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문 소논문

기독교와 역사 장기용

하나님아들 2020. 11. 21. 23:29

기독교와 역사   장기용

 

 

들어가는 말

 

역사(歷史)는 과거의 사실(the fact of the past)에 관한 학문이다. 영국의 평론가요 역사가인 토마스 카알라일(Thomas Carlyle,1795-1881)은,“역사는 모든 과학의 기초(基礎)이며,인간 정신의 최초의 소산(所産)”이라고 말했다. <역사학개론>의 저자 박성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역사 속에서 태어나 숨쉬며 조금은 역사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단 역사학(歷史學)에 종사하는 사람만 역사를 생각하고 역사를 논하란 법은 없다.그러나,역사를 단지 생각한다는 차원과 연구한다는 차원은 다르다. 왜냐하면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는 반드시 역사연구의 대상,목적,방법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 필요한 것이며,역사와 역사학의 본질문제에 대한 식견이 요청되기 때문이다”(‘머리말’ 중에서).

 

죤 브릭스(John Briggs)는 ‘하나님과 시간과 역사’라는 글에서 말하기를,“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인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역사가는 각 세대가 역사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개인의 기억상실이 의사의 치료를 요구하는 정신적 결함인 것처럼 역사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없는 공동체(共同體)는 어려움을 경험한다”라고 했다.

 

인간는 누구나 예외없이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문화적 영향 아래 있다. 또한 그는 ‘현재’의 제약 가운데 있다. 만일 그가 이러한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면,그는 그의 시대의 안목이 아닌 다른 시대의 안목(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현재 안에서 과거를 받아 들인다.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 그리스도인은 어떤 관점에서 역사를 보아야 하는가? 교회사(敎會史)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역사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대개 이러한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1. 역사(歷史)란 무엇인가?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본(Edward Gibbon,1737-94)은,“역사는 인류의 범죄와 어리석은 행위 그리고 불운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Voltaire,1694-1778)는 말하기를,“역사는 우리가 죽은 자들에게 행하는 속임수의 꾸러미일 뿐이다”라고 했다.

 

역사란 낱말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일반적 의미에서,역사란 “인류사회의 과거에 있어서의 변천 흥망(變遷興亡)의 기록”이다. 흔히 역사는 객관적 의미와 주관적 의미를 갖는다고 일컬어진다.

 

(1) 객관적 역사(사건)

 

객관적 의미의 역사란 ‘역사적 사건(事件) 그 자체’를 가리킨다. 즉,‘역사적 사건의 과정’,‘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all happened in the past)이란 뜻으로 사용될 때,역사는 객관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일상대화에서 사용되는 ‘역사’라는 말은 대부분 객관적 의미의 역사다. “독일어의 ‘일어나다’(geschehen)란 동사를 명사화한 Geschichte가 곧 객관적 의미의 역사다”(박성수,역사학개론,15쪽).

 

(2) 주관적 역사(탐구)

 

본래 라틴어 historia는 탐구(inquiry)나 탐구와 연구의 결과로 얻어진 역사지식(歷史知識)을 의미하였다. 이것은 단편적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사실과 사실간의 연관성을 그 전후관계에서 해명한 탐구와 지식이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그리이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는 헬라인과 야만인의 영광스러운 행적을 보존하려고 <역사>를 썼다. 9권으로 구성된 그의 <역사>는 동서 양대국이 충돌했던 페르시아 전쟁을 주제로 한 것인데,그 사이사이에 많은 에피소드를 삽입하였으며,대여행에서 얻은 견문(見聞)도 진술하였다. 페르시안인에게 공정하고 타민족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그는 언제나 페르시아의 노예들을 ‘아무 주인도 없고 다만 법을 소유하고 있는 자유민’인 헬라인과 대조시켰다. 그는 각 민족마다 풍속과 습관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관습(慣習)에 대해서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다.

 

(3) 역사의 동양적 의미

 

동양에서 역사는 무엇을 의미했는가? 중국에서는 명말(明末)에 이르러서야 ‘역사’란 말을 썼고,그 이전에는 단지 사(史)란 말밖에 쓰지 않았다. 사(史)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1) 역사적 사실 그 자체, 2) 역사서(역사 기술), 3) 역사기록자(사관)의 의미가 있었다.

 

사(史)는 손 수(手)자와 가운데 중(中)자의 합성어라고 한다. 여기서 중(中)은 바를 정(正)을 뜻하므로,사(史)는 곧 ‘바르게 쓴다’라는 뜻이다.

