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스크랩] 제 7 부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하나님아들 2018. 7. 25. 23:36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지도

 

바울은 한 동안  안디옥에 머물러 있다가  2차 전도 여행지를 다니며 신앙을 굳게하는 한편 2차전도 여행 때 미진했던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자 3차 전도 여행 길에 올랐다.

바울은 다소를 거쳐 더베, 루스도라, 이고니온, 바시디아 안디옥, 골로세를 두루 다니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며 위로하여 주었다.

한편 에베소에는 2차 전도 여행시 바울이 다녀간 후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와서 에베소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에 관해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서해안에 있는 도시로 코레소스 산맥과 에게해 사이의 카이스티 강 어귀에 있는 항구 도시다.

따라서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 역활을 하였으며 아시아의 보고로 불릴 만큼 번창하였다. 그러나 각종 미신들과 이방 종교와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되 있었고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로서의 위치를 점점 잃어가자 이전부터 섬겨오던 아르테미여신을 더욱 더 열심히 섬겼는데 이 여신의 신전은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이 중 하나였다.

 

아르테미 신전터

 

 

이 신전에서의 여신을 숭배하는 모습은 기묘하고 황홀하고 광적인 것으로 고함소리와 울음소리를 동반한다. 나팔이 울리면서 분향을 시작하게 되면, 군중들은 흥분과 발광으로 날뛴다. 게다가 음탕하고 수치스러운 일들을 서슴치 않고 행하였다. 에베소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도시였다. 에베소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숭배했던 아르데미 여신은 가슴에 유방이 24개가 달린 풍요의 여신이다

 

아르테미 신상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천부적인 언변과 학식을 가지고 있었고 성경과 예수님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였다. 그가 성경과 예수에 관한 일들을 말하고 자세히 가르쳤으나  요한의 세례 밖에 몰랐다.

아볼로가 회당에서 용기 있게 말하는 것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아볼로가 아가야 지방 고린도로 가고 싶어하자 에베소의 신자들은 아볼로를 격려하면서 고린도의 신자들에게 아볼로를 영접하라고 편지를 써 주었다. 아볼로는 고린도에 도착하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가르침을 받은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고 믿게 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유대인들과 열정적으로 토론을 하여 그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성경을 근거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였는데 그러한 관계로 아불로는 고린도 그리스인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였다.

이러한 아불로에 대해 누가는 독립적 활동으로 복음을 전하는 그를 불완전한 교사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두사람을 통하여 이방 세계에 활발하게 전파 되였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는 동안 바울은 북부 지방을 거쳐서 에베소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두사람은 대면하지 못하였다.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여 몇몇 제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라고 물어 보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성령이 계시다는 것조차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바울이 다시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 라고 묻자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 고 하였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소상하게 세례에 관하여 가르쳐 주고 "요한은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고 자기 뒤에 오실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가르쳤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라고 밝히 알려 주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기 원하자 바울이 세례를 주기 위해 그들에게 손을 얹었는데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려오셨고 그 곳에 있던 열두명 정도 되는 사람들 모두가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세 달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토론도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이도록 설득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강팍한 유대인들은 마음이 굳어져서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군중들 앞에서 그리스도교를 욕하고 다녔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사람들이 모인 회당을 떠나 신자들을 데리고 두란노 서원으로 가서 날마다 사람들과 토론을 하였다.

 

셀수스 도서관

셀수스 도서관은 에베소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로 쥴리우스 셀수스가 소 아시아주의 총독으로 AD114년에 70세의 나이로 죽게 되자 그의 딸 쥴리우스 아퀼라가 그의 아버지 셀수스를 기리기 위해 이 도서관을 건축하여 AD135년에 완성하였다. 도서관의 정면 입구는 2층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는데 지혜, 행운, 지식 그리고 선행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4명의 여성들의 석상이 있다. 도서관 내부는 습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중 벽으로 되어 있어서 당시에 소장되어 있던 수 천 권의 두루마리책을 보호하게 했다. 그러나 262년 코트족 침략 때 모두 소실되었다.

