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스크랩] 기생의 아들 - 입다

하나님아들 2015. 6. 24. 14:35

 

기생의 아들 - 입다

 

(본문 : 사사기 11장 1절-3절, 29절-33절)

 

 

Ⅰ. 입다의 인적사항

1) 입다는 '하나님께서 열 것이다'라는 뜻.

2) 길르앗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제9대 사사(삿 11:29).

3) 길르앗과 기생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삿11:1).

4) 이복 형제에 의해 부친의 집에서 추방당함(삿11:2,3).

5) 이스라엘을 암몬자손의 손에서 구원함 6)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침

 

Ⅱ. 시대적 배경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미디안의 압제에서 큰 구원을 맛보게 되었다. 그 이후 이스라엘에는 돌라와 야일이라는 사사가 등장하여 이스라엘을 이끌었으나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에게 융화되어 갔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나안 신들과 혼합되고 변질되어 가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진노하게 되었고 블레셋과 암몬자손들에 의해 억압을 받게 되었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사사 입다이다.

 

Ⅲ. 입다의 생애

오늘 등장하는 길르앗사람은 본래 므낫세 지파에 소속된 사람이다. 므낫세의 아들 마길이 낳은 자가 길르앗인데 그 길르앗의 이름을 따서 지역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므낫세 안에 길르앗 종족이 살고 있으므로 길르앗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스라엘의 9대 사사로 등장하는 사람이 길르앗사람 이다. 이 지파에 길르앗이라는 사람이 결혼해서 자녀를 많이 낳았는데 기생의 몸에서 낳은 아들도 있었다. 그가 바로 후에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는 입다 이다.

기생의 아들이라는 것은 조선시대로 말하면 서자와 같은 것이다. 적자가 아닌 서자라고 하는 것은 신분상의 많은 제약을 받았다. 오늘 본문도 입다는 기생의 자식이라는 이유 때문에 길르앗의 본처의 자녀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을 당시 길르앗의 장로들이 묵인하고 입다가 겪은 설음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입다는 돕 땅에 거주하면서 잡류들과 함께 어울려 지냈다.

 

1. 자신을 다듬고 준비한 큰 용사

그러나 입다는 자신의 신분을 비관하고 좌절하면서 불량배로 살지 않았다. 성경에서 잡류들이 입다에게 몰려들었다고는 하나 여기서 말하는 잡류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유리하는 자들을 일컫는다. 아무튼 입다는 집에서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수양을 닦는 일에 게으르게 행동하지 않았다. 본문 1절에 의하면 입다는 ‘큰 용사’(깁보르 하일)라고 한다. 여기서 깁보르 하일이라는 말은 강하고, 용감하고, 유능하고, 뛰어나고, 재주도 있고, 전쟁에 능한 용사를 일컫는 말이다.

입다는 그랬다.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비관하고 불량배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갈고 닦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기에 입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후일에 암몬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을 때 입다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길르앗의 장로들은 입다에게 찾아와 자신들을 구해줄 것을 간절히 요청하게 된다.

 

[교훈]

누구든지 준비된 사람은 반드시 준비된 만큼 쓰임을 받게 된다.

아무리 깊은 첩첩산중 깊은 곳에 자라는 나무라 할지라도 그 재목이 좋은 재목이면 반드시 그 재목을 찾아 쓰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반드시 쓰임 받는 것이다.

입다는 물론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다. 그러나 입다는 준비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자신을 재능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러면 그 분야에서 반드시 쓰임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 역사의식이 분명했다.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이 된 입다는 먼저 사자들을 암몬자손에게 보내면서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을 치러 오라 왔는지를 묻는다.(12절)

그러나 암몬사람들이 하는 말이 옛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아르논에서 얍복과 요단까지 자기들의 땅을 점령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땅을 돌려 달라는 것이다. 그러자 입다가 암몬자손에게 역사의 근거를 들어서 암몬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① 이스라엘은 에돔과 모압땅을 지나갈 때 항상 평화롭게 지나가려고 했다.

이스라엘이 에돔과 모압땅을 지나갈 때 왕의 대로로 지나가게 해 달라고 요청을 했으나 이들이 허락지 않으므로 길을 돌아서 통과할 수 밖에 없었다.

② 그들이 허용하지 않아 광야 길로 해서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아서 아르논 건너편에 진을 쳤다.

③ 또한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④ 그러나 시혼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치러 나오므로 하나님이 시혼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였다.

이때 아모리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였는데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점령하였다.

⑤ 네가 무엇이관대 모압와 발락은 우리를 대적하지 않았는데 너는 우리를 치러 올라 왔느냐?

⑥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거주한지 이미 300년이 지났거늘 그동안에 너희들이 무엇 하다가 이제 와서 그 땅을 내어 놓으라고 하느냐?

그러나 암몬 자손은 입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교훈]

여기서 우리는 입다가 역사의식이 얼마나 투철한지를 잘 엿볼 수 있다. 입다는 300년 전의 이스라엘 역사를 꽤뚫고 있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인도해 왔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일은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라고 고백을 하고 지금 암몬과 대치하고 있는 이 상황도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사를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사를 잘 알기 위해서는 말씀을 잘 알아야 한다. 역사의 사건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끌어 오셨고, 왜 진노하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이 투철했다.

입다가 아무리 큰 용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큰 용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입다의 신앙심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입다는 이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게 된다.

“오늘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자손과 암몬 자손에게 판결하시옵소서(27절)”

이러한 고백은 입다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 나갈 때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영이 입다 에게 임한 것이다.

