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열왕기서 제 1강 2018. 10. 14
말씀 : 열왕기상 1,2장
요절 : 열왕기상 2:2,3절
힘써 대장부가 되라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열왕기서는 솔로몬에서부터 다윗 왕조의 멸망까지 이스라엘의 흥망성쇠의 원인과 역사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역사의 주관자로 받아들인 왕들(다윗의 길을 간 왕들)과 그렇지 않은 왕들(여로보암의 길을 간 왕들)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길을 걸어간 왕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고, 여로보암의 길을 간 왕들은 여호와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열왕기서 말씀은 영적 지도자에게 필요한 믿음과 가치관을 제시해줍니다.
오늘 1강은 솔로몬과 아도니야가 대조되어 나옵니다. 왜 아도니야는 다윗의 아들로 태어난 축복을 받았음에도 역사의 죄인으로 남게 되었습니까! 솔로몬의 다윗의 계승자의 축복을 감당하려면 어떠한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까! 리더의 위치에 선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과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하는 사람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1장에는 솔로몬이 왕이 되는 과정이 나옵니다. 솔로몬의 왕위등극은 저절로 되지 않았습니다. 때는 다윗이 아무리 이불을 덮어도 따뜻함을 모를 정도로 늙어버린 때였습니다. 다윗의 leadership이 빛을 잃어가면서 다윗왕국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1-4) 솔로몬의 이복형 아도니야가 왕자의 난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중요 인사들을 모아 잔치를 벌인 후 왕이 되겠다고 선언해 버립니다.(5)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나버렸고 결국에는 반역자로 처형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도니야는 왜 실패했으며, 그의 실패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로, 아도니야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몰랐습니다. 일찍이 다윗왕은 하나님의 방향대로 차기 왕권을 솔로몬에게 넘겨주겠다며 공식적으로 발표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도니야는 다윗왕의 방향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왜지요? 혈통으로 따지면 자기가 형입니다. 첫째 왕자 암논부터 셋째 왕자 압삽롬까지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기에, 넷째 왕자 아도니야가 왕이 되겠다고 나선 것은 당연한 권리처럼 생각될 수 있습니다. ‘내가 솔로몬보다 못한 것이 뭐가 있어?’ 본문이 제시하는 또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심히 잘생겼기 때문입니다.(6) 얼마나 잘생겼으면 용모가 심히 준수하다고 쓸 정도였습니다. 잘 생긴 것이 뭔 죄입니까!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 속을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박수를 받고 시작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높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연히 존중받고 높임 받고 특별해야 해!’ 인간의 본성은 객관적으로 잘생기지 않아도 스스로를 멋지게 보려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한때 거울을 보며 나르시즘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심히 잘생겼으면 스스로를 얼마나 탁월하게 생각하겠습니까! 주변 아끼는 사람 중에 잘 생긴 분, 예쁜 사람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교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더군다나 아도니야는 아버지 다윗에게 한번도 섭섭한 말을 듣지 않으며 자랐다고 했습니다. 아도니야가 엄친아로 자랐다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자랑거리이지만, 영적으로는 위험성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항상 인정받으며 싫은 소리 듣지 않으며 자란 사람들은 자기발견에 약하고 강한 자존심으로 주위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판단은 항상 정확하다는 경향성을 띱니다. 주변에 똑똑한 사람 있으면 말해주세요. ‘조심해야 겠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문제의식을 놓쳐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다니엘서 5장에서 바벨론왕 벨사살은 페르시아 군대의 공격을 받는 중에도 여호와의 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그릇으로 술잔치를 벌이며 우상을 찬양합니다.(단5:1-3) 그때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씁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하나님이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그 날로 바벨론 제국은 무너지고 맙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의 무게를 달아본다면, 나는 얼마나 내실있게 준비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할 믿음이나 가치관이 준비되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얼마만큼 영적인 무게가 나가는 사람입니까! 이런 문제의식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겁 없이 자기 분수를 넘어서서 행동하지 않게 되고 치명적인 악수를 두지 않게 됩니다.