 

(4) 역사적 사실(事實)

 

역사는 과거(過去)에 관한 학문이다. 따라서 역사가가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사실(fact)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실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인간의 사상과 행동에 관한 사실”이다(J.H.Robinson). 그러므로 역사학의 대상은 성질상 인간들이다. 역사 자료의 배후에서 역사가가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인간들이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는 자연사의 일부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에 관련된 자연현상은 역사적 사실(事實) 속에 포함시켜야 한다.

역사는 ‘시간에 있어서의 인간의 학(學)’이다. 역사학은 항상 인간을 시간이라는 사차원(四次元)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의 시간이란 비약할 수도 없고 역행(逆行)할 수도 없는 생생한 현실로서의 시간이다. “역사적 시간은 부단히 현재를 과거로 만들며 현재를 과거로부터 변화시킨다. 이리하여 과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현재와 다른 실재(實在)로 변해 간다... 시간은 곧 변화요, 역사가는 바로 이 학문을 연구하는 학문이다”(박성수).

 

(5) 역사와 역사가

 

역사가(歷史家)는 역사적 사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재생하는 것인데,이 때 역사가는 그 자신의 세계관이나 현재적 관심,편견 또는 신념 등의 주관적 관점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재생하지 못한다.

 

고대 헬라와 로마의 역사가들은 그들의 저술에서 비극성(悲劇性)을 강하게 나타내었다.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일반적인 법칙이 인간의행동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헤로도투스는 다음과 같이 비관적으로 말했다:“일찌기 위대했던 나라들은 대부분 하찮은 나라가 되었고 지금 힘있는 나라들은 과거에 무력했었다...인간의 행복은 결코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고대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37-100)는 구약성경을 보충하고 정치사를 강조하기 위해 저술한 작품에서 유대인의 역사를 썼다. 그는 헬라인에게 역사적 전망이 결여되어 있음을 비평하였다.

 

<역사의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Arnold Toynbee,1889-1975)는 21개 문명의 발생과 붕괴를 묘사했다. 그에 의하면,“종교 운동은 하나의 계속적인 상승 선상에 있는 것 같지만 문명(文明)의 움직임은 순환적이고 재현적인 것처럼 보인다.”

 

20세기의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은 모두 발전과 진보의 역사관을 비평하였다. 그들은 인간 역사의 기록에서 유한성과 갈등과 좌절 그리고 불합리와 상대주의를 보았다.

 

<역사의 언덕>에서 김동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역사라고 알고 있는 것은 결국 역사가가 잡다한 사실들(facts) 가운데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실만을 추려서 <역사>라고 단정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사실이냐 하는 문제는 그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의 시대적 환경과 그의 철학,인생관,가치관 등등에 좌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어떤 면에서 현재의 영향을 받지 아니하는 과거는 없다고 할 수 있다.”(100쪽)

 

<철학과 역사연구>의 편집인 러쉬두니(R.J.Rushdoony)는 <성경적 역사철학>에서 말하기를,“역사가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는 역사를 초월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가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철학적 전망으로부터 역사를 바라 본다. 그리고 그의 보고는 이러한 것들에 의해 좌우된다... 역사가의 보고는 역사에 대한 전망을 반영한다(The historian's report represents a perspective on history)”라고 했다(The Biblical Philosophy of History,p.111).

 

 

(6)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對話)

 

카아(E.H.Carr)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하다. 카아는 1892년 영국 태생으로서 케임브리지 대학과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1916년 이후로 약 20년간은 영국 외무부의 외교관으로서 국내외에서 활약하다가 1936년부터는 웨일즈 대학의 국제외교학 교수로서 학계에 투신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옥스포드 대학을 거쳐서 다시 1955년부터는 모교 케임브리지에서 가르쳤다.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는 1961년에 있었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영속 강연에서 발표된 것으로 후에 BBC방송이나 주간지 리스너(Listner)를 통해서도 일반에게 보급되었다. 1961년 출간된 이 책은 1964년 포켙판으로 재출간되었고,우리나라에서는 1966년 길현모 교수가 아주 명쾌한 필치로 번역을 하였다(역사란 무엇인가?,탐구당).

 

근대 역사학의 확립자인 독일의 역사가 랑케(Ranke,1795-1886)는 “역사가란 자기 자신을 죽이고 과거가 본래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가를 밝히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아야 하며 오직 사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함으로써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 그 자체’에 큰 비중을 두었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되는 역사인식론이 금세기에 이탈리아의 철학자 크로체(B.Croce,1866-1952,<역사서술의 이론과 역사>의 저자)나 콜링우드(R.G.Collingwood)에 의해 피력되었다. 그들에 의하면,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이다. “모든 역사적 판단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실천적 요구이기 떄문에 모든 역사에는 현대의 역사라는 성격이 부여된다. 서술되는 사건이 아무리 먼 시대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역사가 실제로 반영하는 것은 현재의 요구 및 현재의 상황이며 사건은 다만 그 속에서 메아리칠 따름이다”. 그들에 의하면,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문제의 관점 하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서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의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E.H.카아는 중심을 과거에 두는 역사관과 중심을 현재에 두는 역사관의 중간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과의 관계는 평등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역사가는 사실의 노예도 아니요,주인도 아니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하다. 역사란 결국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History is a continuing dialogue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우리는 오직 과거를 의식함으로써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Herbert Luethy).