“이에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삿11:29)”

 

[교훈]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재능으로만 하면 한계가 있다. 일을 잘 해 놓고도 욕을 먹을 수 있고, 아무리 일을 잘해도 이상하게 일이 꼬여서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모함을 받기도 하고, 관계가 좋지 않아 엉망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4. 에브라임의 질투와 시기가 부른 비극

입다가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이를 시기하고 불만을 품은 지파가 있었다. 에브라임지파이다. 에브라임 지파는 입다가 암몬과 싸우러 올라갈 때에 자신들에게 기별하고 함께 올라가지 않았다고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그래서 입다와 입다의 집을 불사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에브라임은 어거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에브라임지파는 이번 한 번의 일이 아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할 때도 시비를 걸었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삿8:1-3)

이때 기드온은 아주 지혜롭게 에브라임 지파를 높이는 말을 통해 분쟁을 모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에브라임 지파사람들이 입다에게도 또 이와같은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입다가 에브라임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도움을 요청했다.(12:2절) 그러나 그 때 에브라임 사람들은 입다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리고 입다와 에브라임지파와 비극이 생긴 결정적인 이유는 길르앗 사람들에 대해서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말하기를

“너희 길르앗 사람들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라고 비위를 거스리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 말은 너희같은 잡류들이 무엇을 설치고 다니냐는 것이다. 옛날에는 우리지파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쫓겨난 주제에 휘젓고 다니는 것이 아니냐는 뜻이다.

한마디로 에브라임은 남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허물을 잡고 시비를 거는 것이다.

이 결과 입다와 에브라임지파간에는 대 전쟁이 벌어지고 엄청난 비극이 발생했다. 이 싸움에서 입다가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그리고 요단나루턱을 장악하고 길르앗을 치러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쉽볼렛이라는 발음을 해 보게 했다. 그러나 십볼렛이라고 발음하면 그 자리에서 죽인 것이다. 이 전쟁에서 죽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4만 2천명이나 되었다.

 

[교훈]

시기와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가? 시기와 질투는 큰 재앙을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 교회안에도 남이 잘되면 그 꼴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음식을 잘한다고 칭찬하면, 아이고 그거 짜더라, 싱겁더라. 라고 초를 친다. 누가 발표를 잘하면 그 만큰 연습하면 다 그렇게 할 수 있지....

새가족이 무언가 나서서 봉사를 하려고 하면 온지 얼마 되었다고 설치고 다니냐! 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시기와 질투에서 나오는 발언이다.

이 모든 것은 악한영이 주는 마음임을 기억해야 한다. 시기와 질투를 우리 안에서 제거해야 한다.

당시에 입다는 자기의 따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아주 극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런 입다를 건드린 것이다. 또한 입다는 기생의 자식이고 서자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다가 길르앗 사람들을 모두 싸잡아 모독을 했으니 입다의 분노가 얼마나 컸겠는가? 도와 달라고 할 때는 도와 주지도 않고 나중에 와서 트집하는 에브라임 사람들은 아주 큰 잘못을 한 것이다. 그러기에 입다가 끝까지 색출하여 요단나루턱을 건너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죽인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다가 참았어야 한다. 그러나 끝까지 싸우자고 덤빈다면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Ⅳ. 입다의 잘못

 

1. 입다의 경솔한 서원

입다는 암몬자손과의 싸움에 나갈 때에 엉뚱한 서원을 하게 된다. 물론 용기백배해서 싸움에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입다는 싸움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서원을 하기를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에 나를 제일 먼저 영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삿11:30-31)

그리고 정말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입다가 승전가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올 때 비극은 시작되었다. 입다를 제일 먼저 반기며 나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입다의 무남독녀였다. 입다의 딸은 아빠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뻐서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아버지에게 달려 나온 것이다.

이 모습을 본 입다는 가슴이 덜커덩 내려앉았다. 사막의 뜨거운 바람이 입안 가득 들어와 숨을 멎게하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헉!” 아마도 입다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입다는 자신의 옷을 찢으며 한탄을 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냐! 어쩌면 좋으냐! 왜 하필이면 너냐! 네가 어찌 나를 이토록 괴롭게 하느냐!”

입다는 자신의 옷을 찢으며 가장 극한 분노를 표출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입다는 자신이 서원한 것을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입다의 딸은 두달동안 친구들과 산에 올라가서 처녀로 죽게 된 것을 애곡하고 두달만에 아버지에게 돌아와서 아버지가 서원한 대로 일을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얼마나 참담하고 슬픈일인지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해 나흘씩 애곡했다.

 

[교훈]

 

1. 서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서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입다처럼 서원하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만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맹세를

-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전5;5)

-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신23:22)

-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마5:33-36)

예수님은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가 맹세할 만큼 자신이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없다. 상황이 어떻게 변화될지 모른다. 당시에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상황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 성경적인 서원을 해야 한다.

입다의 서원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서원이었다. 사람을 번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행위다.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암몬의 신 몰록에게 드리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풍습을 입다가 서원한 것이다. 만약 입다가 서원했을 때 입다의 딸이 나오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나왔다면 합당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입다는 경솔하고 허황된 서원을 한 것이다. 이러한 서원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생명은 아주 소중한 것인데 입다가 자기 마음대로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Ⅳ. 결론

1. 자신을 다듬고 준비하는 사람이 되자

2. 분명한 역사의식을 가지자(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

3.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되자

4. 시기와 질투를 멀리하자

5. 경솔한 서원을 멀리하자.

출처 : 마음의 쉼터
글쓴이 : 쉼터지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