생기면서 시작되어 가톨릭시대로서 교회가 어두워진 암흑시대라고 한다. 사데 교회는 주후1517-1700년경까지 교회가 개혁을 했었다. 그래서 사데 교회를 비유해서 종교개혁시대로 해석한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후1700-1900년경까지 200년간 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부흥하는 시대라고 한다. 이 교회는 부흥시대로 보는 견해라고 한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주후 1900년부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재림하실 때까지 말세에 대한 교회로 보여주며, 라오디게아교회는 교회가 세속화되고 믿음의 행위가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여 미지근한 교회시대로 분류해서 보는 해석이다. 이렇게 시대적 배경으로 나누어서 일곱 교회를 비취어서 보는 해석은 상당히 그럴 사한해석 같으나, 그보다는 더 성서적이며, 주님의 뜻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려면 처음의 해석이 옳다하겠다.


   전자가 후자보다 더 옳다는 이유는 지상에서 수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모든 교회들은 각기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이 많은 교회들을 다 들여다 볼 수는 없다. 그리고 내 교회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다른 교회가 어떻게 되어 진 교회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늘 위에서 영적 눈으로 신령한 눈으로 주님의 뜻 가운데서 볼 때, 일곱 교회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교회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대는 에베소 교회와 같은 교회, 서머나 교회와 같은 교회, 버가모 교회와 같은 교회, 두아디라 교회와 같은 교회, 사데 교회와 같은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은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교회도 있다. 어느 장소의 교회를 보든지 교회는 이렇게 일곱 가지 유형의 교회를 볼 수가 있다는 해석이 성서적이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정립하고 이런 해석으로 바른 해석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대적인 배열로 해석하는 내용보다는 일곱 교회의 대표적인 과거를 통해서 계시록 2장과 3장의 일곱 교회를 해석해야 된다. 오늘은 계시록 2장 1-7절까지의 말씀에서 대지를 넷으로 나누어서 상고하게 된다.


 (1)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에베소교회에 오셨는가?(2:1)

 (2) 에베소교회의 장점은 어떤 것인가?(2:2-3,6)

 (3) 에베소교회의 단점은 어떤 것인가?(2:4-5)

 (4) 에베소교회에 어떤 보상이 약속되는가?(2:7)


에베소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


에베소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이가(2:1)


  첫 번째는; 일곱별을 붙잡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과, 다른 면은 예수님께서 일곱 금 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모습이다. 이 뜻은 1장 20절에서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예수께서 해석하셨다. 일곱별은 교회마다 세워진 주의 종들인 사역자들의 영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종들을 그의 오른 손으로 꽉 잡고 있기 때문에 사역자는 예수님의 주권 아래서, 예수님의 뜻대로 일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말이다. 주님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분이 시키는 대로 당신의 양 무리들을 먹이고 입히고 자라도록 인도하는 목자들의 영을 별이라 하셨다.

 

   주의 종들이 아무리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원대로 할지라도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다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야 만이 주님의 뜻에 맞는다. 그러면 주님이 원하는 뜻이 무엇인가? 여기에서 마지막 때의 교회 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느 시대 어느 역사를 통해서도 모든 성도들을 인도하는 당신의 종들을 오른손에 잡으시고 함께 사역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인 촛대가 별인 사역자를 자기들의 뜻에 맞지 않는다 해서 주의 종을 함부로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주의 종들에게 그렇게 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되고 예수에게 대적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마10:40,눅10:16) 하신 것은 주의 종에게 항거하거나 대적하는 그 자체가 주님께 도전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금 촛대 사이는 교회들마다 성도들 사이로 다니시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교회(성도)와 함께 동행 하시는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언제나 이 교회 저 교회 사이로 다니시며 살펴보시며 인도하시며 동행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주의 종들은 교회가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상전 모시듯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교회(성도)안에 성령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교회를 핍박하거나 어지럽게 할 때는 주님을 핍박하는 행위요 주님의 뜻에 반대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교회 문을 닫게 하고 성도들을 핍박하고 교회에 어려움을 주었던 바울을 살펴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사상 때문에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나아가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체포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주님을 만났다. 바울은 자기가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괴롭히는 것이 잘못임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돌아섰다. 그러므로 성도는 누구든지 교회를 험담하거나 핍박하거나 어지럽게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1절의 말씀은 예수님은 당신의 피 값으로 세우신 모든 교회들을 당신의 뜻대로 인도하기 위해서 당신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종들을 통하여 구속사역을 이루신다는 뜻이다.


