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기도문 !!

[스크랩] 하나님을 기다림

하나님아들 2013. 3. 17. 21:30

하나님을 기다림

 


산만한 생각이 정리되고 어떤 한 가지 생각에 집중될 때 성령이 자신을 인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내면 깊숙이 무언가가 자신을 이끄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상태가 되면 지속적으로 주님을 응시할 수 있는 집중력이 생겨나게 된다. 이때에는 시간도 초월하게 된다.

1)기다린다는 말의 의미
구약의 사용 예
기다린다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단어는 카와(qavah)이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로써 나타내는 뜻은 ‘서로 묶다’ ‘참을성 있게 바라보다’ ‘기다리다’ ‘희망하다’ ‘기대하다’ 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는 야할(yachal)로써 의미는 ‘기다리다’ ‘희망하다’ 이다. 간혹 ‘신뢰하다 또는 믿다’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사 51:5에서 NASB는 wait expectantly로 NIV는 wait in hope로 번역하였다.).
그 다음으로 다맘(damam)이라는 단어가 쓰이는데 ‘말을 못하게 하다’ ‘침묵하다’ 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신약의 사용예
신약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프로스데코마이(προσδεχομαί, prosdechomai)로써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다’ ‘기대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기다린다는 의미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막 15:43, 눅2:25, 12:36, 행 24:15, 딛 2:13, 유 1:21).
다음으로 자주 나오는 단어가 아페케데코마이(απεκεδεχομαί, apekedechomai)로써 ‘받아들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고대하다’ ‘기대하다’ 라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이 역시 주의 재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롬 8:19, 23,25, 고전 1:7, 갈 5:5, 빌 3:20, 히 9:20).

2)주를 기다림의 핵심적 요소들
기다림은 시간의 경과를 필요로 한다.
시편 130:5-6에서 주를 기다림을 파수군이 새벽을 기다림과 같은 간절함에 견주고 있다.

주의 기다림에는 반드시 시간의 경과를 전제하고 있다.

밤이 지나야 새벽이 오듯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기에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 하나님의 시간의 경과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기다림은 확신에 찬 기대를 의미한다.
기다림은 희망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 카와(qavah)가 때로는 ‘기대하다’ 라는 의미로 번역되고 있다.

기다림은 ‘기다리다’ ‘희망하다’ 라는 두 의미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기다림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고대하는 것이다. 장차 나타날 어떤 일에 대하여 고대하고 확신에 차서 바라보는 것이다.

기다림은 신뢰에 근거한 기대를 의미한다.
신뢰와 지식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기다릴 수 없다. 그저 막연하게 어떤 대상을 기다리는 것은 맹신에 가깝다.

그런 기다림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회의로 바뀌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믿음과 지식에 근거한 기다림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다.

우리의 기다림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인격과 일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들을 기록한 것이 성경의 역사인 것이다.

기다림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포함한다.
기다린다는 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손을 놓고 무언가 이루어지겠지 하고 기다리는 것을 떠올린다.

이러한 행동은 성경이 말하는 기다림과는 거리가 멀다.

기다림을 배우는 가장 어려운 측면이 이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을 어떻게 바람직한 균형을 이루는가 하는 점이다.
기다림은 수동성과 능동성(부정 및 긍정)을 함께 가지고 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 기다림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이 균형을 이룰 때 힘과 용기와 인내를 가져다준다.

행동적인 측면에서 아래와 같은 세 가지를 포함한다.
(1)해야 할 일- 의로운 일
(2)하지 말아야 할 일- 잘못된 것에 관여하는 일
(3)성경적인 기다림의 과정에서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이들 세 가지 요소들은 서로 섞이어 있어 분류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성경에서 기다림이라는 개념과 연관된 몇 가지 성경적인 금지명령(injunction)을 믿음으로 신중하게 순종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시 37:7-9, 37:1-6).

기다림은 주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긍정적인 면에서 기다림은 항상 주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골방에 들어갈 때 하나님을 찾는데 시간을 모두 써야 한다.
1)말씀을 공부하고 응답을 찾고 하나님의 약속을 부르짖는 데 쓰는 시간이다.
2)문제에 대하여 기도하고 지혜와 식별력을 간구하는 시간이다.
3)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무엇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지를 묵상하는 시간이다.

기다림은 정확한 시기에 행동에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밭을 갈 때와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두고 저장할 때가 있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그 시기에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도 이와 같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영적 밭을 경작하시고 계신다. 우리는 시간을 드려 협력하여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것을 해야 한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쉬는 것을 의미한다(시 145:15, 갈 6:9).
기다림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쉬는 것을 의미한다.

쉬는 동안 우리는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견디기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조급해하거나 원망하기도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실수를 하게 된다.

