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파노라마
‘레위기’란 명칭은 ‘류이티콘’(Leuitkon)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명칭은 ‘레위인에 관한 것을 뜻합니다. 레위기서의 저자는 모세오경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입니다. 레위기의 기록 연대는 레위기가 기록될 당시에 이스라엘의 머물렀던 장소와 출40:17과 민10:17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레위기의 율법을 받았을 때 머물렀던 장소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십계명을 받고 15개월 동안 머물렀던 시내산 근처의 시내 광야였습니다(레7:38; 레25:1; 레26:46; 레27:34). 따라서 출애굽의 연대를 B.C.1445년으로 추정할 때 레위기의 기록 연대는 이스라엘이 시내 광야에 도달한 후로부터 시내 광야를 떠날 때까지의 기간인 B.C. 1445~1444사이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레위기는 새 언약의 영원한 희생제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기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새 언약을 묘사합니다. 레위기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의 보다 중요한 측면에 대한 배경을 제시합니다. 레위기에 대한 연구는 오직 그것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만 가치를 지닙니다(히10:1~10). 레위기안의 제사장의 임무와 성막 그리고 절기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와 구속의 은혜를 보여주는 그림자들입니다(히10:1). 레위기는 전 성경중에 비율적으로 볼 때 직접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책입니다.
선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레위기를 통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곧 모든 인류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영생얻는 생명의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레위기는 예수님이 우리의 위대한 제사장이신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확증한 제물이심을 보여 주는 선교의 내용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과 제물이 구별되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단번에 자신을 드리심으로 이전의 모든 제사는 완성되었습니다. 더 이상 다른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도 그들의 힘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유월절의 양 속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즉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말합니다. 레위기를 통해서도 이미 구원받은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아가는 길을 계시하여 줍니다.
출애굽기 19장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세계 선교를 위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다는 선교의 부르심과 사명에 대해 말해줍니다.
레위기는 이 두 면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1-16장은 주로 제사장들에 관한 것입니다. 열방에 대한 이스라엘의 역할을 제사장을 모델로 보여 주십니다. 17-26장은 주로 백성의 일상생활에서의 거룩함에 관심을 둡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 12:1-3)을 기초로 열방에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야합니다. 레위기는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선교의 내용을 밝히는 책으로, 제사장 나라 백성의 삶의 모습을 실제적으로 가르쳐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출애굽기에서 완성이 된 성막(聖幕)의 용도와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설부터 시작합니다. 출애굽기는 마지막 장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출40:34)하고 마치고 있는데 레위기는 첫 장에서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레1:1)하고 시작이 됩니다. 레위기는 출애굽기에서 이루어주신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출6:6-7)한 “유월절 양의 피”를 곧 선교의 내용을 확대(擴大)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할 점은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십계명의 “돌비”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25:8-9)하고 성막 식양(式樣)도 주셨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과 성막식양”을 함께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이에 함의된 구속사적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의 목적과 기능이 무엇이며 성막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만 레위기를 바로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인데 첫째는 죄를 깨닫게 하는 일이고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게 하여 구원받게 하는 일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4)
세째는 정죄(定罪)하여 죄의 확산을 방지하는 일입니다. 법이 없으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게(롬5:13)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막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그들 중에 거할 성소(출25:8) 즉 하나님의 집입니다 .