에베소교회의 장점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2:2-3)


   이 말씀의 내용 중에서 에베소교회가 부지런 하였던 것을 말한다. 네가 니골라 당을 미워하듯이, 나도 그것을 미워한다는 문맥에서 니골라 당의 잘못된 신앙을 좋아하지 않았다.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배척하면서 합세하지도 아니하고 완전히 구별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말한다. 행위는 행함을 말해주고, 수고는 시간과 물질과 몸으로 땀 흘리며 봉사했음을 말하고, 인내는 참고 견딘다는 말이다.


   첫 번째는 인내라고 한다. 인내는 어떤 어려움을 만났을 때 가만히 도사리고 앉아서 어려움이 지나갈 때까지 눈치만 보면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인내는 환난을 만나고 고통을 만나고 어려움을 만나도 믿음으로 그런 것들을 이기기 위해서 힘쓰고 부단히 노력하고 헤쳐나아가고 넘어가는 것을 인내라 한다. 믿음을 굴하지 아니하고 더 기도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향하여 땀 흘리며 나아가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참는다 견딘다 말이다.


   사람들은 부딪치기 싫어하여 앉아서 어려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인내로 알고 있다. 그러한 행위는 고집이나 아집이요 불순종이지 인내는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인내는 뚫고 나아가고 뛰어넘어가는 순종을 인내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은 내게로 와라하면 가야한다. 부르심에 따르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점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뛰어넘고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모세가 앞으로 나갔듯이 어려움을 밀고 나아가는 행위를 인내라 한다.


  두 번째는 악한 자들이다. 에베소교회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이 있다. 에베소교회에 있었던 악한 것이 무엇인가? 디모데 전후 서를 통해서 바울이 에베소지역을 지나가다가 디모데를 여기에 남겨두고, 로마에 가서 편지를 보내준 말씀 속에서 악한 자들이 이런 자들이라 한다.


  구리 장사 알렉산더가 바울을 얼마나 괴롭혔던지 바울이 에베소에서 알렉산더 때문에 해를 많이 받았다. 바울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디모데에게도 네가 이런 어려움을 직면해야 된다고 말했다. 디모데와 함께 교회를 운영하던 신자들은 알렉산더로 인하여서 너희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딤전1:20,딤후4:14-15)


 (1) 에베소라는 지역은 ‘아데미’라는 신전이 있었다.

 (2) 신전에 경배 하려오는 사람이 많았다.

 (3) 우상을 섬기려오는 사람이 많았다.

 (4) 신전에 관광으로 오는 사람이 많았다.


   아데미라는 신전에 있는 여자신상은 다른 신상들과는 다른 점은 많은 유방을 붙여놓은 것이 특색이다. 이 해괴한 신상을 보기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구리 장사 알렉산더가 이와 같은 작은 신상을 선물용으로 관광객이 구입하게 해서 재미를 보고 많은 돈을 모았다. 모든 점포 주인들은 알렉산더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을 관광객에게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는 곳이 에베소라는 도시 곳곳에 있었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지역에 전도하러 갔을 때, 이 지역에 이러한 우상으로 찌든 도시에서 말씀을 증거 하였다. 마술사들이 회개하고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때 구장사 알렉산더가 교회에 들어온 것은 바울에게서 나타나는 능력을 보고 교회로 들어왔다.(행19:11-)


   교회사를 찾아보면 이때에 알렉산더도 예수를 믿었다. 그런데 바울사도가 가르치는 것은 우상을 섬기면 성경에 위배된다. 다른 종교를 믿으면 하나님이 싫어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우상숭배와 다른 종교는  버리라고 가르치므로 인하여 알렉산더의 공장이 망하게 되였다. 알렉산더는 돈 때문에 나는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교회를 떠나버렸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기독교가 에베소에 있으면, 에베소의 아데미종교 자원과 모두의 생계에 위협이 되고 모두가 가난해서 죽게 된다.


