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강림에 관하여
볼 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
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1:7)
7절 말씀은 예수님의 공중강림부터 설명하신다. 다니엘은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은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다. 예수께서 직접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권능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했을 때 대제사장들이 자기 옷을 찢으며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렸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 그러면 어떤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인가? 생명 강을 타고 오시는 장면을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아와서 광야생활을 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림하고 모세와 대면하던 때를 생각하면 된다. 생명 강을 타고오심을 성경은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하신다. 무덤이 열리고 산자가 들림을 받으려면 문자적인 구름이 아니라 생명 강을 타고 오셔야 한다. 생명강물은 살리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타고 오시는 생명 강 물방울이 온 지면에 떨어지며 그분이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삶을 살았다 죽은 자들의 무덤과, 예수 안에서의 삶으로 살아있는 산자에게 떨어질 때, 무덤이 열리고 산자 역시 생명수를 받는 자만이 부활되고 휴거된다는 말씀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여기에서 호령이란 뜻은 심판주로 오실 때 어두움의 권세에게 꾸짖는 호통이다. 친히는 예수께서 직접 오신다는 말씀이다. ‘오실 자’를 1절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고, 7절에서는 그리스도라 하셨으므로 우리를 위하여 오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란 말씀이다. 그런데 주님이 오실 때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하였다. 그를 찌른 자들과 애곡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을 실 때 옆구리를 찌른 육신들이 아니라 그들의 영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들림 받을 성도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공중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강림은 심판의 시작인데도 때를 외쳐도 듣지 않았던 자신들이 순종하지 않았음을 애통하며 회개할 것이다. 또 잘못된 신자라고 조롱하고 핍박했던 사람들은 대환난을 생각할 때 자신들의 무지함을 애통하며 복통을 치고 울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강림은 교회사적으로 많은 의문과 문제로 이어져왔다. 반복되는 강림문제도 있었으나 어두움의 권세는 온전치 못한 지도자들과 신자들을 매개체로 사용해서 복음사역에 해를 주어왔다. 또한 주님의 강림을 전하지 못하게 하거나 비난하고 출교까지 시켰었다. 뿐만 아니라 비난과 핍박으로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교회들을 폐쇄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어두움의 권세가 많이 침투되어 있는 교계 지도자들로 구성된 단체에서 가장 심했다. 그들이 권력이나 위치를 유지하려고 국가권력이나 정치를 악용하기도 했었다. 저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 중의 가장 큰 잘못은 성경에 근거하여 볼 때 온전한 신자는 주님의 때를 알리게 되고 온전치 못한 사람은 주님이 오실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계시록 3장 3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주의 오심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영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리고 빛의 자녀들은 주님이 오시는 때를 자세하게 알수 있다하였다.(살전5:1-6)
주님의 강림을 ‘마귀가 가장 싫어한다’ 하시면서 이런 자들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을 조심하라 하셨다. 사탄의 사주를 받고 있는 자들은 ‘Error다’ ‘틀렸다’ ‘이단이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심판주로 재림하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아버지의 권능으로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할 때도 그러했다. 또한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리니 할 때도 예수님을 죽이는데 까지 넘겨준 것은 사탄이 부활을 싫어하기 때문이라 하셨다. 그리스도의 강림은 사탄에게는 무저갱으로 들어가는 두렵고 떨리는 형벌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강림 때를 문제 삼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하속이라고 경고하셨다. 사람들이 가장 큰 잘못을 범하는 첫째가 예언에 관하여 오해한다. 때로는 예언이 ‘맞았다’ ‘틀렸다’ 아니면 ‘Error’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예언이 ‘옳았느냐’ ‘옳지 않았느냐’ 말하기 전에 예언의 성질부터 알아야 된다. 예언이 지니는 성질자체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예언에 대하여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예언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때 ‘계시’라고 부른다. 계시를 받는 사람 편에서는 ‘예언’이라 한다. 이 뜻은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이루시려고 인간을 향하여 경고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는 사람은 그 내용을 백성들에게 경고할 때 예언이라고 부른다.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은 요나를 통하여 예언하는 날로부터 40일후면 멸망당한다 하였다.
요나는 이 계시를 받고 40일후면 니느웨가 망한다고 예언하였다. 그런데 니느웨는 망하지 않았다. 왜 요나의 예언이 적중되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계시가 잘못인가? 요나의 예언이 틀렸는가? 니느웨는 하나님의 요구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듯이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경고 할때 회개하고 돌아서면 멸망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언이 맞았느냐 틀렸느냐 논쟁에 앞서 먼저 생각할 점은 예언의 성질부터 알아야 된다.
