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문 소논문

조나단 에드워즈의 철학적 신학

하나님아들 2020. 11. 27. 23:01

조나단 에드워즈의 철학적 신학

 

이상현 교수님의 <조나단 에드워즈의 철학적 신학>의 ‘서론’의 전문을 게재한다.

책으로 볼 때 놓친 부분을 워드 자료를 통해 많이 잡을 수 있어 좋았다.

에드워즈는 ‘경향성’의 개념으로 하나님의 실체를 규정하고, 하나님의 존재론과 인식론에 대해 규명해 나간다.

이 개념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론과 이신론에 대한 개념을 재정비할 수 있어서 이다.

현대신학은 이것을 타협하여, 과정식학으로서 어정쩡하게 다루고 말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에드워즈는 ‘경향성’이라는 개념을 신플라톤주의, 경험론, 기계론을 종합하여 하나님의 실체를 동적으로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즉, 경향성을 잠재태가 아닌, 실체로 격상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경향성, 목적론적인 성향으로, 하나님께 적용될 때, 무한한 목적론적 성향이 된다.

서론에서는 그 개략적인 설명이 잘 나온다. 기회가 되면, 본문의 각론에 들어가, 경향성의 존재론과 인식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철학적 신학

 

이상현 교수

 

= 목차 =

감사의 글

 

1. 서론: 경향성의 개념과 실재에 대한 에드워즈의 역동적 비젼

 

2. 경향성의 개념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적 전통

에드워즈의 배경 속에서의 경향성에 대한 개념

경향성에 대한 에드워즈의 개념

 

3. 경향성으로서의 존재

에드워즈의 성향적 존재론

창조된 세계의 영속성으로서의 경향성과 법칙

 

4. 관계적이며 역동적인 것으로서의 존재

존재의 구조로서의 경향성과 법칙

존재의 역동적 원리로서의 경향성과 법칙

 

5장 정신의 경향성으로서의 상상력

로크와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

정신의 경향성이 가지는 상상력

 

 

6장 미적인 감각으로서의 상상력

정신의 경향성과 아름다움의 감각

상상력의 존재론적인 기능

 

7장 하나님의 증대하는 충만성

성향과 현실태로서의 하나님

하나님의 충만성

외부를 향한 하나님의 자기 확대

 

8장 하나님과 세계의 생성

자신을 확대하시는 하나님의 시간성과 역사의 의미와 운명

세계의 생성의 리듬

 

약어표

FAJ Jonathan Edwards: Representative Selections, ed. Clarence H. Faust and Thomas H. Johnson (New York: Hill and Wang, 1962)

HGT The Philosophy of Jonathan Edwards from His Private Notebooks, ed. Harvey G. Townsend (Eugene: University of Oregon Press, 1955)

PH Treatise on Grace and Other Posthumous Writings Including Observations on the Trinity, by Jonathan Edwards, ed. Paul Helm (Greenwood, S.C.: Artic Press, 1971)

THA Exercises Commemorating the Two-Hundredth Anniversary of the Birth of Jonathan Edwards (Andover, Mass.: Andover Press, 1904)

WC The Works of President Edwards, 4 vols .(New York: Robert Carter and Brothers, 1868)

WEA Scientific and Philosophical Writings, ed. Wallace E. Anderson, vol. 6 of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ed. John E. Smith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80)

WG The Works of President Edwards, 4 vols. (New York: G. and C. and H. Carvill, 1830)

WL The Works of President Edwards, 4 vols. (New York: Leavitt and Allen, 1852)

WS The Works of President Edwards, 10 vols. (New York: S. Converse, 1829-1830)

YALE MSS Yale Collection of Edwards' Manuscripts, Beinecke Rare Book and Manuscript Library, Yale University

 

 

제 1장 서론

 

경향성의 개념과 실재에 대한 에드워즈의 역동적 비전

최근에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데에 대한 많은 책임이 있는 밀러(Perry Miller)는 그 청교도적 철학자이며 신학자였던 에드워즈가 "그 당시 지성적으로 가장 현대적인 사람이었으며," 그의 통찰들 중 어떤 것은 그의 시대를 아주 앞서 갔기 때문에 우리 시대가 그를 따라 잡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고 주장하였다. 밀러는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의 다양한 철학적 발전에 대한 에드워즈의 창의적인 적응에 근거하여 이러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에드워즈는 자신의 시대에 있어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빈의 신학적인 전통을 재진술하였으며, 특별히 로크의 경험론과 뉴톤의 과학을 채용하였었다.