“잠잠하고 참아” 라고 번역된(영문에서는 rest로 번역하고 있다) 히브리말은 다맘(damam)이다.

이 말은 앞서서 언급한 대로 ‘침묵하다’ ‘조용히 있다’ 라는 뜻이다.

이 말은 태양이 머물렀다는 여호수아 10:12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다릴 때는 정상적인 행동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나 분주하고 하나님 앞에 기다림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때로는 질병을 주어서 때로는 사업을 곤경에 빠뜨려 강제적으로 쉬게 한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애 3:25, 시 62:5-8).
기다림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의 인격과 본성을 믿는 것에서 출발한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기다릴 수 없다.

기다림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요구하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행하신 것을 인정하고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원리를 믿음으로 따를 수 있다.

기다림은 올바른 행동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기와 선하심과 영원한 목적에 거하면 부정적인 행동을 피하고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

부정적인 행동은


1)보복이나 앙갚음을 피한다(잠 20:22)
2)다른 사람의 동기를 판단하는 일을 피한다(고전 4:5)
3)우선 하나님을 찾지 않고 어렵다고 하여 상황을 피해가거나 직업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4)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해서는 안 된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시기와 예비하심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에 거하고 하나님에게 의지함으로써 참고 만족해야 함을 배우는 것이 기다림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이유로 해서 기다림은 가장 견디기 힘든 공과인 것이다.
1)만족과 인내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대치되기 때문이다.
2)만족과 인내는 사단이 사람의 지혜와 자신의 해결책을 통하여 안정, 만족, 확실함을 발견할 수 있다고 교활하게 사람들에게 주지시키려고 미혹하는 것을 피하게 한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많은 것을 갈망한다. 즉 사랑, 인정, 삶의 목적, 음식, 옷, 위안, 기쁨, 안정 등으로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합법적인 요구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들로 인하여 사단의 전략과 올무에 빠지기 쉽다.
3)이러한 것들이 없으면 우리의 삶이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4)사람들 가운데서 어떠한 위치를 갖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거짓말을 믿는다.
이러한 거짓말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삶은 항상 불안하고 만족이 없어진다.

우리가 주를 기다림에 따른 유익이 무엇이며, 기다리지 못했을 때의 결과는 무엇인가?

기다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1)하나님의 본성과 그 능력 때문이다.
2)우리의 무능 때문이다.

주를 기다리면 어떠한 유익들이 있을까?


1)하나님이 하시도록 하신다.
기다림(찾고, 믿고, 기도하고)으로 응답하기보다 행동에 들어갈 때 우리는 다양한 심각한 상황으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것은 씨 뿌리고 거두는 법칙이다.
–다양한 질병
–경제적인 곤경
–관계성의 문제
–가족간의 불화
–영적인 문제

2)힘과 능력을 주신다(사 40:29-31).
-지속적으로 문제에 시달리고 무력하고 능력이 없으면 이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하는 것에 실패한 증거이다(사 40:29-30).
-육체적으로 나약하고 피곤할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영적으로도 침체된다. 주를 기다림으로써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이사야 40:31에는 일반적인 약속이 있다. 이것은 도덕적, 정서적, 영적 힘뿐만 아니라, 육체적 힘까지 포함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독특한 약속이 있다.


-독수리가 날개짓 하듯이 올라가리라‚
-달려도 피곤치 아니하리라‚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

3)기다림은 강건하게 하며 인격을 형성한다.
시편 37:1-11에는 세 가지 도전이 있다.
a)앞을 보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법과 인간의 꾀에서 떠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b)쳐다보다- 상황이나 문제를 보기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c)생산적이 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 적용된다.

4)낙망에서 일으켜 하나님을 찬미하게 한다.
하나님을 기다림은 우리의 눈이 주를 향하게 하며 그 영광의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2.고요의 기도
1)기다림을 통한 애정 어린 집중
마음의 평정이 이루어져 마음이 고요해지면 기다림의 단계로 들어간다.

기다림은 기도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기다림이란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조용히 맡기는 행위”이다.
‘바라보다’는 말의 헬라어인 ‘앞포라오(άφοράω, aphorao)’는 ‘이것에서 눈을 돌려 저것을 바라보다’, ‘집중하여 응시하다’라는 뜻이다. 나의 관심을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예수님께로 돌리고 마음의 눈으로 주님만을 응시하는 것을 말한다.
기다림의 과정에서는 말과 생각이 뒤로 물러나고 하나님에 대한 애정 어린 감정이 전면에 부상된다.

