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World Council of Churches)란 세계 교회들의 협의회란
WCC(World Council of Churches)란 세계 교회들의 협의회란 말입니다.
여러분 이번 교황의 한국방문을 통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로마카톨릭은 교황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회들은 하나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회들도 하나의 기구아래서 하나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생겨난 것이 WCC 세계교회협의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영상을 통해서 보았던 것처럼 WCC는 교회들의 하나 됨만 아니라 모든 종교들의 하나 됨도 추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WCC는 공산주의와도 하나 됨도 추구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WCC총회가 부산에서 있었습니다. 우리 교단과 함께 여러교단들은 일제히 WCC총회를 반대해왔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WCC의 문제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다음세대를 바라보면 WCC의 문제는 크게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동안 WCC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WCC는 자유주의신학의 집합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단만이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을 더 크게 위협하는 것이 자유주의 신학입니다. 서구의 교회가 몰락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구의 교회들이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 때문에 몰락한 것이 아닙니다. 서구의 교회는 자유주의신학 때문에 몰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WCC는 바로 그 자유주의 신학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자나라는 젊은 세대들은 이제 보수주의 신학, 개혁주의 신학보다 자유주의 신학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WCC에 대해서 살펴봄으로 진정한 성경적 하나 됨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WCC는 종교다원주의와 함께 구원다원주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1990년 WCC의 바르선언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 항상, (예수그리스도 없이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항상 존재해 왔음을 자각한다. --기독교인인 우리의 증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경험한 구원에 언제나 집중하겠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제한할 수 없다(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고 합니다.
그러니까 불교를 믿던, 힌두교를 믿건, 이슬람을 믿건, 유대교를 믿건, 무당종교를 믿건 그 가운데도 얼마든지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행4장12절. (예수그리스도 외 에)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WCC가 예수그리스도외에도 얼마든지 구원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까?
2. WCC가 해방신학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WCC는 방콕대회(1972)와 나이로비 대회(1975)에서 해방신학을 “WCC의 신학”으로 채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방신학이 무엇인지를 알아야겠습니다.
/해방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은 억압받고 압제 받는데서 해방 받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로의 손에서 출애굽함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해방신학에서는 어떻게 해석을 하는가 하면 바로는 정치적으로 독재세력이고, 억압 세력, 또는 가진 자의 세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은 애굽에 있는 가난한 자들, 압제를 받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출애굽이란 가난하고 압제를 받는 자들이 억압을 하는 자들에게서 정치적으로 해방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가난하고 억압을 받는 자들이 억압하는 세력으로부터 해방 받는 것을 해방신학에서는 구원이라고 합니다.
/또 해방신학에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모든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대표라고 합니다. 그리고 로마정부를 억압하는 세력으로 봅니다. 그래서 해방신학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억압세력에게서 가난한 자의 대표인 예수가 죽은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예수의 부활은 실재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억압세력에 의해서 죽은 예수의 정신이 다시 부활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방신학, 우리나라에서는 민중신학에서는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죽은 사람들의 피를 예수님의 피와 같은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사들이 죽었지만 그 저항의 정신이 우리에게 부활되어 살아있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을 들으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남미와 같이 오랫동안 식민지배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이 소리가 정말 새로운 구원의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독재정부를 타도하고 그것에서부터 해방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보았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라고 있습니다. 이들은 해방신학에 빠져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시국사건이 있을 때 마다 길거리에서 미사를 하면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시국사건이 있을 때 마다 길거리에서 미사를 하면서 시위를 합니까? 이들의 목적은 오직 정권타도에 있습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단순히 민주화라고 하는데, 해방신학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구원이라고 봅니다.
/요즘에는 덜하지만 과거에 우리나라도 민주화가 되지 않았을 때 이런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을 부르짖는 것에 대해서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을 했습니다.
/WCC가 이런 해방신학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WCC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악을 퇴치시키기 위한 사회주의 건설이 WCC의 지상목표이다.”(제2차 총회, 1954년 8월, 미국 에반스톤)
“마르크스주의는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위한 필수이념이다.”(제3차 총회, 1961년 11월, 인도 뉴델리)
“보다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하여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파괴원리는 허용되어야 한다.”(1966년 제네바)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말도 들을 수 있는 때가 왔다.”(제5차 총회, 1975년 11월,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공산주의가 베트남에서 승리한 것은 베트남 인민의 위대한 해방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다. 이 위대한 베트남의 승리는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전 세계 인민을 고무시키고 있다.”(1977년, WCC 필립 포터 박사, 중앙위 기조연설에서).
또 작년에 10월30일~11월8일까지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10차 총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평화통일성명서)’를 채택했는데,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WCC 평화통일성명서는 “▲남북한 교회의 협력과 연대를 골자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북한정권에 대한 경제제재·금융제재 해제 ▲외세(外勢)의 한반도에서의 모든 군사훈련 중단, 즉 한미(韓美)연합군사훈련 중단과 韓美군사동맹 무력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지도가 힘의 균형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새로운 ‘신냉전’의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존재하는 미국(美國)의 강력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힘 때문에 새로운 긴장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있는 모든 외세(미국을 가리킴)들이 한반도에서의 모든 군사훈련 중단, 외국의 개입 중지, 군비축소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창의적인 과정에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고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북한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같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미군과 함께 하는 군사훈련을 중단하라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가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 이런 일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또 성명서는 “우리는 이런 선도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역사적으로 상징성이 있는 시기가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주년이 되는 2015년이라고 본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마치 지금 우리나라가 일제식민지로 있는 것처럼 미국에 속박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0년 전에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되었듯이 우리나라도 미국에서 해방되자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러면 WCC에서 왜 이런 성명서를 발표합니까? 왜 천주교정의사회구현단에서는 나올 때 마다 왜 정권퇴진을 요구합니까? 그 이유는 가지고 있는 해방신학적인 구원관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통한 죄와 사망에서의 구원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없애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은 나라를 꿈꾸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한국교회 대형교단들(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 한국기독교장로회, 성공회, 기독교하나님의성회-기하성, 예장백석, 구세군)과 대형교회 목사님들조차도 WCC에 가담했다는 사실입니다.