 

 

2. 왜 역사를 배우는가?

 

역사에는 일종의 매력이 있다. 역사에는 다른 어느 과목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고유의 심미적 기쁨’이 있다. 이 기쁨은 역사학이 추상적 관념의 학문이 아니라,인간적 냄새가 물씬 나는 구체적 사실의 학문이라는 데에서 나오는 강렬한 매력이다. 또한 역사에는 구경의 재미가 있다. 역사가는 마치 연극이나 영화를 구경하듯 역사를 감상할 수가 있다. 등장 배우들(역사적 인물)의 연기를 보고 칭찬도 해 주고 비난도 할 수 있다. 즉 역사가는 역사의 드라마를 구경하며,그 구경의 재미로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이다(박성수,같은 책,28쪽).

 

역사는 의미있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어떤 역사적 사실에서 우러나오는 의미에 감동된다. 역사는 무엇인가를 호소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이 호소력도 역사연구의 한 매력이다. 역사는 사람을 연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이 제외된 역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인간을 경제와 계급과 정치 등의 비인격적 세력의 꼭둑각시로 만드는 결정론적 역사 기술을 경계해야만 한다.

 

어떤 사람도 역사로부터 피할 수 없다. 현재의 60%는 과거요, 40%는 미래라는 말도 있다. 역사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과거를 이해할 수 있고 현재의 위치를 알 수 있으며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지동식 교수는 역사 연구의 이유를 말하면서,“과거를 더듬어 지식을 축적하여 우리와 세계의 상관성에 입각한 현재를 알아,민족과 국가 그리고 인류와 세계의 진로를 전망하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생활화하는데 있는 것”이라고 했다(고려대 문과대 사학과 교수실 편,역사란 무엇인가? 1979,27쪽).

 

강만길 교수는 역사 연구의 동기에 관하여, “우리를 역사를 알려고 하는 이유는 선택한 사실(史實)에 대한 지식을 풍부하게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서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하여 흐르고 있는 법칙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하여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데 있다.. 그 사실(史實)을 해석하여 의미를 알아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3. 기독교와 역사이해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역사적인 종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되 교리적 진술이나 신학적 연구를 통하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동과 언약 관계의 이야기 가운데 계시한다”(John Briggs).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이고 따라서 전(全)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계속되는 역사의 흐름은 의미없는 사건들의 복잡한 얽힘이 아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챨스 킹슬리(Charles Kingsley)는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물론 순환론적 역사관(시 간관)에 반대하여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직선적’ 시간 개념을 소개한 것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었다.

 

(1) 그리스도인과 역사연구

 

그리스도인은 역사연구의 기본 입장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성경의 역사서들은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행위를 기록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의 기초로서 역사적 사건들(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중요시하는 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과거(過去)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 연구에 있어서 신앙과 학문의 통합은 이루어져야 한다. 신앙과 학문을 통합하는 것이 가능한가? 어느 시대나 기독교학자들은 이러한 물음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신앙과 학문적 노력의 통합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가능성을 믿고 역사를 연구하는 기독교학자들도 많이 있다.

 

기독교와 역사라는 주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기독교 역사가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기독교를 지나치게 신봉하는 태도를 취하거나 지나치게 겸손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주 오류를 범하였다(George Mardsen편,기독교와 역사이해,12,13쪽). 전자에 속하는 역사가들은 과거의 특정한 사건들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내고 역사 속의 선과 악의 세력들을 지적하는 것이 기독교적 역사연구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복음주의 전통 안에 있는 기독교사가(基督敎史家)들이 빈번히 갖는 생각이다. 그 가장 통속적인 형태는 ‘세대주의’라 불리우는 역사이해(歷史理解)이다. 홀 린드세이(Hal Lindsey)는 이러한 해석의 가장 통속적인 옹호자이다. 물론 그는 전문적 의미에서는 역사가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세대주의적 견해가 고도(高度)의 성경관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과거 사건의 의미와 목적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사건들,특히 중동의 사건들의 의미를 밝힐 수 있다고-두려움과 의심의 기색없이-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그는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의 세계에 일어날 사건들까지 상세하게 예견(豫見)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세대주의는 성경을 보다 용이한 방법으로 현재와 미래의 사건들에 연관시킴으로써 지금까지 받아들여져 온 역사학의 제규범(諸規範)들을 무시하고 있다.