굳이 말을 하고 싶으면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의지합니다” “주님, 신뢰합니다”라면서 주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고백한다.
명상 기도는 ‘헌신으로 불타는 사랑’이다(Contemplation is ‘love on fire with devotion’). 우리의 영속에서 흘러나오는 육신의 소리를 잠재우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2)무언의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
우리는 기다림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 많은 말을 할 수 있다. 무언의 응시를 통해 우리는 더 많은 말을 하나님께 할 수 있다.

기다림을 통한 무언의 기도는 우리를 말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는 훈련이다.

오늘날 분주하고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서구식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현대들에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침묵의 기다림이 생소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기다림은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오직 심령의 눈으로 주님만 보고 주님만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의 잡다한 것들로 꽉 채워 있는 내 속을 비워 주님으로 채우는 것이다.

이 침묵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침묵이다.

단순한 침묵이라면 세상의 초월명상이나 불교의 선과 다름이 없다.

기다림은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침묵이다.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예수로 충만하기를 원하는 침묵이다.
이것이 바로 기다림이다. 이때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놓아야 한다.

나의 생각, 기도 제목, 나의 일정 등 모든 것을 주님의 발아래 내려놓고 주님의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시편 46:10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라고 기록한다.
여기는 말하는 ‘안다’는 정보적인 지식을 초월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연합할 때 알아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호흡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과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3)기다림의 결과--영적 결혼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자주 들어갈 때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닮아 거룩해 간다. 영적 결혼이란 우리의 영이 신적 조명(Divine Light)을 통해서 밝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빛으로 이성이 밝아져 영적 눈을 뜨는 것이다.

3.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는 방법
기다림이란 결국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다.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나 자신의 욕망, 뜻, 일정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수 있다.

내 힘으로 내려놓을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임재에 녹아 나도 모르게 다 놓아버리게 된다.

1)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라
2)기다리는 방법, 임재에 들어가는 다른 방법들
①성경 기도(praying the Scripture)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때 기록된 말씀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사모하고 감사하고 신랑이신 예수님을 애정 어린 눈으로 집중하라.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로 초점이 옮겨져서 임재를 느끼면 이제 그분을 애정 어린 마음의 눈으로 응시하라.

②방언 기도
방언은 우리가 하나님께 하는 비밀의 말이며(고전 12:2), 성령으로 하는 기도이다(롬 8:26-27).

따라서 우리가 모르는 비밀을 하나님은 아시고 우리는 모르지만 성령이 친히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의 뜻이나 지혜를 알려주신다.

방언 기도, 방언 찬양 또는 신령한 노래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갈 수 있다.

③찬양
기도는 하나님을 일하시게 만들지만 찬양은 하나님을 싸우시게 만드신다(사 42:12-13; 시 149:6-9; 출 15; 수 6:16; 삿 5; 계 19:1-8).

④성령의 임함이나 안수를 통해
안수를 통해 성령이 임파테이션될 때 안수 받은 자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갈 수 있다.

⑤예수기도(Jesus prayer)를 통해
예수기도란 예수님의 이름을 단순하게 반복하여 부르면서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기도를 말한다.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표준형은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Lord Jesus Christ, Son of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이다.

이 기도는 성경의 여러 구절에 근거하고 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욜 2:32; 행 2:16-2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시 51:1).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 10:47).

이 형태가 다소 변형되어 “주 예수여, 사랑을 베푸소서” 또는 단순히 “주 예수여!” “주여, 도우소서”라고 하기도 한다.

이 기도 속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그의 빛으로 우리 심령을 채우신다. 거울인 예수 속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밝게 비친다. 이 빛은 우리 심령에 반사된다. 순수한 영혼은 마치 사진판과 같다.

⑥성막을 통해
우리는 영적으로 성막의 뜰에 있는 번제단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고(속죄), 물두멍에서 몸을 씻고(회개), 성소 안에 있는 진설병을 먹고(말씀), 금촛대의 빛을 받아(성령의 조명), 향을 피운 후(찬양과 감사의 기도), 지성소에 들어가서 법궤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⑦하나님의 보좌를 응시하기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하늘 보좌를 응시하며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그분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그분과 개인적이고 친밀한 교제를 누려야 한다. 우리가 이런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면 여러 가지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⑧성찬식을 통해
성찬을 일 년에 한 번 정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자주 접하지 못하면 생소해지기 쉬운 것이다.

너무 자주 하는 것도 관념적이 되기 쉬워 문제가 있다. 성만찬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자 하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기대할 때 역사는 더 강하게 일어나는 법이다.

⑨일터나 사업장에서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특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어디에서나 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매일 어느 정도 기도에 시간을 들여서, 주변의 시끄러움에서 차단되어, 내면을 고요하게 하여, 하나님을 응시하면서 그것이 곧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장봉운-

출처 : 행복충전소 † 대명교회
글쓴이 : 행복충전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