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백부장 고넬료 (행 10:1~8)
이번 한 주간 새벽기도회는 성경이 말씀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함께 은혜 받고자 합니다. 오늘 새벽기도회 첫 시간, 위대한 믿음의 사람 백부장 고넬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고넬료의 의미는 고넬료는 공식적으로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강림한 첫 케이스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백부장이 예수 믿고 성령 받아 하나님 나라가 임한 온전한 구원이 사람이 되고 온 가정과 군대라는 직장까지 복음화가 된 것은 참으로 귀하고 놀라운 사건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로마의 복음화도 이 고넬료와 그의 부하들이 로마로 돌아가서 일으킨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럼 고넬료가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요?
한 마디로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랬는데 여기 그 비밀이 나타납니다.
1. 하나님을 경외했는데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에 파견되어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보고 그도 열심히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자기 나라에는 제우스신이라든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종교를 만들었지만 유대에 오니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와 역사와 인간을 다스리시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니 그도 따라서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회당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열심히 예배했습니다. 아마도 조석으로 예배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예배 열심히 하면 됩니다. 예배 잘드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초대교인들도 예배 열심히 드리다가 성령 받았습니다.
2. 그리고 그는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는 예배 뿐 만이 아니라 3절에 “제 구시 쯤 되어”라는 말씀 속에 그가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씩 기도했는데,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그 좋은 점을 그대로 본받아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이 정도 기도하면 은혜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도 지금 새벽기도처럼 3번씩만 기도해 보세요. 나머지 두 번은 집에 돌아가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3. 그리고 그는 이웃을 섬겼습니다.
2절에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 했습니다. 약1:27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찾아오시고 함께 하십니다. 이웃과 함께 하지 않는 경건은 형식적인 경건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시고 불쌍한 자에게 동정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경건을 통해서 고넬료는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베드로를 만나 온 집안이 예수 믿고 구원받고 성령 받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고넬료를 통해서 이방선교의 문이 열리고 로마까지도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이만큼 중요한 것은 고넬료가 군인정신으로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로마인으로만 구성된 특수부대 장교로서 명령에 살고 명령이 죽는 백절불굴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 군병으로서 그런 투철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처음 믿을 때 그 신앙의 감격을 가지고 백부장 고넬료를 그대로 본받으십시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오던 일입니다. 그 일을 더 잘합시다. 더 투철하게 합시다. 그래서 이 새벽에도 백부장 고넬료와 같은 믿음을 가져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은혜와 복을 받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화요일)
다니엘 (단 6:1-10)
오늘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사람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기원전 6세기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잡혀간 소년으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여 바벨론에 가장 높은 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벨론이 망하고 메대파사가 들어선 후에도 다니엘의 지위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간신들이 시기하여 다니엘을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이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을까요?
1. 규칙적인 기도입니다.
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매일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전에 하던 대로 그의 기도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총리로써 바쁜 중에도 다니엘의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2. 생명을 건 기도였습니다.
7절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간신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다니엘의 기도를 이용하여 음모를 꾸몄지만 다니엘의 기도는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사탄이 기도 못하게 하려고 마음을 자꾸 약하게 만듭니다. 잠26:13에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기도하면 몸이 부서지는 줄 알고 기도가 무서워 기도를 못합니다. 기도하다 병이 들어 죽는 줄 압니다. 그게 현대판 사자입니다. 사자 두려워하지 마세요.
알고 보면 기도는 영육 간의 큰 은혜입니다. 하늘의 은사도 있지만 기도하는 그 자세 자체가 치료를 일으킵니다. 무릎을 꿇고 소리 내어 간절히 나무뿌리라도 붙들고 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저는 그걸 매일 경험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고 기도하면 사자가 문다 해도 다니엘처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사자가 물지 못합니다.
3.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단9: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대신 회개하며 부르짖었던 것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힌 것은 그들의 죄 때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응답해 주신 것이 70이레의 비밀입니다. 그 내용은 메시아가 죄인을 대속하기 위해서 오는 초림과 장차 악을 멸망하시고 재림하실 주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포로 되어 살고 있는 죄인이지만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온갖 멸망할 죄악 가운데서도 다시 임하시는 주님을 사모한다면 온전한 해방이 있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니엘이 그냥 다니엘이 아닙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요, 다음은 철저히 기도에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하루 3번씩 기도하되 생명 걸고 기도하고 기도의 폭을 넓혀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가장 귀히 쓰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수요일)
바디매오 (막 10:46-52)
오늘은 여리고 길에서 그 믿음을 칭찬하신 바디매오의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바디매오의 위대한 믿음은 딱 한 가지입니다. 분명한 소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관심을 사서 응답 받으려면 분명한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 바른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46절“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했는데 길가에 앉은 것은 구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자리니 돈도 잘 벌리겠지만 그가 거기 앉은 것은 오직 예수 만나 눈을 뜨고자 하는 한 가지 소원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영의 눈을 뜨고자 하는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눈이 보배입니다. 눈이 닫혀 있으니 만사불통입니다. 육신의 눈도 눈이지만 영의 눈도 눈입니다. 믿음의 눈이 열려야 참된 신앙생활할 수 있습니다. 지안도 열려야 합니다. 사업가에게 눈만 열리면 그것은 대 성공입니다. 예술가에게도 눈이 열리면 큰 사람이 됩니다.