 

 

혹자들은 이 셀수스 도서관이 바울이 성경을 가르쳤다는 두란노 서원이라 한다.

그러나 바울이 에베소에서 활동시기가 AD 53~55년인데 반해 셀수스 도서관은 AD135년에 지어졌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맞지가 않다.

신빙성이 있는 것은 에베소 상점가에 우리네들 책방처럼 책을 파는 서원이 있는데 그 곳으로 짐작되는 곳이 아래 사진의 상점 중 하나 이다.  순례 여행 때 가이드가 아마도 이 장소 일 것이라고  지적한 곳이기도 하다.

 

두란노 서원으로 추정되는 상가 터

 

 

바울이 성령을 체험한 신자들과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데리고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강론 하기 시작하였는데 두란노가 서원 명칭인지,  아니면 건물 소유주 이름인지는 정확치가 않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4시까지 말씀을 가르쳤는데 고대 근동에서는 그 시간에는 모두가 일손을 놓고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였다. 바울이 그러한 시간을 택한 것은 바울 스스로가 남들처럼 아침과 저녁시간에는 천막을 깁는 일을 하였고 남들이 쉬는 시간에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두란노 서원이 쉬는 그 시간대에 서원을 빌려 제자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즉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같이 일하고 남이 자거나 쉬는 시간에 말씀을 가르쳤는데 기르키는 자나 배우는 자나 모두 뜨거운 열정과 믿음의 소망으로 말씀을 배웠던 것이다.

그러한 때에 글로에와 아불로로 부터 고린도에서 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였고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바울에게 보내온 편지를 통해 고린도의 분쟁 사실을 확인한 바울은 심히 괴로웠다.

고린도의 분쟁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갈려져 분쟁의 씨앗이 되였고 폐륜아와 송사, 결혼문제, 그리고 제사 음식 먹는 문제 등이였다 이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 전서 서신을 만들어 디모데 편에 고린도로 보내고 디모데에게 잘 수습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동안이나 말씀을 가르쳤는데 그러한 노력은 에베소 뿐 아니라 인근 모든 도시에도 복음이 전파되어 도시마다 교회가 세워지게 되였는데 그 교회들은 이러하다.

루커스계곡에 세운 골로새교회, 히에라볼리에세운 라오디아교회, 소아시아지역에 서머나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빌라델비아교회 등 여러 교회들이 속속 세워지게 되였다.

하나님께서는 마술과 미신이 판을 치는 에베소에서 바울이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하게 하시려고 바울의 손을 빌려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키셨다.

심지어는 사람들이 바울이 일할 때 머리에 두르고 땀을 닦던 손수건이나 장막 짓는 일을 할 때 허리에 둘렀던 앞치마를 병든 사람 위에 얹기만 해도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 나갔다.

그러한 때에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귀신을 쫓아 내는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주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귀신을 쫓아 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 유대인 대제사장 스게와라는 사람이 일곱 아들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들이 귀신들린 자에게  "바울이 전파하는 그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그 사람에게서 나오너라" 하고 말하자 악한 귀신이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예수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희는 누구냐?" 그러더니 귀신들린 사람이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에게 달려들어 때리고 옷을 찢어버리니  그들은 발가벗긴 채 그 집에서 도망쳤다.

소문이 에베소에 사는 모든 유대인과 그리스인들에게 알려지자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으며 예수의 이름을 찬양했다.

