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와 그리스도
콘스탄틴 대제의 개종에 대하여는 사가들 간에도 이견이 있어왔다. 스위스의 사가 부르크하르트는 그의 유명한 저서 '콘스탄틴의 생애'에서 콘스탄틴의 거짓된 개종에 대하여 엄격히 다루었으며 이 책은 120여년 동안이나 계속 출판되었다. 그는 과장된 유세바우스의 콘스탄틴의 생애를 반박하였다. 콘스탄틴에 대한 유세바우스의 아첨은 지나쳐 '신에 대한 불경'으로 간주될 정도였다. 부르크하르트는 유세바우스를 두고 '황제찬미가 중에 가장 역겨운 자, 철저하게 불성실한 최초의 고대사가'로 언급하였다. 유세바우스는 콘스탄틴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특히 미래의 황제들을 위한 이상적인 군주의 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오리겐을 따랐던 유세비우스는 시편, 이사야 등에 기록된 메시야에 적용된 구절을 대담하게 콘스탄틴에게 적용시켰다. 심지어 콘스탄틴을 두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로 간주하였다. 콘스탄틴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대변자"였다. 시편 96.12을 인용, "새 노래로......" 콘스탄틴을 찬양하였다. 아구스도의 평화의 때에 그리스도가 탄생, 구약선지자의 예언성취는 콘스탄틴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보고, "한 통치자, 한 제국, 한 하나님"의 선전표어를 등장시켰다. 로마제국은 하나님의 선택된 제국, 그리스도는 로마 시민으로 이 세상에 임하셨다고 믿었다.
콘스탄틴의 회심에는 군주적인 목적이 있었다. 교회와 국가를 자신의 통제하에 확고하게 둠으로서 백성들로부터 효율적이고도 전적인 지원을 필요로 했으며, 정적의 공격으로부터 또 그가 힘들게 손에 쥔 제국을 안전하게 장악해야할 계산을 가지고 있었다. 잔인하고 독재적인 성격에, 마귀적인 영리함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그는 종교의 정치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어떠한 대가를 무릅쓰고서라도 기독교회와 로마제국을 묶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콘스탄틴의 결정은 로마제국 내의 기독교회에 교리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제국종교로의 진전은 곧 배도 그 자체였다. 아직 국가종교는 안되었으나 제국종교가 된 배도의 황제의 교회는 에제는 제국의 한 상징으로 전락하였고 로마제국의 종교를 가져보지 못했던 콘스탄티노플에서는 기독교가 곧 국가종교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이사의 교회'로 둔갑하였고 주교들은 '가이사의 성직자'가 되어 사도적, 정통, 카톨릭을 표방하고 나섰다. 로마의 국가종교는 유유히 정치목적에 이용되었다. 콘스탄틴이후로는 이교에 기원을 둔 바실리카 및 베스타 성전이 건축, 헌당되었고 애굽의 하늘황후 이시스 숭배신앙이 로마교회안에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로마교황에 의해 지정되는 천주교회의 바실리카는 특별히 왕족, 국가원수를 위한 미사집전의 장소로서 그 목적을 수행하고 있으며, 천주교의 수녀제도와 하늘황후 마리아 숭배는 모두 바벨론 종교에 기원을 두고있는 베스타 처녀와 이시스 숭배신앙의 연속이다. 이교사회의 국가에서는 황제를 최고의 수장으로 하는 종교적 예식이 공개적으로 치러져 왔다. 로마제국 국가교회의 최고승원장이 된 황제는 기독교 창설자로 군림, 국가의 조직기구에 교회를 편입시켜 국가의 보호아래 있는 국가교회를 만들어 그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었고, 로마제국의 멸망을 자초한 근본원인이 되었다.
