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 성부성자성령

[스크랩] 5. 삼위일체의 역사

하나님아들 2018. 5. 19. 16:19

5.1 삼위일체의 기원


삼위일체 교리의 기초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결합한 신약성서의 구절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구절은 마태의 대위임령(마태복음 28:19)과 바울의 고린도후서 13:14이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들을 민족들을 제자 삼아, 아버지와 다들과 거룩한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마태복음 28:19]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당신들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고린도 후서 13:14]


325년에 니케아 세계감독협의회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용어를 채택했는데, 그 때부터 그 용어가 기독교 정론의 증명서 역할을 했다. 그 용어는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ὁμοούσιος)”에 속한다는 것을 선언했다. 이것은 더욱 “세 위격, 한 실체”라는 고백으로 발전되었다. “무엇이 하나님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신적 본성에 관한 단일성을 지시한다. 반면에 “누가 신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의 세 상태를 지시한다.


성 아타나시우스는 그 감독회의의 참석자였다. 그는 감독들이 그 용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감독들이 사용하기위해 언급한 성서 구절들은 아리우스주의자들에 의해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들은 아리우스주의자들이 이설(異說)로 생각할 수 있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용어는 성서에 없다. 그들은 그러므로 동일 본질(homoousios, 한 실체의)라는 비성서적인 용어를 제 멋대로 썼다. 그 이유는 아리우스가 부정한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본질적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니케아 세계감독회의의 고백은 성령에 관한 것은 조금이다. 아타나시우스(293-373)는 말년에 수십 년간 성령의 신성과 위격에 대한 교리를 발전시켰다. 그는 니케아 신조를 수호하고 정련하였다. 이 교리는 4세기 말엽쯤 카이사레아의 바실, 니싸의 그레고리,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의 지도하에 최근의 형태가 되었다.


5.2 교리의 형성


삼위일체 교리를 정확히 기술하는 가장 중대한 발전은 4세기에 교부들로서 알려진 일련의 집단과 함께 진행되었다. 비록 가장 초기의 교부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확언했지만, 그들의 초점은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 교회에 대한 그들의 목회적 의무에 있었다. 그러므로 초기 교부들은 대부분 교리적 보고서나 신학적 해설을 작성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콘스탄틴의 융성 동안 교회의 박해가 완화되었고, 이 단계는 세계 교회의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삼위일체주의자들은 논의의 결과로서 생긴 감독협의회와 신조들이 교리를 만들거나 발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아리우스 주의자들과 같은 중대한 이설(異說)에 응답하면서 정통 교회가 사도 시대 이래로 믿었던 진실을 신조로서 정교히 하였다고 믿었다.


니케아 회의 이전의 교부들은 십중팔구 삼위일체 신학의 세부사항들에 생소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4세기까지 세부사항들이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케아 회의 이전의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긍정했고 “하나님, 아들 그리고 성령”을 인용했다. 삼위일체 주의자들은 그 긍정과 인용들을 성문화된 교리의 요소로서 판단하였다.


삼위일체주의자들의 관점은 니케아 신조(325/381)와 아타나시우스 신조(약 500년 경)에 의해서 신앙의 한 조항으로 단언되었다. 이 신조들은 주제에 관한 불일치의 상관없이 신앙의 표준화를 시도하였다. 이 신조들은 3세기와 4세기의 교회들에 의해서 삼위일체 그리고/또는 그리스도와 관련한 이설(異說)에 대한 반작용으로 형성되었고 비준되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콘스탄티노플에서 381년에 개정되었다. 이 신조는 동방 정교회에 의해서 고백되며, 하나의 첨가(필리오쿠에 조항)와 함께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고백된다. 그리고 성공회나 대부분의 개신교 종파에서 어떤 형태로 존속되고 있다.


니케아 신조는 삼위일체 교리의 고전적 표현이다. 니케아 신조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그리스어로 동일 본질을 뜻한다.)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동시대의 비삼위일체주의자들이 사용한 호모우시오스(homoiousios, 그리스어로 유사 본질을 뜻한다.)와 다르다. 호모우시오스와 호모이우시오스는 단 하나의 그리스 문자 이오타(i)에 의하여 표면적으로 대수롭지 않은 언어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신학에서는 특별히 깊은 차이를 말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양자론자(Adoptionist) 신학 때문에 사모사타의 바울을 비난하였던 264-266년의 여러 종교회의들 중의 하나는 사모사타의 바울이 사용한 의미로서 호모우시오스라는 용어를 또한 비난하였다. 니케아 삼위일체를 반대했던 4세기 기독교인들은 감독회의 동안에 이 비난을 풍부하게 사용했다.


