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찬송의 하루살이"
김진섭 교수 (기독신대원 구약학)
기도와 찬송의 하루살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 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야고보서 5장13절; 참조, 전도서7장14절)
1. 영적 하루살이
1) 하나님은 모든 인생이 철저하게 주어진 "오늘 여기"에 전력투구하기를 원하신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업으로 1년간 장사하여 이윤을 보려고 계획하는 자를 향하여,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3-17)고 경고하신다. 밭에 소출이 풍성하였기에 "나의" 곡식과 "나의" 물건의 모든 것을 쌓아 둘 더 큰 "나의" 곡간으로 "나의" 영혼을 위하여("나의"가 4회) "내가 이렇게 하리라"(1인칭 단수 동사가 6회) 계획, 추진, 완성하고, 자신 스스로에게 "네가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2인칭 단수 동사가 5회)라고 흥겨워하는 한 부자에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너의 영혼을 너로부터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눅12:15-21)고 경고하신다. 인생은 안개요, 잠의 사촌인 죽음을 오늘밤에 예행하는 영적 하루살이이다.
2)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날마다 오늘의 양식"을 구하라(눅11:3 = 마6:11) 권면하신다. 구약의 광야교회(행7:38) 이스라엘 백성도 "날마다 오늘의 양식"(원어: "그의 하루 안에 하루의 문제"; 출16:4)인 만나를 "아침마다"(원어: "그 아침에 그 아침에"; 출16:21) 광야에서 거두어야 했다. 머리를 굴려 다음날 아침까지 만나를 저장하려 하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다. 안식일을 위하여서는 그 전날 두 배로 거두어야 했고, 혹시나 하여 안식일에 거두러 나간 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으며, 안식일에는 신기하게도 냄새도 벌레도 없이 만나가 보존되었다(출16:23-30). 인생은 철저한 "오늘의 양식"의 법칙으로 사는 영적 하루살이이다.
3) 따라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6:31,34) 재 천명하신다. 사실 코로 숨 쉴 수 있는 자는 누구든지 콧구멍에 비상 식량 일주일 분은 이미 준비되어 있으며 (왜냐하면 단식하며 숨만 쉬어도 일주일은 살 수 있다), 입으로 물을 마실 수 있는 자는 누구든지 입에 비상 식량 40일 분은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 (왜냐하면 금식하며 물만 마셔도 40일은 살 수 있다),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오늘 여기"에 전념하며, 절대로 염려하지 않고 (염려는 미래에 대한 지나친 생각이다) 살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어제는 끝났다. 내일은 오지 않았다. 내게는 오직 하나님이 주신 오늘뿐이다"라고 복창하면서, 오늘도 한번도 걷지 않은 새 길을, 한번도 쓰지 않은 새 일기를 기대하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찬양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즘"의 낙망적 현실이라도, 내가 살아있다는 실존감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애3:19-23) 고백할 수 있다. 인생은 주어진 오늘 여기의 문제를 인정하고, 직면하고, 돌파하는 영적 하루살이이다.
2. 기도와 찬송의 하루살이
1) 영적 하루살이에 대한 성경의 진단은 우리의 매 순간이 "고난과 즐거움"(약5:14)의 양자택일적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 "고난"(kakopathe )이란 단어의 어원적 의미는 "나쁜 감정"이요, "즐거움"(euthyme )이란 단어의 어원적 의미는 "좋은 기분"이다. 다시 말하면, 하루살이의 매 순간이 고난인지 즐거움인지는 나의 주관적 내면 감정이 나쁘냐 좋으냐의 문제이지, 전혀 외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월이나, 내 주 예수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송가 495장 3절)라는 찬송가사가 이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2) 지금 이 시간 이 글을 읽고 있는 나의 마음 상태가 어떤가? 어떠한 이유이든 "괴로우면 기도하고 즐거우면 찬송하라"는 하나님의 절대, 간단, 명료한 명령에 순복하는 인생수업을 쌓는 자만이 이 말씀의 능력을 체득하고, 누리고, 나눠 줄 것이다. 마음이 즐겁지 않는 경우라면, 반드시 기도할 뿐이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원어 enkake 는 "악한 상황 안에 [두다], 즉 나쁜 상황에 굴복하다"의 뜻) 않는 믿음"을 예수님이 오실 때 세상에서 보겠는가(눅18:1,8)?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심을 믿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나의 구할 것을 감사함을 가지고(즉 감사가 될 때까지[골4:2 비교])" 하나님께 아뢸 수 있는가(빌4:6)? 주 예수님이 나를 돌보심을 믿기 때문에 기도로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 버릴 수 있는가(벧전5:7)?