 

이 책에서의 필자의 주장은 에드워즈는 밀러가 인식하였던 것보다 실제에 있어 더욱 "현대적"이었다는 것이다. 에드워즈가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하나의 철학적 이해를 추구하는 과정 중에서 성취한 것은 하나의 철저한 형이상학적인 재구성으로서, 그것은 실재의 본성에 대한 재개념화였다.

 

에드워즈의 사상 속에는, 사물의 본성들을 밝히는 용어들의 사용에 있어 범주들의 변경이 나타난다. 에드워즈는 실체와 형상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서구의 형이상학으로부터 이탈하여, 그것을 성향적 힘이나 경향성들과 같은 하나의 역동적인 조직체로서의 실재라는 아주 현대적인 개념으로 대체하였다.

 

 

능동적이며 존재론적인 원리로서 생각되는 성향들과 경향성들은 이제 실체와 형상이 하였던 역할을 하게 된다.성향적 존재론은 에드워즈의 사상에 하나의 일체성을 주는 기초되는 논리 및 독창적 비전을 위한 해석적인 실마리가 될 뿐만 아니라, 에드워즈의 현대성의 특별한 성격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다.

 

실재에 대한 에드워즈의 역동적 전망에 있어 가장 혁신적인 요소는 성향이라는 개념이다. 아래에 자세히 살피겠지만, 성향들과 경향성들은 존재와 생성을 중재하며 영속성과 과정을 중재한다. 그와 같은 에드워즈 존재론의 조정적 위치는,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용어를 가지고, 철저히 현대적인 철학의 틀 내에서 그의 신학적인 전통을 재진술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그의 철학적 신학에서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에드워즈는 지나간 역사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20세기의 철학적 신학적 과제를 위해서도 계속되는 통찰의 자료들을 제공한다.

 

에드워즈의 사상은 현대의 철학적 신학 논의에 공헌하고 있는데, 그것의 가장 주요한 예로는 하나님의 존재의 본성을 그가 성향적으로 재개념화한 것이 있다. 소위 고전적 유신론이라고 불리는 전통적 서구 하나님 교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현실태와 자족성을 하나님의 절대 불변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곧 하나님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세상과의 관계에 의해서 영향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현대 신학에 의해 심각하게 도전받아 왔다. 철저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 그 속에 잠재성의 어떤 요소가 없다면 어떻게 창조적이고 목적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비평가들은 질문하였다. 만약에 하나님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세상과의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시간과 역사에의 참여가 어떻게 진정된 의미를 갖겠는가?

 

고전적 유신론보다,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역동적으로 보는 이러한 요구는 두 면에서 고무되어져 왔는 바, 그 첫째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성서적 진술의 빛에서 그것 자체를 재시험하는 기독교 신학의 고유하며 계속되는 과제로부터 야기하는 것에 대한 고려이며, 둘째는 일반적인 현대 사상에 있어 존재의 역동적인 본성에 대한 점증하는 강조가 그것이다.

 

고전적 유신론의 가장 극단적인 대안이 과정신학으로부터 나왔다. 물론 그 과정신학은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철학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과정신학은 하나님의 존재를 양극적이며 양면적인 본성을 가진 것으로 봄으로써, 그 하나님의 존재가 일면으로는 완전하고 영원하며 다른 면에서는 변화하는 생성 속에 있음을 강조한다.

 

과정적인 전망에 따르면, 하나님의 귀결적이며 구체적인 본성은 하나의 계속되는 생성의 과정인 반면, 하나님의 원초적이며 개념적인 측면은 변화하지 않는 완전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본성의 일시적인 현실화인 하나님의 구체적인 현실태는 세계의 창조적인 진전을 통하여 더욱 완전하게 성장하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과정신학은, 실재를 본래 변화하는 것으로 보는, 과정철학의 개념을 채용하였다. 그리하여 과정신학은 하나님 자신의 구체적인 현실태를 실재를 생성하는 일반적인 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정의한다. 고전적 유신론은 하나님의 불변성과 자족성을 너무 강조하였던 반면, 과정신학은 변화하는 세계에 참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우선적인 현실태와 초월성을 타협시키고 있다. 과정신학에 있어 하나님은 모든 존재와 창조적인 과정이 그에게 궁극적으로 의존하는 완전한 현실태이기보다는, 생성의 과정 중에 있는 분이다.