이 사건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사람들 앞에서 자기들이 행한 잘못을 고백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들 중에는 마술을 부리던 사람들이 자기들이 사용하던 은화 오만 개(약 8백만원 정도) 가량 되는 마술책을 가져다가 사람들 앞에서 다 태워 버렸다. 이렇게 해서 주님의 복음은 점점 힘있게 퍼져 나갔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을 기한이 다 되어가고 또 팔레스틴 지역에 기근이 들어 형제들이 어려움을 격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마게도냐(데살로니가, 빌립보 베뢰아 등지)와 아가야(고린도)로 다녀서 연보를 모아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도우려고 계획을 하였다. 그런 후에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기에 앞서 자기를 돕는 사람 가운데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먼저 마케도니아로 보내어 연보를 준비하게 하였다.

두사람을 떠나 보낸 후 얼마 동안 에베소와 주변 도시를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으로 보낸 후에 에베소에서는 그리스도교 때문에 적지 않은 소란이 일어났다. 데메드리오라는 은 세공인은  은으로 아르데미 여신의 신전 모형을 만들어 파는 사람으로 직공들에게도 많은 돈을 벌게 주해 주었다.

그가 직공들과 또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불러 놓고  "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이 사업으로 소득이 꽤 좋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보고 들은 대로 바울이라는 이 사람이 에베소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거의 모든 지방에서 사람이 만든 신은 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마음을 돌려 놓았습니다.

이러다가는 우리 사업이 명성을 잃게 될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위대한 아르데미 여신의 신전을 우습게 여길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와 온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섬기는 아르데미 여신의 위엄이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격분하여 "에베소의 여신 아르데미는 위대하다!"라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도시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고 군중들은 바울과 함께 여행하던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고 한꺼번에 대극장으로 몰려갔다.

 

아르테미 여신 은장색 장사가 훼방받는다고 분노한 에베소인들

 

대극장

피온산 기슭의 비탈을 이용해 건설된 이 극장은 리시마쿠스 시대에 지어졌으며 오늘날의 모습은 트라얀(Trajan) 황제 시대의 모습이다. 따라서 로마-그리스 타입으로 무척 아름다운 극장의 표본이 되고있다. 고대 극장이 모두 그러하듯이 3부분으로 되어있다. 약 18m 높이의 무대 정면 건물은 3층으로 되어있고 각종 부조와 조각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약 40 m 지름의 중앙 무대는 정교한 음향학적 구조로 되어 있어, 배우가 작은 소리로 대화를 해도 관중석 끝자리의 사람도 모두 알아 들을 수 있었다 한다. 관중석은 외곽까지 150m의 크기이며, 각 단은 22줄의 좌석이 배치되어 있어 약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곳은 기독교 역사에서도 의미 있는 곳으로 사도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 이곳에 들러 선교를 하다 에베스의 은 세공장이들로터 수난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군중들에게 잡혀 갔다는 소식을 접한  바울이 대극장에 몰려 있는 군중들 속으로 들어가려 하였지만 제자들과  바울과 친하게 지내던 아시아의 관리 몇 사람들도 바울에게 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하였다.

대극장안에서는 사람들이 서로가 다르게 외쳐대는 바람에 극장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였고  심지어 자기들이 그 곳에 왜 모였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성난 군중들은 단일 신을 주장하는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들이 공격 대상이였기 때문에 유대인인 알레산더가 변명하려고 하자 오히려 더 소리지르며 "에베소의 여신 아르데미는 위대하다"라고 두 시간이나 외쳐댔다.

사태가 심각하자 마침내 에베소 시의 서기관이 나와 군중을 진정시키고 에베소의 위대한 아르데미 여신은 세상 사람들이 다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마음을 가라앉히고  경솔한 행동은 삼가하기를 부탁하자 조용하여 졌다.

그 틈을 이용하여 서기관은 " 여러분 이 사람들을 이리로 끌고 왔으나 이 사람들은 우리 여신을 모욕한 적도 없고 그 신전에서 무엇을 훔치지도 않았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재판정이 있고 재판관들도 있으니 만약 데메드리오와 그의 직공들이 누구를 고소할 일이 있다면  당사자들이 재판정으로 가서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할 것입니다. 그 밖에 여러분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공식적인 모임에서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서기관의 논리적인 말에 군중들은 해산하여 모두 돌아갔다.

