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빌 2:1-11
2012. 8. 19
15세 가난한 소년이 실명을 하고 몇 번 자살 시도를 하다가 “내가 죽어도 유서는 한 장 남기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점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소년은 점자 공부를 하던 어느 날 선생님의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인간에게는 4가지 눈이 있다. 물질을 보는 육안, 지혜를 터득하여 가지는 지안, 마음으로 보는 심안, 하나님을 믿을 때 신령한 것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있다.”
옛말에 “내 몸이 100냥이면, 눈은 99냥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눈은 사람에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소년은 99%를 잃고, 1% 남은 비참한 인생을 절망하고 자살을 택했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99냥의 눈을 다 잃은 것이 아니고, 99냥의 4분의 1인 육안만 잃고, 지안, 심안, 영안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내 인생의 99%를 잃은 것이 아니고, 겨우 25%도 안 되는 육안을 잃었구나. 아직도 내 인생이 내게 1%만 남은 것이 아니고, 아직 75%가 남았다’고 생각하니, ‘육안을 가진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지안, 심안, 영안에 내 인생을 걸자!’라는 새로운 인생관을 가지고 새 출발을 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마침내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서 총신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분이 이재서 교수님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자들은 자기 죄를 보지 못합니다.
‘육신의 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은 영안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영안이 밝아 신령한 것을 보고 분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영안이 열리지 않고, 육안과 지안과 심안으로 살았을 때는 그 이름이 사울이었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대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강력한 빛으로 나타나셔서 사울을 만나주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사울에게 들려주셨을 때, 핍박자 사울은 육신의 시력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영안이 열려 예수님을 그의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여,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안으로 살 때 자기를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로, 죄인 중에 괴수였다”(딤전1:13, 15)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영안이 열린 이후에는 예수님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님을 위한 종으로만 사는 것을 기쁘게 여겼고, 날마다 자기를 쳐서 예수님께 복종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예수님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라고 말한 뒤, 예수님의 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선포했을까요?
그 이유는 인간의 마음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에서 부패하고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로 부패하고 타락하였을까요?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은 같은 장소에서 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결과는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드린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형인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형 가인은 자기 동생 아벨에 대해 시기와 분노의 마음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품고 있던 그 악한 마음에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형 가인은 아무도 보지 않는 들판에서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느냐?’에 대한 대답인 것입니다.
또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인간이 범한 최초의 살인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다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죄악의 뿌리를 가진 인간에 대하여 마 15:19에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1.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의 마음은 자기를 부정하고, 스스로 낮아지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보세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 합니다.
“그”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 단지 위격상 하나님은 아버지요, 예수님은 아들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은 동등한 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스스로 여기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라고 선포한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은 자기를 부정하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자기 부정’이란 자신을 무시하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비하하며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존귀하신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덜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말할 수 없이 존귀하신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을 그 예수님에 비해 보면, 배설물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울이란 이름을 자랑하며 철저한 율법주의자로 살아갈 때, 그는 자신의 가문과 학벌과 지위를 한껏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이름 사울이 뜻하는 것처럼 자신을 스스로 "큰 자, 교만한 자"로 여기며, 이제 갓 태어난 초대교회를 핍박하고, 심지어는 그리스도인을 잡아가두기 위하여 다메섹까지 달려가는 잘못된 열정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울, 그의 이름이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작은 자, 겸손한 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십자가를 외치는 예수님의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유대주의자였던 사울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울법주의자였던 사울이 복음의 사도로 변화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울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울에서 바울로 변화된 이후 이제까지의 그의 모든 인간적인 자랑거리를 버렸습니다.
베냐민 지파라는 훌륭한 가문도,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최고의 학문과 학벌도,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라는 명성도,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
직도 모두 내던져 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히려 자신을 ‘예수님의 흔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외쳤고, ‘나의 가장 큰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나는 날마다 예수님 때문에 죽노라’고 선언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겸손한 자가 된 것입니다.