 

보다 온건하고 학문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교회사가 중에 이미 고인이 된 라토렛(K.S.Latourette) 교수를 언급할 수 있다. 라토렛은 많은 역사가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확신을 가지고 선(善)의 세력과 악(惡)의 세력을 구분하였다. 그는 어느 정도까지는 정확하게 역사 속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변화시키는 능력의 결과들을 추적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편,기독교와 역사의 관계에 대하여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역사학자들도 있다. “역사와 기독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역사가와 신자>의 저자 반 하비(Van Harvey)는 일부 기독교사가들이 의식적으로 신앙과 학문을 연결시키려 하지 않는 이유를 제시하였다. 그에 의하면,많은 기독교사가들은 ‘비평적 판단’과 ‘신앙윤리’가 서로 상반된다고 간단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역사가들은 신앙이 의식적으로 학문과 결탁되면 건전한 사료 비판체계(史料批判體系)가 침해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왔다. 그 결과, 기독교신앙과 학문은 분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물론,과거의 해석자로서의 역사가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성에도 불구하고,기독교적 역사연구는 가능하고 유익하다. “왜냐하면 비록 역사가가 과거의 사건들을 완전하게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인간,그리고 인간과 그의 이웃과의 연결성에 유의하면서 역사를 연구하게 되면 가치있는 결과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역사연구의 동기와 목적

 

그리스도인은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역사 연구에 있어서 우리는 이웃 사랑의 실천을 마음에 둘 수 있다. 이웃을 이해하려면,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 연구를 통해 사회 속에서 수천년 동안 행동해 온 인간을 연구하는 것은 값진 일이다.

 

마르스덴(George M.Marsden)에 의하면,역사가는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일에 관하여 말하는 사람이다. 그에 의하면,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자신의 문화와 세계에 관련을 맺으면서 우리 자신들과 우리의 이웃들을 보다 깊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과업은 “현세에 살면서 그리스도 안에 구현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한 한 깊이 우리 자신과 세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며,이해는 사랑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역사를 배우면 어떤 점이 좋은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1)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다 주며,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도움이 된다. 2) 시간과 공간의 편협성을 피하는데 도움이 된다. 3) 사실적 지식습득만이 아니라,분석 평가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4) 사회내의 정치적,종교적,지성적,경제적,예술적인 모든 발전을 포함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을 살펴볼 수 있다. 5) 현대의 유사한 문제들의 해결방법에 필요한 연구방법을 결정할 수 있다. 6) 연구 대상이 되는 사회의 가치관과 전제 등을 이해 할 수 있다.

 

 

(3) 역사해석의 문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비그리스도인과 다르게 역사를 해석(解析)하는가? 역사연구에 있어서 ‘사실들’의 고찰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역사가의 가치체계(혹은 세계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사가의 객관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객관적 판단을 하기를 주장하는 역사가는 그 자신의 세속적인 편견을 그의 주제 속에 포함시켜 버릴지도 모른다... 역사가는 과학자가 지닌 예민함과 에술가가 지닌 창조력과 인류애를 겸비해야 한다”(John Briggs).

 

기독교사가는 파스칼(Pascal)을 논할 때,그의 종교관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한편,비기독교사가는 세속적인 계몽운동의 선구자적 요소들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한 역사가의 가치체계는 그가 기술하기 위해 선택한 사실(事實)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역사가들은 모두 각자의 관점과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편향된 왜곡은 선택의 과정에서 불가피하다. “그러나 선입관을 가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역사가는 부단히 초연한 자세로 모든 이용할 수 있는 증거를 신중히 검토하고,그것이 자기의 선입관이나 편견에 꼭 들어 맞지 않더라도,발생하느 사건을 공정하게 기술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그러한 경향들을 극복하여야 한다”(G.M.Marsden).

 

기독교사가는 성경의 계시로부터 얻는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이러한 지식은 그의 역사해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영향력은 다음과 같은 전제들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1)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며,그 속에서 활동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인간의 역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이시다. 인간에게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는 경험은 하나님을 알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역사는 그분의 이야기(His Story)이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이시다(대하 20:6,시 103:19).

 

2) 인간은 최상의 피조물인 동시에 타락한 자기기만자(自己欺瞞者)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최상의 피조물이요,‘창조의 면류관’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타락한 존재로서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필요이상으로 높이려는 유혹을 받는다.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이룩한 문화적 업적을 보며 자기경외감(自己敬畏感)을 갖는다. 기독교사가는 인간의 역설적 양면을 동시에 보면서 인간의 문화적 업적을 평가한다.