   이러한 내용들을 앞세우고 바울을 핍박하고 디모데를 핍박하고 교회 신자들을 없애 버리려고 정면으로 충돌했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에베소 교회로 대항하여 오는 이악한 자들을 에베소 교회는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배척했다. 죽이면 죽을지라도 믿음을 지켜야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야하고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했다. 이 돈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 지역에 있는 모든 관광 상인들이 몰려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과는 타협할 수가 없다는 신념으로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좋은 신앙을 에베소교회가 지니고 있었다.


  세 번째는 가짜 사도들이다. 에베소교회에는 사도가 아닌데도 내가 사도다. 또한 내가 사도 권한을 위임받았다며 사도가 아닌 거짓으로 과장시키는 자칭 사도라는 자들이 많이 들어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기사와 이적을 베푼다면서 종교적인 혼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에베소교회는 거짓된 자들의 잘못된 것을 가려냈고, 거짓된 자들이 누구였던가를 가려내서 미혹 받지 않은 교회가 에베소교회라고 그 장점을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성직을 사칭하는 짓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교훈한다.


   특별히 말세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구속받고 어린양의 신부가 되려할 때 반드시 이러한 일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베소교회의 좋은 면을 본받는 자가되어야 한다. 그때 악한 자들이 에베소 성도들을 핍박했던 것과 같이 말세가 되면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며 외치게 되면, 반대자들이 나는 믿지 못하겠다면서, 알렉산더와 같은 자들이 교회를 핍박하고 박해하는 악한 자들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이기고 나아가는 인내가 있어야 된다는 교훈이다.


   3절에서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주님께서 아신다. 이교회 성도들은 부지런한 성도였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모였고, 열심히 말씀을 듣는 교회요, 열심히 봉사하는 교회요, 열심히 전도했다는 것을 주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 받은 교회였다. 게으르지 않았다는 의미는 부지런했다, 지칠 줄 몰랐다, 낙심하지 않았다 등, 좋은 점이 에베소교회에 많았다고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일만해야 된다. 우리가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려면 먼저 모임부터 부지런해야 된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일도 남보다 부지런해야 된다. 전도하는 일도 부지런해야 된다. 그리고 지칠 줄을 몰라야 된다. 그래서 어느 누가 무슨 말을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아야 축복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게 된다.


   지난번에 우리는 에베소교회에 대하여 공부할 때, 에베소교회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에베소교회에서 본받을 만한 좋은 점이 무엇인가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나쁜 점에 대해서는 시간이 모자라서 악한 자들에 대해서만 상고하였다. 오늘은 에베소교회가 미워하고 주님께서도 미워하는 니골라 당이란 무엇인가? 저들이 가르친 것이 무엇이었던가? 주님께서 그토록 미워했다면 우리는 이런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에베소교회에 약속하신 보상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상고하게 된다.


   사도행전 6장1-6절에서 니골라는 안디옥에 살 때에는 유대교인이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제자가 되었던 사람이다. 초대교회가 일곱 집사를 임직시킬 때, 그 중의 한 사람이 니골라다. 왜 니골라 집사가 이렇게 변질되었는가? 한때는 예수님을 따랐고, 회중으로부터 집사로 뽑히고 사도들로부터 안수까지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안수집사이던 그가 왜 계시록에 나타나는 에베소교회에 와서는 그의 교훈과 그를 따르는 잔당들이 이 교회에 있었을까?▣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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