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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언어의 한계를 넘지 말라 (마 12:30-37)

하나님아들 2019. 1. 20. 21:11

언어의 한계를 넘지 말라 (마 12:30-37)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 시간에 “언어의 한계를 넘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교육 심리학자 벤자민 블름은 인간이 사는 환경을 물질환경과 언어환경으로 구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물질 환경이란 안락한 의식주생활과 풍부한 용돈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어 환경입니다. 얼마나 친절하고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말을 주고받으며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 환경은 어떻습니까?"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은 에브라임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자기들의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불러도 나오지 않았으면서도 승리하고 나니 그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무시했다고 부르지 않았다고 불평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쓰신 전쟁의 영웅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로 일어난 자는 말로 망해요. 처음에는 온유한 사람 기드온을 만나서 그대로 지나갔지만, 나중에 입다에게도 그 못된 행습하다가 에브라임 사람 4만 2천 명이나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길르앗 병사들이 에브라임의 패잔병까지 씨를 말리려고 하는데 신기한 것은 마지막까지도 말로 구별해 처형합니다. 요단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강을 건너는 사람에게 ‘쉽볼렛’을 발음하지 못하고 에브라임 방언으로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죽였습니다. 말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란 교훈입니다.

 

본문에 예수님께서도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말 잘못하면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에 빠질 수 있고, 무심코 한 말일지라도 그로 인해 마지막 심판 날에 심문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18:21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한 사람이 18,000단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 들으시기에 합당한 말은 얼마나 하는지, 우리가 한 그 말들이 끼치는 영향들을 생각해 보면 끔찍합니다.


언어의 한계를 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언어는 인격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34-35절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말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보여 준다고 말씀합니다. 누구나 마음 가득한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민은 모이면 농사 이야기하고, 어민은 고기 잡는 이야기, 운동선수는 경기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 천당으로 유명한 최봉석 목사님, 일제 순사가 때리면 예수천당을 외쳐댔습니다. 자기 속에 예수로 꽉 차서 건들기만 하면 예수천당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은 내 안에 쌓아 두었던 것, 기존에 내가 늘 생각 했던 것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들어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영까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말을 들어보면 정통이다. 이단이다. 성령이다. 악령이다. 따뜻하다. 차갑다. 지혜롭다. 무지하다. 믿음이 좋은지, 일을 저지를지 다 나타납니다.


유대의 속담에 “칼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혀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했습니다. 매나 칼보다 혀가 더 큰 상처를 내고 사람을 죽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3:5-6) 했습니다.


2. 언어에 생과 사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31-32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그 누구의 말도 아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천 냥이 있으면 노비에서 평민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즉 말 한마디가 팔자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말은 생과 사를 결정할 만큼 중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도 말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롬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셨고, 13절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심령이 살려면 입술이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약할 때도 소리를 내면 강해집니다. 기합술사들 보니까 손으로 벽돌을 깨고 머리로 다듬돌을 깹니다. 작두 위에도 서는 걸 보았습니다. 기합을 넣을 때 소리를 지릅니다. 성도가 입을 열어 말하면 천지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입을 열어 기도하면 하늘의 능력이 임합니다.

 

입술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지창조도 말씀으로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한 강도는 “주여 낙원에 이를 때에 나를 기억 하옵소서” 이 한마디로 구원 얻었습니다. 마10:32-33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잠6:2에는 “네 입의 말로 내가 얽히게 되었으며 네 입의 말로 내가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말은 흥하게 할 수도 망칠 수도 있습니다. 말로 세울 수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말로 평화롭게 혹은 싸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말로 신앙을 고백하거나 말로 예수를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입에 재갈 먹여 온몸을 어거하라(약3:3)"고 했습니다.


특히 입으로 성령을 훼방하면 그 죄는 영원히 사함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훼방죄를 말씀하시기 전에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이 말씀을 하신 후에 "그러므로"라는 부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사란 내용 내용 원인이나 근거 쓰여 앞뒤 문장 이어 주는 말을 가리킵니다. 즉 성령훼방죄란 하나님의 일에 방해를 놓은 것이 성령훼방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성령훼방죄에 대한 정의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귀신 들렸다 비방하고 복음을 방해할 때 성령훼방죄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붙들림 받아 하는 일인데 그것을 방해하면 그게 죄란 말입니다. 모세를 대적했던 사람들의 결말을 보세요. 그러므로 예수를 부정하고 자기를 하나님이라 예수라 성령이라 하는 자들의 죄,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할 죄지만, 나아가 하나님의 일군들이 성령 받아 주의 이름으로 사역할 때 일군들을 무고하게 훼방하되 고의성이 있거나 그 정도가 심각하면 성령 훼방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10:40-42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3. 언어에 조심해야 할 이유는 말을 책임질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36-3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우리의 말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에 대한 책임은 지상에서도 당합니다.


덴마크의 저술가 데어도어 라인킹이라는 저술가는 당시 덴마크 국왕 크리스쳔 4세를 헐뜯었다는 이유로 1646년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최종 결심에서 국왕은 그에게 "네가 쓴 책을 씹어 삼키든가 사형을 당하든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라인킹은 사형을 면하기 위해 하는 수없이 자신의 책을 갈기갈기 찢어 스프에 넣어 끓인 다음 그 책을 다 먹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파송했을 때 이길 수 없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믿음의 말을 했던 사람은 모두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이에 대해 민14:28에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리는 대로 그대로 갚아 주리라” 자기가 한 말은 어떤 말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한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하셨습니다. 엡4:29에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불신의 말, 거짓말, 더러운 말, 희롱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방과 불평과 원망과 저주와 포악과 교만과 패역한 말이나 궤사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투는 말이나 헛된 말이나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이나 남을 참소하는 말이나 불의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내 잘못은 없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아첨하고 망령되고 무익한 말도 조심해야 합니다.


짐15:4에 "온량한 혀는 생명나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드럽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야 합니다. 듣는 자들에게 은혜 끼쳐야 합니다. 진실 되고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명철하고 슬기롭고 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도움과 용기와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농담도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하더라도 좋은 내용으로 해야 합니다. 내가 한 이 말이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해야 합니다. 나아가 전도함으로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셔서 그 소리가 밖에 들리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언어는 인격의 표현이요, 생과 사의 결과가 따르며, 우리 인생을 좌우하며, 마지막 심판 날까지도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언어의 한계를 넘지 말고 말로서 자신을 진단하면서 더욱 믿음의 말 사랑의 말 지혜의 말을 하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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