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격이신 성령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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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목사와 함께하는 신학 산책
오늘의 본문 | 요한복음 14:16-17, 26, 개역개정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격이신 성령 1
오늘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격이신 성령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성령에 적용된 호칭
둘째, 성령과 다른 위격과의 관계
셋째, 성령의 인격성
이번과에서는 세 가지 주제만 살펴보고 다음과에서 남은 두 가지 주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넷째, 성령의 신성
다섯 째, 성령의 사역입니다.
1 성령에 적용된 호칭
성령의 단어적 의미
성령은 한자로 성스러울 성 聖 신령 령 靈 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루아흐(רוח ruach), 헬라어로 프뉴마(πνεῦμα pneuma), 라틴어로 스피리투스(spiritus)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숨을 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루아흐나 프뉴마를 번역할 때 생기, 호흡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창2:7, 6:17, 겔37:5-6). 어떤 때는 바람이란 뜻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창 8:1, 왕상 19:11, 요 3:8). 또 거룩한 의미의 하게온 (ἅγιος)을 붙여서 프뉴마 하게온이라고 사용하기도 합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성령에 대한 호칭들
구약은 성령에 대해 주로 <하나님의 영>, <주의 영>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이라고 기록된 곳은 몇 곳 뿐입니다. 반면 신약은 주로 <성령>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성령을 <하나님의 영>, <아들의 영>이라고 하고, 어떤 때는 <그리스도의 영>, 어떤 때는 예수를 주로 하여 <주의 영>이라 하기도 합니다. 구약에서 <주의 영>이 성부를 가르킨다면,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킵니다. 이것은 모두 제3의 위격인 성령을 부르는 호칭들입니다.
2 성령과 다른 위격과의 관계
성령과 다른 위격과의 관계는 교회가 처음 탄생된 때부터 논쟁이 되었던 부분이기도 했고, 이단정죄를 가장 많이 했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잘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며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초기 논쟁부터살펴보겠습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초기 논쟁 주제들
하나님에 대한 첫 번째 논쟁은 ‘성자가 과연 하나님인가, 아니면 피조물인가?’ 입니다. 그렇다면 ‘성부가 성자를 낳았다고 하는데 성부와 성자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본질이 종속되었는가, 아니면 동일한 본질인가?’ 입니다.
첫 번째 논쟁 주제는 BC 325년에 확정됩니다. 교회는 이 주제로 오랜 기간 고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논쟁 주제가 성령이었습니다.
‘성령이 과연 하나님인가, 아니면 피조물인가, 아니면 어떤 힘인가?’ 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즉 성령의 신성에 관한 논쟁이었습니다. 성령에 대한 다음 논쟁은 ‘성령과 다른 위격과의 관계는 어떨게 되는가’, ‘종속되어있는가?’ ‘성령이 발출되었다는데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또 성령에 대해 지속적인 논쟁이 있었습니다. ‘과연 성령이 성부에게서만 발출했는가, 아니면 성자에게서도 발출했는가?’ 이에 대한 논쟁은 589년 ‘우리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을 믿는다’ 라고 톨레도 회의에서 확정됩니다. 그런데11세기 다시 이 문제 때문에 교회가 동서로 갈라지게 됩니다. 동방교회(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는 성령이 성부에게서만 발출된다고 했습니다. 서방교회(로마 카톨릭, 개혁교회) 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성을 가지고 얼마나 오랫동안 논쟁을 했는지 교회사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교회가 동과 서로 갈라졌다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잘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되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2) 성부,성자,성령 세 위격들 간의 관계성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라고 합니다. 누가 보내는 것입니까? 아들입니다.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데 누가 보내는 것입니까? 아버지도 보내고 아들도 보내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지금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에 그들과 함께 계속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를 말해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여 하나님께로 올라가야 교회에게 좋은 일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께서, 즉 성자께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부만 성령을 파송합니까? 아니면 성자도 성령을 파송합니까? 둘 다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교회가 동서로 갈라집니다. 계속해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성령은 성부에게서만 파송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부에게서만 발출되는 것이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발출됩니다. 이것이 성령과 성부와의 관계입니다. 성령과 성자와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성부를 파송하거나 발출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성자를 파송하거나 발출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각 위격들간의 관계성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성부는 성자를 발생합니다. 이를 영어로는 제너레이션 generation 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보통 사람이 ‘낳았다’ 라고 하면 birth를 쓰지 generation을 쓰지 않습니다. 사람이 마치 배가 아파 낳았다는 것으로 이해할까봐 발생 gener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성자는 성부와 함께 성령을 발출합니다. 파송합니다. 영어로는 procession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파송 spiration 용어정의: https://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spiration
이라는 용어는 그냥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성자는 성부와 함께 성령을 발출합니다. 성령은 발생과 발출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 위격과의 관계입니다.