 

3) 역사적 행위는 그 행위를 가능케 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역사가의 인간본성(人間本性)에 관한 이해는 인간행위의 동기를 서술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역사가는 가끔 자기자신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그렇게 행동하도록 인간을 유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데올로기,경제적 이해관계,사회적 압력,계급투쟁,무의식적인 심리적 요인 가운데 어느 것인가?” 종종 역사가들은 이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인간의 행위를 유발케하는 주요원인(主要原因)으로 간주한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적 인간이해를 가지고 있으므로,이러한 기독교적 관점은 인간행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4) 모든 역사적 해석은 도덕판단과 가치판단을 포함한다. 이미 언급한 바와같이 사료(史料)선택까지도 가치판단이 내포되어 있다. 기독교사가는 인간의 문화적 업적을 찬양하거나 세계종교들을 기술할 때,끊임없이 그러한 판단을 하게 된다. “역사가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막론하고 그가 그의 사명에 진정으로 충실한 자라면,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Donald A.Macphee). 이같은 의미에서 볼 때 역사는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도덕적 학문이 된다.

 

5) 모든 역사적 심판들은 잠정적인 것이다. 이것은 역사의 모호성의 다른 측면이다.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다. 현세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적 심판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요 잠정적이다. 세상 끝에 가서야 역사 현상의 절대적 선악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역사해석은 기독교적 역사서술로 표현된다. 매킨타이어(C.T.McIntire)에 의하면,“기독교적 역사서술이라는 말은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서술한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인간과,사회관,규범관,역사관,세계관 그리고 피조 실체 전반에 대한 기독교적인 관점이 제공하는 여러가지 유형의 가치와 통찰에 의거하여 인간,사회구조,제도,사상,관습,생활양태의 역사를 평가하고 있는 역사서술(歷史敍述)을 가리킨다.”

 

안토니 후크마(Antony A.Hoekema) 교수에 의하면,그리스도인이 거절해야 하는 두 가지 역사해석이 있다. 하나는 고대 헬라인의 역사 이해이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기 가운데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 위에서는 역사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이 역사관에는 역사의 목표가 없다.그러나 기독교 역사관에 의하면, 역사는 반복되는 무의미한 순환이 아니라 직선적 방향성을 가지고 진행되어 가는 과정이다. 역사는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요,하나님의 목표를 향한 움직임이다(The Bible & Future,p.25).

 

우리가 거절하는 또다른 역사해석은 무신론적 실존주의(實存主義)의 역사이해이다. 이 경우에도 역사에는 의미가 없다. 목표를 향한 움직임도 없다. 따라서 무신론적 실존주의에 의하면,각사람은 의미있는 결정을 함으로써 확실한 실존에로의 길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미이드(Sydney E.Mead) 교수에 의하면,역사는 “인간에게는 부분적으로만 인식가능하고 또 인식된 학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히,궁극적으로 역사를 알고 계신다...하나님만이 역사의 종국을 알고 계신다는 단언은 역사의 단편들을 인위적으로 구성하는 작업들이 한정적이고 가장적임을 말하여 준다..환언하면,이 사실은 인간은 산 자(者)의 하나님,즉 역사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들의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삶을 영위해가야 함을 의미한다”(기독교와 역사이해,109쪽).

 

헨드리쿠스 벌코프(Hendrikus Berkhof)는 말하기를,“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역사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성경이 그 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역사신학(a theology of history)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재료를 갖고 있다. 우리는 성경적(기독교적) 관점으로 역사를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관점을 갖지 못하면,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처럼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4) 기독교 역사관

 

성경은 역사와 창조 안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이 시간 속에서 이루어짐을 강조하였다. 성경은 시간과 역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라나도록 고무시켰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parousia)으로 역사는 주전(B.C.)과 주후(A.D.)로 양분되었다.

 

기독교는 역사에의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하였다.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은 낙관적 세계관을 가진 그리스도인들과 순환론적 역사관을 가진 이교도들을 모두 공격하였다.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전파가 정치적,경제적 개선을 보장해 준다고 믿지 않았다. 방자한 ‘지상의 도성’은 국가와 제국의 흥망성쇠 가운데 계속 존재한다고 말했다.

