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체계 (기독교 문화관" 프란시스A.쉐퍼)
기독교 체계(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것)는 사상의 통일성이다.
기독교는 단순히 많은 조각들과 파편의 묶음이 아니다.
시작과 끝이 선명하고 진리의 전체 체계가 있으며
이 체계는 우리의 실존의 현실을 직면 할때
우리에게 제기되는 모든 질문들에 대응하는 유일한 체계이다.
나는 모든 중대한 질문들에 대해 답변을 제공하는 것은
유일하게 기독교 뿐이라고 확신한다.
기독교 체계는 지금까지의 다른 어떤 체계 보다도 일관성이 있다.
그것은 출발점이 있고 과정이 있으며 끝에 도달할 수 있기에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상하다.
그 출발점의 중심에 존재하시는 하나님과 인격과 사랑이 있다.
오늘날 많은 민감한 사람들이
"인간의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물음으로 사실상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질제로 현대인은 자기 사고의 어느 영역에서도 이 질문에 만족스런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뻔한 합리주의의 노선을 따라 그것에 도달했는지
아니면 현대적 세속적 및 신학적 신비주의의 어둠속에서 비약을 통해 그것에 이르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찌됐든 현대인은 이 질문에 답변하는데 실패하였다.
오늘날은 상대주의에 의해 교회 안팎이 모두 파괴되었다.
또 현대인의 허무주의, 파괴, 무관심에 직면하여 기독교인들은 종종 용기를 잃고 있다.
우리가 오늘날 현대인을 접촉할 때 봉착하는 문제는 그것이 보다 구미에 맞도록 하기 위하여 기독교 가르침을 어떻게 변형시켜야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그렇ㄱ 하는 것은 절망속에 있는 인간에게 진정한 답변을 제공해 줄 기회를 앗아 버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복음이 이해될 정도로 어떻게 복음을 전달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자신에 대해 스스로 속고 있음을 쉽게 발견한다.
또 커다란 딜레마 속에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고도의 정상으로 비상할 수도 있고, 야만성과 비극의 심연으로 침몰할 수도 있다.
진정한 기독교에 있어서 신앙의 가치는 신앙이 향하는 대상에 의존한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현존과 존재의 실재성에 집중한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내용에 의존한다.
그 신앙의 기초는 신앙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이루신 사역에 있다.
만일 당신이 그떼 그 장소에 있었더라면
당신의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만질 수 있고
그 손의 못자국을 확인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시공간의 역사(space-time history)로 받아 드릴때 그는 비로소 진정한 클스쳔이 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객관적, 인격적으로 외적(outward)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면으로 향하지 않으며 주관적, 비인격적이지 않다는 의미이다.
아무도 기독교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지식이 신앙에 선행한다.
나는 비기독교인들이 진정한 존재에 따라 살지 않는 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이 그 안에 살고 있음에 대한 어떤 답변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도덕적 활동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에 대한 불혹의 기초가 없다는 것이다.
불교나 흰두교나 급진적 사상체계를 견지하는 사람은
객체가 존재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주-객의 상호관계를 설명할 만한 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것이 그들의 정죄성이요, 그들의 긴장이다.
그것은 곧 그들이 우주와 세상 안에는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고, 법에 대한 기초도 없으며 최종적 원리나 어떤 것에 대한 궁극적 답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은 이와 같이 상실된 존재로 알고 있다.
성경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드러냄)가 없으면
사람들이 진리, 도덕, 또는 인식론에 관한 최종적 답변들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은 충분히 강조되어야 한다.
인간은 자신으로 부터 시작하여 결단코 최종적 해답을 이끌어 낼수 없다.
인간은 유한하다.
따라서 그 스스로는 충분한 통합점이 되지 못한다.
오늘날 인간의 저주는 인간이 인간에 대한 의미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만일 삼위일체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불가지론자 였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답변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에서 주어진 것처럼 인격성과 다양성이라는 고도의 질서가 없으면 절대로 답변은 없다
인간의 인격적 통일성과 다양성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
기독교의 삼위일체에서 이 답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최고의 답변이 아니라 유일한 답변임을 주목하라.
지금까지 나와 함께 일해온 가장 탁월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단순히 자기가 실질적으로 휴머니스트요 실존주의자 였다는 이유로 스위스의 내 방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는 파리가 모든 위대한 휴머니즘 사상의 본거지 였기 때문에 파리로 유학을 왔다.
그는 파리가 얼마나 오염된 것인지 깨달았다.
교수들은 지극히 무관심 하였다.
우리에게 왔을때 그는 자살 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는 누구냐?"고 절규한다.
만일 실재와 환상 사이의 구별을 보장할 만한 것이 없다면, 자신의 상상력을 별들의 세계 너머로 펼칠때, 인간은 확신을 가질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인격의 존재도 허망한 것이며, 사랑의 존재 역시 부질 없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우리는 거기서 부터 시작했다.
기독교적 인식론의 기초위에서는 혼란은 사라지고 소외는 치유된다.
이것이 인식문제의 핵심이다.
발췌 "기독교 문화관" 프란시스A.쉐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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