 

이백 년 전에 이미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존재와 생성에 관한 현대적인 질문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우선적인 현실태를 손상함이 없이 하나님 존재 안에 역동성을 도입하는 아주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에드워즈에 있어서,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완전한 현실태일 뿐만 아니라, 현실태 이상의 것을 수행함을 통하여 그 현실태를 재현하는 성향이다. 에드워즈에 따르면, 하나님의 성향은 내적인 삼위일체적 관계를 통하여 완전히 행사된다. 다른 말로 하여, 삼위의 제 2격과 3격은 제 1격의 원초적인 현실태를 완전히 재현한다. 그러므로 에드워즈에게 있어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완전히 현실화된 분이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현실화되어 오는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의 성향으로 남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시간과 공간 내에서 그 성향을 외적으로 실천한다. 곧 세계는 하나님의 존재의 우선적인 현실태의 시공간적 재현을 의미한다. 세계는 하나님의 존재의 영속되는 자기확대의 과정이다. 이 점에서 에드워즈는 신성의 전통적인 개념에 근본적인 수정을 가함으로서, 하나님의 존재의 중심에 역동적인 운동의 요소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에드워즈는 하나님을 원초적이며 충분하게 자기현실화된 분으로 보는 현대 과정신학의 오류를 피하고 있다.

 

에드워즈의 신론에 있어 존재와 생성의 균형을 맞추는 단서는 존재론적으로 생산력을 가지는 하나님의 성향의 개념이다. 즉 그 하나님의 성향이미 현실화된 것을 그 이상의 실천을 통하여 재현하는 능력이다. 그러함에 하나님은 충분히 현실화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음과 동시, 자기확장의 과정에 계신 분이시기도 하다. 이같은 방법으로 에드워즈는 과정신학에 대한 명료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안이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의 중심되는 교리를 손상함이 없이 전통적 신학의 많은 결점들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의 재개념화를 강조하는 에드워즈의 성향적 존재론은 전체적으로 에드워즈의 철학적 신학의 독창성과 통일성을 해석하는 단서가 된다. 이 책의 목적은 그가 말하는 성향이라는 말의 범주를 해석적인 단서로 보고, 에드워즈의 사상의 중심적인 양태들의 역동적인 성격을 살피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서론으로서 앞으로의 장들에서 주장될 것들에 대한 간단한 윤곽을 제공하려 한다.

 

문제의 요점은 유명론에 반대되는 에드워즈의 실재론적이며 관계적인 "경향성"(habit)에 대한 정의에 있다. 경향성이란 단어를 스콜라주의자들은 habitus라고 불렀으며, 또한 "성향"(disposition)이나 "경향"(tendency)이라는 말로도 더 잘 쓰이고 있다. 에드워즈에 있어 경향성이나 성향은 단지 어떤 사건의 관습이나 규칙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경향성이란 능동적이며 존재론적인 의미를 가지는 힘으로, 심지어 그것이 실천되지 않을 때에라도 실재성의 양태를 견지한다. 또한 에드워즈에게 있어 그 경향성이란 현실적인 행동과 사건들의 방법과 성격을 지배하는 하나의 일반화된 규칙이다.

 

만약에 존재의 본질이 경향성이나 성향이라면, 현실재(entity)란 하나의 경향성과 성향으로서의 실재로서, 그것은 그 경향성이나 성향의 실천을 통하여 충분한 현실태를 획득하게 된다. 그러할 때, 행동과 사건과 관계들은 단지 하나의 우연한 사건이나 현실재의 존재의 성질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없는 바, 오히려 그것과 내적으로 연관되어져 있는 어떤 것이 된다.

