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열왕기서 제2강
말씀 : 열왕기상 3,4장
요절 : 열왕기상 3:11,12절
오직 지혜를 구하였으니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오늘 본문은 솔로몬 이야기 중에서 제일 많이 알려진 내용입니다. 일천번제를 드려 지혜를 얻었다는 것과 한 아기를 놓고 싸운 두 여인을 재판한 이야기, 교회 문턱을 웬만큼 넘어온 사람들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응용하여 새벽기도를 하는 교회들도 많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3년 동안 일천 번 새벽기도를 통해 자녀에게 지혜를 얻게 하여 명문대에 갈 수 있도록 간구합니다.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 일 년을 꼬박 채워 일천 번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시험 잘 보는 지혜를 얻으려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요즘처럼 입시를 코 앞에 두고 있을 때에는 특새, 특밤이 교회마다 걸려 있습니다.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지요? 수능철마다 영험하다는 불당이나 유명한 무당이나 점집으로 달려가서 거액의 돈을 내고 ‘찍신’이 임하기를 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매달리기만 하면 소원이 성취되는 것일까요? 아마 그렇다면 세상은 우등생들, 천재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솔로몬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주셨을까요?
일단 솔로몬이 드렸던 일천번제를 상상해봅시다! 기브온 산당에서 소 일천 마리를 번제로 잡아 드리는 모습을 말입니다. 번제란 가죽을 제외한(가죽은 제사상 몫. 레7:8) 모든 것을 거룩한 불에 완전히 태워 그 향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소 한 마리를 완전히 불에 태우려면 얼마나 많은 불을 피워야할까요? 기브온 산당 주위로 고기타는 냄새가 사방 수 km에 진동하였을 것이며, 미세먼지 경보가 내렸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한 번에 열 마리씩 아침 점심 저녁으로 번제를 드려도 쉬지 않고 한 달 이상을 드려야 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기름 냄새로 쩔었을 것입니다. 일백번제만 드려도 다른 신하들과 차별화되고 왕의 체면을 세우기에 충분했을 터인데..., 솔로몬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1절을 보면 때는 애굽 왕 파라오의 딸과 결혼할 정도로 중동지역의 강자로 인정받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미 2장에서 왕권을 위협할 자들도 모두 제거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는데도 왜 그리 간절하게 부르짖는 것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겸손하고 치열하게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달라지는 마음을 봅니다. 사울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가 왕이 되기 전에는 얼마나 겸손했습니까! 그런데 왕이 되고난 후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나름대로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여론에 민감해져서 불순종의 길을 가고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대적합니다. 그와 같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직장에 취업하기 전에는, 결혼하기 전에는 날마다 무릎을 꿇고 간절히 부르짖던 사람들이 막상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말씀을 보아도 맹숭맹숭, 기도를 해도 맹맹하게 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왕의 자리를 확실하게 차지한 그때에 일천번제를 드릴 정도로 간절했습니다.(2-4)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잠을 자고 있는 솔로몬에게 찾아오사 물으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게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우리도 이런 질문 한번 받아보고 싶지요? 오늘밤 성규학사의 꿈에 찾아오셔서 이리 물으신다면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상상이라도 해봅시다. 어떤 분은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세요.’라고 말할 것이라 했습니다. 사모들에게 묻는다면?, ‘처녀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대답할지 모르겠습니다. ‘자녀가 시험에서 1등급 맞게 해주세요!’ ‘꿀피부 만들어주세요’라고 구할까요? 보통의 왕이라면 가장 광대한 나라를 세워 주시도록 기도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뱀파이어처럼 불로장생하여 영원토록 영광을 누려보게 해달라고 구할 수도 있습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신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구할 것인가? 마음속에 분명한 정함을 갖고 살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하나님의 사람답게 사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정말 간절하면서도 마땅히 구해야 할 것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구해야 할 것, 곧 거룩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솔로몬의 답이 무엇입니까! 첫째, 받은 은혜를 크게 여기고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구했습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솔로몬은 반복하여 자신을 ‘종’이라 표현합니다.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종은 아이라’ 솔로몬 시대에 왕은 최고로 높은 사람이요, 종은 제일 천한 사람입니다. 또한 스스로를 출입할 줄도 알지 못하는 작은 아이라고 말합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전설 다윗의 아들이며, 만백성이 우러러보는 왕입니다. 1,2장을 보면 탁월한 정치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자신을 종처럼 하찮은 존재, 작은 아이처럼 앞뒤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 사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타이틀을 가졌다고 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영광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세상 이치에 밝다고 해서 영적 세계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찬사를 받다 보면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에서는 활도 잘 쏘고 탁월한 사냥의 기술을 가졌습니다. 주변 족장들이 앞 다투어 사위삼고 싶어할 만큼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에서를 후계자로 삼고자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능력 뒤에 감추어진 그의 영적 수준은 ‘망령된 자’라고 불릴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에서 자신이 그러한 자기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잠시의 배고픔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빌립은 안드레보다 수학능력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믿음 테스트에서는 안드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이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간이 없기 때문이겠습니까! 