줄리어스 시저는 B.C.63년에 정권을 장악하고 B.C.46년에 자신을 종교의 수반으로 하는 최고승원장이라는 칭호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교회와 제국을 하나로 묶는데 있어서 교회조직은 곧 국가존속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과업일 뿐만아니라 전통적인 권리이기도 하였다. 이교에 기원을 두고 있는 로마제국의 최고승원장이라는 칭호를 대 제사장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황제는 늘 종교영역에 공적인 법적권리를 가져왔으며, 거부권을 행사하는 사법권도 가졌다. 최고승원장 아래에는 고위 성직자들로 구성된 주교단을 두고 통제하였으며, 이 주교단은 오늘날까지 로마교황청내의 추기경단으로 내려오고 있다. 교회 위에 군림하는 황제, 공회를 소집하고 주관하며 결정된 사항을 인가하고 칙령으로 발표하는 것은 교회가 아닌 황제의 소관에 속하였다. 공회를 소집, 대표를 불러 모으고 사회하며, 그의 명에 의해 15-20명 미만의 주교들을 모으는 일도 황제권한에 속한 일이었다. 주교가 일을 등한히 할 때 그는 거룩한(?) 공회를 소집, 신성한(?) 주교들을 불렀다. 거짓된 형용사 칭호들이 오갔으며, 칼케돈, 콘스탄티노플, 니케아, 에베소등의 공회를 소집하고 훈계한 자는 교회가 아니라 황제 자신이었다. 칼케돈 공회를 소집한 마르시온 황제에 대한 쿠사의 키콜라스의 기록은 교리 이단문제 등의 구실로 소집되었던 소위 기독교공회라는 것이 어떠하였는지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칼케돈 공회가 마르시온 황제를 찬양하는 환호를 본다 - '영원토록 기리 추앙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새로운 콘스탄틴(마르시온 황제)이시여!'......." 그리고 여덟 번째 회의는 바실 황제찬양을 기록하고 있다. - '영원토록 기리 추앙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새로운 콘스탄틴이시여, 새로운 마르시온이신(바실) 황제시여!'.........." 이러한 체계는 모든 제국 위에 군림하였던 크리스찬 제국과 모든 크리스찬 왕들과 군주들보다 높으신 황제자신의 지상 우위권의 참된 근거를 분석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발렌티니안과 마르시온 황제들은 (로마제국의 고위성직자들에게 고한 칙서에서)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오는 9월 첫날에는 니케아시로 서둘로 오도록 하시오. 온 세상에 유익된 공회참석을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죄를 범하는 자이며, 우리 제국의 권위에 대적하는 자이다.'....." ".....그(황제)는 다음과 같은 말로 법을 채택하였다. "교부들의 전통을 따른 거룩한 카톨릭 신앙은 거룩한 종교회의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제 이후로 종교문제에 관한 모든 논쟁은 이 법에 의하여 정당하게 효과적으로 제거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러므로 만약 누구든지, 그가 평민이든, 고용된 군인이든, 혹은 성직자와 관계된 자든, 신앙에 대해 공적으로 의견을 달리하거나 혹은 민간을 소요케 하는 자는, 그가 평민일 경우에는 가장 거룩한 성으로부터 추방될 것이며, 군인일 경우에는 군에서 제거될 것이며, 성직자일 경우에는 성직을 박탈한 후에 추가로 벌을 가할 것임을 공고한다." 거룩한 종교회의는 "기독군주여 만수무강하소서. 오 군주여, 만수를 누리소서!"라고 환성을 질렀다. 콘스탄틴 이후로 뿌리를 내려온 사탄의 '교회와 국가의 일치사상'으로 인해 10세기 이후로는 로마교회가 오히려 국가를 흔들기에 이르렀다. 1440년. 로마카톨릭교회 안에서 태어난 합스부르크가의 출범과 더불어 로마교황들은 옛 최고승원장을 자유로이 취하였으며, 20세기 말엽의 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에 이르기까지, 역사상의 모든 교황들이 이 칭호를 탈취, 로마카톨릭교의 본질이 로마제국의 연장임을 스슬 노출하고 있다. 교황권제도 자체가 하나의 스캔들임에도 불구, 세상은 이 세력이 종교의 얼굴을 가지고 오랜 세월을 두고 속에 품어온 거대한 정치조직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마22.15-22)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단순히 세금문제를 두고 언급하신 것 만은 아니었다. 다가올 세상에서의 성도들이 세상과 분리되고 성별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시사하셨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단호하게 언급하셨던 것이다.
사탄에 볼모잡힌 로마카톨릭교회는 애초에 '그리스도냐? 가이사냐?"의 갈림길에서 저들이 선택한 가이사의 세력을 더욱 깊이 속에 품었다. 국가와의 경쟁 '시소'게임은 이제 판결이 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옛 로마황제의 칭호에다 '아비'(the Pope/PAPA=Pater Paterum/Father of Fathers - 마23.9,10)를 추가, '우리 주 하나님 교황'(Our Lord God the Pope)이 되었다.
|
'주 예수 그리스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여호와의 증인에게 드리는 편지 (4) (0) | 2012.12.21 |
---|---|
[스크랩] 예수 그리스도의 세가지 직분론 (0) | 2012.12.21 |
[스크랩] 예수님과 십자가 (0) | 2012.12.21 |
[스크랩] 마태가 소개한 예수 그리스도 (0) | 2012.12.21 |
[스크랩]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0) | 2012.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