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3

하나님아들 2022. 4. 23. 22:48

삼위일체 하나님 3

오늘의 본문 | 마태복음 28:16-20, 개역개정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삼위일체 3

The Holy Trinity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성자께서 인성을 취하여서 사람으로 오신 분입니다.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그분을 나사렛 예수, 다윗의 자손 예수,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아담때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가 죽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한 몸에 한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성이라고 합니다. Human nature = Human Body + Human Person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예외된 인간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예수님만이 완전한 사람이면서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한 인격 안에 인성과 신성을 함께 가지신 유일한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하나님의 무엇이 임해서, 혹은 하나님의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와서 내가 이제부터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전부 거짓 이단자들입니다. 이것 하나만큼만 명료하게 이해해도 거짓이단자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오직 인류 역사 가운데 예수님 한 분만이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하나님으로, 한 인격 안에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지니신 유일한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만이 한 신적인 본체 안에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도록 학자들이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세상 많은 종교의 신은 인격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신은 큰 힘이다. 큰 능력이다.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라고 표현합니다. 또 인격이 있는 유일신이라고 하더라도 한 신성 안에 한 인격이 존재하는 신을 믿습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한 신성 안에 즉 한 신적인 본체 안에 세 위격이 존재하시는 유일한 분입니다. 이분이 기독교의 하나님입니다. 이분이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이 함께 존재하시는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타종교의 유일신과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것, 하나님에 관한 것만 잘 이해하고 알아도 이단을 쉽게 구별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 있는 많은 거짓말쟁이들 그리고 자칭 예수라고 하는 이단들을 구별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은데 하나님을 모르고 어떻게 가까워지겠습니까? 저와 친해지고 싶은데 제 이름도 모르고, 제 성격도 모르고,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오히려 제가 싫어하는 일만 골라한다면 저와 친해질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친해지고 싶으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고 어떻게 친해지겠습니까? 잘못된 하나님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친해질 수 있습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인격은 완전한 인격의 원형이고, 인간의 인격은 불완전한 인격의 모형이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두 가지로 나눠보았습니다. 첫째는 <비공유적 속성>입니다. 이것은 절대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둘째는 <공유적 속성>입니다. 이것은 인격적인 영으로서의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1) 하나님의 비공유적속성

(절대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속성)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자존성>을 가지고 계시고, <독립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가 존재의 기원이고, 자기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이 존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고, 우리와 우주만물은 하나님을 의존하여 존재합니다. 자존성, 독립성을 가지신 하나님은 불변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육신과 정신이 성장합니다. 그리고 어느 시간이 되면 육신이 쇠약해지고 완전히 사라집니다. 우리는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되는데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변한다는 것은 없어지거나, 죽거나, 있거나, 줄어들거나 커지거나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입니다 (무한성). 그분은 인격을 가지고 계시는데 인격이 완전하십니다 (인격적 완전성). 그리고 시간 안에도 계시지만 시간을 초월해 계시기도 합니다 (시간적 광대성). 이것을 하나님의 영원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공간 안에도 계시지만 공간을 초월해 계시기도 합니다. 여기에도 계시지만 유럽과 미국에도 계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광대성과 편재성이라고 합니다 (공간적 광대성과 편재성).

하나님은 <단일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수적으로 한 분입니다 (단수성).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은 내적 본질과 상태가 동일합니다 (단순성). 하나님으로서 내적인 본질과 외적인 본체가 동일하고 하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입니다.

2)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

(인격적인 영으로서의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은 영이시며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고 육체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으며 없어지지 않는 순수한 영이십니다. 영이시기에 ① 외적으로 분리되어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단수성). 본체가 하나입니다. ② 내적으로 질과 상태가 동일합니다 (단순성). 그래서 본질이 동일합니다. 물리적인 결합체가 아닙니다 (합체 로봇 아니다). 화학적인 혼합물도 아닙니다 (H2O). 상태가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 - 수증기 - 얼음의 상태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 본질이고 동일 상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의 본체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위격이 하나님으로서 본질이 똑같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위격이 동일한 본체로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 동일 본질 :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위격이 하나님으로서 본질이 같다
● 삼위일체 :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위격이 하나님으로서 한 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영성을 가지고 계시면서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① 지성 (지식과 지혜) ② 도덕성 (선: 선대, 사랑, 은혜, 인자, 오래참음. 거룩, 의) ③ 주권적 의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은 완전하십니다. 인격의 원형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이 셋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위격으로 존재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존재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인격을 부여해주셨습니다. 인간의 인성은 몸 하나에 인격이 하나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격은 불완전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처럼 지성을 가지고 있지만, 완전한 지성이 아닙니다. 우리의 도덕성에도 선함이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도 거룩성이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도 의로움을 추구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의롭거나, 항상 선하거나, 항상 거룩하지는 않습니다. 있다가 없기도 하고, 많다가 적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불완전한 인격입니다.