둘째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즉 교제하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
셋째는 범한 죄 사함을 받는 곳입니다 . 그러니까 육신의 연약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범하게 된 죄를 성막의 번제단에 와서 속죄제를 드림으로 사함을 받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율법이 정죄하고 죽이는 기능을 한다면 성막은 대속(代贖)을 하여 살리는 기능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도가 민수기 15장에 나타나 있는데 “곧 여호와가 모세로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계명)을 여호와가 명한 날부터 이후 너희의 대대에 지키지 못하여 회중이 부지중에 그릇 범죄하였거든,(성막에 가서)속죄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사함을 얻으리니”(민15:23-25)하십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성막에서는 속죄제물을 통해서 사함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성막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주실 복음(福音)의 모형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3:24)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율법을 주시고 나중에 성막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인된 인간은 먼저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고 성막을 통하여 곧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을 받아야합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는 성경의 모범을 따라 이렇게 설교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사랑이나 자비나 은혜를 설교하기 전에 반드시 죄와 율법과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강단위에서 정반대로 물질적 축복과 웃기고 재미있는 설교, 은사나 은혜를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전반 미국의 대각성 운동을 일으키는데 쓰임받았던 찰스피니(Charles. G. Finny)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언제나 항상 율법이 복음을 위한 길을 준비해야합니다. 언제나 복음을 제시하기 전에 유법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쉽게 넘어가면 사람들은 거짓된 소망에 빠지게 된다. 거짓된 표준을 제시하게 될 것이고 교회 안에는 거짓된 회심자들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마20:28)하고
“대속물”이라 말씀하신 것은 구약 특히 레위기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를 알아야만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신 복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레위기를 알아야만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바른 예배를 드릴 수가 있고 레위기를 알아야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자가 되라”하신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드림은 우리에게 있지만 열납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레위기는 선교의 내용이 담겨있으므로 레위기를 제대로 알아야 전도하고 선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중 히브리서는 레위기의 해설서라고 할 수가 있는데,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히8:5)
또는 “비유”라고 말씀하면서“개혁(改革)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합니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9:9-10)
그러므로 이러한 “모형, 그림자, 비유”등을 해석할 때에 유의해야할 점은 , 나타난 실체(實體),즉 밝히 드러난 복음의 빛을 받아서 해석해야한다는 점입니다 . 그렇게 할 때에 의문(儀文)에 가려져 있던 본 의미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
레위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전반부(1-17장)는 하나님 존전에서 추방을 당한 아담의 자손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가 있는가를 계시해주고, 후반부(18-27장)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도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에 이르는 길을 휘장으로 막으라 명하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를 이사야 선지자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59:2)하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도는 대속제물과 이를 드려줄 대제사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막혀있는 휘장이 언제 누구의 무엇을 통해서 열려질 수가 있을까요?
레위기는 우선적으로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등 5대 제사로 시작이 됩니다. 제사가 다 복음을 상징합니다. 번제를 드리는 희생제물은 다양합니다. 수소, 수양, 수염소, 산비둘기, 집비둘기,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누구나 있는 그대로 나오도록 하시는 배려입니다. 가난한 예수님의 부모가 비둘기 두 마리로 번제를 드린 것을 복음서에 찾아볼 수 있습니다(눅2:24). 대신 흠이 없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누가 짐승을 죽이는가? 제사장들이 아닙니다. 제사를 드리는 자가 직접 칼로 짐승을 죽입니다. 예수님은 내 죄 때문에 죽으셨으니까 내가 예수님을 죽인 것을 깨닫게 하신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제도를 통하여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실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먼저 손을 짐승의 머리 위에 얹고 안수를 합니다. 이는 그 짐승이 곧 제사 드리는 자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짐승을 죽인 후, 제사장들이 그 피를 제단 위에 뿌립니다. 이 피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합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만 의롭다 함을 얻게 됨을 말합니다. 이는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여주실 구속사역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속죄제는 흠이 없는 정결한 짐승을 끌고 와서 안수하므로 죄를 전가시키어 잡아 제사장에 의해서 피는 뿌려지고 ,고기는 불태워 드려집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진리를 계시해주셨던 것입니다.
레위기 13장부터는 내가 문둥병환자가 아니니까 나와는 상관이 없는 내용이구나 생각하는 사람은 성령께서 주신 조명으로 본문을 읽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한 구절도 나와 관련 없거나 필요 없는 내용이 없습니다. 문둥병은 육체만 죽이는 병이지만 죄는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죽이는 문둥병보다 더 무서운 영적 병균입니다. 레위기 13에서부터 시작되는 문둥병의 규례는 바로 죄인 된 인간이 영적 문둥병환자라는 것을 그리고 문둥병 균은 영적으로 죄라는 것을 깨닫기 위함입니다.
레위기 14장에 보면, 나병 환자가 그 병에서 나으면 그는 제사장에게 가서 그 몸을 보여 병 나은 여부를 확인받아야 했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깨끗한 새 두 마리를 가지고 오게 하여 그를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해야 했습니다. 새 한 마리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하고 다른 새는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와 함께 취하여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은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고 선언하고 살아 있는 그 새는 들에 놓아주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그를 깨끗케 된 그를 대중에게 알리는 상징적인 예식이었습니다. 새 한 마리가 피를 흘리고 죽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표하는 것이고 다른 새를 산 채로 날려 보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한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 마리의 새를 통하여 문둥병자였던 사람이 정결케 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죄인을 정결케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습니다. 정결의 예식후 문둥병자였던 사람은 7일 동안 장막 밖에서 기다려야했습니다. 그리고 8일째 되는 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건제로 어린양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양의 피를 그 사람의 우편 귓부리와 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 엄지가락에 발랐습니다. 그 후 제사장은 그 양의 기름을 취하여 피를 바른 곳에 발랐습니다(레14:14-18).