발생과 발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본체 안에서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의 내재적인 사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본체 안에서 성자의 위격을 성부가 발생하는 것이고, 성령의 위격을 성부와 성자가 발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 안에서의 영원한 필연적인 행위입니다. 그래서 무시간적인 행위입니다.
3) 성부와 관련된 성령의 칭호들 : 성부와 성령이 밀접한 관계
성령을 성부와 관계된 호칭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령을 부를 때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신(창1:2, 고전 6:11, 고후 3:3)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6-21절에 보면 예수님이 안식일 날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펴 읽으며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라는 말씀을 읽고 나신 후, “이 말씀이 오늘 너희에게 응하였도다” 라고 하십니다. 이때 주의 성령에서의 주는 성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아버지의 성령(마 10:19-20)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은 성부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통달하고 알고 계십니다(고전 2:10-11). 성령이 성부와 밀접한 관계인지 아닌지를 성경을 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0:19-20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회에 넘겨졌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준비하지 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다.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가 있다.” 고 하십니다. 그는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고 하십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까?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재판에 회부되거나, 또 누군가와 말을 할 때 우리 안에 계신 아버지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할지까지도 말씀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과 성부와 밀접합니까?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2:10-11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제3위격이신 성령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통달해서 알고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부와 성령과의 관계가 밀접함을 우리는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성령이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우리에게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나에게 무슨 생각을 넣어주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를 모르고, 내 육신의 소욕, 내 자아적인 이기심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성령의 이끌림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안에 계신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라고 우리 안에 성령을 넣어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욕심을 챙기라고 성령을 넣어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소욕을 쫓아가라고 우리 안에 성령을 인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런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이 주는 생각인지, 자기가 하는 생각인지 구별을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장치까지 해두셨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이제 아들과 관련된 성령의 칭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4) 아들과 관련된 성령의 칭호들 : 성자의 사역과 밀접한 관계
아들과 관련하여 부르는 성령의 호칭들은 그리스도의 영(롬 8:9), 아들의 영(갈 4:6), 예수님을 주님으로 했을 때 주의 영(행 5:9)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16-20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이 이야기는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시면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시 온 것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성자와 성령은 이렇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5) 성령의 사역은 성부와 성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구속사역)
요한복음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이 거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분이 여러분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거룩이 완성되고, 우리 부활이 완성되고, 우리가 영화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부활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의로워질 수 있습니까? 절대 불가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타락한 이기적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다 지킬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키지 못하는 것을 대신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듭 태어났어도 육신의 본성, 옛사람이 그대로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기분이 좋았다가도 또 나빠집니다. 사랑했다가도 미움이 생깁니다. 이러면 우리는 구원받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에 동참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거룩한 길, 신령한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사역입니다. ‘어떻게 하시는가?’ 성령을 통해서 하십니다. 성령은 성부의 모든 것을 다 통달하고 알고 계십니다. 성부가 계획했던 모든 것을 성자가 다 알고 와서 다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자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성령이 그대로 다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우리에게 증언하시면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것이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사역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거룩이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몸도 부활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사역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없으시다면 하나님의 거룩이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몸이 부활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지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성경을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6:14-16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이것을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성부 하나님의 것이 성자 하나님의 것이고, 성자 하나님의 것이 성령 하나님의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성부의 것을 성자가 그대로 가지고 오고, 성자의 것을 성령이 그대로 가지고 와서 저와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역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①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확정
‘성자가 과연 하나님인가? 아니면 피조물인가?’ 즉 성자의 신성
성부가 성자를 낳았다(발생, generation) 하는데, 과연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성부는 성자에게 종속되었는가? 아니면 동일한 본체이며 동일한 본질인가?
② 381년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
과연 성령도 하나님인가? 아니면 피조물인가? 즉 성령의 신성의 문제
성령과 다른 위격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성령의 발출
③ 589년 톨레도 종교회의 – 성령과 다른 위격과의 관계
성령은 성부에게서만 발출하는가?