우리의 인격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이 원형이고 우리의 인격은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은 완전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인격은 불완전합니다. 인간은 한 몸에 한 인격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것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 인격으로 존재하시는 분이라고 하면 우리는 이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인격으로 존재하시는 유일한 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과 인격을 통하여 삼위일체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지난과에서 신구약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유일하심과 하나님의 삼위되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삼위일체는 신구약성경에 계시된 진리입니다. 이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만약 ‘하나님’이라고 했을 때 성부만 생각나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조금 일그러진 것입니다. 거기에 더 나아가 예수를 인간, 선지자라고 생각하면 아주 일그러진 것입니다. 또 성부는 완전한 100점짜리 하나님, 성자는 아들이니까 조금 수준이 미달일거라 생각하면서 95점짜리 하나님, 성령은 그것보다도 조금 더 미달될거라 생각하면서 90점짜리의 하나님이라고 하면 이것도 하나님에 대해 크게 왜곡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미 2천 년 전 초대교회 때도 이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만 고민한 것이 아닙니다. 2천 년 전에도 이미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4세기 때 모든 교회가 모여 열띤 토론과 회의를 거쳐 위와 같이 설명하려는 방식의 시도들을 전부 막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해주었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는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은 각각 종속되지 않습니다.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되고, 성령은 성자에게 종속되어 성부는 100점, 성자는 95점, 성령은 90점 이렇게 종속된 것이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일한 위격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위격은 각각 종속되지 않고, 하나님으로서의 본질이 동일하고 하나님으로서 한 분으로 일체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은 성부이시며, 성자이시며, 성령이십니다. 단, ‘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자도 성령이 아니고, 성령도 성부가 아니다’ 가 삼위일체에 대한 명확한 정의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① 삼위가 각각 존재하면서 ② 서로 교제할 수 있고 ③ 서로 종속되지 않고 동등합니다. 그리고 신성으로 하나의 일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을 <삼위의 위격적 복수>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수학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 분인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십니다. 그런데 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고, 성령도 성부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이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하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하는데 성자만 생각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하면 성령만 생각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하면 성부만 생각난다면 하나님을 일그러지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나님’ 이라고 생각되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기독교 이천 년 역사 동안 삼위일체를 예로 설명하려는 노력과 시도들이 있었으나 적절치 않았다


기독교 2천년 역사 동안 삼위일체를 예로 설명하려 했지만, 그러한 노력과 시도들은 적절치 않았습니다. 고대교회(2-4세기)에 있던 이야기입니다. ‘태양, 태양빛, 태양열’ 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물, 수증기, 얼음’ ‘안개, 비, 눈’ ‘샘물, 시냇물, 강물’ 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셋은 설명되지만 상태가 바뀌었고 인격의 개념도 전혀 없습니다. 성질이나 실체는 설명할 수 있지만 적절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초대교회 교부였던 어거스틴같은 이들도 마음이 지정의로 이루어졌듯이 삼위일체 하나님도 이렇게 이루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근대 헤겔과 같은 철학자는 삼위일체를 정반합의 논리적인 일체로 설명을 했습니다. 쉐드와 같은 사람은 주관, 객관, 주객관의 형이상학적인 일체로 삼위일체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 역시, 하나의 실체가 셋으로 보여지는 것은 설명했으나, 실체 안에 세 위격이 각각 존재하는 것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예를 들어 설명하였지만 적절치는 못했습니다.


3 고대교회시대에 삼위일체의 잘못된 유형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초대교회 교부였던 터툴리안이라는 사람이 처음 사용했습니다. 고민이지 않았겠습니까? 성경은 성부도 하나님, 성자도 하나님, 성령도 하나님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가장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잘못된 삼위일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종속된 삼위일체(오리겐)

성부성자성령이 동일본질임을 이해하지 못함

1-4세기의 고대교회에서도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이면, 성자는 아들이니까 성부에게 종속되고, 성령도 성자에게 종속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부는 금메달, 성자는 은메달, 성령은 동메달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리겐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것을 종속론이라고 하는데 이는 성부 성자 성령을 동일한 신적 본질로 이해하지 못한 데 기인한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종속된 관계로 이해하여 1등, 2등, 3등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확립되고 난 이후부터 중세까지는 이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 이후부터 성경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이 다시 종속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도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 종속론의 삼위일체
성부 > 성자 : 성부에게 종속 > 성령 : 성자에게 종속
성부는 신성 100%(금), 성자는 신성 90%(은) 성령은 신성 80%(동)
성부 성자 성령을 동일한 신적 본질로 이해하지 못하고 1위, 2위, 3위의 종속관계로 보았다

2) 아리우스주의(단일신론)

아리우스로 인하여 더 심각한 이단이 나옵니다. 아리우스주의를 단일신론이라고도 합니다. 그는 "성자는 성부의 제1피조물이고, 성령은 성자의 제1피조물이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 이라고 하며 성자의 신성과 성령의 신성을 부인했습니다. 이러면 유대교나 이슬람교와 똑같아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유일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성부 성자 성령의 동일성이 완전히 희생된 것입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이 이런 신관입니다. 종속론이 더 편향되니 성자가 피조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삼위일체 교리는 주후 325년에 1차 회의를 하고, 주후 381년에 확정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교회가 얼마나 삼위일체에 대해 논의하며 고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살아 있고 교회의 수가 적을 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수가 많아지고, 시골에서 자기가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쳐서 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회의를 하였습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에 대해 서로 논쟁과 토의를 반복하면서 최종 아리우스주의를 정죄합니다.