 

(5) 하나님 나라와 역사

 

하나님 나라는 계시(啓示)의 역사 속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념들 중의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의 주제는 하나님나라(神國)이다. 죤 브라이트(John Bright)는 그의 하나님나라 연구에서, “신구약을 함께 묶어주는 띠는 하나님의 통치라는 역동적인 개념이다”라고 말했다. 성경의 역사적 연구 방법이 개발된 이래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연구하는 신약학자들은 하나님 나라 주제에 집중하여 왔다. “특히 지난 세기 말부터 지난 1960년대 중반까지 이 주제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있었는데,그것은 주로 종말론적 관심에서였다”(김세윤,예수와 바울,1993,41쪽). 이 학문적 토론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출범하였다고 보고 그것의 완성은 미래에 있을 것으로 보았다는 식의 일반적인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헤르만 리델보스(Herman Ridderbos)는 <하나님나라의 도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예수님이 말씀하신 메시지의 중심 주제는 공관복음서가 전하는 대로 하나님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혹은 마태의 표현을 따르면 하늘나라(천국)의 도래이다... 누가복은 4:43에서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전파가 자기 사역의 목적이었다고 말하는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듣게 된다. 그러므로 그가 전파하신 하나님의 말씀(눅 8:11)은 천국의 말씀(마 13:19)이라고 부를 수 있다. 또 신약의 모든 말씀을 요약할 수 있는 복음은 (눅 4:43,8:1.16:16)은 그 내용이 하나님 나라와 그 도래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나라 개념은 그리스도의 비유의 핵심이며,그의 전(全) 활동과 메시지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다. 신약성경 전체는 하나님 나라를 계시하는 책이다(헤르만 리델보스,하나님의 나라,5,6쪽). G.R.비슬리-머리는 그의 저서 <예수와 하나님나라>에서 말하기를,“예수에 의하면,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자신의 말씀과 행위의 사역 속에서 결정적인 요소이다;그것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서 정점에 이르며 불시에 있을 그의 파루시아로 이어진다. 예수의 전망 속에는 신적 주권의 겸손한 섬김 속에서의 인자의 사역들과 종말에서의 그의 행위 사이에는 엄격한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그는 자신의 사역과 죽음과 부활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파루시아에서도 구원하시는 주권을 중보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위해 행한다...신자들의 은혜의 체험은 인자로서의 예수의 행위의 저체에 의해 결정된다. 기독교인의 실존은 성취된 구속과 기약된 종말(consummation) 사이에 놓여 있으며,그것은 이미 임하였으며 현존하며 앞으로 임할 주의 은혜에 대한 의존을 포함한다”(599쪽).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결핍과 고난과 슬픔이 끝나는 곳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이러한 점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 나라를 즐겨 잔치로 비유하셨다(마 8:11,눅 14:15-24,눅 22:30). 비유란 도덕적 또는 종교적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일상생활로부터 끌어오는 이야기이다. 하나의 비유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진리를 전달하기 보다는 하나의 간단한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G.E.Ladd,신약신학,129쪽).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여 만족과 기쁨을 얻는다.

 

 

(6) 구속사 신학

 

성경 전체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구속사(redemptive history) 속에서 활동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시간>의 저자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은 구원을 역사(歷史)로 이해하면서 현대신학에 있어서 ‘구속사’(救贖史)를 새롭게 문제시했다. 그는 프랑스의 개신교 신약신학자이다. 1902년 태어난 그는 루터파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의 저서 <그리스도와 시간>은 쿨만을 일약 세계적인 신학자로 만들었다. 그의 책이 영미 신학계에서 큰 환영을 받은 이유는 그의 글이 프랑스적인 간결함과 명쾌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쿨만은 <그리스도와 시간>에서 시가의 직선적 개념이야말로 성경적 종말론과 구원론의 특징이 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는 복음서에 선포된 구원이 과거,현재,미래를 포함하는 시간의 점진적 과정에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그에게 있어서 구속사는 성경 전체를 흐르고 있는 실재이며,‘신약성경의 중심을 결정하는 객관적인 기초’인 ‘선적(線的) 시간의 틀’(the framework of liner time)로 파악한다. 구속사는 ‘과거,현재,미래를 포함하는 지속적인 시간과정’이다. 따라서 구속사의 전진하는 진행은 구속의 완성으로서 보편 역사 위에 다가오는 미래의 최후 심판을 향한다. 그러므로 미래적 종말론을 객관적인 구속사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쿨만은 이 구속사의 역사적 선(線)의 전진적 성격을 밝힘으로써 기독교의 종말론을 실존적으로 비신화화하는 불트만(R.Bultmann)의 비종말론화의 위기로부터 구하고자 한다. 구속사는 창조-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종말론적 완성이라는 구속의 그리스도 선(線)의 세 가지 결정적 단계의 전진적 과정을 지닌다. 그리스도 사건은 구속사의 중심점으로 ‘단 한 번의’ 되풀이 할 수 없는 유일한 성격을 지닌다. 쿨만에 의하면,구약의 전 구속역사가 성육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과거와 미래를 중심적인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서 연결하는 구속사의 현재의 단계는 ‘이미 이루어진 결정’과 ‘앞으로 다가올 완성’ 사이에 존재하므로,긴장의 구조를 지니다. 현재는 <이미> 종말의 때이나 <아직도> 그 종말은 아니다(참고.김영한,바르트에서 몰트만까지,204-210쪽). 그리스도 초림 이후 재림 전 까지의 시간은 결정적인 싸움과 ‘승리의 날’ 사이의 기간이다.