다음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소리 질러 불렀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나가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큰 소리를 계속 질렀던지 많은 사람이 잠잠하라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크게 소리 지르며 다윗의 자손 예수를 불렀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기회는 바로 오늘입니다. 그래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은혜의 날이로다."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때입니다. 그래서 시32:6에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시간 없다 말고 기회를 사세요, 기회를 만드세요.
다음은, 부르실 때 달려갔습니다.
50절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여기 겉옷은 구걸할 때 입는 옷입니다. 예수 만나 눈이 밝아지면 밝은 눈으로 일할 수 있으니 그것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버리고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소원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51절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52절) 이 얼마나 분명하고 단순하면서 간절합니까?
이렇게 분명한 소원을 가져야합니다. 분명한 소원이 없기에 우물쭈물합니다. 기도의 문장은 단순할수록 좋습니다. 써서 기도하시는 분들 지나친 수식어 제거하시고 한 문장이 한 줄을 넘지 않게 하세요. 단순할 수록 좋고 클라이막스에 이르러서는 한 핵심을 단순한 문장으로 반복하면 더 뜨겁게 타오릅니다.
예를 들면 "기도하기 원합니다. 찬송하기 원합니다. 사랑하기 원합니다. 새로워지기 원합니다. 눈을 뜨기 원합니다,,," 이렇게 심플하면서도 분명한 기도가 우리 마음을 담아내고 고조시키며 모두 함께 아멘 하기에 좋습니다. 주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 마음에 성령의 소원으로 타오르기를 기다리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 영안이 열리도록 바디매오와 같은 소원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만나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요일)
가나안 여인 (마 15:21∼28)
본문에 위대한 믿음을 가진 가나안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을 때 흉악히 귀신들린 딸을 둔 한 가나안 여인이 예수께 나아와 딸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토록 소리 지르며 간청해도 침묵하시다 입을 여시더니 뜻밖에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며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26절)고 거절하셨습니다.
그래도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나이다”(27절)하고 더 낮추며 도움받기를 간청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28절) 낫게 해주셨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의 위대한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1. 말씀을 붙잡는 믿음입니다.
22절 “다윗의 자손 예수여” 하고 불렀는데 그는 이방인이지만 장차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에게서 오리라는 유대인들의 믿음을 소문으로 들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방도 구원하신다는 그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2. 기도하는 믿음이었습니다.
23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말씀 붙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르짖었습니다. 말씀을 안다면 그 말씀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물러나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2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그래도 예수께 절하며 엎드렸습니다.
4. 냉대와 비하의 시험도 이겼습니다.
26절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래도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응수했습니다.
그녀는 자기를 낮추며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말씀에 서서 어떤 시험도 이기고 믿음으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히4:2에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아멘 하고 끝까지 붙들어야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역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방인이 성경을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의 자손이 메시아로 오실 것이라는 실 날 같은 말씀 한 마디지만 그 말씀 끝까지 붙들고 응답 받은 가나안 여인처럼 끝까지 말씀 붙들고 기도하고 겸손하고 회개하면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응답 받는 큰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금요일)
한나 (삼상 1:10~18)
오늘은 기도의 사람 한나입니다. 한나는 육신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열 아들을 대신할 만큼 위해 주는 좋은 남편을 가졌고, 시집 온 가문은 이스라엘의 엘리트 좋은 신앙의 가문이었고, 재물도 있는 유력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나에게 깊은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건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모든 권리도 상속도 다 다른 아내인 브닌나에게 넘어갑니다. 더구나 남편의 자식을 낳은 브닌나가 여주인인 한나를 무시하고 자꾸 격분시킵니다. 이런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괴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임시 처소 실로에 있는 성막에 갔을 때도 마음이 괴로워 슬픔에 쌓여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든지 엘리 제사장이 술 취한 줄 알고 술을 끊으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한나를 기도의 사람 만드시고, 또 어떤 서원과 같은 중대한 헌신이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셨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이 사건을 통해서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졌고, 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의 종인 나실인으로 바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젖을 떼자 약속대로 바로 그 어린 애를 하나님의 성전에 드렸습니다. 그 어린 것을 보내 놓고 또 얼마나 기도했겠습니까?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한나는 더욱 탄탄한 기도의 용사로 만들어져갔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통을 통해서 큰일을 하게 하십니다. 아는 대로 사무엘은 제사장 왕 선지자라는 삼대 권한을 가진 다윗과 같은 몇 안 되는 사람 빼놓고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이처럼 기도의 사람은 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실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느냐 죽느냐 흥하느냐 망하느냐 중대한 요건입니다. 한나가 기도로 문제를 풀지 않았다면 스트레스 받아 아마 슬픔 중에 죽었을 것입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의 분량이 차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기도의 분량이 차지 않으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일군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도우실 수도 없습니다. 사탄의 시험이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여러분이 잘 아시잖아요? 기도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훈련소의 땀 한 방울은 전쟁터의 피 한 방울과 같습니다. 기도의 땀 흘리는데 인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우십시다. 한나의 슬픔, 기도 안 하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한나와 같은 온전한 기도의 사람이 되어 간구의 소원을 이룰 뿐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토요일)