소동이 그치자 바울은 신자들을 불러 모으고 격려한 뒤에 작별 인사를 한 후 에베소를 떠나 마케도니아 지방으로 갔다.

바울은 마케도니아로 가는 길에 드로아에서 배를타고 빌립보에 도착하였는데 고린도로 부터 전보다 더 나쁜 소식을 듣게 되였다.

예루살렘에서 왔다는 거짓 선지자들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부터 인정받지 못한 거짓사도라고 비난하였고  그 증거가 예루살렘으로 부터 사례비를 못받기 때문에 자비량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며 예루살렘에서 온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웠다.

그리고 모금 중인 연보에 관해서도 악평을 하므로 고린도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온 거짓 선지자들을 따르게 되였고 바울에 대한 의심은 점점 깊게 되였다. 

 

고린도 바울 기념교회 내부

글씨를 몰랐던 고린도인들에게는 이런 성화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렸다고 한다. 일종의 시청각 교육을 한 셈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눈물로 쓴 고린도 후서를 디도편에 보내며 고린도를 방문할 것을 예고 하였고(고후12:14 13:1) 디도는 편지를 고린도교회에 전하고  어느 정도 안정시킨 다음 다시 빌립보로와 바울에게 결과를 보고하였다(고후7:6~7)

그 후 바울은  데살로니가, 베뢰아를 방문하며  믿음을 굳게 하는 한편 예루살렘 교회 형제들이 기근으로 어려움을 격고 있는 것을 돕기 위해 연보 할 것을 부탁하고 바울은 여러 지방을 들러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려하는 말을 많이 하고 고린도에 도착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세 달을 머문 기간이 A.D56~57년에 걸친 겨울이였고 그동안 고린도 교회 문제 해결에 주력하였다.

그 과정이 매우 힘들었으나 가이오의 따듯한 대접을 받으며 로마서를 기록하였고 뵈뵈가 로마에 전달하였다.(롬16:1)

이 서신은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바울의 방문에 대한 준비도 시키고 체계적이면서 포괄적인 복음내용을 설명해 주기 위해 기록한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장차 로마를 복음전파를 위한 전진기지로 삼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롬15:17~23)

바울은 고린도에서 어느 정도 문제가 진정되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하고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 위해 유대인들이 타는 순례선을 이용하여 시리아로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함께 타고 갈 유대인인들이 바울을 박해 하던 자들로 배에서 바울을 해치려는 음모를 알고 거리가 먼 육로를 택하여 마케도니아를 거쳐서 시리아로 돌아가기로 작정하였다.

그 때  바울과 동행한 사람은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 세군도더베 사람 이오디모데아시아 사람 두기고드로비모, 일곱사람이였다

 

여기서 잠시 일곱 사람 면면을 소개한다

1) 소바더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로서 마게도냐 교회를 대표한다.

2) 아리스다고는 로마까지 바울을 따라 갔으며 마게도냐 교회를 대표하는 데살로니가 출신이다(27:2;골 4:10;몬 24절).

3) 세군도는  마게도냐 교회를 대표한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단지 여기만 나오는 인물이다.

4) 가이오는 더베 출신으로 갈라디아 교회를 대표한다(19:29).

5) 디모데는 루스드라 출신으로 갈라디아 교회를 대표하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16:1-3).

6) 두기고는 아시아 사람으로 아시아 교회를 대표하며 언제나 바울과 동행한 인물로서 골로새와 에베소 교회에 바울의  서신을 전달한다(엡 6:21;골 4:7;딤후 4:12;딛 3:12).

7) 드로비모는 에베소 출신으로 아시아 교회를 대표한다(딤후 4:20).