더우기 우시아(ousia, 본질)와 히포스타시스(hypostasis, 가면 혹은 인격)의 의미는 그 시대에 부분적으로 겹쳤다. 어떤 면에서는 본성을 의미했고, 다른 면에서는 발현된 인격(person)을 의미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293–373)는 이 용어를 명확히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기독교는 내부로부터 문화를 전환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발전시킨 교리적 형식은 교회가 지나온 시대의 표식을 지닌다. 그리스 철학의 수사적 기교들 특히 신플로톤주의는, 한편으로 아리우스주의와 양자론을(Arianism과 Adoptionism, 그리스도가 아버지보다 열등하다는 가르침, 그리스도가 단순히 인간이었다는 주장) 다른 한편으로 가현설과 사벨리우스주의( Docetism과 Sabellianism, 그리스도는 환영이라는 가르침 또는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와 완전히 동일하다는 주장)를 거절하기 위해 교회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채택했던 언어에서 명백하다. 히포의 어거스틴은 이 신조의 생성의 초반기에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사색을 통해서 오늘 날 서구에서 알려진 삼위일체 교리와 같은 내용을 발전시키는 데 대단한 공현을 했다. 카파도키아(Cappadocian)의 교부들은 동방에서 더 저명하다. 카파도키아 교부들로 대 바질(Basil the Great), 니싸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그레고리 나지안조(Gregory Nazianzus)가 있다. 예를 들어서, 어거스틴주의의 흔적은 서구의 아타나시우스 신조에서 찾아진다. 비록 아타나시우스 신조가 아타나시우스의 이름을 지니고, 아리우스주의에 대해 4세기 반대자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 신조는 아마도 훨씬 후기에 쓰였을 것이다.


이 논쟁들은 세계감독회의에 자리 잡은 가장 큰 목적을 위해 진행되었다. 세계감독회의의 신조는 삼위일체교리의 확정한다.


아타나시우스 신조에 따라 이 세 신격의 각각은 영원하고, 각각 전능하고, 각각의 신격은 다른 신격보다 열등하거나 우월하지 않고, 모두 각각 하나님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오직 한신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공교회는 하나님은 세 분이라거나 주님이 세 분이라고 말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 아타나시우스 신조 20번째줄


양태론자(Modalist)들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님의 자기를 나타내는 방식, 외면적 양태, 또는 역할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반삼위일체주의자들의 관점은 세 위격(person)이 구분된 인격(person)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위격은 인간이 하나님과 상호관계하거나 하나님을 경험하였던 방식을 설명하는 이름이다. 아버지의 역할로 나타날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창조자이며 제공자이다. 아들로서 자기를 나타낼 때, 사람들은 육에 있는 하나님을 인간으로서, 완전한 인간과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경험한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자기의 행동에 의하여, 그리고 기독교인의 생명 안에서 성령으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이러한 관점은 사벨리아주의로서 알려졌고, 세계감독회의에 의해서 이단으로 거절되었다. 하지만 이 양태론(사베리아주의)는 단일성(Oneness) 교회 그리고 사도적("Apostolic") 교회들로 알려진 종파 사이에서 오늘날 여전히 보급되어 있다.


이 교회들 중에 가장 큰 교회가 연합 국제 오순절 교회(the United Pentecostal Church International)이며, 다른 한편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동시에 한 본질 안에 세 위격으로 존재하며, 각각이 완전한 동일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이 교리는 이러한 종류의 대안들이 서로 충돌하며 정밀하게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했다. 또한 정제의 과정은 동일한 방법으로 계속된다. 오늘날 까지 동방정교회, 아시아정교회, 로마 가톨릭, 동방의 아시리아 교회, 성공회 그리고 삼위일체주의 개신교 사이에 일어나는 보편적 대화는 극도로 미묘한 삼위일체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삼위일체와 기독론 교리의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미묘한 차이가 그들 기독교를 분리된 공동체로 나누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그러므로 분열과 통합에 대해 상징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역설적이다.

출처 : 우주찬가
글쓴이 : 날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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