쿨만은 구속사의 현재의 단계를 <종말 전의 마지막 때>라고 부른다. 이 현재의 단계는 그리스도의 지상의 몸인 <교회의 시기>이다. 교회의 시기는 그리스도의 승천과 그의 재림 사이의 기간이다. 쿨만에 의하면,구속사는 역사 속에서 전개되고이런 뜻에서 구속사는 역사에 속한다. 그러므로 구속사는 역사 옆에 나란히 있는 또 하나의 역사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촉에도 불구하고 구속사와 역사는 결코 동등시될 수 없다. 그는 개인의 미래는 전 구속사의 미래에 의존한다고 본다. 한 개인은 모든 역사가 최후적으로 완성되는 때 부활의 몸을 가질 수 있다.

 

 

4. 역사와 개인(個人)

 

인간의 행동은 역사를 만든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고,그들이 만드는 역사에 대해 책임이 있다. 허버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는 <역사 안에서의 개인의 역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들의 기원은 인간존재에 있다. 어떤 이념(理念)의 참된 발상은 인간의 두뇌에서 나온다. 사건이 발생한느 원인은 인간 존재가 활력(vitality)을 가졌기 때문이다. 역사가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곧 인간의 이 활력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역사는 개인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과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만들어내는 그물이다”(크리스천과 역사해석,76쪽).

역사는 수많은 전기(傳記)들의 정수(精髓)이다. 사상사(思想史)는 사람들의 사고의 역사이다. 경제사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될 수 있다. 역사상의 모든 것은 결국 개인에게 귀착된다. 도로디 왈쉬(Dorothy Walsh)는 말하기를,“인간이 선택이라는 것을 하기 때문에 단순한 역사과정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라고 했다. 그녀는 주장하기를,역사는 창조 자체 위에 인간이 덧붙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5. 교회사(역사신학)의 의의

 

(1) 교회사의 정의(定義)

 

교회사가(敎會史家)들은 교회사에 관해 여러가지 정의를 제시한다. 에벨링(G.Ebelling)에 의하면,교회사는 <성경해석의 역사>이다. 보른캄(H.Bornkamm)에 의하면,교회사는 세계복음화의 역사이다. 베버(O.Weber)는 교회사는 “교회 역사의 변천 중에 교회가 듣고 대답한” 말씀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교회사는 학문적 역사방법을 통하여 얻어진 교회의 과거사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 그러나 교회사는 신학의 일부이므로 신학에서 사용하는 방법이 요구된다. 따라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교회사를 연구할 수 있으며,신학자만이 진정한 의미의 교회사가가 될 수 있다”(김성태,역사 안의 교회,25쪽).

교회사는 ‘필수적인 보조학문’이다. 교회사는 교회공동체의 과거에 관한 연구요 기록이다. 그러므로 교회사는 역사의 흐름애 따른 교회의 발전 및 각 시대의 특징있는 사건들을 서술해야 한다.

 

(2) 역사신학(교회사학)의 위치

 

역사신학(歷史神學)은 역사가 짧은 학문이다. 유세비우스(P.Eusebius)의 <교회사>는 고대교회 300여년 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교회사의 효시’라고 까지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초대교회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시대적으로 가장 가까이서 기록한 고대교회의 최초의 교회사라는 점이다.

역사신학(교회사학)을 독립학과로서 취급한 것은 16세기 말 헤름스테트(Helmstedt)에서부터였다. 그러나 바우어의 평가에 따르면,근대의 교회사 기술의 아버지는 모스하임(J.L.Mosheim)이다. 그는 <교회사강요>라는 저서를 썼다(1726년). 그는 단지 사실을 들어 말하고 인과론적 설명을 위하여 구속사관을 포기하였다. 그는 이와같이 교회사를 세속화시킨 ‘실용주의적’ 교회사 기술을 개척했다. 그것을 대성한 대가는 19세기 말 플랑크(G.J.Planck)였다.