바울은 빌립보에 무교절을 지키기 위해 머물고 그 일행(일곱사람)을 먼저 드로아로 보내며 그곳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일곱 사람을 먼저 보내고 바울은 누가와 합류하여 무교절을 지낸 뒤에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닷새 만에 드로아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을 만나 그 곳에서 칠 일 동안을 머물렀다.

 

드로아의 유적

 

드로아에서 안식일 다음 날 예배를 위하여 모였고 성찬을 나누는 떡을 뗀 후 바울이 설교를 시작했다.

여기서 안식일 다음 날은 지금에 주일을 말 함인데 바울은 유대교의 안식일을 버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예배일로 정하고 예배를 드린 것은 주일을 하나님께 구별된 날로서 중요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다음 날  떠나기로 되어 있어서 한 밤중까지 신자들에게 설교를 계속하였는데 밤이 어두어지자 무리가 모인 다락방에 등불을 많이 켜 놓았다.

유두고라고 하는 청년이 사람들이 가득차 앉을 곳이 없자 창문에 자리 잡고 앉아 설교 말씀을 듣고 있었는데  바울의 설교가 너무 오래 계속되자 하루종일 고된 일로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어 졸다가 그만 삼층에서 떨어졌다.

사람들이 놀라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가 그를 일으켜 보니 이미 죽어 있었다.

바울이 내려가 유두고 위에 엎드려 그를 껴안고 간절히 기도 한 후 웅성대며 걱정스런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신도들에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청년이 살았습니다."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리고는 다시 다락으로 올라가서 빵을 떼어 먹은 후에 날이 새도록 오랫동안 설교를 하였는데 드로아 의 신자들 뿐 아니라 바울과 함께한 일행들도 죽었던 유두고가 살아나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한 감동으로 밤이 새는 줄 모르고 말씀을 들은 것이다. 설교를 마친 바울은 드로아를 떠나 앗소로 향하였다. 

바울이 떠나자 드로아의 신자들은 살아난 유두고를 집으로 데려가면서 큰 위로를 받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일행은 바울과 함께 배를 타고 앗소로 항해하려 하였으나 바울이 걸어서 앗소로 간다고 하는 바람에  바울과 앗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여져 배를 타고 출발하였다. 

화창한 봄날 바울은 32km의 길을 걸으며 닦아 올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에 대한 책임감과 아울러 점차 심화되고 있는 유대인들과 로마의 기독교 박해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는 현실과 고린도 교회의 성숙하지 못한 믿음 때문에 무거워진 마음을 바로잡고 이 십자가의 길을 계속 걸어 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묵상하기 위해 도보 여행을 택하였던 것 같다.

 

아름다운 앗소항 전경

 

앗소에 있는 그리스 신전 유적터

 

 

일행은 앗소에서 바울을 만나서 그를 배에 태워 미둘레네로 갔고 이튿날에는 미둘레네를 떠나 기오에서 가까운 곳에 이르렀고  다음 날  사모로 건너갔다가 그 다음 날  밀레도에 도착하였다.

바울은 아시아 지방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고 에베소를 들르지 않고 지나가려고 한 것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겠다는 생각과 마게도냐와 아가야지방에서 모금한 연보를 전달 해 주는 것이 시급하였다. 이 연보는 단순한 연보가 아니라 이방교회와 예루살렘교회가 그리스도안에서 이제 하나라는 중요한 메세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였다.

그러한 연유로 바울은 예루살렘 길을 서두루고 있는 것이다.

 

밀레도 항구 기념비 터

 

바울이 밀레도에서 50km 거리에 있는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불렀는데 그들은 사흘만에 밀레도로 와 바울을 반갑게 맞이하였고 바울은 그들에게 고별의 설교 말씀을 들려주었다. 고별 설교는 대략 다음과 같다(행20:17~38) 

첫째,  에베소와 아시아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지내며 유대인들이 지어 낸 모함으로 몹시 고통을 당했으나 언제나 겸손히  주님을 섬기며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저하지 않고 전파한 것을 상기 시켰다.