또 다른 어린 수양 하나로 속죄제를, 또 어린 암양 하나로 번제를, 또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3에 기름 섞은 소제물로 소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상과 같은 율법의 규정은 그 나병 환자가 이스라엘 사회에 용납되기 위한 절차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로 하여금 자기의 병낫음이 하나님의 긍휼과 속죄의 피뿌림으로 되어졌음을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케 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문둥병자였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을 위한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의 옛 생활을 끝내고 주님을 위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레위기의 핵심 장은 16장입니다. 16장에는 1년에 한 번 드려지는 대속제일에 관한 규례입니다 .히브리 종교력 7월10일에 행해지며 대제사장이라 하여도 이날만 지성소에 들어오는 것이 허용이 됩니다. 그것도 그에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번에 드려주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은 속죄제물로 수염소 둘을 준비합니다 . 그 중의 하나로는 온 백성을 위한 속죄제로 드려집니다 . 두 마리의 염소 가운데 제비뽑은 어느 한 마리는 아사셀('완전한 제거'라는 뜻)로 하고 다른 한 마리는 죽입니다. 대제사장은 죽인 황소와 염소의 피를 지성소의 법궤의 뚜껑 즉, 속죄소에 일곱 번 뿌립니다.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지성소)에 들어가서 그 피를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16:15)하십니다. 대속의 피를 속죄소 위에 뿌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보실 때에 ‘대속의 피’를 통해서 보신다는 점을 모형을 통해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애굽의 장자를 심판하실 때에도 대문에 뿌려진 대속의 피를 통해서 보심으로 그 집을 건너고 넘어갈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명심해야할 점은 이스라엘 집에서도 죽음은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죽음을 대문에 뿌려진 피 속죄소 위에 뿌려진 피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 다만 대속제물이 대신 죽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피 아래, 은혜 아래(롬6:15)” 있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복음을 계시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가 아사셀 염소에게 안수하고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자복하고 한 사람을 임명하여 그 염소를 끌고 광야로 가서 산채로 버리게 합니다. 이스라엘 회중의 죄가 제거되었음을 상징하는것입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레16:21-22)하십니다. 이 점을 시편 기자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103:12)하고 찬양하고 세려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하고 증거합니다.
레위기는 선교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의 죄의 문제를 다루는 진리입니다.
레위기 23장 10절에 보면 첫 열매를 주님께 요제로 드립니다. 안식 후 이튿날 흔들라고 말씀하신 것은 첫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계시한 것입니다(고전15:20). 크게 흔들어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쁜 뜻입니다. 누구에 대한 그림자입니까? 고전 1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첫 열매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안식 후 이튿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소제를 드린 날로부터 계산해서 7주일이 지내라고 말씀하시고 1일을 더해서 50일이 되는 날 새 소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첫 열매를 이날부터 계산합니다. 안식 후 이튿날부터 드리는, 다음날부터 계산해서 일곱이레에 하루를 더하여 50일 만에 성령은 강림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첫 열매가 되신 날부터 50일이 되는 날 성령은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새 소제를 드리라고 한 후 신약교회는 탄생했습니다.
레위기 24:2 “감람으로 찧어낸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3절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등잔에 등불을 켜게 되면 불똥이 나옵니다. 불똥이 앉게 되면 불이 점점 희미해지다가 꺼질 염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집게를 만들어 불똥을 집어내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막 기구 중에 불똥 집게도 만들었습니다(민4:9).