19세기 후반에는 실증주의적 역사주의가 승리하게 되는데,여기서 이룩된 전제들과 업적은 오늘날도 방법론적 기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하르낙(Harnack)은 그 방법으로서 고대교회의 선교사(宣敎史)와 교리사(敎理史)를 연구했다.

20세기 개신교 교회사 기술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전문화’이다. 라토렛(K.S. Latorette)의 선교사(宣敎史)로서의 교회사 전집은 뛰어난 저작이다(A History of the Expansion of Christianity,I-VII,1937-45). 곤잘레스(J.L.Gonzalez)의 <기독교사상사>는 인물 중심이나 주제 중심의 방법론을 택하지 않고,주요 신학자들과 이들의 사상을 역사적 사상적 배경하에 조명하면서 세밀하게 서술하였다. 저자의 모든 주장은 항상 확실한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20세기의 기독교 역사가 중 기독교와 역사에 관해 폭넓은 사상체계를 구축한 학자는 허버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와 크리스토퍼 도오슨(Christopher Dawson)이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도 기독교 역사관에 대해 깊이있게 이해하였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기독교 사상사에 관해 심도있는 강의를 했고 그 강의들은 편집되어 출간되었다.

 

 

맺는 말

 

미국의 지성사가(知性史家) 베커(Carl Becker)는 말하기를,“모든 사람이 스스로 하나의 역사가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말을 통해 그는 역사인식이 한낱 기억력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은 보다 고차원의 인간 지성의 발전의 계기가 됨을 암시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의 과거는 단순한 학문의 대상일 뿐 아니라 개성(個性)의 세계를 확대하는 소재가 된다”(차하순). 따라서 마이네케(F.Meinecke)가 지적한 바와 같이 역사는 학문임과 동시에 학문 이상의 것이 된다.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다. 그리스도인들은 신화(神話) 대신에 역사서를 가졌다. “성경은 하나의 장대한 역사서다. 인류의 타락과 최후심판 사이에 벌어질 인류의 운명,원죄(原罪)와 속죄(贖罪)의 일대(一大) 드라마가 시간, 즉 역사에 있어서 전개되는 것이다”(M.Bloch). 기독교는 그 근본적 교의(敎義.Dogma)역사적 사건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것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특이한 점이기도 하다. 사도신경은 역사적 사건에 근거한 신앙고백이다. 기독교사관(基督敎史觀)은 역사를 인간적 목적의 실현으로 보지 않고,하나님의 뜻(의지)에 따라 하나님의 목적을 구현해 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본다. 기독교사관은 5세기에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354-430)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서양 정신사(精神史) 전체에 그가 끼친 영향은 플라톤과 비교될만 하다. 어거스틴에 의하면,세계사(世界史)는 하나님을 믿고 이성(理性)에 따라 성실히 사는 자와 믿지 않는 교만한 자와의 대립(對立)의 역사다.

 

성경의 견해에 의하면, 하나님은 역사의 모든 사건들 가운데 밀접하게 개입하여 계신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거나 혹은 무엇을 하려고 하거나간에 전체의 결과는 하나님의 손의 영향을 보여 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를 영위한다. 분명히 인간의 행위가 역사를 만들고,역사에도 법칙의 영역이 있지만,삶과 역사 가운데 작용하는 또다른 요인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버터필드에 의하면,“하나님의 섭리는 부분적으로 두 개의 다른 요인들을 통해 역사한다.” 하나님은 우주의 모든 움직임 가운데 계시며 그것은 마치 그가 역사의 모든 움직임 가운데 계심과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는 과거를 알아야 하며,이로써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역사의식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역사적 뿌리를 무시하는 자이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사건에 근거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신앙고백의 전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역사의식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개인주의와 기복신앙의 무지와 어두움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깨어있는 역사의 파수꾼이 되어 도래하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

 

<참고문헌>

고려대 문과대 사학과 교수실 편,역사란 무엇인가? 고려대학교 출판부,1999

김성태,역사 안의 교회,분도출판사,1985

박성수,역사학개론,삼영사,1980

이석우 편저,기독교사관과 역사의식,성광문화사

E.H.Carr,역사란 무엇인가? 탐구당,1966

G.Mardsen & F.Robert,기독교와 역사해석,성광문화사,1978

로이 스완스트롬,역사란 무엇인가? 성광문화사,1982

허버트 버터필드,크리스천과 역사의식,대한기독교출판사.1982

크리스토퍼 도오슨,기독교문화와 현대문명,성광문화사,1979

안토니 후크마,개혁주의 종말론,기독교문서선교회,1986

R.J.Rushdoony,The Biblical Philosophy oh History,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