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스크랩] 지혜로운 이방 여인 - 룻

하나님아들 2015. 6. 24. 14:36

 

지혜로운 이방 여인 - 룻

 

 

*- 본문 : 룻기1:15-18 -*

 

 

Ⅰ. 룻의 인적사항

1) 룻의 뜻은 : '여자친구', '우정'

2) 모압 여인(룻 1:4).

3)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며느리

4) 말론의 아내(룻 3:3-4)

5) 보아스와 결혼

6) 오벳을 낳음(룻 4:13-17).

7) 다윗의 증조모(룻 4:22).

 

Ⅱ. 시대적 배경

룻이 등장하던 시기는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치리하던 시기이다. 어느 사사시대인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는데 분명한 것은 사사시대에 유다 베들레헴에 큰 흉년이 들어서 생활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모압과는 정치적으로 큰 불만이 없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본문의 지리적 배경은 모압 땅과 유다 베들레헴에서 일어나는 사건임을 알 수 있다.

 

Ⅲ. 룻의 생애

성경에서 여자의 이름을 따서 성경이 기록된 책은 에스더와 룻기 두 권 뿐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이방 여자의 이름을 따서 기록된 책은 룻기가 유일한 책이다. 자존심 강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룻이라는 이방여인의 이름을 따서 성경책에 기록되게 한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러므로 룻의 이야기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룻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룻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깊이 새겨보자

사사시대(학자들을 사사 드보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유추한다.)에 유다 베들레헴에 큰 흉년이 들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이방나라 모압으로 이주한 가정이 있었다. 남편은 엘리멜렉이고 말론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을 둔 나오미라는 여인의 가정이었다. 나오미 가정은 자기 민족의 땅을 등지고 모압 땅으로 이주 하면서부터 재난이 시작되었다. 얼마되지 않아 남편 엘리멜렉이 모압 땅에서 죽었다. 나오미는 이 슬픔을 딛고 말론과 기룐에게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 주었다. 그러나 재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모압 땅에 거주한지 10년여 동안 사랑하는 두 아들이 자식도 없이 모두 이방 땅에서 죽게 된 것이다.

당시 사회 문화적인 정황으로 볼 때 나오미 가정이 흉년이 심한 시기에 조국 땅을 버리고 모압으로 이주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 당시는 이방나라들 마다 가증한 우상숭배가 많이 있었기에 더더욱 이방나라들과 혼인을 금했었다. 이런 배경 하에서 나오미 가정은 모압으로 이주했고, 모압 여인을 아들의 아내로 삼은 것이다. 그러기에 훗날 나오미는 고백하기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룻1:13)고 고백한다.

아무튼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하는 이방 여인이 룻과 오르바이다.

이제부터 룻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들을 살펴보자

 

1. 룻은 (효성심)이 깊고 (순종)하는 여인이다.

상황은 반전되어 흉년이 든 유다 땅을 하나님이 돌아보셔서 풍년이 들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나오미는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하고 두 자부와 함께 길을 떠난다. 도중에 나오미가 생각하기를 두 과부를 청상과부로 만들 것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파서 두 자부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오르바라는 자부는 돌아가는데 룻은 돌아가지 아니하고 어머니를 좇았다. 어머니를 계속 좇는 룻에게 나오미는 네 동서와 같이 너의 백성과 신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한다. 이때 룻이 아주 중요한 고백을 한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16)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7)

그렇다 룻은 효성심이 지극한 여인이었다. 룻이 나오미를 끝까지 따르는 것은 마음에 어떤 의도를 깔고 따른 것이 아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에 대해서 그렇게 관대하지 않은 편이다. 낯선 이방여인이 남편도 없는 과부의 몸으로 이방나라에 와서 산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낯선 땅에서 당할 고통을 생각해 보라! 당시에 말도 잘 통하지 않을 것이고, 음식도 맞지 않을 것이고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오르바가 훨씬 현명한 처신을 한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룻은 남편을 잃고, 두 아들까지 잃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된 노모를 버려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룻은 어머니가 가시는 곳은 어디든지 가고 어머니가 죽는 곳에서 자신도 죽겠다고 한 것이다. 룻의 효성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자신의 온 몸을 던져 희생하고 헌신하는 여인이었다.