 

행동과 관계함을 통하여 하나의 현실재의 현실태는 그것의 성향적 실질적 실재성(virtual real-ness)으로부터 그것의 충분한 현실태로 움직이게 된다. 더 나아가 하나의 현실재의 본질은 하나의 경향성이 되기를 계속하기 때문에, 하나의 현실재의 존재는 그 이상의 성향적 본질 실천 내에서 및 그것을 통하여 증가되어질 수 있다. 요약하여 존재는 본래적으로 역동적인 것이며 관계적인 것이다.

 

더 나아가 경향성이 정신(mind)을 지각하는 성향일 때, 그것은 앎의 원리로서의 기능을 한다. 곧 그것은 실재의 관계적 구조를 정신이 파지할 수 있게 하는 상상력의 종합하는 행위로서의 지향적(propensive) 힘을 말한다.

 

그러므로 경향성이란 그 속에서 한 종류의 행위가 기계적으로 수행되는, 지각을 배제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정신의 경향성합리성과 도덕적 행동의 가능태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그러므로 경향성은 존재와 생성의 원리임과 동시 앎의 원리이다. 이러한 경향성을 통하여 앎은 존재와 생성에 연결된다.

 

에드워즈는 이같은 존재와 앎을 성향으로서 재개념화한 틀 속에서(경향성을 통해 인식론과 존재론의 토대를 세움-편주), 기독교 사상을 재구성함으로써 다음의 결과를 야기시켰다. 곧 그것은 하나님과 세계와 역사에 대한 새롭고 역동적인 전망이다. 하나님이 모든 실존과 창조물의 절대적 주권과 영원한 완전성의 근거라는 것은 에드워즈에게는 하나의 공리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제 하나님 존재의 본질은 충분한 현실태로서뿐 아니라 하나의 성향으로서 생각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본래 그의 성향적인 본질의 계속되는 실천을 통하여 그의 원초적인 현실태를 확대하고 재현하는 경향이 있다. 에드워즈에 있어 현실적이며 주권적인 하나님의 계속되는 목적있고 창조적인 행동을 설명하는 논리는, 이따금 제시되는 바의 신플라톤주의의 철학이 아니며, 하나님의 자기확대의 성향적인 존재론이다.

 

창조된 세계란 하나의 경향성들과 성향들의 조직체이다(또는 소위 말하는 자연의 법칙들이다). 그것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시간과 공간 중에서 재현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성향적 힘들의 체계로서의 세계는, 상대적이지만 영속하는 그것 자신의 실재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같은 성향의 참된 행사(exercise) 또는 창조된 세계의 참된 현실태의 획득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의 우선하는 현실태를 재현하는 하나님의 성향적 실천을 직접적으로 포함할 것을 요청한다. 다른 말로 하여 역사와 자연은 본래 역동적이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동적인 삶은, 오로지 그들이 하나님 자신의 시공 안에의 삶 속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와, 또한 그것의 매개로서 능동적 기능을 할 때에만 현실적인 것이 된다.

 

하나님 자신의 시간적인 자기확대(self-enlargement)와 역사와 자연 중의 삶이 하나가 되며, 그것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창조에 있어 초점이 되는 것은, 신적으로 변혁된 인간 정신과 마음의 상상력있는 행위이다. 상상력의 구성하며 확장하는 힘은, 정신이 경험하는 바를 궁극적으로 연관된 맥락 속에서, 의미있는 전체로서 알며 사랑할 수 있도록 한다.

 

이와 같이 유한한 정신은 세계를 알고 사랑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일시적인 재현을 가능하게 한다. 상상력의 행위는, 지각있는 인간 자아의 행사이기 때문에, 인간 자아 자신의 성향적인 존재가 현실화되는 것은 인식과정 중에 있는 상상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인간의 상상력의 행위는, 인간의 성향 안에와 그것 전반에 하나님 자신의 성향이 즉각적으로 참여할 때에만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성화된 상상력의 행동을 통하여, 지각하는 자아와 지각된 세계는 그들의 현실태를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그들의 현실태의 획득이란, 시공 중에서 그의 내적인 존재를 재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그들이 참여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 상상력을 통해 역사와 자연이 생기있게 되며, 또한 하나님과 그들의 하나됨을 성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창조된 실존은 영원한 것의 재현이며 목표를 향한 목적있는 운동이다. 역사는 이미 현실적으로 하나님이신 하나님을 재현하는 것이며, 시간 중에서 하나님의 자기 재현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다. 역사의 궁극적인 목표 곧 하나님의 나라는 역사 속에 내재하여 있음과 동시 그것을 초월하여 있다.

