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세계관! 인생관! 신앙관!

[스크랩] 5. 구조와 방향의 구분 (요약) / 알버트 월터스

하나님아들 2018. 6. 14. 22:53

 

5. 구조와 방향의 구분 - 1) 개혁의 의미   |성경적 세계관
신동식 | 조회 26 |추천 0 |2003.07.08. 17:28 http://cafe.daum.net/CPI2002/C2cl/76 

 

/ 정리 : 나쥬니 (www.nazuni.pe.kr)

 

 

5. 구조와 방향의 구분 - 1) 개혁의 의미

1. 구조와 방향의 구분

1) 구조와 방향
① 구조 : 피조된 사물의 본질 - 하나님의 창조적 법에 의해 피조된 대로의 사물
② 방향 : 구조적 규례로부터 일탈하는 것 or 구조적 규례에 다시 순응하는 것

2) 개혁주의는 창조(구조)와 창조의 모든 부분에 만연해 있는 영적인 대립(방향)을 동일하게 강조한다. → "은혜가 자연(구조)을 회복(방향)한다."

3) 삶과 세계에 대하여 구조와 방향의 구분을 적용할 때,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왜곡된 현실과 갱신의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2. 개혁의 함의

1) 개혁(reformation)은 우선 16세기에 있었던 성경적 종교의 회복이었던 종교개혁 그 자체를 가리키며, 따라서 개혁주의적(reformational)이라는 말은 '하나님 말씀의 재발견'에 기초를 두고 있는 그 종교개혁 운동에 근거한다.

2) 개혁의 두 가지 본질적인 특징
① 개혁은 외적인 갱신을 나타내는 성별(consecration)이 아니라 '내적인 갱신'을 가리키는 성화(sanctification)를 의미한다.
② 개혁은 혁명과 같은 폭력적 전복을 뜻하지 않고 '점진적인 갱신', 즉 역사적 개혁을 의미한다.

3) 개혁을 역사적 개혁, 즉 창조 실체들의 죄와 죄의 모든 영향력으로부터의 성화라고 할 때, 구속사의 한 과정으로서 '구속'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 창조(형성;formed) → 타락(왜곡;deformed) → 구속(개혁;reformed)


3. 성별과 성화

1) 성별(consecration)과 성화(sanctification)의 차이
① 성별 : 외적인 갱신 - '하나님을 섬기거나 예배하기 위해 구별함'
② 성화 : 내적인 갱신 - '죄로부터 해방시킴', '윤리적 부패로부터 깨끗하게 함'
※ 이원론적 세계관은 성화와 성령의 사역을 신성하고 거룩한 영역(대개는 제도적인 교회)에만 제한시키고, 나머지 삶에는 오직 '성별(신성한 것과의 외적인 연관)'만을 허용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내적인 성화로 강조한다.

2) 성경의 예증들
①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의해 '거룩하게 된다(헬. hagiazein)'고 할 때 이것은 내적 갱신을 의미한다(딤전4:5).
② 예수님의 '누룩'비유 역시 내부로부터의 지속적인 갱신을 가리킨다(마13:33).
③ 구약에서도 창조된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슥14:20-21).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딤전4:4~5)

3) 신약의 '거룩'은 예배 의식에 제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모든 영역(개인적인 삶, 사회적 관계, 문화적 활동 등)을 특징짓는다. (참조. 롬14:14)
※ 오순절 사건은 성령께서 인간의 삶을 내부로부터 갱신시키러 오셨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이 갱신이 인간의 활동의 모든 영역에 퍼져나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롬14:14)


4. 혁명과 개혁

1) 혁명(정치적인 의미에서의 혁명)의 특징
① 필연적인 폭력 (→신체적, 심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혼란 포함)
② 기성 체제의 모든 면의 철저한 제거
③ 이론적인 이념에 따르는 전적으로 다른 사회적 질서의 구축

2) 정치적 혁명과 대조되는 개혁의 특징
① 주어진 역사적 상황의 구조를 깨뜨리려고 하지 않는다.
② 어떤 주어진 사회적 질서도 절대적으로 부패했다고 보지 않는다.
③ (준)과학적인 사색에 의해 도달된 이상적 청사진을 신뢰하지 않는다.

3) 혁명, 개혁, 보수의 차이
① 개혁은 주어진 역사적 상황을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기존 질서의 요소들 가운데 창조적 법에 순응하는 요소로부터 갱신을 추구한다. (참조. 살전5:21)
② 개혁은 전투적 상황과 역사적 연속성 모두를 강조한다. 하지만 개혁은 '구조'의 관점에서 혁명에 동조하지 않으며, '방향'의 관점에서 보수주의에 반대한다.

