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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음의 대로 (눅 3:3-6)

하나님아들 2019. 1. 20. 21:13

마음의 대로 (눅 3:3-6)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시간에 우리 함께 나눌 말씀은 “마음의 대로”라는 제목입니다. 성경에 보면 3,600년의 역사라는 인류 역사에 가장 오래된 도로 중의 하나인 고대 도로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 도로가 있는데 그 도로는 애굽에서 출발하여 아카바만과 요단 동편을 경유하여 북방 시리아와 아브라함의 고향인 메소보다미아까지 연결되는 남북교역로로서 매우 중요한 도로인 왕의 대로입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용하려고 한 도로입니다. 이 도로 말고는 주변이 너무나 험한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도로를 이용하려고 했으나 에돔과 모압이 이 길을 막고 열어주지 않아 광야에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도로 말고 또 다른 특별한 도로가 있었습니다. 그 도로는 곧 하나님을 향해 뚫어진 마음의 대로였습니다. 그래서 시84:5에  시편기자가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얼마나 복되고 아름답습니까?


우리 마음에도 이 대로가 뚫려 있어야 합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성을 쌓는 나라는 후퇴하지만 길을 닦는 나라는 발전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도 바로 경부고속도로를 시작으로 도로와 항만과 공항을 잘 정비했을 때 왔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대로부터 뚫어야 합니다.


고대 시대에 왕이 한 도시를 방문할 때는 그 앞에 사자가 먼저 가서 그 방문을 알리면 그 시민들이 나와서 도로의 좁은 곳은 넓히고 높아진 곳을 깎아내고 패인 부분은 메우고 길에 세마포를 깔면서 왕이 오는 길을 예비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영생의 주님을 모시려면 마음의 대로를 닦아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마음에는 찾아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문에는 손잡이가 없다고 합니다. 안에서 열어주어야 열립니다. 그래서 계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주님 오시는 길을 닦아야 할까요?


본문 5절에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그랬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회개인데 이 구절에서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방법을 몇 가지로 알려줍니다.


1. 구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3절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여기 요한의 세례는 회개케 하는 세례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죄를 씻는 세례지만 요한이 준 세례는 회개하지 않으면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회개케 하는 세례입니다.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세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상으로 스스로 의롭거나 구원 받을 수 없음을 1500년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맨 마지막으로 세례요한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외침은 한결 같이 죄를 책망하는 외치이었고 너희 스스로는 구원 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자각하고 구세주 예수 앞에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있는지, 그래서 구세주의 필요성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나친 자신감은 무지요, 기만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죄에 관해서 인간의 전적부패와 무능력을 말했는데 그것이 올바른 신앙의 기초입니다. 그래야 예수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마음의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요한이 말한 이 골짜기는 마음의 골짜기입니다. 마음의 골짜기가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음부와 낙원 사이의 큰 구렁이 나옵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6).


이처럼 골짜기가 깊어서 이편에서 저편으로 갈 수 없는 큰 구렁이 있습니다. 그 구렁이 바로 불신의 구렁입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어떤 누구라도 하나님께로 건너 갈 수가 없습니다. 구원 받을 수 없어요. 그런데 이 구렁은 커서 사람 맘대로 건너올 수 없습니다. 오직 살아있을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을 때만이 마음에 구렁은 사라지고 예수님께서 찾아오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골짜기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고 해도 성경의 교훈을 다 믿으시라는 것입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불신의 골짜기, 의심의 골짜기를 믿음으로 메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을 때 내 영혼과 나의 모든 삶에 맞이할 수 있습니다.


3. 마음의 산들도 낮추어야 합니다.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성경에서 산은 어찌할 수 없는 큰 문제라든가 혹은 반대로 상상할 수 없이 큰 은혜, 혹은 거룩을 말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산의 의미도 있습니다. 시68:16에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계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냐.” 하신 말씀처럼 교만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 높은 교만이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와 왕으로 삼았으면 그 앞에 복종해야 합니다. 옛날에 왕이 행차할 때는 모두 엎드렸습니다. 그렇지 않다가는 불경죄로 당장 잡아갑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면서 엎드리지 않는다면 주님을 바로 모실 수 없습니다.


교만이 무엇일까요? 겸손하지 않는 것이 교만입니다. 혹은 순종하지 않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내 뜻을 주장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기 위치를 떠난 천사를 흑암 가운데 가두셨다 했습니다. 교만하면 앞 길이 캄캄합니다.

 

나도 모르는 숨은 교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교만이 낳는 두 자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월감이고 또 하나는 열등감입니다. 우월감도 교만이지만 열등감도 그 바탕은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깊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굽은 마음도 곧아져야 합니다.


굽은 것이 곧아지고” 길이 꾸불꾸불해서는 안 되듯 마음도 굽어서는 안 됩니다. 굽었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말하면 마음이 병들었다는 뜻입니다. 자기 편협한 주관에 빠져 무엇이든지 삐뚤어지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해를 잘합니다. 참으로 민망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굽은 것은 주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죄악의 길, 비 진리의 길로 가는 자입니다. 그래서 시125:5에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를 여호와께서 죄악을 짓는 자와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했습니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게 됩니다(막13:14). 이처럼 마음의 성전에 나쁜 생각이 들어서면 그 인생도 말세입니다.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심령이 살고 죽고는 마음 지킴에 달렸습니다. 마음이 잘되어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잠4:23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생각은 물리치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마음을 지키는 것이 굽은 길을 펴서 주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5. 거친 마음도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요즘 우리나라 곳곳마다 도로정비가 잘되어  험한 산골짜기에도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어 시원하게 달리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처럼 도로망이 잘되어 있는 나라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도 험한 곳이 평탄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서적 변화를 가리킵니다. 불만 불평 침묵 미움 시기 질투 싸움이 아니라 항상 주님을 기억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예배하며 감사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셔놓고 얼마나 실례를 범하는지 모릅니다. 롬1:21과 같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도 그것이 정상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사람에게도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히12:14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 주님께서 구원과 영생과 행복을 가득 가지고 우리에게 온전히 찾아오시기를 원하고 계시는데 마음의 대로가 준비되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마음 문 닫으면 주님은 오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구세주의 필요성을 깨닫고, 믿음으로 불신의 골짜기를 메우고, 겸손으로 교만의 산을 낮추고, 순종으로 굽은 부분을 펴고, 사랑으로 거친 부분을 부드럽게 하여 천국의 온갖 복을 안고 임하시는 주님을 맞이하여 충만하게 누리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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