예언의 성질이란 ‘절대적이냐’ 아니면 ‘조건적이냐’ 하는 것이다. 예언은 절대적이 아니라 조건적이라는 성질이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경고를 하실 때는 ‘조건이 요구’된다. 조건은 하나님의 뜻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조건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도록 회개하는 일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일이다. 니느웨 성이 하나님의 뜻을 충족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를 거두셨다. 따라서 요나의 예언도 맞지 아니했다. 그것은 예언자체가 조건적이기 때문이다. 그 조건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예언문제에 관해서 더 정확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계시에서 답을 주신다.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하7:12-14)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를 전달한 예언이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요구조건을 충족시켰을 때는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계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사람들은 ‘맞지 않았다’ ‘틀렸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예언에 관하여 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하이레시스(αiρεσιs)
이 말은 교계에서 입버릇처럼 쓰는 유행어 ‘이단’ 이란 말이다. 그러면 이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어의 ‘하이레시스(αἳρεσιs)’를 우리말로 이단이라 부르고 있다. 이 뜻은 선을 행하여 선택한다는 말에서 파(αἵρεσιs )로 지목할 때 쓰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소속으로 지목할 때 쓰이는 말이다.
산헤드린회원들(바리새파, 사두개파)이 정치집권 욕 때문에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이용해서 그리스도교를 지목했던 말에서 시작됐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투옥시킬 때에도, 스테반을 죽일 때에도, 모든 사도들을 죽일 때도 그랬다. 사도행전에서 교회를 문을 닫게 하고, 성도들을 죽이면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매도했던 데서 시작되었으며 이것을 사탄의 사람들이 즐겨 써먹는 말이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αίρεσεωs)’의 괴수라.(행24:5)
저희가 ‘이단(αiρεσιν)’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가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행24:14-15)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이단-αiρέσεωs)’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행28:22)
사람들이 말하는 이단이란 뜻이 무엇인가를 헬라어 성경은 자세하게 의미를 말하여주신다. 그러므로 원어를 통하여서 정확한 뜻을 이해하고 바르게 알지 못하는 논리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욕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한다. 예수를 자신의 구원의 주라고 말하면서 바리새파처럼 그리스도를 욕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으며, 이 뜻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서 가르치는 목자들이 많다고 하셨다.
바울은 원래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엄하게 배운 바리새파 사람이었다. 한때는 스테반을 죽이게 했고, 예수를 믿는 교회를 박해하고, 신자들을 핍박하며 체포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후에 자신의 잘못된 사상을 깨달았고, 자신의 믿음이 잘못임을 깨달았다. 항상 정통을 주장하고 의식과 권위주의만 찾는 바리새파 사람들, 영도 없고 천사도 없고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파의 사상이 잘못임을 깨닫고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
그 후에 예수파가 된 바울은 강림을 믿고 전한다는 이유 때문에 ‘나사렛 이단(αiρέσεωs)의 괴수(Ναζωραάων)’로 지목을 받아야 했다. 그때 바울을 죽이려고 쓴 말이 ‘하이레시스(αἵρεσιs)’였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에서 이단이란 말을 할지라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예수파가 아니라, 자신은 사탄 파(계2:9)라고 시인하게 된다.
이는 성령훼방(βλασφημία-브라스페미아)죄를 지었기 때문에 바깥(eξώτροs-에쵸테로스) 어두운(ξόφοs-죠포스)데로 쫓겨난다. 거기서 슬피울며(κλαυθμόs-크라우데모스)이를 갊이 있게되는 연단장(βήμα-베마)에 가서 고통을 당한다고 경고한다.(막3:28-29,마12: 31-32,눅12:10)이런 사람은 타락되어서 회개될 수 없으므로(히6:4-6,10:26 ) 그런 사람을 위해서는 기도해 주지 말라 한다(요일5:16).
그러므로 함부로 이단이란 용어는 사용하면 안 된다. 만일 자신이 사탄의 파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깊이 생각하고 예수를 욕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욕을 한다고 다 욕할 수는 없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서 내가 모시는 윗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욕을 한다고 나도 욕하지는 아니한다. 그렇다면 우리를 구원시켜주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욕할 수 있을까? 불신자나 이방종교인들은 예수파가 아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자를 향하여 이단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나 이방종교인을 향하여서 같은 파가 아니므로 이단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예수를 믿는 교회나 성도들을 향하여서는 이단이란 말을 해서는 안 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찌른 자들은 누구인가?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1;7)
십자가 상에 매달려 있던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사람은 로마병정 한 사람이다. 그런데 본문에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표기되었다. 그렇다면 그 복수는 누구란 말인가?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헬라어 원전에서 "찌른자"의 뜻을 찾아야 한다. 이는진리를 비진리로 바꾸므로 인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사람들은 거룩한 성에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하신 말씀으로 볼때 그렇한 영혼이 지옥갈 것을 생각하니 예수님의 마음이 아프다는 의미도 된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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