둘째, 어려음의 때에 함께 할 사람들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아도니아 캠프에 모여든 거물급 인사들을 생각하면, 그는 충분히 준비한 것처럼 보입니다. 최고의 군사령관 요압과 최고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들어왔으니, 군사와 종교계 양쪽을 꽉 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을 보고 왕자들과 다윗의 신복들과 유다사람들도 줄줄이 모여들었습니다. 반면 솔로몬에게는 나단과 브나야와 다윗의 용사들만 남았습니다. 숫자로만 따진다면 아도니야가 왕이 되는 것은 확실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라는 다윗의 말 한마디에(31,32) 우수수 흔들려 떨어져 나갑니다.(31,32)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처럼 말했던 자들은 철새처럼 떠나버렸고, 아도니야 홀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아도니야에게는 나단이나 브나야처럼 목숨을 걸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나단은 분위기가 아도니야에게 넘어간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용기있게 솔로몬 편에 섭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지혜롭게 밧세바를 통해 다윗왕을 움직였으며, 브나야는 다윗의 명령 그대로 임무를 완수해냅니다. 숫자에 속으면 안되고, 세상 타이틀에 속으면 안됩니다. 위기와 고난의 때에도 변치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가장 중요한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며, 모래성을 쌓은 것에 불과합니다. 몇 사람이라도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준비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준비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그러해야 하고 우리의 교회가 그러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하루 아침에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자기중심적으로 살면, 내 주변에 희생하고 섬기는 사람들이 모여들 수 없습니다. 내가 고난앞에 도망치면, 내 주위에 고난앞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리더가 상처와 아픔을 견디고 인내하지 않으면, 그의 주위에는 상처와 고난이 오면 떠나버리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자신부터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며 좋은 날, 힘든 날 함께 견디고 수고할 때, 그러한 사람들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용사들이 그렇게 준비되었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이점에서 아도니야는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으면서도 다 준비한 것처럼 착각한 것입니다.
셋째, 끝까지 욕심을 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쿠데타를 제압한 후, 아도니야에게 살 길을 주었습니다. 선한 일을 하면 왕자의 지위를 계속하여 누릴 것이며, 악한 일을 하면 그에 따르는 벌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아도니야는 아버지 다윗왕의 잠자리 수발을 들었던 수넴 여인을 자기에게 달라고 요청합니다. 고대세계에서 선왕의 후궁을 취하는 것은 왕의 권리였습니다. 아도니야는 무서운 경고를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왕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팀 우첵이라는 학자가 실험했던 마시멜로 챌린저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 네 명이 한 팀을 이루어 둥근 테이블에 둘러 앉아 스무 가닥의 스파게티면과 접착 테이프, 실로 18분동안 탑을 쌓고 마지막으로 마시멜로를 올려놓는 게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경영대학원 학생이나 변호사처럼 가방 끈이 길다는 사람들이 팀을 이루어 쌓은 탑의 높이가 유치원생들이 쌓은 탑의 높이보다 현저히 낫다는 것입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보통 10개팀 정도가 참여하면 여섯팀 정도가 성공하는데, 제일 높이 쌓은 팀에게 1만달러의 상금을 걸고 나면 성공하는 팀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탑을 쌓기 위해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상금이 커질수록 사람들의 시야가 좁아지고 조급해집니다. 터널비전 현상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모든 것을 망치게 됩니다.
다윗은 시편 127편에서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시127:1)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자, 세상 스펙을 의지하고 욕심을 좇아 움직이는 자는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이 높여주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그렇게 준비되고 우리의 교회, 우리 사회가 그렇게 준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죽을 날이 다가오자 솔로몬을 불러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다윗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왕이라도 태어나고 죽어야 하는 생노병사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왕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살면 안되는 이유,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랑하는 모든 것들은 때가 되면 무너지고 사라지고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존재로 서게 됩니다. 머나먼 이야기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중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진리입니다. 방향감각을 놓치면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처럼, 하나님앞으로 가야 한다는 인생방향을 놓치는 거기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고개 숙인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아들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장부가 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저마다 대장부, 강한 남자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해병대를 떠올립니다. 헬스를 통해 초콜릿 근육질을 만든 남자, 하빕이나 맥그리거같은 파이터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자라고 해서 다 같은 남자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겉모습은 조인성이지만, 속은 온갖 두려움과 염려에 짓눌린 속 좁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조그만 유혹에 넘어지고 눈 앞의 유익에 휘둘리는 가벼운 남자들도 있습니다.
다윗의 삶은 참된 대장부가 누구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곰이나 사자가 양들을 물어가면 쫓아가서 그 입에서 양들을 꺼내오기까지 싸웠습니다. 블레셋 최고의 전사 골리앗이 여호와의 군대를 모욕하는 소리를 듣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맞짱을 떴습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괴롭히던 사울에 대해서는 두 번이나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죽일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교만한 나발을 처단하고자 칼을 뽑았다가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의 옳은 말을 듣자 다시 칼집에 꽂을 정도로 참을 줄 알았습니다. 우리야의 아내와 간통한 죄에 대해 책망을 들었을 때, 변명하거나 합리화하지 아니하고 애통하며 회개했습니다. 압삽롬의 반역으로 피난을 가다가 시므이로부터 독한 저주의 말을 들었을 때, 시므이에게 화풀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훈련으로 받아들이고 잠잠히 여호와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다윗에게 대장부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기 위해 용감히 싸우기도 하고 감정을 죽이고 참기도 하고 성령의 뜻대로 순종하기도 하고 신앙양심대로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3절 말씀과 연결됩니다.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이 말씀은 가나안 정복전쟁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도 말씀했습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되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요구를 받습니다. 그로인해 자칫 사람의 인기나 눈치를 보기 쉬운 위험성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인정을 얻고자 이리저리 끌려가기 쉽습니다. 물론 지도자는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법과 주권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사람들의 기대와 행동을 분별하여 올바로 섬기고 다스려야 합니다.