※ 모든 기존 질서는 내적 갱신과 구조적 개혁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모든 왜곡된 상황은 갱신을 일으키기 위한 접촉점으로서 역사적 유산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21~22)

 

 

5. 구조와 방향의 구분 - 2) 사회적 재생

※ 성별은 사물을 내적으로는 그냥 놓아두고, 혁명은 사물을 멸절시키지만, 개혁은 그것들을 재생시키고 거룩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삶의 모든 부분들을 깨끗케 하고 개혁하는 것이다.


1. 개혁적 전략의 출발

1) '구조와 방향'의 성경적 원칙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역사적 현실� 갱신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게 한다.

2) 모든 왜곡된 상황, 즉 가혹한 사회적 압제와 부정의한 현실로 인하여 사회 질서 전체를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세상'과 동일시하게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적 갱신을 위한 모든 참여에서 물러나게 되는데, 이것은 악으로부터의 도피라기보다는 의무 이행의 태만이라고 할 수 있다.

3) 우리의 임무는 전통 속에 담겨있는 값진 통찰들을 걸러내어 그것들을 계속 발전시키고, 그 동일한 전통 속에 있는 오류와 환상을 폭로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21~22)


2. 인간 사회의 구조적 질서

1) 인간의 삶의 그 어떤 것도 창조 질서에 속하지 않는 것은 없다. 창조주의 보존과 섭리의 손길은 우리가 공동적 삶을 조직하는 여러 방식 속에도 미친다.
① 가정의 구성은 임의적인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본성을 조성하신 방식(생물학적, 감정적, 사회적, 윤리적 조건)에 근거하고 있다. 가정이라는 제도에도 기본적인 패턴이 있으며, 그 창조적 구조에 의해 가정을 가정으로 인식하게 된다.
② 가정뿐만 아니라 제도적 교회, 국가, 학교, 사업체 등에도 거부할 수 없는 창조적 구조가 존재한다. (어떠한 왜곡도 이 구조 자체를 깨뜨릴 수는 없다.)

2) 다른 피조물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제도들도 '각기 종류대로' 창조되었고, 각각의 제도들은 자체의 독특한 본성과 창조적 구조를 갖고 있다.
※ 이 본성과 구조에 대한 직관적 인식과 경험, 연구 등에 따라 각각의 영역은 자체의 적절한 표준을 마련하게 되는데, 이 표준들은 해당 영역을 지배하는 창조 질서에 대한 해석을 반영한다.


3. 영역 주권

1) 각각의 사회적 제도는 그것에 고유하게 적용되는 창조 구조의 실정(實定)이다.
※ '실정'이란 창조적 규범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말한다.

2) 한 사회의 제도는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고유한 규범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있다. (각 영역의 권위자들의 책임은 그 규범적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
※ 장로들은 교회를 위해, 부모들은 가정을 위해, 이사들은 회사를 위해, 위정자들은 국가를 위해, 학교 육성회는 학교를 위해 각 영역의 고유한 규범적 구조를 실천한다.

3) 영역 주권 (=구별된 책임) ← 아브라함 카이퍼
① 각각의 영역을 주관하는 고유한 권위는 그 영역의 창조적 구조에 의해 규정되고 제한된다. 이러한 권위는 하나님에 의해 분배되며, 각 사람은 하나님의 규범을 그들의 고유한 영역에 직접적으로 실정하기 위해 부름을 받는다.
② 어떤 사회적 제도도 다른 제도에 종속되지 않는다. 교회, 가정, 회사, 국가, 학교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다른 것들과 나란히 선다.
→ 한 영역의 권위가 다른 영역에 개입될 때 일종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나타난다.


4. 창조적 구조의 왜곡과 대안

1) 사회를 위한 창조적 구조가 왜곡되는 두 가지 방식
① 주어진 영역 안에서 규범을 왜곡시키는 것
(예: 국가-부정부패, 가정-어린이 학대, 사업체-임금 착취 등)
② 한 영역의 권위를 다른 영역에까지 확대하는 것 (→전체주의)

2) 전체주의
①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를 범하고 다른 영역을 침범하는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는 사회를 위한 창조적 구조의 방향적인 왜곡이다.
② 전체주의적 국가에서는 정치적 권위가 다른 모든 권위를 지배하게 된다. 중세 기독교의 제도적 교회는 모든 영역 위로 그 권위를 넓혀 나갔다. 현대 사회는 경제적 권위가 국가의 정치적 주권과 여러 사회적 제도들의 영역을 침해하는 경향이 있다.