 

하나님 자신의 존재는 자기 재현의 의미에서 직접적으로 역사 속에 포함되어져 있으므로, 역사 안의 모든 순간들은 하나님 자신의 영원한 영광의 재현으로서 이해되어질 수 있다. 그러나 무한한 하나님의 영광의 절대적으로 완전한 재현은 역사 내에서는 결코 성취되어질 수 없다. 그것은 끝이 없는 과정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성취의 초월적인 성격에 대한 시야를 상실함이 없이, 역사에 내재하는 천년왕국의 가능태를 강조한 에드워즈의 입장을 우리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많은 해석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에드워즈는 그의 철학적인 신학을 그 당시의 철학과 과학의 발전에 대한 예민한 인식 속에서 수행하였다. 해석학적인 단서로서의 경향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실재에 대한 에드워즈의 역동적이고 관계적인 비전을 설명하려는 필자의 작업은, 에드워즈가 17, 18세기의 서구 사상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위해 내놓았던 해결안의 창조성과 역사적 중요성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줄 수 있을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세대에 전수된 17세기 사상의 근본되는 문제는, 기계론적이고 경험적인 과학에 의해 제기되는 사상의 새로운 방법들과 범주들에 들어맞는 하나의 전망을 마련키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스콜라주의의 세계관을 수정하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스적인 스콜라주의----기계론, 경험론(cyhpc)

 

그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는 바, 하나는 존재론적이며 우주론적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인식론적인 것이다. 존재론적 문제는 본질과 본질적인 형상들을 다루는 옛 형이상학의 부적합성에서 생기게 되었다. 이에 있어 본질적 형상(form)이란 동작이나 힘 및 관계적인 법칙들이라는 개념 하에서 실재를 검토하려는 경향이 많았던 당시에, 그에 따른 지성적인 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본질과 본질적 형상의 개념들은 또한 하나의 초자연적인 성질을 가지는 것으로 기계적인 과학에 의해서 평가되었었다. 여기서 과학이란 경험적이며 실험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존재론적 문제는 뉴턴에게 있어서 풀려지지 않은 채로 남겨져 있었으며, 이에 그것은 그의 우주론 속에서 극단적인 긴장을 야기하였다. 한편으로는 존재에 대한 정태적이고 비관계적인 견해가, 활성이 없는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그의 물질세계에 대한 개념 속에 남아 있었다.

 

반면 그는 인력과 반발력과 같은 관계적 힘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입자적인 견해에 따라 원인은 어제나 충격에 의한 것이었으며, 관계는 물체의 밖에 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뉴턴에게는 인력과 반발력의 힘들이 거리를 가지고 작용하는 힘들인 것 같아 보였다. 그같은 내용은 본질적으로 능동적이며 관계적인 물질(matter)에 대한 견해와 연결된다. 이 문제에 대한 에드워즈의 해결책은, 존재론적으로 실재하는 힘의 법칙들이나 경향성들에 대한 그의 개념에 근거하는 것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그의 역동적인 견해에 있었다.

 

존재의 연속성이 더 이상 실체(substance)나 활성이 없는 물질이라는 용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있는 법칙들의 실재 그 자체를 통하여 정의되고 있다. 현실재는 본질적으로 능동적이고 관계적인 것이며, 인과관계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서, 충격에 의한 것이 아니다. 존재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법칙은 관찰을 통해 파악될 수 있는 운동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초자연적이며 비의적(occult) 성질들을 배제하는 것이 경험적인 입장에서 존중되었다.

 

존재에 대한 역동적인 견해는 로크와 같은 에드워즈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다른 사상가들에 의해서 뿐 아니라, 뉴턴에 의해서도 제시되어졌었다. 뉴턴의 우주는 활성이 없는 입자에 의해서보다는 힘과 "행동의 원리"들에 의해 더욱 지배받고 있다.