교훈

오늘날 믿는 사람들 사이에도 고부간의 갈등들이 매우 심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시어머니들이 혼자사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말들을 한다. 신세대 며느리들이 들어오면 시어머니를 무시하가 일수이고, 또 자식을 낳으면 시어머니를 아이 봐주는 보모정도로 생각하기에 문제가 많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그렇다. 룻은 부모를 참으로 잘 공양하는 자였다.

 

2. 룻은 하나님을 향해 신실한 (믿음)을 소유한 여인이다.

룻의 고백을 들어보자 룻은 말하기를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된다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기를 원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룻의 하나님에 대한 이 신앙이 어디서 나왔을까? 그것은 나오미의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룻은 나오미가 섬기는 신앙을 잘 본받은 것이다. 물론 흉년의 때에 고국을 등지고 이방나라 모압 땅으로 온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오미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 엘리멜렉의 뜻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오미의 신앙이 너무 좋은 것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리는 아픔이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압 땅에 10년을 넘게 있으면서도 모압의 신을 섬기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나오미는 이방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있어도 그 속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를 밥먹듯이 하는데 나오미는 그렇지 않았다. 이 놀라운 어머니의 신앙을 룻이 본받은 것이다. 그러기에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룻의 위대함이 있다. 룻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소유한 여인이었다. 그러기에 룻은 여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과부의 신분을 뛰어 넘고, 이방인이라는 인종차별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룻으로 하여금 이렇게 강한 믿음을 소유하게 한 것일까요? 그 배경에는 나오미의 믿음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훈

룻은 하나님을 참으로 잘 섬기는 신실한 여인이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나오미의 역할도 컸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오미는 모진 역경에서도 시어머니로서의 지켜야 할 본분을 잘 지킨 것입니다.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자부들에게 덕으로 대했고, 자애를 베풀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올 때 두 자부에게 돌아가라고 몇 번이고 강권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나오미와 롯의 관계를 보면서 고부간에도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서로에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본분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 관계의 끈을 잘 묵어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생활임을 기억해야합니다.

 

3. 암담한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지닌 여인이다.

룻이 시어머니와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는 빈털터리로 돌아왔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도 암담하다. 식량도 없지 남편도 없지, 자식도 없지 집안에 일할 수 있는 남자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룻은 나가서 보리이삭을 주어 오겠다고 한다. 그렇다 룻은 암담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손을 높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그리고 시어머니를 공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 것이다.

 

4. 룻은 모든 성읍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여인이었다.

룻은 보리추수하는 곳에 가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고 한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끄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룻이 보리를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나게 됩니다. 보아스는 이 여인이 얼마 전에 모압에서 돌아온 나오미의 자부 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보아스는 룻에게 아주 관대하게 대해 줍니다.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여기서 계속 머무라

목이 마르면 소년들이 길어온 물을 마시라

그러자 룻이 말합니다. 나는 이방여인인데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돌보시나이까? 그러자 보아스가 말합니다.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룻2:11-12)

그리고 보아스는 룻에게 볶은 곡식을 줍니다. 또한 룻이 보리이삭을 많이 줍도록 소년에게 곡식다발에서 조금씩 뽑아서 룻이 이삭을 잘 주울 수 있도록 배려를 합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시어머니는 룻을 보아스의 아내로 삼아 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때에 보아스가 잠들텐데 그때 보아스의 발치에 누우라고 말합니다. 룻이 그대로 하고 밤중에 놀라서 보아스가 룻을 발견했을 때 룻이 보아스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기업무를 자가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때 보아스가 한 말이 중요합니다.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룻3:10-11)

그렇습니다. 룻이 처음 베풀었던 인애는 자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시모를 모시기 위해 베들레헴에 왔던 것이며 나중에 베풀었던 인애는 시모를 잘 모실뿐만 아니라 젊은 과부로서 정욕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좇은 것입니다. 이러한 룻의 모습이 온 성읍에 퍼진 것입니다.

