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1장 11~12절 - 이 예언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나님아들 2014. 4. 18. 16:09

 

이 예언을 일곱 교회에 보내라


1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1:11~12)


   계시를 받고 있는 일곱 교회에 대하여 2-3장에서 교회별로 특성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12-20절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일곱 교회를 대표하여 예수님의 신성만을 보았다. 12절에서 보여주는 예수님의 모습 중에서 일곱 금 촛대를 요한은 보았다. 이 모습은 에베소교회 상황을 서술하면서 발끝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띄고, 죽었다가 산 자라고 서머나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13절의 말씀에서 발에 끌리는 옷에 대한 세 가지 내용은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사명을 구약의 제사장들이 지성소에 출입 할 때 입었던 특별한 예복으로 보여준다. 예수님의 선지자의 사명을 구약에서 예언자들이 입었던 예복으로 보여준다. 예수님을 재림주로 오시는 만왕의 왕으로서 왕궁에 있는 왕의 옷차림으로 중요한 직책들로 알려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땅에서는 선지자와 예언자로 살았다. 승천해서 재림 때 까지는 하나님 우편에서 하늘 지성소에 앉아계시는 대제사장이다. 그리고 재림하시면 천년동안 만왕의 왕으로 오실 분으로 소개한다.


   예수의 속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가슴에 금띠를 띄었더라’ 한다. 순결과 거룩함을 보여주기 위해 ‘희기가 양털 같고’ 라는 말씀은 더럽지 않고, 거짓이 없고, 간사가 없는 순결성을 말한다. 또한 눈은 불꽃같은 눈을 가졌다고 하시는데 붉은 것은 빛이다. 불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길을 인도하시고 소망의 축복인 생명의 빛이다. 불신자들에게는 죄에 대한 심판불이 된다는 것으로 볼 때 성도의 축복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예수님이 “그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다”고 심판자를 예시한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사랑으로 모든 죄와 악을 오래 참으시고 사랑으로 용서하여 주셨다. 그러나 앞으로 오실 예수님은 공의로 심판하러 오시므로 그때는 사랑으로 다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곧 오신다하면 반대자들은 복음은 위협을 주는 것이 아니라 평안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재림 때까지 오래 참으시는 사랑의 표현이다. 그의 참음이 끝나고 재림하실 때는 위협이요 두려움의 나팔소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위엄과 능력이 있다는 표현으로 “많은 물소리와 같다” 하신 것은 재림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견디어낼 자가 없음을 말씀하시면서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더라” 하신다. 이 말씀은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양육하시는 종들을 그의 오른손에 잡고 도우시며, 인도하시며, 동역하심을 의미한다.


   창조 때에 그의 입에서 말씀이 나왔다. 그 말씀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에게는 죄를 용서하고 허물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다’ 하였다. 그러나 만물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오시는 재림주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온다” 하셨다. 성령이 함께 있는 때는 사랑으로 보호하여 주지만, 성령이 떠나면 사랑으로 대하지 않으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며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멸하시는 뜻을 입에서 칼이 나온다 하였다. 이러한 예수님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했다. 빛은 강하다. 강한 빛을 받아들이는 심령들에게는 영생의 축복이 임한다. 그러나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저주와 멸망이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빛은 구원의 축복이냐, 저주냐 하는 것이다.


   16절까지는 신구약을 통해서 곧 오실 재림 주에 대한 서술이다.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재림하실 어린양의 신부로 부름 받도록 준비해야 된다. 준비하지 않으면 그때는 대 환난에 남아서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하신다.

 

   2-3장에서 일곱 교회에 칭찬하시고 책망하시고 권면하시며 약속을 성령께서 말씀하신다. 그 성령께서 지금도 말씀을 하실 때 감동감화를 받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의미에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는 뜻이다. 믿는 자가 깨어서 근신하며 기도할 때 귀를 세우고 성령에 감동되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시는 말씀을 듣고 흰 세마포를 입도록 해야 된다.


   1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 사도 요한이 어떠한 영광을 보았다. 내용이 무엇을 뜻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오늘은 마지막 부분에서 대지를 셋으로 나누어서 상고하는 것이 좋겠다.


  첫째는; 계시를 받을 때 요한의 영적상태가 어떠했는가? 

  둘째는; 일곱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가?

  셋째는; 계시의 비밀이 무엇인가?


요한의 심령상태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매 한다.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도 요한에게 크게 감명을 주었다. 요한은 자신이 전부터 예수님과 친숙했다고는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요한 앞에 나타났을 때 그의 영광된 광채가 너무나 찬란하였기 때문에 완전히 압도당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때 요한이 본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던 그러한 모습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아버지의 우편에 계시는 영광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요한은 예수님의 위엄과 영광 앞에 눈을 뜨지 못하고 죽은 것같이 기절하였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한다. 성경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엎드려졌다는 내용들이 있다. 그중에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에스겔이 엎드려졌다.(겔1:28,3:23). 비록 신실하고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았던 에스겔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어서 그의 영광 앞에 엎드려졌다.


   이 광경을 좀 더 자세하게 알려주는 내용은 변화 산의 장면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다볼 산’에 올라갔다(마17:1-7,막9:2-8,눅9:28-36). 그때 모세와 엘리야를 만났을 때에 사도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그 영광에 엎드려졌다. 이처럼 예수님의 영광 하나만으로도 죄인들은 그 앞에 나아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교훈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고 보게 되면 다 죽는다하였다(삿12: 22). 이 뜻은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성결하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죄인일지라도 예수 앞에 나아가고 그의 영광 앞에 설수 있는 길은 오직 그의 사랑과 긍휼로서 용서해 주실  때만이 가능하다. 그가 오른손을 내어 밀고 “두려워 말라” 하신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이 말씀은 죄를 용서해 주시면 예수님 앞에 설수 있다는 교훈이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출석하면서 사죄함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으로부터 용서하시는 위로와 말씀을 들었는가? 아니면 나 혼자의 독백인가?


   어떤 사람들은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얻었다. 들림 받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위로와 죄에 대한용서는 아닐 수가 있다. 죄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용서해 주어야 된다. 결코 자신이 자기 죄를 없게 하지는 못한다. 말씀을 자세히 보면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요 사랑과 친절과 은혜를 가장 많이 받았던 사도였지만 심판 주 하나님 앞에서는 기절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향하는 사랑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있는 요한을 일으켜주신다. 크신 능력을 가졌으나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요한에게 힘주시고 친절한 말로 위로하시면서 이 계시록을 쓰도록 하셨다. 요한은 큰 음성을 듣고 몸을 돌려서 그가 누구인가? 보려는 순간에 기절하였다 한다. 이렇게 죽은 것 같은 상태에 있는 요한에게 손은 얹으시고 정신을 회복시킨다. 요한이 회복된 때에는 떨리고 두려움이 왔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두려워 말라” 하시면서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축복하신 것은 어둠의 권세가 아니라 계시를 받아쓰도록 담대함을 허락하시고 요한의 마음에 평온을 주신 것이다.


   겸손하지 않고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오래 믿어왔다 하더라도 겸손하지 않으면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아버지 집에 갈수 없을 뿐 아니라 휴거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예수 앞에서 다 죽이고 겸손해야 한다. 이길 만이 사는 길이요, 예수님이 오실 때 나아갈 수 있는 길임을 믿어야 된다.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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