1)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는 무엇이 구원이라고 합니까?
성경에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사탄의 권세로부터 나오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엡2:1-5절을 찾아보겠습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여기서 5절에 보면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 본문에서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1절에 우리와 허물과 죄로 인해서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다시 살아난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또 2절에 보면 우리가 죄 가운데 행했을 때 우리는 이 세상의 풍조를 쫓았고, 또 공중권세 잡은 자 사탄을 따르던 자였습니다. 이런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해방신학자들이 성경에 나오는 바로는 단순히 억압세력으로 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출1:8절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로에게 큰 압제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이전에 애굽의 왕들은 이스라엘과 같은 셈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함의 후손입니다. 창9장에 보면 하나님은 이제 셈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셈의 후손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함의 후손들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이스라엘백성들을 압제하는 것은 사탄의 세력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억압하고 압제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10가지 재앙들은 모두 애굽 사람들이 믿었던 신들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읽지 말 것).
1. 나일강의 물이 피가 되게 함(7:14-25) - 나일강의 신 니루스 심판
2. 개구리로 온 땅을 덮게 함(8:1-15) - 다산신인 개구리 형상의 헥트 심판
3. 애굽 온 땅의 티끌이 이(빈대, 모기)가 되게 함(8:16-19) - 땅의 신 셉 심판
4. 파리떼 일으켜 사람들과 짐승들 쏘게 함(8:20-24) - 투구풍뎅이 신 케페라 심판
5. 모든 생축이 악질이 생겨 죽게 함(9:1-8) - 수소와 암소의 신 아피스와 하톨 심판
6. 재를 뿌려 독종(붉게 타들어가는 피부병;욥)이 생기게 함(9:9-12) - 악마의 눈을 가진 신 타이폰 심판
7. 하늘에서 우박이 내리게 함(9:18-21) - 대기의 신 슈 심판 징치
8. 메뚜기로 푸른 곡식을 먹게 함(10:4-19) - 곡식을 지켜주는 신 세라피스 심판
9. 캄캄한 흑암이 3일간 온 애굽을 덮게 함(10:21-29) - 태양신 라 심판
10. 장자를 죽이는 재앙(12:29-33) - 생명의 신 프타 심판
그러니까 출애굽이란 정치적인 해방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린양의 피로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시켜주신 사건입니다.
또 해방신학자들이 말하는 히브리인들이란 애굽에 있었던 가난한 계층이 아니라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가키려 히브리인들이라고 합니다.
창14:13절에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여기서 아브라함을 가리켜 처음으로 히브리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히브리인이란 강을 건너서 온 자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에 갈대아 우르에서 유브라데 강을 건너서 왔다는 의미에서 히브리인이라고 합니다. 또 아시다시피 아브라함은 부자였습니다.
또 창39장 14절에 아브라함의 후손인 요셉을 히브리인이라고 했습니다.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요셉)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여기서 요셉도 애굽에 있던 가난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애굽에 있는 가난한 자의 계층을 히브리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이단과 같이 자유주의신학자들도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결과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우리는 죄를 사하시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구속, 구원)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나)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도 속량 혹은 옛날 성경에서는 구속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구속이란 말은 예수님의 피 값을 지불하심으로 사탄의 권세아래 있던 우리가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출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구원이란 사탄의 권세에서 우리가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또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2)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은 결과 우리가 이미 어떻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구속, 구원)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 결과) 엡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나)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이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WCC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종교인들이 서로 하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분명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해서도 너희들은 영적으로 사탄의 자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러니까 공자도 맹자로 석가모니도 모두 영적으로 말하면 모두 사탄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경에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결과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이제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13절만 읽을 것).
엡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하나가 되었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가족)이라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어야합니까? 아니면 이미 하나가 되었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가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는 무슨 피가 흐르고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또 우리 사이에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피 입니다.
서로 다시 한 번 더 손을 잡아보시기 바랍니다. 액체가 느껴질 때까지 손을 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 피를 예수님의 피라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따라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WCC에서는 굳이 어떤 조직을 만들어서 하나의 기구로 하나를 이루어보려고 합니다. 심지어 그 안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다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 도무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정말 순교를 각오하더라도 우리는 절대 WCC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다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누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인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모든 사람입니다. 택하심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을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누구를 보고 하나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로 모이면 그것은 하나님의 대적하는 바벨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요17장에서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가 되기 위해서 기도하셨던 대상이 누구입니까?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예수님의 제자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제자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예수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여기서 결혼한 신혼부부가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부부입니까? 아니면 부부가 되어야합니까?
이미 부부입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부부가 되어야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미 한 몸이 되었고,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한 이제 우리가 더 구체적으로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하나가 되어야한다고 했습니까?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러면 어떻게 구체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WCC와 같은 제도와 조직이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처럼 서로 교통하고 교제함으로 구체적으로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어떻게 교제해야한다고 했습니까?
1)서로 안에 있는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봄으로 서로 교통하고 교제해야한다고 했습니다.
2)서로가 서로의 안에 있음으로 서로 교통하고 교제해야한다고 했습니다.
3)서로가 잘 앎으로 교통하고 교제해야한다고 했습니다.
4)서로 사랑함으로 교통하고 교제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이단만 아니라 WCC와 같은 자유주의 신학을 잘 분별하면서, 우리가 더욱더 그리스도안에서 구체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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