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20. 11:54 |
요한복음 14장 6,7절
칼 부세
산 너머 고개 너머// 먼 하늘에// 행복은 있다고 // 사람들은 말하네//
아 나는// 남 따라 //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 왔다네//
산 너머 고개 너머 // 더욱 더 멀리 // 행복은 있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은 그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오직 성경에서만 해결이 된다.
1. 창세기 1장 1절에는 세상의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지으셨음을 선언하고 있다. 다음 구절부터는 창조의 과정이 어떠했는가가 나열이 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람을 창조하셔서 지으신 모든 만물들을 다스리고 경작하게 하셨는데, 특이한 말씀이 그 가운데 있다. 다른 창조를 할 때는 전혀 거론도 되지 않았던 말씀이다. 그것은 자신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이다.
태초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그러한 이유로 인간은 유일하게 자유로운 의지를 갖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다. 이것이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으뜸인 이유며, 존귀한 이유다. 그래서 사람들은 창의적인 생각과 문명의 축적과 발전, 세상을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환경을 새롭게 발전시키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이며 명령이다.
그리고 변화의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지만, 이것이 계속적이고, 긍정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힘은, 창조주며,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였다. 그 교제가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고, 여자의 가치를 알게 하고 지혜롭게 만든 것이다.
2.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것은 인간의 죄악 때문이다. 이 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지만 늘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죄를 짓도록 정한 것도 아니고 유혹한 것도 아니다. 오직 사람 자신들이 마귀에게 미혹되고, 악한 마음을 품어서 타락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아름답게 지으셨지만, 사람들이 꾀를 내어 타락한 것이다. 전 7: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특히 아담의 죄의 의미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교만과 반역의 의미가 있다.
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 죄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공급받고 도움을 받고 살아야 할 길이 사라졌다.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의 죄악 때문에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3.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을 통해 인류의 모든 불행이 찾아온 것이다. 생명의 근원과의 단절은 사람에게 길을 잃어버리게 하고, 모든 행복의 근원이 되는 생명을 잃어버리게 했다. 그래서 전쟁과 기아, 질병과 고통, 근심 등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고대의 많은 철학적인 사고와 지식은 참된 인간의 길이 무엇인가? 사람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러한 질문에 정확하게, 혹은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의문들은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 해결되어야 할 의문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단절을 통해 사람들은 더 이상의 해답을 얻을 수가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방황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방황은 필연코 고통과 절망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려는 노력들, 전쟁, 수련, 선행 등의 그 어떤 노력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이제 죄를 통해서 찾아온 단절, 그리고 불행은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였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해결이 되지 않는다. 사회전반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복지의 문제, 환경의 문제, 사회의 문제는 고대의 이러한 문제들의 연장선에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재정적인 개선을 통해서 해결하려 하지만, 해결책은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 우리는 법을 통해 환경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 하지만 우리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사회의 문제도 어떻게 개선할지를 알지 못하고 서로가 비난만 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고통이 찾아 온 것이다. 이러한 죄의 문제, 하나님과의 단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의 문제들도 해결될 수 없다.
4.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을 우리는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헌신과 희생을 하신 사건을 통해, 우리는 행복의 길을 쉽게 찾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소유하게 된 행복의 열쇠가, 우리에게 넘겨지게 된 과정을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과정을 생각해보면 오랜 시간, 힘든 결정과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오시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육신의 위대하고, 은혜로운 헌신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시게 된 것이다.
그는 사역 내내, 진리를 전하고,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시려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행함 그 자체에는 우리에게 전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들이 있다. 병자를 고치시고, 전도를 하시고, 마귀를 내 쫓으시고, 또 복음을 전하시고, 하는 그 행함 자체에 우리에게 전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늘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 하는 말씀이 무엇인가 하고 묵상하는 행위다. 그것을 통해 주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오셨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해 생겨나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시려고 오셨다. 예수님의 삶은 그 전체가 그러한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이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다.
5. 예수님의 죽음의 가장 큰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있다. 이것이 구원이며, 영생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마 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성전휘장이 찢어진 사건은 명확하게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액션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말은 우리 인생이 당하는 모든 불행에서 벗어날 길이 열렸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하나님과 만나는 일보다 우리 자신에게 더 시급한 일은 우리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논리적으로는 그것이 먼저가 아니다. 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다. 그래서 수험생도 예수님을 먼저 믿어야 하고, 노동자도, 정치인도, 시합을 앞둔 선수들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믿는 일이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참된 길을 발견하게 하고 알게 만든다.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 불행과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해서 고통과 저주와 조롱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과 형벌을 받으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로 나갈 길을 여신 것이다.