특별 기도꺼리가 없기 때문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분인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부르심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자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같은 죄인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구원과 영생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같이 불신적인 사람에게 왜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목자로 살도록 인도하신 것입니까!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하심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모임이 생명을 살리는 복의 통로가 되고 하나님의 기뻐하는 기업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를 안다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하기에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 어제까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을 지라도 오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시험에 빠질 수 있는 작은 아이입니다. 젊은 날의 솔로몬과 중년의 솔로몬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달려들어 하나님의 주신 축복을 빼앗고자 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빼앗고 부르심의 믿음을 빼앗고 사명을 감당할 스피릿을 빼앗고자 끊임없이 이런 문제, 저런 문제로 파고들어 공격해옵니다. 사탄은 어찌나 간교한지, 인간의 지혜와 경험만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에도 나와 있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러므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하기에는 작은 아이처럼 연약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사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감동으로 이끌어주시고 당신에게서 받은 모든 은혜를 감당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둘째, 백성들을 향한 목자의 마음입니다. 8,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수많은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제대로 분별하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 일입니까! 요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입장에서는 뼈아프겠지만, 숨기고 피할 것이 아니라 모든 진실을 드러내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깨끗한 사법부로 다시 서야 합니다. 재판이 바로 서는 거기에서 공평과 정의의 나라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재판에서 억울한 일이 없어야 선을 행하기에 힘쓰고 악을 멀리하는 백성들이 늘어갈 것입니다. 의인이 악인으로 둔갑하고 악인이 의인처럼 대우받는 재판이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뿌리채 흔들리고 맙니다. 우리 역사에서 세종대왕을 성군으로 떠받드는 이유도 억울한 백성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한문으로 공지했을 때, 그것을 몰라 재판에 끌려오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보면서, 한글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선한 것을 선하다, 악한 것을 악하다, 판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작가인 동부지원 문유석판사에 의하면 판사들 가운데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고 합니다. 변호사 의견을 들으면 변호사 쪽이 맞는 것 같고, 검사 의견을 들으면 검사 주장이 맞는 것 같은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결정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여인의 이야기를 봅시다. 서로 자기 아기라는 주장을 절대로 굽히지 않고 싸우다가 왕 앞에까지 나왔습니다. 분명 한 여자는 자기 아기가 아님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겁도 없이 왕 앞에까지 나올 정도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CCTV나 DNA검사처럼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별할 자료가 없던 시대여서 그랬던 것일까요? 처음에는 장난처럼 자기 아이라고 주장했는데, 어느 순간 감정이 상하고 목소리가 커지다 보니까 물러설 수 없게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평소 꼴보기 싫은 사람이었는데, 자기 아기는 죽고 상대방 아기는 건강하게 자라니, 심사가 뒤틀려서 그리 하는 것일까요!
인간의 속마음을 헤아리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한편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기에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생모가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거짓말쟁이의 자리에 서겠다고 나서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의 다른 모습은 나의 아기 잃은 고통을 저 여자에게도 맛보게 해야 한다며 끝까지 우기는 여자처럼 무섭도록 뻔뻔하고 이기적이며 회개하기를 싫어합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하고 능욕과 교만과 자기 자랑과 악을 도모하며 우매하며 무정하며 무자비할 수 있습니다. 같은 직업, 같은 엄마이지만 속사람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한 사람 안에 두 여자의 모습 같은 양면성이 있기도 합니다. 어떤 때에는 지킬 박사처럼 지성적이며 순수함을 추구하는 영혼이었는데, 어느 순간에는 하이드처럼 무섭도록 다른 모습으로 돌변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선악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하나님께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는 듣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람의 본성은 듣는 것보다 보이는 외모에 주목합니다. 또한 사람의 본성은 듣는 것보다 말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나영호목자는 이승미목자의 주례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랑은 신부로부터 ‘파란 옷이 어울려? 핑크색이 어울려?’ 질문을 받으면 ‘아무 거나 다 어울려’라고 말하지 마세요” 옷 색깔을 분별하지 못해서 물어오는 것이 아니라 옷을 입은 나에 대해 관심 가져달라는 말로 들으라는 것입니다. 한지붕 아래에서 같이 사는 사람의 말에 대해서도 이처럼 듣는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듣는 마음을 갖지 않고 물리적으로 소리를 들으면 본질이 들리지 않습니다.