 

이차적 성질(the secondary qualities)의 원인이 되는 일차적 성질(the primary qualities)의 경향적 힘에 대한 로크의 논의는 세력(force)들과 힘(power)들의 우선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가들과 에드워즈 사이의 중심적인 차이는 뉴턴과 로크가 현실재에 대한 정태적이고 입자적인 견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반면, 에드워즈는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데에 있다.

 

뉴턴-실체에 있어 입자적 성질과 운동의 법칙의 견해가 혼재했다

로크-실체에 있어 1차적 성질은 경험적이기보다는 정태적 실체적이었다

에드워즈-실체에 있어, 정태적 실체에서 경향성(하나님의 완전성과 법칙성)으로 동태적 실체의 전환을 성공했다(cyh해석).

 

18세기 에드워즈의 동시대인들은 현실재를 실체가 아니라 본질적 힘으로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에드워즈가 젊은 시절 읽었던 커드워쓰(Cudworth)와 같은 케임브리지의 신플라톤주의적 사상가들은 "가소성들"(plastic natures)이라고 불리우는 목적론적인 힘들이 세계의 구조 내에서만 기능한다고 주장하였다.

 

에드워즈의 견해의 차별성은 그가 현상 자체의 모형에 하나의 존재론적 의미를 분명하게 부여했다는데 있다. 물질에 필수적인 것으로서의 세력과 힘들에 대해 모호하게 이야기하거나,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했던 바대로 현상 자체로부터 직접적으로 추론되지 않는 새로운 초자연적인 성질을 말하지 않고, 그는 이러한 것을 수행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에드워즈는 전통적 관심들을 일관성있는 개념을 통해 묶어보려고 노력하였다. 여기에서의 전통적인 관심이란 운동의 법칙들과 관찰할 수 있는 현상들의 우선성에 대한 기계론적이며 경험적인 과학의 주장 및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의 목적론에 대한 강조를 말한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이와 같은 전망을 통해 작업하면서, 우주에 대한 진정한 현대적인 개념을 향하여 진일보를 하고 있다.

 

* 에드워즈의 공헌은 경향성을 잠재태(실질태-현실태의 중간 존재)에서 실체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데 있다(cyh해석).

 

에드워즈가 그의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인식론적 문제는 힘과 행위의 문제들과 연관되어 고찰되어져야만 한다. 그 질문은 인식적 과정에 있어서 정신(mind)적 작용의 정확한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정신적 행위의 본성에 대한 재정의가 18세기의 긴급한 문제로 출현하였다. 왜냐하면 인식의 자료에 대한 새로운 원자론적인(atomistic) 개념이 그와 함께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즉 세계의 질서와 구조에 대한 경험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로크는, 인식과정에 있어 감각경험(sense experience)의 우선성은 단순하고 혼합되지 않은 감각(sensation)과 반성(reflection)에 대한 경험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유일한 기초가 됨을 요청한다고, 믿었었다. 스콜라주의의 인식론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인식의 자료들은 혼합적 현실재의 형태들이 아니라, 오히려 혼합되지 않는 감각의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추상적인 정신적 행위에 대한 전통적 개념이 더 이상 지지되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점에서 로크는 실재 안에 있는 질서의 경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단순한 관념들을 함께 엮는 것정신 자체의 행위임을 단순히 주장하였다. 정신 자신의 행위가 실재 안에 있는 질서에 대한 인간의 경험의 원천이라는 로크의 생각은 현대 사상의 상상력에 대한 많은 이론들을 야기하였다. 그러나 로크는 정신의 창조적인 행위에 대한 심리학을 분석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은 체로 남겨두었다. 그리하여 그 과제가 젊은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해 규명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에드워즈와 같이 상상력이 풍부하며 질서를 세우는 정신의 행위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였었던가? 직접적인 감각에 대한 경험론적인 강조는 모든 합법적인 지식에 대한 기초가 보존되어 있는 세계와 접촉하고 있다고 에드워즈는 보았던 것이다.

