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1장 13~20절 - 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

하나님아들 2014. 4. 18. 16:10

 

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맑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 소에 일곱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지취는 것 같더라.(1:13~16)


   예수께서 요한에게 말씀하실 때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라’ 하시는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말씀이다. 처음은 모든 만물, 즉 예수이전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성부와 함께 계셨던 성자 하나님이라고 알리는 내용이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수난당하기 전까지 항상 그를 말씀인(λόϒο?) 스스로 있는 하나님이라 하였음을 확인시켜 주는 내용이다. 그리고 말씀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나는 처음이다’ 이렇게 소개한다.


   나중은 모든 만물이 말씀에 따라 끝나게 되는데, 끝나는 것이 백 보좌의 심판 때 그분의 말씀대로 만물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요한이 본 예수님은 인성을 입으셨던 그 예수님이시나 인성을 벗어버린 예수님이라고 소개한다. 인성을 벗어버리고 신성만을 입으신 하나님의 전능성을 소개한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 살아나신’ 예수님의 모습에 대하여 서머나 교회에서 설명하시는 성부와 성자의 속성의 내용이다. 성부의 속성에 대하여 이사야는 이렇게 증거 한다.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끝까지 명령하고 만들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사41:4)


   이사야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아 나를 들어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하셨으니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처음이 되신다. 하나님은 모든 시작의 근본이시기 때문에 처음이시다. 성자의 속성에 대하여는, 요한에게 말씀하실 때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라” 하시면서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서는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났다” 하셨다. 계시록 끝에 가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하심은 심판을 통하여 나중이요, 예수님 후에는 심판자가 없기 때문에 나중이시다. 만물이 예수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에 나중이요 예수님은 심판자이며 종말이기 때문에 나중이다.


   이렇게 만물을 만드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다가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께서 왜 자기 때를 모르시겠는가? 때를 모르고서 어떻게 만물을 심판하시며 그날을 모르고서 어떻게 나중이 되시겠는가. 세상법정에서도 재판을 할 때면 그날과 시간을 알려준다. 하물며 만물을 심판하실 그분이 심판의 시작이 되는 재림 때를 알려주시지 아니하시고 일방적으로 심판하시겠는가? 그렇게 하신다면 그분의 공의라는 속성이 파괴된다. 그러므로 재림 때를 아들도 모른다고 부정하지 말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깨어 기도하며 준비해서 대환난의 심판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믿는 자의 자세란 말씀이다.

 

  요한에게 나타나시고 서머나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십자가위에서 죽임을 당한 일에 대하여 “내가 전에는 죽었었다” 하시는 말씀은 계시를 알려주시는 분이 요한과 동거하고 가르치실 때 사람의 몸을 입으셨던 예수님이지 다른 이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앞서 당한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내가 전에 죽었으나 말씀은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서 인성을 벗어버렸을 뿐이지 결코 신성마저 벗어버리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은 일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죽지 않았고 요한이 본 그대로 살아 있음을 알리신다. 예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산 자라하신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부활과 생명에 대하여 “나는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다” 한다. 죽음을 정복하고, 무덤의 문을 여셨으며, 영원한 생명에 근원이 되심을 알리신다. 내가 산 자라는 말속에 몇 가지 뜻이 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 마귀의 권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이시라(고전15:20-) 하시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셨다(요11:25).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온다는 말은 버가모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말해준다.(2:12)


   이 말은 예수님의 전능성 중에서 공의를 말한다. 이 뜻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이 선 어떤 칼보다 더 예리하며 영과 혼과 관절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아  시기 때문이라 하셨다.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신다” 하셨고, 끝으로는 그의 입에서 이한 칼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시겠다(계19:14)고 말한다. 이 내용은 마지막 때에 심판을 경고하지만 회개치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두려운 말이다. 인간이 회개했다고 말할지라도 마음과 생각과 뜻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회개가 있느냐? 하는 말이다.


그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맑은 물소리와 같으며...(15)


   그 발은 풀무에 연단한 빛난 주석같다(1:15)는 내용은 두아디라 교회에서 “그 다리는 곧고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반들반들한 구리 같다”(2:18) 한다. 다니엘은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갯불 같고 그 눈은 햇빛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다” 하였다. 선지자의 말씀도 심판하실 주님에 대하여 증거 하였으나 지금까지는 사랑으로 모든 죄와 악을 용서하여 주시지만, 정한 날부터는 공의로 심판하시고, 징벌하시고, 불 못에 던져 넣으시는 예수님의 공의를 말하신다.


