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론과 무신론 및 일원론과 이원론 |
보통 조직신학은 7개의 주제로 이루어집니다.
그 7가지 주제란
성경론, 신론, 인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을 의미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성경론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부터 성경론을 끝내고 신론이라는 주제로 들어와 몇 가지 논점에 관해 살
펴보고자 합니다.
조직신학의 출발점을 많은 학자들은 "성경론 즉 계시론"으로 보고 있지만 일부분의 학자
들은 "신론"을 조직신학의 출발점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들은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조직
적인 지식이다"라고 정의를 하기 때문에 조직신학이 "신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
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려 주는 것이 성경이기 때문
에 성경론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 더욱 타당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신학은 두 가지 사실을 전제로 출발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존재하신다"는 사실
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은 그 자신을 성경을 통해 계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신
론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
늘날 여러 방면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함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여러 신을 등장시킴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격하시키고 있습
니다. 이 시간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과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에는 어떠
한 모습들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1. 무신론
무신론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인데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여러 가
지 의견들이 있습니다.
첫째, 교리적 무신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철학적 무신론이라고 하기도 하며 정신적, 영
적 세계가 있는 것을 단호히 부정하는 이론입니다. 이러한 이론을 따르는 자들은 가장 철저
한 무신론자들입니다.
둘째, 회의적 무신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불가지론이라고도 말하며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합니다.
셋째, 비평적 무신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며 무신론의 입장을 택하고 있습니다.
넷째, 신학적 무신론이 있습니다. 급진신학과 사신신학이 이러한 입장을 위하고 있습니다.
급진신학에서는 성서를 신화가 지배하던 고대 세계의 문학적 작품으로 봅니다. 그리고 사신
신학에서는 고정관념에 잡힌 정통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신은 진정한 신이 아니라고 주장
합니다.
다섯째, 사회학적 무신론이 있습니다. 하나님이란 사회가 개인의 사고와 행위를 지배하기
위해 조작해낸 상상적 존재로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이 자기 존속을 위해 신의 관념을 만
들었다는 주장입니다.
여섯째, 심리학적 무신론이 있습니다. 종교는 자연에 대한 심리학적 방어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아버지라는 이미지를 하나님께 투사시켜 신의 존재를 만들었으므로 세계
를 직시하면 사라지게 될 환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일곱째, 과학적 무신론이 있습니다. 신의 존재는 무지한 고대인들에게나 통하는 것이지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는 필요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 이론은 고대와 중세의 무지했던 종교
가들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여덟째, 실천적 무신론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
없이 자기가 하나님 노릇을 하며 생활하는 외식하는 신앙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바로 실
천적 무신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유신론
유신론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인데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여러 가
지 의견들이 있습니다.
첫째, 다신론이 있습니다. 헬라신화에서처럼 수많은 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 범신론이 있습니다. 원리적으로는 불교, 철학적으로는 헤겔의 논리와 유사합니다.
이 이론은 신과 인간과 자연은 같다고 하여 만유신론이라고도 합니다.
셋째, 일신론이 있습니다. 많은 신을 인정하되 특별히 한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 일신
론은 다른 신을 배격하지 않습니다.
넷째, 이신론 또는 자연신론이 있습니다. 신의 초월성을 인정하나 내재성을 부인합니다.
즉 신의 창조를 인정하나 섭리를 부인합니다.
다섯째, 유일신론이 있습니다. 자기들의 신만을 인정하고 다른 신들을 배격합니다. 기독
교, 회교, 유대교가 이러한 입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잘 주목해 보십시오. 그 중에서 특별히 일신론과 유일신론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예수님으로 계시된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는 유일신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일신교이기 때문에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 분의 신을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간혹 어떤
분은 왜 삼위일체가 그토록 중요하냐고 묻곤 하는데, 바로 기독교가 유일신교라는 대 명제
에 어긋나서는 안되기 때문에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유일신교라는 대 명제에서 기독교는 일원론(一元論)을 주장합니다. 일원론이란
"모든 것의 원류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대립의 연장선상에서 하나님과
사단이 대립한다는 이원론적인 개념은 절대 기독교의 사상이 아닙니다. 이원론은 마치 사단
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놓는 치명적인 신학적 오류에 빠지게 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창조
한 천사가 타락한 존재이지 절대 스스로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원론의 폐해는 참으로 심각합니다. 그래서 그 철학적 사상이 통전적 믿음, 통전
적 인격을 저해합니다. 여러분! 잊지 마세요. 믿음과 실천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교
회생활과 가정생활은 따로 분리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의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속의
인간관계가 따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영혼은 깨끗하고 육신은 더럽다는 식으로 영혼과 육신이 서로 대립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육신으로 부활하셨다는 점이 그래서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적 근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침례교단의 어떤 유력한 교회가 이단 문제로 시끌시끌한 것을 여러분들도 알고 있
을 것입니다. 저도 7년 전에 그분의 부흥회 설교를 몇 편 들어보았습니다. 강한 헌신을 도
전하는 그분의 설교는 은혜스러웠지만 학자들이 보기에는 지나친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왜
냐하면 강한 헌신을 도전하다 보니까 "육신은 더러운 것이고 영혼은 깨끗한 것"이라는 이원
론적인 개념이 설교의 전반을 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목도 "영혼의 때를 위하
여"라고 했는데 제목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도 그분 설교에 "육신은 때려잡을 놈"이라는 표
현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헌신을 도전하는 측면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만 그것이 기독교의
대표적 원리인 일원론을 부정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져서는 안되겠지요.
그분이 요새 어떻게 설교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침례교단에서 그분을 보호하
려고 하는 것을 보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 그분이 조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
실 지극히 조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가끔 성경학자들과 신학자들이 그 문제를 지적하면
편협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왜 저리 편협하냐구요. 그러나 기독교
가 일원론이라는 것, 유일신교라는 것, 삼위일체라는 것은 기독교의 대 뿌리이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학자들이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일원론을 부인하면 그
설교가 아무리 은혜스러워도 기독교 전체를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귀에는 이원론적인 설교가 더 헌신적인 설교로 들려집니다. 주님을 위해 가정도
버리고, 먹고 마시는 육신적인 일을 다 버리라는 것이 더 헌신적인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제자의 도는 "가정도 소중하고 육신도 소
중하다"는 일원론적인 기본 틀에서의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지 "영혼은 깨끗하고 육신은 더
럽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이원론적인 자세를 통한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독교의
대 뿌리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일원론의 종교이다. 기독교는 유일
신교이다."
이원론적인 믿음은 일시적으로 유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원론적인 믿음이 얼마나 많은 폐해를 가져다주는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한 명이 이원론적인 믿음을 가지면 그 열 배 이상의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주님을 멀리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원론적인 믿음의 폐해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독교는 일원론에 입각한 유일신교이고, 주님은 우리에게 통전적 믿음, 통전적 인간상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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