둘째,  바울 자신은 성령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그 곳에서 자신의 신변에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것은 어느 도시에 가든지 감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성령께서 내게 경고해 주셨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예루살렘에서 고난 당할 것을 알고 있지만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아깝게 생각지 않음을 말 하였고,

셋째, 이곳에서 나의 설교를 들으신 분들 중에  나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는 것을 말하고  성령께서 여러분을 감독자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으니 내가 떠난 뒤에 어떤 사람들이 사나운 이리처럼 교회에 들어와서 양 떼를 해치려 하거나 또한 여러분 가운데서도 진리를 왜곡되게 말하고 제자들을 유혹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는 사람들도 나타날 것인데 그러므로 깨어 있어  내가 삼 년 동안을 밤낮으로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쉬지 않고 교훈한 것을 기억하라고 당부 하였다.

넷째,  바울 자신이 누구의 금이나 은이나 옷을 탐낸 적이 없고, 직접 일을 해서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하는데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였듯이 여러분도 열심히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야 된다고 말한 후 마지막으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당부 하였다.

바울은 당부이 말을 마친 뒤에 무릎을 꿇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그들은 모두 바울을 껴안고 작별의 입맞춤을 하면서 울었는데 특히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당할 환란으로 다시는 자기들을 보지 못하리라는 바울의 말을 듣고 더욱 슬퍼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배 타는 곳까지 바울을 배웅해 주었다.

바울일행은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한 뒤에 배를 타고 남쪽으로 68km 거리에 있는 전설적인 의학자 히포크라데스의 고향인 고스항으로 갔고, 이튿날 장미의 도시며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태양의 신 아폴로신상이 있는 로도에 들렸다가 거기서 상업도시인  바다라로 갔다.

바다라에서 베니게로 가는 배를 만나서 그 배를 타고 1차전도 여행때 들렸던 구브로 섬을 왼쪽에 두고 시리아로 가다가 두로항에 정박하였는데 이곳에서 짐을 풀고 다시 짐을 실는데 일주일 정도 소요되여 바울 일행은 두로있는  신자들을 만나 일 주일을 그들과 함께 지냈다. 그들과 지내는 동안 두로의 신자들은 성령께서 알려 주신 대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만류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배가 떠날 시간이 되자 그 곳을 떠나 여행길에 올랐는데 두로의 신자들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항구까지 나와 일행을 배웅해 주었다. 일행은 그들과 함께 모두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 작별 인사와 석별의 정을 나누고 혜여졌다.

두로를 출발하여 항해를 계속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둘레마이에 있는 형제들과 인사를 하고 그들과 하루를 지냈다.

 

가이사랴 항

 

 

 

 

 

 

 

 

 

 

 

 

 

이튿날 우리는 돌레마이를 떠나 가이사랴로 갔고 그 곳에서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지냈다. 빌립에게는 결혼하지 않은 네 딸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예언하는 사람이었다.

바울 일행은 여러 날 그 곳에 머물고 있는 동안  아가보라는 예언자가 예루살렘에서 내려왔다. 아가보가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과 발을 묶고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이 이 허리띠 임자를 이와 같이 묶어서 이방인들에게 넘겨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라고 예언하였다.  일행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함께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하게 말하였는데 바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찌하여 그렇게 울면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까.  나는 예루살렘에서 묶이는 것 뿐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라고 단호하게 말하자 그들은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만 말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행은 여러날이 지난 후 모금한 연보와 행장을 꾸려 100km 거리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이사랴 출신 제자들 몇 사람과 함께 갔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가이사랴 출신 제자들은 오래전에 그리스도인이 된 구브로 사람 나손의 집으로 일행을 데려가 거기에서 안전하게 묵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도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은 연보를 전달하고 그동안 유대인과 수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 온 보고를 하니 모두가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출처 : 속초밥사랑공동체
글쓴이 : 밥사랑최효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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