3) 그리스도인들은 각각의 영역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회적 정의를 실정하고 실천하면서, 모든 사회적 제도들이 다른 영역부터의 간섭을 막아내고 스스로 자신의 고유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5. 구조와 방향의 구분 - 3) 개인의 갱신

1. 공격성 - '인간의 감정'에 대한 예

1)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
① 부정적인 견해 - "공격성은 '온유'나 '사랑'과 대치된다. 공격성은 창조된 선한 질서의 일부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죄의 현상이며 타락의 결과이다."
② 긍정적인 견해 - "공격성은 감정상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인간의 본성적 기능이다. 동물의 공격성은 종족의 생존을 보장해 주며, 공격성이 억제되면 갖가지 노이로제와 감정적인 부적응이 나타난다." (콘라드 로렌쯔와 같은 인성론자들의 견해)

2) 구조와 방향의 관점을 통한 분석 - Harry Van Belle
① 공격성은 피조된 인간 생명의 한 부분이다. 서로 공격적이라는 사실은 인간됨의 구조에 속한다.
② 사랑의 반대 개념은 공격성이 아니라 증오이다. 공격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름다운 경우도 있으며, 오직 증오에서 나온 공격성일 때만 사랑의 반대가 된다.

3)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공격성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온유와 공격성은 반드시 모순일 필요가 없다. (참조. 딤후2:25)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민25:6~11)


2. 영적 은사들 - 방언, 예언, 병고침과 같은 예외적인 능력들

1)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
① 초자연적인 은사 - "영적 은사들은 인내나 온유와 같은 일반적인 은사들보다 본래적으로 뛰어난 은사이며, 이것들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더 높은 영적인 위치에 있다."
② 자연적인 현상 - "카리스마적 현상은 초자연적인 것도, 특별히 기독교에만 고유한 것도 아니고, 전통적인 심리학적 범주 안에 포함된다."

2) '자연'의 의미에 따른 '초자연적'이라는 말의 의미
① '창조계 전체' → 하나님과 그 행위만이 초자연적이다.
② '지상적 창조계' → 하나님과 하늘에 속한 피조물이 초자연적이다.
③ '세속적 영역' →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덕이 초자연적이다.
※ ②의 의미로 보면, 영적 은사들은 전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단, 자연 밖에 있는 힘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성령의 은사들은 초자연적이다.)

3) 카리스마적 은사들 중 다소 극적인 것들이 모든 사람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해도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창조하신 일상적인 실체와 다른 이질적인 것이 아니다. 교회의 건덕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성령에 의해서 주어진 인간의 모든 은사들은 '영적'인 은사들이다. (참조. 고전12:28;벧전4:9-11)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롬12:6~8)


3. 성(性)

1)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
① 빅토리아적 견해 - "성은 인류의 지속을 위해서 필요할지 모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필요악이며, 우리는 성에서 쾌락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며, 성화에 관한 성경의 교훈은 확실히 여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② 긍정적인 견해 - "성은 기본적이며 자연적인 충동으로서 좋은 것이며, 이 충동이 방해를 받을 때에는 심신을 허약하게 하는 노이로제와 억제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2)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경멸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창조와 은혜가 함께 있다. 구속은 우리가 부패시키고 왜곡시킨 것을, 우리가 성(性)에서 왜곡시킨 것까지 포함하여 회복시킨다. 구속은 성에서부터 우리를 돌려세우지 않는다. 구속은 성의 선함을 드러낸다." - Lewis B. Smedes
※ 하나님은 이성간의 결혼과 헌신적인 사랑의 맥락 속에서 인간의 성을 창조하셨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고전7:3)


4. 춤

1) 춤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계의 일부분인 신체 운동, 리듬, 음악, 사회적인 상호 행위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선물이다.

2) 타락의 영향은 춤에서도 나타나는데, 춤의 왜곡은 성적인 흥분이나 도발에 모든 초점이 집중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 춤, 의상, 스포츠, 드라마에서의 성적인 요소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가로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 (삼하6:16,20,21)

3) 어떤 문화적 현상이 주어진 역사적 배경에서 너무도 철저하게 왜곡되어 그리스도인들이 그것들로부터 완전히 물러나야만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그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가능성에 의식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며,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충만케 해야할 의무가 있다.

출처 : 생명나무 쉼터
글쓴이 : 둥지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