 

커드워쓰나 샤프츠버리(Shaftesbury)를 위시한 케임브리지의 플라톤주의자들은 정신의 인식과정에 대한 중대한 기여를 주장하였는 바, 그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에드워즈를 고무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의 인식론은 에드워즈가 중시하였던 로크의 경험론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에드워즈는 로크가 문제 삼았던 것과 씨름하였는 바, 그것은 그가 "마음의 감각"(sense of the heart)이라고 불렀던 상상력과 미학적인 지각에 대한 그의 이론들의 결과를 낳게 하였다. 물론 경향성의 개념 또한 그것의 핵심을 이룬다. 하나의 행동의 힘으로서의 정신의 경향성은 에드워즈로 하여금 정신의 행위에 대한 성향적 이론형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여기에서 마음의 행위란, 의미있는 관계로 감각 관념들을 질서세우는 것을 말한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관계적이며 조건적인 경향성은 적당한 경우들에서만 행동으로 화(化)하게 된다. 즉 정신이 감각 관념들을 외부적인 세계로부터 수동적으로 수용할 때에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에드워즈는 정신과 감각 개념이 인식과정에서 수행하는 필수적인 역할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전인격의 성격과 방향성으로서의 정신의 경향성에 대한 관념은, 감각 관념에 대한 정신의 수용과 정신의 상상력있는 행위 및 정신의 정서적 반응이 모두 합쳐져서 사물이 존재하는 방법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와 감각의 사건을 구성하게 된다는, 에드워즈의 개념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 또한 한 종류의 관념들의 연합에 대한 성향적인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의 경향성이나 성향에 대한 실증주의적인 개념 및 존재에 대한 비관계적 개념 때문에, 정신의 경향성에 대한 연합적인 행위가 실재의 구조와 어떤 진정된 인식적인 관련을 가지는 것으로서 생각될 수 없었다.

 

 

* 흄-내가 현재 경험하는 것만 존재한다. 그 경험이 연합하여 존재한다. 실체란, 경험의 나열에 불과하다. 지금 내 눈 앞에 없는 것은 이제 경험의 영역을 벗어났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cyhpc).

 

어쨌든 샤프츠버리적인 인식과정에 있어서의 정신의 능동적 역할에 대한 주장과, 인식의 유일한 자료로서의 감각의 단순한 관념에 대한 로크의 주장은 에드워즈의 상상력과 미학적 지각의 이론 안에서 창조적인 종합을 이루게 된다. 그 에드워즈의 이론은 19세기의 낭만주의적 경향인 콜리지의 미학(the Coleridgian aesthetics)을 예견하는 것이다.

 

* 에드워즈의 인식론-정신의 능동성 +감각자료의 단순 관념=성령의 역할, 외부에서 성령이 주입되어 감각자료가 연합하여 하나님의 경향성(상상력, 믿음, sense of heart)으로 됨(cyhpc)

 

에드워즈의 철학적 신학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실재와 행위가 하나의 절대적인 우선성을 가지고 있다. 창조된 세계의 실존과 의미는 완벽하며 계속적으로 하나님에게 의존하고 있다. 앎(인식론)과 존재(존재론)에 대한 에드워즈의 역동적인 개념은 본래 역동적인 것으로서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그의 재개념화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곳의 설명에선 필자는 신론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개진할 것이다. 필자는 다음 장에서 필자의 해석 원리를 확고히 세우고자 한다. 그 원리란 에드워즈가 경향성의 개념을 재개념화 한 것에 있다. 그런 다음 필자는 3장에서 6장까지에 걸쳐, 존재론과 인식론을 다루려 한다. 영속적(permanent)임과 동시 역동적인 에드워즈의 존재에 대한 성향적인 재개념화를 그곳에서 설명하려 한다. 그런 다음 필자는 인식과정에 있어서의 상상력(imagination)의 역할에 대한 성향적 이론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상상력의 행위가, 하나님의 역동적인 삶과 세계의 생성이 그 안에서 또는 그것을 통하여 그들의 목적들을 획득하는, 창조된 실존 내의 지점임을 보일 것이다. 7장에서 필자는 현실적이며 또한 변화하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에드워즈의 재개념화의 중요성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하나님의 존재의 본래적이며 역동적인 본성이 세계의 존재와 생성을 위한 기반이 됨을 필자는 말할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에드워즈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에 대한 재개념화가 시간성과 인간 역사이해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분명히 하고자 한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철학적 신앙>, 이상현, 한국장로교출판사, pp. 3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