아니면 성자에게서도 발출하는가?
확정 : 우리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 교리의 문제가 11세기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갈라지게 된다
동방교회 –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성부에게서만 발출
서방교회 – 로마카톨릭 교회 – 개신교회(개혁)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procession)
3 성령의 인격성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했던 사람들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만 살펴보겠습니다. 초대교회에도 단일신론자들은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성령파들이 있었습니다. 이때 이들은 성령을 어떤 인격으로 보지 않고 힘, 권능, 능력, 바람, 불, 냄새로 보았습니다. 성경을 보니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라고 하였고, 또 성령이라는 단어의 원어를 보니까 바람이라고도 번역을 했습니다. 생기, 호흡이라고도 번역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성령을 불, 냄새, 바람, 큰 힘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인격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차츰차츰 신비주의로 빠져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인격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후에도 소지니주의자들이 그랬습니다. 근대에 와서도 슐라이에르 마허나 리츨같은 유명한 신학자들이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했습니다. 또 유니테리안파가 성령의 인격성을 다 부인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주의자들 즉 자유주의자들은 성령의 인격성을 다 부인합니다. 현대의 모든 샤벨리스주의자들이 성령의 인격성을 모두 부인합니다. 성령의 인격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신비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성령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높아졌지만, 30년 전만 하더라도 “성령은 불이요! 바람이요!”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의 성령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좋은 시대에 사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성령이 하나님이다라는 소리를 듣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절대 부족이었던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고,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령의 인격성이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인격이 있어야 인격자인 우리와 교감이 이뤄집니다. 여러분, 바람과 교감을 일으키십니까? 바람과 교제하십니까? 불이랑 교제하십니까? 냄새랑 교제하십니까? 인격은 우리가 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격끼리 소통하고 공감하고 교감할 수가 있습니다. 이끌림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격성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하는 자들
초대교회 : 단일신론자들, 성령파들 / 힘, 권능, 능력, 바람, 불, 냄새 : 신비주의
종교개혁시대 : 소지니주의자들
후대에 와서 : 슐라이에르 마허, 리츨, 유니테리안파
오늘날 현대주의자들 : 자유주의자들, 현대의 모든 샤벨리우스주의자들
성령의 인격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신비주의에 빠지게 된다.
1) 성령에 대해 인격적인 칭호들을 사용
성령에 대한 칭호들을 사용할 때 성경은, 남성대명사(에케이노스 ekeinos)와 남성관계 대명사(호스, hos)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은 위로자, 변호자, 변호사라는 뜻입니다. 무인격자는 변호할 수가 없습니다. 인격이 있어야 변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격 대명사라던가, 인격 관계대명사라던가, 인격적인 단어인 파라클레토스(변호자, 보혜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① 남성대명사(에케이노스 ekeinos)
요한복음 16:13-14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② 남성관계대명사(호스, hos)
에베소서 1: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who is a deposit guaranteeing our inheritance until the redemption of those who are God’s possession - to the praise of his glory.
ὅ ἐστιν ἀρραβὼν τῆς κληρονομίας ἡμῶν, εἰς ἀπολύτρωσιν τῆς περιποιήσεως, εἰς ἔπαινον τῆς δόξης αὐτοῦ.