빌 3장을 보면, 더 깊이 있는 사도 바울의 귀한 신앙고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7~8).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8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8절).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복종’이란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따르는 행동입니다. 내 생각과 다르고,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고통을 자신이 직접 감당하시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기도하십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임을 아시는 예수님은 이제까지 부르짖었던 기도를 완전히 바꾸십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2. 예수의 마음을 품은 자에게 주시는 은혜
사도 바울은 “내가 철저하게 체험한 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라”고 강력하게 명령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라”고 이렇게 명령과 같이 엄하게 권면한 것은 자기가 체험한,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너무나 귀한 하나님의 축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에게서 받게 되는 축복의 은혜는 겸손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낮아져 겸손해지는 축복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기독교에는 당연히 신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될 수 있습니까?
사도 요한은 이 사실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 14)
말씀이시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었던 그 비결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낮아지신 겸손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성육신 사건에 대하여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7절에서 가르쳐 줍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은 마 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배우라는 말씀입니까?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마음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또 낮아지신 예수님은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나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낮아진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사 57:15) 곧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에게서 받게 되는 축복의 은혜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기쁨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아 은혜로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의 총 주제는 ‘기쁨’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
하다가 그 악명으로 이름난 빌립보감옥에 갇힌 자가 되었지만, 오히려 기뻐하며 말합니다.
“종말로 나의 현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빌3: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서로 불화하고 있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도 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4:2)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기뻐하라’고 권면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우리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우리 주님 예수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살전 5:16)입니다.
연약한 우리가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을 당해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오늘과 같은 힘겨운 세상에서 ‘예수의 마음을 픔고 기뻐하며 산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에게서 받게 되는 축복의 은혜는 평강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께서 평강을 축복의 은혜로 주셔서 누리게 하십니다.
이유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교인들에게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예수님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로 옷 입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골 3:15)고 간절하게 부탁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고 강력하게 격려합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이 주님으로 내 안에 함께 하시면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 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 한다”(고후4:8)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이유로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 안에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힘들고 어려울 때나 마음 둘 바를 몰라 방황할 때 꼭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입니다.
이 찬송은 찰스 가브리엘이 빌2:5의 말씀을 배경으로 하여 작사, 작곡했습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고난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때, 이 세상의 악과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소유하게 됨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후렴/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2. 주 모습 내 눈에 안 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 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3.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십자가 고난을 이겨내신 주님의 마음 본 받음이라.
4.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날엔 뭇 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 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1, 2, 3절 공히 예수님을 본받음으로써 비롯되는 결과에 대해 나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으면 평강이 찾아옴으로 험한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되고(1절), 신령한 말씀을 늘 배울 수 있게 되며(2절), 항상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을 깨닫게 되어(3절),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자들이 장차 누리게 될 영광과 평강에 대해(4절)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그 어떤 곳이 되었든지 평강이 넘치게 임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과 삶은 ‘그 마음에 어떤 것을 품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그 행동이 나타납니다. 그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부지불식간에 행위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있어 자기 속에 품은 그 마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선행도 마음에서 나오고, 악행도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 6:45에서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에 임하셨고, 스스로 낮아지셔서 겸손하셨습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왔다(막 10:45)”고 선언하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과 제자들 앞에서 군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품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시며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무릎을 꿇고 냄새나는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낮아진 우리 그리스도인은 남의 발을 닦아줘야 합니다.
우는 자와 함께 하며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줘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의 특징은 겸손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예수의 마음을 품고 겸손히 낮아져야 합니다.
손해를 보아도 낮아져야 합니다.
멸시를 당해도 낮아지고 겸손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을 낮추되 죽음에 이르기까지 낮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대로 서로가 종이 되어 섬겨야 합니다.
잠언 기자는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 29:23)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성도들은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가르쳐 줍니다.
이렇게 소중한 마음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성도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십니다.
9절을 보세요.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라고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즉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살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시되, 지극히 높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늘푸른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험악한 세상을 이기며, 주님이 주신 기쁨으로 원망과 불평함이 없이 믿음을 잘 지켜,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살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천국을 소유하길 바랍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고, 착한 양심과 선한 믿음으로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한 마음으로 품어,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먼저 돌아볼뿐더러,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아보아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여,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고 비밀하신 은혜와 평강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우식목사님설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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