3) 내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들로 인하여 받는 감정이 고난이라면, 하나님과 나 사이를 막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는 기도와 간구에 전념하는 시간이 흘러 갈수록, 내 마음은 점점 평안과 확신과 기쁨으로 충만해지고, 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반드시 접수하시며 결재하시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이심에 찬송하게 된다. 내가 나의 상황을 분석, 파악, 전망하는 것보다 더 완전하시고 선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사55:8-9), 나의 영적 성장과 유익을 위하여 허용하신(마10:29-31; 롬8:28; 고전10:13) 고생의 떡과 물에 대하여 감사하게 된다(창50:20; 사38:17; 시119:71). 이것이 "문제가 없는 것이 진짜 문제이며, 문제가 많은 것이 없는 것이다"는 기도와 찬송의 사람의 역설적 고백이다. 오늘 이 시간도 "예수님이 오셔도 그만, 가셔도 그만"의 생을 사는 자는 속고 속이는 불쌍한 자요,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예수님 고대가"처럼 엄청난 고난의 현장에서,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머리 들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옵소서!" 노래하는 자가 가장 오늘을 즐기는 자이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를 번역한 출옥성도 안이숙 사모님의 파란만장한 신앙 회고담에서, 자신이 가장 즐거웠던 때는 머리털도 빠지고, 눈도 얼어붙고, 이빨도 흔들거리고, 썩은 사과라도 실컷 먹어보았으면 하던 평양 감옥소였음에서 재확인된다.
4)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밤중쯤 되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16:25)는 모습은 우리의 이 주제에 대한 가장 감동적이고 뛰어난 적용이다. 본문 16-18절을 보면 점치는 귀신(Apollo신의 예언을 맡은 Python이란 이름의 귀신)이 들린 불쌍한 여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치유; 참조: 4:10)한 댓가로 바울과 실라는 심하게 얻어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으나, "밤중 쯤 되어"(영육간의 고통으로 가장 시험 들기 쉽고, 마귀가 가장 역사하는 시간) 모든 죄수들이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다." 왜 하나님께서 선한 일에 대한 결과를 이렇게 험악하게 하실까를 기도하면서 생각해 볼 때, 죄수들과 간수들도 구원받도록 복음을 증거하는 좋은 기회임을 확신하게 되었고, 찬송이 터져 나오게 된 것이다(참조: 빌1:21). 기도와 찬송의 큰 목소리에 화답하는(시94:9) 큰 지진이 결국은 간수의 전 권속이 구원받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3. 영적 하루살이의 기도와 찬송의 시너지(synergy; 상승작용)
기도는 곡조 없는 찬송이요,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다. 기도하다 보면, 엘리사의 떠오르는 도끼처럼(왕하6:6) 마음에 와닿는 찬송이 입술에 터져나오고, 찬송하다 보면,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다윗처럼(삼하23:1-2), 기도의 말이 혀에 흘러 넘치게 된다. 영적 하루살이에 감정과 기분이 좋든 나쁘든 상관 없이, 기도는 찬송을 낳고, 찬송은 기도를 낳는 시너지 효과를 만끽하면서, 우리는 오늘도 올바른 기도와 찬송의 훈련을 계속하는 것이리라.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455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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