언제까지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보존해야 할까요. 이 등불은 누구에 대한 그림자입니까? “참 빛”이시고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1:9,8:12). 그리고 밤에 여호와의 전에 서있는 종들, 제사장들은 등불을 관리하며 불똥을 집어내는 그런 일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를 통해서도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하는 방법인 복음을 만방에 전할 사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것입니다. 또한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거룩한 삶인지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레위기는 분명한 선교용 교과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위인들은 복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레 10:11)
만민앞에 제사장 나라 곧 레위인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해야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사 43:10)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용서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웃을 모든 족속까지 내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레 19:34). 선교하는 방법이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8)
레위기 23장에서 하나님은 여호와의 절기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안의 구속사의 흐름을 예표하면서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까지 예시하셨습니다. 성막제도와 함께 주어진 절기중에는 7대 절기와는 별도로 안식일(Sabbath 매7일), 안식년(매7년), 희년(매50년)제도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기념케하기 위한 것입니다.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안의 안식 궁극적으로는 천국의 안식을 예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오신 후에는 안식일이 주일(Lord's Day)로 승화되어 새 창조를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시기 전까지 즉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히9:10)것으로 안식일은 온전한 것이 오면 폐하여질 부분적으로 하던 예표인데(고전13:10) 아직도 안식일이나 유월절등을 고집하며 계명과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으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이단인 것입니다.
절기들이 예표한 것을 보면 유월절(예수님의 십자가;레12:5~8,고전15:7)→초실절(예수님의 부활;레23:10,고전15:20~23)→오순절(성령강림;레23:15,행2:1~4)→나팔절(예수님의 재림;레23:24,살전4:16)→대속일(이스라엘의 구원;레23:27,슥12:10)→초막절(천년왕국;레23:34,계20:1~5)→안식일(새하늘과 새 땅;레23:3,히4:3~10)등이 있습니다.
◐ 레위기의 5대 제사 ◑
레위기는 여호와께 드려야 할 5 대 제사의 규례로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레위기의 시작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건축된 성막의(출40:17) 주된 목적이 제사였고, 따라서 성막이 완성된 지금 그곳에서 드려질 제사의 규례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논리요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의 5대 제사와 대 속죄일은 출애굽기의 한 가지 표징(출10:1~2)에 대한 확대된 구속의 계시였습니다. 5대 제사는 오늘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릴 제사입니다(롬12:1).
◈번제(Burnt Offering)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원의 희생을 상징'함과 동시에 그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그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의 우리는 예수님처럼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선교의 방법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입니다. 예수님처럼 잃어버린 영혼들을 조건없이 죽기까지 사랑하며 전도하는 것입니다(요13:34).
◈소제(Meat Offering)
소제의 영적 의미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영적 양식의 공급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 생명의 떡이 됨을 상징합니다(요6:32-35)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곡식이 잘 부서진 고운가루처럼 내가 철저히 부인되고 기름과 유향을 추가 (레 2:1, 4)한 것처럼 성령충만하고 기도생활을 잘해야합니다. 금지해야 하는 것은 누룩과 꿀 (레 2:11)로 죄를 멀리하는 성결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화목제(Peace Offering)
화목제의 영적 의미는 화목제의 성격이 드러내는바 그대로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케 하는 '화목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과(롬3:25,엡2:13,골1:20),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는 성도들의 친교인 '성만찬에 대한 예표'입니다(고전10:16). 예수 그리스도안의 우리는 죄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전도와 선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롬15:16).
◈속죄제(Sin Offering)
속죄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는 실로 속죄 희생의 어린 양이 되셔서(벧전1:19) 모든 인류의 대속물이 되셨는데, 그의 죽음의 장소는 속죄제 희생 제물이 진 바깥 정결한 곳에서 불살라진 것처럼 예루살렘 성 바깥의 골고다 산상의 고통스런 십자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의 우리는 하나님께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속건제(Tresspass Offering)
속건제는 성도가 신앙생활 가운데서 범하기 쉬운 죄를 범했을 때 드리는 제사로서 먼저 죄인은 자기의 죄를 고백해야 하며(민수기 5:6,7), 그 다음에 그 당사자에게 찾아가 잘못을 고하고 보상하여야 하며(민수기 5:7), 그리고 하나님께 속건제를 바쳐야 합니다(레위기 6:6). 그 후에 그는 용서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레위기 6:6,7).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할 때 잘못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놓고 가서 그 형제와 먼저 화친한 후에 다시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의 우리는 삭개오처럼(눅19: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께서 유월절의 양이 되어주심으로 성취가 되었고 오순절은 성령강림으로 성취가 되었고 이제 한 가지 초막절의 절기만이 남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잊지 않게 하시려고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3차(3대 절기),하나님의 택하신 곳(예루살렘)에서 여호와께 보이라” (출23:14,신16:16)하고 명하신 것입니다.