● 아리우스주의(단일신론)
성부
성자 – 성부의 제 1피조물
성령 – 성자의 제 1피조물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부인 : 이슬람교, 유대교처럼
하나님의 유일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성부, 성자, 성령의 동일성이 희생됨(동일본질)

3) 삼신론

삼신론은 구별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셋’ 이라고 보는 것이 삼신론입니다. 성부도 하나님, 성자도 하나님, 성령도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다신론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각각 다른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하나님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길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몰몬교 같은 것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신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4) 양태론적 단일신론(샤벨리우스)

양태론적 단일신론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는 부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 한 하나님에 세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몸에 한 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격은 하나라고 생각하지, 인격이 셋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통 삼위일체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반면, 양태론적 단일신론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신적인 본체가 구약시대에 성부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다가 이 성부가 사람으로 왔습니다. 성부가 성육신했습니다. 이것이 아들 성자입니다. 그래서 성부가 십자가에 죽었다는 성부수난설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성부시대야, 그리고 복음시대는 성자시대야, 교회시대에는 성자가 되었던 그리스도가 하늘로 올라가서 다시 성령이 되어서 우리에게 왔어!’ 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이렇게 셋이라는 것이 이해가 쉽습니다. 성부가 성자가 되었다가, 성자가 성령이 되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자가 성령으로 내 안에 들어와 계신 것이라면, 예수가 다시 육체를 가지고 재림할 때 어떻게 재림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것들이 또 다른 구원자로 바뀔 수 있는 길을 열게 합니다. 이긴 자, 자기가 보혜사의 형태로 변형이 이뤄집니다. 이것이 양태론적 단일신론의 맹점입니다.

실제로 우리 안에는 성령이 들어와 계십니다. 성령이 들어와 계시다는 표현을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 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는 성령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이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성령이 내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용어를 ‘하나님이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주신다.’ ‘우리 주님이 나의 갈 길을 인도해주신다.’ 는 것과 동일한 표현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의 길을 하나씩 이끌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면 우리의 신앙이 건강해지고 바라집니다.

오늘날에도 양태론적인 설명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목사, 집에 가면 아버지, 신학교에 가면 교수님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나는 인격이 하나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인격이 어떤 때는 목사가 되고 어떤 때는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때는 교수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세 위격이 각각 존재하면서, 서로 교제하고 교통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 인격입니다. 한 인격이 역할에 따라 변하는 것일 뿐이고 세 인격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세 위격이 각각 인격적인 교제를 할 수가 없습니다. 또 이런 것이 다른 구원자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양태론적 단일신론이라고 합니다.

정통 삼위일체는 한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십니다. 인격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십니다. 그리고 세 인격이 서로 교제할 수 있습니다. 이 인격들은 종속되지 않고 각각 동일합니다. 크고 작음이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유일한 하나님은 성부이시며, 성자이시며, 성령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부는 성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자는 성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대입해보면 하나님에 대해 설명을 잘못하는 것을 잘 구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까? 양태론이 가장 자연스럽습니까? 종속론이 자연스럽습니까? 아니면 삼신론이 자연스럽습니까?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 때는 종속론이었을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양태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건전하고 건강한 정통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분은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서 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자도 성령이 아니고, 성령도 성부가 아닙니다. 이것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5) 교회가 두 번의 공회의를 통해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

정통삼위일체 교리는 회의를 통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AD 325년에 니케아라는 곳에서 보편교회들의 각 지도자들과 학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살펴보았던 잘못된 삼위일체관이 문제가 되어 토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성자는 하나님이 아닌 제1피조물이다. 성령도 하나님이 아닌 성자의 제1피조물이다.’ 라고 설명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회의를 통해 성자의 신성과 동일본질에 대해 결정 하고 선포했습니다. 그래서 성자는 영원 전에 성부에게서 발생했다는 교리를 확립했습니다. 그리고 성자를 제1피조물이라고 말한 아리우스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해서 파문했습니다.

그런데 또 계속 이런 내용을 가르치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수십 년이 지난 AD 381년에 콘스타티노플 공회의에서 성령의 신성에 대해 채택을 하고 아리우스주의를 또 다시 이단으로 정죄합니다. 그러면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 전에 발출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선포를 합니다. 이렇게 두 번의 공회의를 통해 정통 삼위일체 교리가 확립되었습니다.

교회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도 우리가 성전이 되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영적으로 성부에게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면서 각각 다른 위격으로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찬양을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의 삶도 인도해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가 잘 이뤄지고, 잘 깨달아지고 또 믿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 삼위일체 교리의 확립
①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
성자의 신성과 동일본질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 전 발생
아리우스주의를 이단으로 정죄
② AD 381년 콘스타니노플 공의회
성령의 신성
아리우스주의를 정죄
성령은 성자와 성부에게서 영원 전 발출

[출처] 성삼위일체 3|작성자 MESLAP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