그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곰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16~17)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다(1:16)는 말씀은 사데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데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예수님이라(계3:1) 하셨다. 하나님의 속성과 삼위일체를 앞에서 상고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통치되고 그분의 주권 안에서 움직이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이 뜻은 주의 종들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이요, 주의 종들이 하는 모든 일들은 예수님의 뜻 안에서 행하여진다는 말이다.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18)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이(1:18)에 대하여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3:7) “열쇠를 가지신이....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가 가라사대 볼 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휴거 상을 보여주신다. 대 환난 때에 무저갱의 열쇠로 여니 큰 풀무의 연기 속에서 황충이 나와서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 다섯 달 동안 고통을 준다. 또한 영원한 유황불 못에 갇히게 되면 사탄과 사탄의 하속들을 무저갱에 가두고 닫아버리면 아무도 열지 못한다는 뜻이다. ⑴.사망의 열쇠는 한번 닫아놓으면, 죽음도 삶도 없다. ⑵.음부의  열쇠는 한번 닫아놓으면,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고 또한 꺼내지도 못한다. ⑶.천국의 열쇠는 왜 없는가? 천국은 침노하는 백성들에게는 열려있기 때문이다.(마11:12.눅16:16)


   이러한 예수님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다(1:16)에 대하여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계3:14)을 보여주신다. 다니엘은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하셨다(단12:3). 사사기에서는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같이 힘 있게 돋아난다” 하였다.


   예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또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띄었다”(1:13) 하심에 대해서는 에베소교회에 나타나신 천국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이다. 땅에 있었을 때에는 선지자요, 천년왕국 때는 만왕의 왕임을 보여주신다. 이렇게 일곱 교회의 모습을 종합해서, 20절은 일곱 교회와 일곱 교회 사이에 관한 설명이다.


요한에게 기록하라는 것


   요한에게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세 가지를 명령하셨다. ⑴.본 것은 일곱 교회와 일곱 교회들 사이에 관한 내용이다. ⑵.이제 있는 일은 당시와 또 현재라는 교회들의 상태에 관한 내용이다. ⑶.장차 될 일은 종말이 어떻게 되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첫째로 본 것은,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다. 그리고 4-5장에서 요한은 하늘위에서 되어질 것을 보았고, 둘째로 본 것은, 6-22장까지 일들이며 장차 될 일이다. 이 일들을 나누면 6-18장까지는 앞으로 세상에서 되는 환난과 대환난이다. 열두 장을 할애하면서 쓴 것은 대환난이 그만큼 무섭고 두렵고 참기 어려운 참상이기 때문이다. 대 환난은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을 잘지켜 온 성도들은 휴거되고 대 환난을 당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심판의 경고를 무시했던 사람들과 불신자들은 대환난속에서 짐승의 표를 거부하다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살기위해서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들은 대환난이 끝날 때에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으로 죽게 된다. 9-20장은 세상문화를 없애버리고, 지상 재림을 하시면서 천년왕국으로 이루어진다. 이때는 대환난중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있던 자들은, 주님과 함께 왕권을 가지고 새 예루살렘으로부터 오는 성도들을 만나게 되고, 천년동안 그들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21-22장은 천년이 끝날 때 잠간동안 곡과 마곡의 전쟁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사탄과 그의 하속들을 영원한 유황불 못에 던져 넣는다. 마귀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으로 가는 길은 못 가게 방해한다. 그러나 천국에 가려고 사모하는 자들에게는 성령이 도우신다. 성령이 도우실 때 자신의 의지를 천국으로 향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살도록 예비해 놓으신 곳에서 살게 된다.


   이처럼 모든 장래일 까지 요한에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그 예수님이 당신의 신부들이 환난을 당하도록 버려두겠는가?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한 구절만 읽고서 속단하면 안 된다. 전체의 흐름을 보는 것이 더 유익하고 바른 방법이다. 또한 빛의 자녀들에게는 그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고 하셨으니 그날은 도적같이 임한다는 무지한 생각을 벗어버리고 준비하는 자세가 되어야한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3;2-3)


   심판 주께서 심판하러 오시면서 심판 주 스스로가 심판 날을 모르겠는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치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님께서 알려주신다. 심판은 그들에게는 무서운 일이기 때문에 잊어버리려는 심리라 하신다. 또한 그들은 불의하기 때문에 의의 흰 세마포를 입지 못하고 벌거벗은 연고라 하신다. 그러므로 재림 때는 불의한 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으신다. 불의한자들은 자신이 모르므로 “아무도 모른 다” 하는 것이다. 불의한자들은 대 환난에 남아야 되기 때문에 자신의 온전치 못함을 감추려고 한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내가 너를 권하노니....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계3:15-18)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 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19:7-8)


   주님은 말세에 사는 성도들은 주님의 오심을 끝까지 전하는 나팔수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사도신경으로 매일같이 암송한다. 요한이 보고 들은 것을 하나도 빼어놓지 아니하고 일곱 교회에 전한 것과 같이 우리들에게도 전하는 나팔수가 되라는 것이다.


   요엘선지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 찌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라. 이제 임박하였다” 하신다. 마지막 때 마지막 지상최대의 사명은 때를 알리는 일이다. 그리고 신자의 기쁨은 나팔수가 되는데 있다. 요한과 같이 나팔수가 되어서 나팔을 불어야 하늘의 군사임을 알게 된다. 나팔을 불 때 천사가 함께하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 그러나 알면서도 외치지 않는 나팔수는 그 죄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 환난에서 피하도록 힘차게 외치는 신자가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이다.▣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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