바울과 실라 (행 16:19-34)
오늘은 바울과 실라입니다.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준 일로 바울과 실라가 매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캄캄한 지하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 기도와 찬송은 옥문을 열게 해주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함께 기도하며 찬송할 때에 큰 지진이 일어나 옥 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들의 매인 것이 다 풀어졌습니다. 이것이 기도와 찬송의 위력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어두컴컴한 절망에 있더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위대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나의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찬송하면 영적으로 바로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는 교훈입니다.
슥4:7에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한 것처럼 우리 믿음 앞에 산 같은 문제도 평지가 되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와 찬송을 끊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62:5-8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 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했습니다.
2. 그 뿐 아니라 기도와 찬송은 간수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굳게 닫힌 옥문도 어렵지만 사람의 마음 문을 열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찬송할 때 간수의 마음도 열렸습니다. 저들이 대체 누군데 기도하고 찬송하니 지진이 일어난단 말인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죄수들이 모두 도망친 줄 알고 문책이 두려워 자결하려 하였을 때에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그를 살려냈기 때문입니다. 도망치지 않았으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위해 주는 말을 하니 간수는 바울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무엇을 말해도 아멘으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전도했습니다. 그리하여 간수는 바울을 모시고 온 가족이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고 기뻐했습니다. 가족의 마음이 열렸습니다.
3. 간수의 마음만 열렸을까요?
35절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였습니다. 상관의 마음까지 열렸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기도하고 찬송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망하지 마십시다. 약해지지 마십시다. 낙심하지 맙시다. 실망하지 맙시다. 기도하고 찬송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초대교회도 기도하고 찬송할 때 땅이 진동하며 불의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전무후무한 무기가 기도와 찬송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날)
엘리야 (약 5:16-18)
오늘 주일 새벽에는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기원전 약 9세기에 활동하던 하나님의 선지자로 모세, 사무엘 등과 함께 위대한 선지자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선지자로 선지자의 대표 그러면 엘리야를 말합니다.
간단한 인적사항을 살펴보면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요, 이스라엘 7대 왕 아합과 8대 왕 아하시야 시대에 사역했고, 길르앗의 디셉 사람이며, 털이 많고 허리에 가죽 띠를 하고 다녔고, 기적을 많이 일으켰으며, 엘리사가 후계자고, 죽지 않고 승천한 사람입니다.
“엘리야”의 의미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그 의미 그대로 갈렐산상에서 참 신이 아닌 가짜 바알과 아세라신과 싸워 이긴 능력의 사람입니다.
그럼 엘리야의 능력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가 잘 가르쳐줍니다. 17-18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간절한 기도였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한 말씀입니다. 엘리야가 특별해서가 아니고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점이라면 그가 믿음으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 이름으로 믿음으로 담대히 기도하면 엘리야와 똑같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엘리야를 만든 것입니다. 우리도 열심히 기도하면 엘리야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중세 유럽에 어떤 수도원의 기도실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너의 삶이 가난하더라도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너는 나를 주라고 부르면서도, 나를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고, 너는 나를 진리라고 말하면서도, 내게 배우지 않았고, 너는 나를 빛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고, 너는 나를 길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따라오지 않았고, 너는 나를 능력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의지하지 않았고, 너는 나를 응답이라고 하면서도, 내게 기도하지 않았느니라. 그러니 너의 삶이 가난하더라도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이런 글입니다. 뭔가 깨달음을 주는 좋은 말씀입니다.
이 글 중에 “너는 나를 응답이라고 하면서도, 내게 기도하지 않았느니라.”한 말씀처럼 우리가 엘리야와 차이가 있다면 기도하지 않은 차이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기도로 병도 나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16절에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면서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새벽에도 엘리야처럼 간절히 기도하다가 병이 낫고 문제가 해결되고 기적을 체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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