사람들의 요구와 하나님의 뜻이 같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법도가 같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그런데 다를 때가 대부분이며, 정반대일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 앞의 유익과 감정을 따라 움직이기를 원하는데, 하나님의 법도는 희생하고 순종하는 것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편하고 재미있는 것을 앞세우라고 외치는데, 하나님의 법은 선하고 옳은 것을 앞세우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는데,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앞세우면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보다 사람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갈등하고 미움받고 박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강대국 이스라엘을 세워주기를 원했는데, 예수님은 만민구원역사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사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나님의 뜻과 법도를 앞세우려면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인내하며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손해의식, 두려움, 세상 염려를 물리쳐야 합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했습니다. 힘쓰라는 말씀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대장부가 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필을 받아 대장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대장부로 되는 대장부DNA는 없습니다. 작은 문제에서부터 하나님의 뜻과 법도를 앞세우는 훈련을 부지런히 받아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모여 인생결단도 드리고 하나님 역사에 쓰임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형통하게 살고 싶어 무지하게 노력을 많이 합니다. 학생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노력합니다. 많은 학사들이 건강을 헤쳐가며 돈을 벌고자 애를 씁니다. 인맥을 쌓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취미활동이나 음주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애써 기도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뒤로 미루고 소감을 건너 뛰고 기도생활을 뒤로 미루어도 별다른 위기의식을 갖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형통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매순간 하나님의 뜻을 묻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능력과 믿음을 주시도록 매순간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결코 망하지 않으며, 그의 가정이 복을 받고 그가 속한 모임과 사회가 복을 받습니다.
우리 삶에는 때때로 전환기가 찾아옵니다. 예를 들어 대학에 진학했거나 혹은 취업을 했을 때, 솔로의 시절을 끝내고 가정을 이루어야 할 때, 자녀를 얻어 학부모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될 때, 생애 전환기를 맞아 신체 리듬이 바뀔 때입니다. 혹은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시련이나 고난을 당할 때, 혹은 책임맡은 자리에 서게 될 때입니다. 새로운 변화로 인해 염려와 두려움의 세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붙들고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자기 부인을 배우고 자기 십자가를 지면서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한 단계 성장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하십니다. 후손들이 복을 받고 앞세대의 축복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이는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통치한 왕들은 형통하였고 그렇지 않은 왕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다윗의 유언의 또다른 부분은 다윗 시대의 세 사람에 대한 부탁입니다. 첫째는 요압을 제거하라는 유언합니다. 요압은 다윗의 장수로써 많은 공을 세웠던 사람이지만, 치명적인 과가 있었습니다. 사울왕조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다윗에게 찾아와 통일을 제안했을 때, 개인적인 감정으로 아브넬을 암살해버립니다. 또한 다윗이 군대장관으로 임명하려고 했던 아마사를 경쟁심으로 죽여 버립니다. 그로인해 통일은 늦추어지고 7년 6개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고, 다윗은 많은 마음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요압은 능력있는 부하였을지는 모르지만 개인의 감정과 유익을 위해 하나님 역사를 방해하는 대적자 노릇을 했습니다. 이제 다윗이 떠나면 솔로몬 정권에 해를 끼칠 것을 내다보고 솔로몬의 인간적 부담을 덜어준 것입니다.
두 번째는 바르실래의 아들들을 후대하라는 유언입니다. 그들은 압삽롬의 반란을 피해 급히 도망쳐온 다윗 일행을 영접하고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가장 슬프고 힘들고 절박했던 그때, 그들의 섬김은 다윗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받은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하는 왕이 되라는 유언입니다.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기초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므이입니다. 다윗이 압삽롬의 반역으로 피난길을 떠났을 때, 시므이는 다윗을 조롱하고 저주했던 인물입니다. 시므이는 사울 집안에 속한 사람입니다. 다윗이 시므이를 죽이지 않은 것은 사울 집안, 베냐민 지파와의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이고 참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세우신 자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것은 크나큰 악입니다. 이제 분열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솔로몬 시대에는 지도자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들을 분명히 징계함으로써 공의를 세우도록 한 것입니다.
지도자는 은혜와 진리 위에 모임을 세우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은혜를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공의로 대처하는 것이 지도자의 사명입니다. 우리 모임도 은혜와 진리위에 굳게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의 은혜를 힘써 감당하는 모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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