듣는 마음은 목자의 심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기술 문제가 아니라 마음문제입니다. 이런 저런 서로 다른 말을 들으면 생각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고 분별해야 하고 결국 피곤해집니다. 집에서 싸우는 아이들을 말리는 것이 피곤한 것처럼 말입니다. 솔로몬은 왕이었습니다. 왕이니까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감히 자기에게 따지고 달려들 사람, 없습니다. 창녀 여자 둘의 재판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내가 왕인데, 이런 하찮은 여자들 재판까지 해야겠냐!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하든지, 제비를 뽑든지, 대충 알아서 처리해!’
듣는 마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공의를 믿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다윗은 시므이에게서 독한 저주의 말을 들었을 때, 귀를 닫아 버리거나 시므이의 입을 막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훈련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높이셨으며, 때가 되자 시므이를 심판하셨습니다. 듣는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인생들이 말도 안되는 수많은 헛소리를 할지라도, 하나님은 때마다 대응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들으시잖아요! 잠깐 연약해져서 실수로 하는 말인지, 고의적으로 악에 빠져서 하는 말인지, 지금은 헛소리를 하지만 조금 도와주면 돌이킬 수 있는 말인지 끝까지 들으십니다.
잠언 15:28절은 말씀합니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아내느니라” 우리는 자기 원대로 말하기보다 타인의 말을 잘 듣고 깊이 생각하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6:8절은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예수 믿는 자들에게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우쳐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무릎을 꿇고,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목자를 통해, 사건과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귀를 열어놓음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지혜를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에 크게 감동하셨습니다. 11,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왕이라면 왕의 자리를 잘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마오쩌뚱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의 도구는 뭐니뭐니해도 money입니다. 정치세계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솔로몬이 부도 구하지 않고 정적을 제거하는 권력을 구하지도 아니했습니다. 진시황처럼 오래 살기를 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백성들의 송사를 듣고 분별하기 위해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을 감동시켰고, 하나님은 솔로몬을 지혜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덤으로 솔로몬 왕국 또한 크게 번성하게 됩니다. 열왕기상 4장을 보면 솔로몬 왕국의 국가조직이 체계적으로 정비되고, 인재들이 몰려오고, 적재적소에 합당한 사람들을 세우는 모습이 나옵니다. (4:1-28) 또한 솔로몬의 학문적 지혜가 당시 지혜롭다고 소문난 에단이나 헤만이나 갈골이나 다르다보다 더욱 뛰어났습니다.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노래는 일천 다섯을 지었고 초목에서부터 하늘을 나는 새와 물고기와 곤충까지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의 특별한 기도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가져왔습니다. 자기 필요를 채우는 기도가 아니라 백성들을 돕고자 하는 기도, 자기 왕국을 만들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한 기도가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비밀이었습니다.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 우리의 기도 또한 특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기도보다 원하는 대학에서 학생 목자로 쓰임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기도보다 좋은 직장에 들어감으로 주와 복음역사에 더욱 헌신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기도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이 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에 주목하시고 그들의 기도를 넘치도록 축복하십니다. 영적 비밀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기쁘게 할 때 부모만 기쁜 것이 아니라 자기도 상을 얻고 복을 얻습니다. 양이 목자를 기쁘게 할 때, 목자만 기쁜 것이 아니라 자기도 풍성해집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를 하면 자기만 손해보고 억울해집니까! 모든 것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의 약속입니다. 자기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자기 원하는 것 다 얻은 후, 맨 마지막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들이 되지 맙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그것이 축복을 받는 비결이며, 축복을 지키는 비결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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