“5대 제사 , 3대 절기, 대속죄일”등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통해서 이루어주실 하나님의 은혜요 복음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하신대로 성결한 삶을 살면서 선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들의 행해야할 사명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통해서 이루실 복음의 비밀을 “5대 제사,대 속죄일 ,3대 절기”라는 예표를 통해서 계시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의문에 가려있던 복음이 실체가 오심으로 밝히 드러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속제물만 되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를 드려줄 대제사장도 되십니다. “또 관유를(대제사장) 아론의 머리에 부어 발라 거룩하게 하라”(레8:12)하신 것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인 것입니다.
히브리서8:1절에서는 “이제 하는 말에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하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대제사장과 어떻게 다른가?
①구약의 대제사장은 생축을 반복해서 드렸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고”(히7:27)
② 구약의 대제사장은 먼저 자기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렸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으며”(히7:28)
③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죽음을 인하여 수효가 많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계신고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 한다”(히7:23,24)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7:25)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히4:14)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신을 제물로 드려주시면서 “다 이루었다”(요19:30)하고 선언하셨을 때에야 그토록 많은 제물이 드려졌어도 1500년 동안이나 굳게 닫혀있던 휘장이 열려졌던 것입니다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19-22)하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존전에서 추방을 당하였던 죄인들에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레위기는 이를 “그림자”로 보여주시고 신약성경은 실체로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레위기의 또 하나의 주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선교하는 삶을 살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후반부가 시작되는 18장에서 “너희는 전에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좆지 말며 앞으로 들어가 거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라”(레18:3)
하고 먼저 해서는 아니 될 것을 경계하신 후에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레18:4)하고 준수해야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레11:45)하신 말씀입니다 .
11장에서 정결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의 구분과 음식을 통해 성별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마귀는 먹는 것으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먹음직하게 보여 범죄케하는데 성공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시험드는 것이 대부분 먹는 문제였습니다. 마귀가 40일 금식한 예수님을 유혹했던 것도 먹는 문제였으며 마지막 때에도 먹는 것으로 시험합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a mark)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못하게 하더라. 지혜가 여기에 있으니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볼지니라. 그 까닭은 그것이 어떤 사람의 수이기 때문이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계 13:16-18).
표를 받지 못하면 양식을 사지 못하니 굶어죽을것이냐 표를 받을 것이냐 하는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이처럼 먹는 것은 사람의 생존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가장 원초적인 욕구이므로 마귀는 먹는 문제로 끝까지 시험합니다. 하나님도 먹는 음식인 '만나'로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교훈하시고 가나안 정착 후에도 음식을 통해 성결 훈련시키십니다. 제사장 나라 백성으로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일차로 먹는 양식으로 징계하셔서 회개케 하십니다(암4:6,말3:11). 성도들도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에4:16) 식음을 전폐하며 비상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둥병(13장~14장)과 유출병(15장)을 통해 전염병과 같은 죄의 속성과 결과 그리고 치유를 통한 구속의 은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별”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과 한 마음으로 거룩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과 교제를 지속하며 동행하는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암 3:3) 레위기에서 우리가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할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또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입니다 50번 이상이나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사역과 결부되는 이름(창1장)이라면 “여호와”는 구속사역과 결부(출3장)되는 칭호입니다. 그리고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 종 된 것을 면케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레26:13)
하고 “애굽에서 구원하여”주셨음을 상기시키는 말씀도 7번이나 등장합니다. 이는 “그 때와, 이제”를 대조시켜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뿌리와 사명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의 신체가 아니라 유월절 양인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받기 위함이요(고전5:7), 세계선교를 위해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이점은 신약성경에서도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
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
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2:11-13)하고 상기시키고 있는 바입니다 .
레위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거룩'입니다. 이 단어는 무려 90번이나 나오고 있습
니다(레11:44,45, 레19: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11: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
라서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 또한 거룩한 백성이 되라는 요구와 명령이 주제가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들에게 계속적
으로 요구하고 계십니다.
거룩은 성도와 불신자를 구별해 주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서 표출되어야 할 신앙의 모습입니다(스6:10, 겔20:41, 고후2:15).
또한 성결한 삶은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선교 자체입니다.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34)
하나님은 타국인을 동족으로 여기고 자기를 사랑하듯 사랑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먼저 받았으니 주님의 사랑으로 세계 선교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외국 선교사들을 통해서 복음을 받은 사랑의 빚진 자들입니다. 복음을 아직 듣지 못한 타민족에게 사랑의 빚을 갚는 우리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이직 구약성경> 김 다니엘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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