 

교훈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도적인 것은 쉽게 지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정성이 담기고 성실하고 신실하다면 그 소문이 이웃에게 풍겨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잉꼬부부는 소문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효녀, 효자는 소문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 믿음이 신실한 사람들은 좋은 소문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룻은 불평한 적도 원망한 적도 없습니다. 룻은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을 뿐입니다. 부모를 공양하고 신실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 이방여인에게 축복하신 것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5. 룻은 (구속사)의 반열에 들어선 이방여인이다.

결국 룻은 시어머니의 배려로 안식하게됩니다. 시어머니는 보아스가 자기 친족중에 유력한자(부요한자)임을 알고 보아스의 성품을 알기에 능히 기업무를 자임을 파악하게 됩니다. 그래서 룻을 시켜서 보아스가 타작마당에 누울 때 발치에 누웠다고 기업무를 자임을 말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기업무를자가 어떤 자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위기를 당했을 때는 그 가까운 근족이 대신 회복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있었는데, 이러한 책임을 가진 자를 기업무를자라고 합니다. 이를 다른 말로 '고엘'(구속자,redeemer)이라고 불렀다. 그 책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근족이 토지를 팔았을 경우 그 사람의 땅을 도로 사 주어야 한다(레25:25절).

2) 근족이 노예가 되었을 경우, 돈을 지불하고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레25: 47-49절)

3) 근족이 무자히 죽었을 경우, 그 과부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주어야 한다(신25:5-10;마 22:24).

4) 근족이 죽임을 당했을 경우, 복수할 책임이 있다(민 5:8절).

5) 친족 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경우에 따라 친족의 죄 값을 대신 치러야 한다(민5:8).

그러므로 이 "고엘" 제도는 이스라엘 백성들 상호 간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며, 나아가 이것은 인류의 대속자가 되사 그들을 구원코자 피로써 무르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사역을 암시적으로 보여 준다(요 3:16;엡 5:2)

이러한 기업무를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근족의 어려움을 대신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고멜을 짊어지는 사람은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보아스는 이를 흔쾌히 승낙한 것이다.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보아스 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 재산에 손해가 있을까봐 고엘을 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보아스는 이를 흔쾌히 승낙한 것이다. 이는 룻의 사람됨을 본 것이다. 룻의 현숙함이 보아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이다.

룻은 청상과부를 그리고 이름도 빚도 없이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여인이 아니라 기업무를 자를 얻어서 그의 나머지 인생을 안식하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이스라엘의 족보에 당당히 그 이름을 기록하는 이방 여인이 된 것이다. 또한 오벳이라는 아들을 나아 그 유명한 명군 다윗이 태어나는 조상이 된 것이다. 다윗의 할아버지로서 다윗의 신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다윗은 증조모의 영향도 받지 않았겠는가? 이 놀라운 계보를 있는 복된 여인이 된 것이다.

 

교훈

우리는 룻이 기업무를 자를 얻은 것을 통해서 중요한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인류의 구족자가 되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사건임을 알 수 있다. 룻은 이방여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방여인이 기업무를자(고엘)를 만나 안식하고 축복을 받은 것처럼 이방인 된 우리들이 영원한 고엘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Ⅳ. 결론

오늘 우리는 룻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1. 부모에게 참으로 효도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약속있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소유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한 번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더욱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의 본분을 잃어버리면 오히려 벌을 받기를 원한다고 할 정도였스니다.

3. 룻은 암담한 상황에서도 적극적이 사고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4. 룻은 성읍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여인이었습니다.

5. 룻은 구속사의 반열에 들어서는 이방여인이 되었습니다.

*.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이었습니다. 바른 삶의 자세와 믿음을 소유하면 모든 것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여자의 한계, 과부의 장벽, 인종차별의 산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장벽 뒤에는 참 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친히 고엘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룻의 삶을 통해 참으로 부모를 공양하고,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암담한 현실에서도 적극적으로 살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며 하나님의 구속자의 반열에 들어서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마음의 쉼터
글쓴이 : 쉼터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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