③ 파라클레토스(parakletos, 위로자,, 변호자 : 요 14:26;15:26;16:7)
오늘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16-17, 26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에 대해 ‘그’라는 말을 쓰면서 인칭대명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라고 합니다. 불과 냄새가 우리를 가르칩니까? 인격이 없으면 우리에게 가르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라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에 대해 배운 것을 잊고 삽니다. 그리고 삶을 살다가 어떤 위기를 만나거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할 때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것을 생각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이 인격이 아니라면 이런 일이 없습니다. 인격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과 우리, 하나님과 우리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박경애 목사가 20대 말에 교회에 가서 기도를 열심히 하려는데 자신은 도대체 하나님이 있는 것 같지 않고 그저 콘크리트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기만 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해소하려고 목사님을 찾아가서 물어봤지만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을 읽고 또 읽고 하다 보니, 하나님이 인격자이신 것, 더욱이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인격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내 안에서 생각을 변화시켜주는구나, 성령의 생각을 해주게 하시는구나, 내가 기도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자꾸 일깨워주시는구나!’ 이런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서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아주 친밀하고 가까워지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하나님과 나 사이가 너무 멀었고 하나님과 나 사이가 너무 차갑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디있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격성, 더욱이 성령의 인격성을 이해하고나니까 하나님과 아주 가까워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인격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2) 성령의 인격적 특성들 : 지성, 감성, 의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인격에는 특성들이 있습니다. ① 지성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성령은 가르치고 생각나게 한다(요 14:26),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요 15:26), 성령이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한다(롬 8:16), 성령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통달하고 있다(고전 2:10-11), 고 성령의 지성적인 부분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② 또 감성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사 63:10, 엡 4:30). 성령이 감정이 있어서 우리 안에서 근심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③ 성령은 또한 의지가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뜻대로 은사를 나눠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뜻대로 은사를 나눠주십니다. 성령의 뜻대로 성도들에게 나눠주시는 것입니다(고전 12:11). 심지어는 사도 바울 일행이 아시아에서 예수를 전하려고 할 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습니다(행 16:7). 이렇게 성령께서는 의지가 있으십니다. 이렇게 성령께는 지성적인 측명, 감성적인 측면, 의지적인 측면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분명하게 인격이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자기 뜻이 있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면 우리는 그 뜻을 따라가야 합니다.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그 뜻이 변하겠습니까? 매일 변하는 내 뜻에 하나님의 뜻을 맞추라니 얼마나 이상한 신앙생활입니까? 성령은 의지를 가지고 뜻을 세우시고 근심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슬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④ 성령은 말씀하시고(행 13:2), 증거하시고(요 15:26), 명령하시고(행 8:29), 계시하시고(고전 2:10-13), 마땅히 할 말을 가르치시고(눅 12:11-12),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요 14:26),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고(요 16:7-8),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롬 8:11),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관여하시기도 하셨고(창 1:2),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까지도 해주십니다(롬 8:26). 이렇게 성령은 인격성을 가지고 수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볼 수가 있습니다.
<참조>
성령은 말씀하심
사도행전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사도행전 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성령은 증거하심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성령은 계시하심
고린도전서 2:10-13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성령은 할 말도 가르쳐 주심
누가복음 12:11-12
11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성령은 모든 것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심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은 세상을 책망하심
요한복음 16:7-8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심
로마서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령은 창조사역을 함께 하심
창세기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성령은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주심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간에는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 성령은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격성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초대교회 때 부터 지금까지 성령의 인격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신비주의로 빠지고, 좋지 않는 사상을 퍼트렸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성령은 그런 분입니다. 성령은 우리 개인을 위해서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또 성령은 교회 공동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롭고, 거룩하고, 선하신 일을 하게 하려고 교회 안에 오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개인을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신령한 길로 이끌어 가시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영의 생각을 하게 하십니다. 옛적에는 육신의 생각만 했고, 그 결과는 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까,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며 율법도 사랑하고 존중하고 지키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존중할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예배에 빠지게 되면 마음이 불편해져서 ‘다음에는 예배를 잘 드려야지!’ 와 같은 영의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해줍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한 길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우리 지성에 선한 생각을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 안에서 확신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야!’ ‘나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야!’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야!’ ‘나는 죄를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야!’ 라는 확신을 성령이 자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의기소침할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자꾸 흔들립니다. “나, 구원 못 받은 것 아니야? 나 죄 지었는데…” 라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럴 적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아니야, 예수님이 너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는데 너의 모든 죄를 다 사해주셨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하나님의 딸이야, 너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야!” 하면서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넷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다섯째, 우리가 기도 하지 못할 때 도와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친히 탄식까지 하시면서 간구해주십니다. 바로 그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인격을 가지고 존재하시면서 우리와 인격적인 교감을 이루시며 우리 생각에 변화를 일으켜주시고, 말씀을 읽을 적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일을 찾게 해주시고, 의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해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격성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지성도 가지고 계시고, 감성도 가지고 계시고, 뜻도 가지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생각나게도 해주십니다. 우리에게 명령하기도 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시기도 하십니다. 성자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들을 이해하고 계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다 통달하신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가 하신 사역들을 내 안에서 나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인격을 가지셔서 나와 교류하고 교제하고 교감하면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인격성을 이해하고 믿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할렐루야!
[출처]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격이신 성령1|작성자 MESLAP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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