6.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길은 없다.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오직 그 만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길을 가르쳤다. 오직 그 만이 그 길 가운데서 나타나는 능력을 보여주셨다. 오직 그 만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가 있음을 사역 내내 가르침으로, 능력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복음서 전반의 내용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당해야 할 형벌을 그가 몸소 지시고 우리 대신 죽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이,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만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오늘 성경 말씀에는 항상 정관사‘그’라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길,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진리,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생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은 없다.
○ 어느 신학생 전도사가 하루는 목사님에게 말하기를 "목사님 저는 낙심천만입니다." "왜요?" 목사님께서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얘기를 하였다. 자기는 기도를 많이 했고, 신구약 성경을 30독을 했기 때문에 믿음이 생기었다고 한다. "주여 믿습니다." 그랬더니 더욱 믿음이 생기었다. 그 후에 40일 금식 기도를 했더니 더욱 믿음이 강해져서 의심이 없어졌다.
그 순간에 이 젊은 전도사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단다. "베드로는 믿음을 가지고 물 위로 걷지 않았느냐. 나도 물위로 걸어 보자." 그래서 그는 저수지로 가서 "주여 믿습니다."하고 물 위로 걸었는데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다고 한다. 그 후부터 믿음이 약해져서 지금은 맥이 없어 죽겠다는 것이다. 그때 목사님께서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당신 물에 빠져 죽지 않은 것을 감사하십시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보라 하였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고 걸었지만 당신은 물 위로 걸어오라는 말씀이 없지 않았소." 하고 기도해서 돌려보냈다.
이 신학생은 성경을 읽었지만 주님께서 제시해 준 길을 잘못 파악한 것이다. 오직 성경 속에 길이 있고, 예수님의 말씀 속에 길이 있다.
7. 뿐만 아니라 그가 가르치시고 걸어가셨던 그 길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다. 무릇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예수님의 전하신 메시지를 연구해야 하고 그의 삶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겠지만 말 그대로 비슷할 뿐이다. 그것은 가짜인 것이지 진짜는 아니다.
예를 들면 부모에 대한 공경을 들 수 있다. 수많은 종교들이 여기에 거론하고 있지만 완전한 진리를 품고 있는 것은 성경밖에 없다. 말씀을 자세히 연구하고 묵상하고 주의 진리에 다가가는 사람이 되자.
진리는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발견된다. 그러므로 삶의 진리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나 성경을 알고 싶은 사람이나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고 싶은 사람들은 예수께로 나아가 예수님을 알고자 하고, 그가 전한 이야기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곳에 진리가 있다.
우리 한국교회의 많은 믿음의 선배들도 그 속에서 진리를 맛보고 그 진리로 만족하고 그 진리를 위해 살았다.
우리도 예수님 속에 있는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 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되자.
8. 그는 또한 유일한 생명이다. 그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것처럼, 그도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죽음을 이기신 분이시다. 그러기 때문에 오직 그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생명이다.
우리는 어떤 잘못을 할 때 후회하고 그 잘못을 저지르려고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를 하고 다시 같은 일을 행한다. 그것은 그것을 고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술을 끊을 능력이 없고, 담배를 끊을 능력이 없고, 사랑을 할 능력이 없고, 재정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해결책은 주께 나아오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생명이 있다. 세상을 복되게 하고, 세상을 만드시는 능력이 그 곳에는 있다. 그 곳에는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이 있다. 예수님 안에는 예수님만이 줄 수 있는 생명이 있다. 복음서에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을 얻은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께서 살아계셔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신다. 내가 주께 나오면 주께서 나를 살리신다. 가족이 주께 나오면 가족을 살리신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생명은 무한한 생명이어서 누구든지 그에게 나오는 자를 살리신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경험하고 내 인생은 늦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붙잡을 수 있다면 그 인생은 늦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붙잡을 수 있다면 그는 생명력이 가득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가 잡은 것은 예수님일 뿐 아니라 자신을 살리실 생명을 붙잡은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생명이 되신다. 그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 나아가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하고, 계획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올 한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지 계획이 있는가? 어떻게 내 삶을 생명으로 풍요롭게 할지 계획이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그 기초에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와 가족의 삶이 천국이 되려면,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알기에 힘쓰는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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