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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토크3.어떻게 나의 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가

하나님아들 2015. 5. 28. 23:31
알파토크3/어떻게 나의 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가?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라디오나 텔레비젼이 정상적으로 동작하려면 2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전기를 연결해야 하고, 두 번 째는 잘 조정해야 한다. 전기가 들어가지 않으면 그 라디오나 텔레비전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어떠한 방법을 다 동원해도 결코 그 물건들은 동작을 하지 않는다. 모든 손잡이와 다이얼을 다 돌려보고 리모컨을 작동시켜봐도 동작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안테나를 길게 뽑아보고, 두드리고 발길로 찬다고 할지라도 전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동작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2과에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고 했다. 우리가 치루어야 할 모든 값을 대신 지불하셨다고 했다. 우리가 그를 믿기만 하면 우리는 모든 죄에서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도, 우리가 엄청나게 자선 사업을 하더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전기를 연결하지 않는 라디오나 텔레비젼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관계를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내 생애 구주와 주님으로 모셨다는 것은 과거에는 그분과 전혀 상관 없이 내 뜻대로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예수를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분으로 인식할 뿐 아니라 모든 삶 속에서 그분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고후5:17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사도 요한은 요1:12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다. 여기서도 예수 믿는 것을 관계로 이야기하고 있다.

고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해서 예수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출석하지만 자기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즉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는 말이다.

#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고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구원의 기쁨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없이 결코 구원의 기쁨은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기왕 예수를 믿는다고 한다면 예수 믿는 맛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 믿는 맛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구원의 확신이 있을 때에 우리에게 구원받은 기쁨이 생겨난다. 구원받은 기쁨이 있을 때에 주의 일을 하더라고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율법적인 신자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율법적인 신자는 누가 시켜야 하고, 벌이 두려워서 하는 신자들을 말한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며 동시에 영원한 삶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요한일서 5:13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카메라 삼발이를 세 개의 다리가 지탱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 세분 모두의 역할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성부께서: 그의 말씀으로 주시는 약속들,-- 하나님의 말씀
-성자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희생 -- 예수님의 하신 일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주시는 확신 -- 성령의 증거

1. 하나님의 말씀 (위대한 하나님의 약속 3가지)
기분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분이란 날씨나 대인관계나 기타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분은 변하기 쉽고 그래서 믿을 수가 없다. 성경에 있는 약속들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으며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위대한 약속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1) 요한계시록 3:20 - 예수를 믿겠다고 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시겠다고 하심/
특히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거나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에 도움이 되는 구절 중의 하나는 사도 요한이 라오디게아에 보낸 편지 속에서 주님의 말씀하신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계3:20)

기독교 신앙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 많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시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을 언급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 예수님을 우리 삶 속으로 초청하는 것’, ‘예수님께 문을 여는 것’ 등이다.

(예화) 화가 홀만 헌트가 영감을 얻어 그린 ‘세상의 빛’이란 그림을 그렸다. 시대를 통해서 그려진 성화 중에서 가장 숭고한 작품 중의 하나라고 했던 이 그림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이 문 밖에 서 계시는데 그 문은 담쟁이 넝쿨과 잡초로 무성해져 있다. 문은 분명 어떤 사람의 인생의 문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수님을 그의 삶에 한 번도 초청한 적이 없다. 예수님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그는 들어가서 그 사람 인생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문 밖에서 들어가기 위한 문고리가 없다. 그 문고리는 문 안에만 달려있다. 달리 말하면 예수님이 우리 삶 속에 들어오시려면 우리가 문을 열어야 한다. 예수님은 억지로 문을 부수고 들어오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는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 그분께 문을 여느냐 열지 않느냐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만약에 문을 연다면 우리 주님은 그에게로 들어가셔서 더불어 먹고 마시는 새로운 관계를 맺으실 것이다.

2) 마28:20 - “내가 너희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
그렇다. 일단 우리가 예수님께 들어오시라고 청하기만 하면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28:20). 우리가 항상 그분과 함께 직접 대화하지 않더라도 그분은 항상 계신다. 당신이 친구와 함께 한 방에서 일하고 있다면, 직접 말을 걸지 않더라도 그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안다. 예수님이 계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분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

3) 요10:28 -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겠다. --> 내가 세상 이후에도 영원토록 함께 하겠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이 생에서 뿐 아니라 이 생 이후인 내세에서도 영원토록 살 수 있도록 영생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이 “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면서 얻게 되는 삶의 질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져다 주신 삶의 풍성함을 경험하는 그 순간 시작된다.

요10:10에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그 삶은 현재의 삶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까지 지속된다.

< 기독교적 역사관 >
현재의 삶이 끝이 아니다. 세상의 지식은 이 세상을 떠나가면 사후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또한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순환적인 역사관을 주장한다. 즉 환생설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전생에는 돼지였는데 그가 착한 일을 하여서 후생에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 등이다. 이 사상에는 이 생에서 잘못하여 나중에 환생하여 열심히 잘 살면 좋게 된다는 일종의 순환적 역사관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역사관이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관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천지 창조의 시작이 있고, 이 땅에 종말이 오는 마지막이 있다. 신약 성경의 여러 군데에서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세상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도 아니다. 영광스러운 종말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계21: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살전4:17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 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천국에는 고통이 없으며 눈물도 없다고 한다. 죄가 없으므로 더 이상 유혹도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이 없을 것이다. 그때는 예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이다(고전13:12).
그리고 우리는 영광스럽고 고통이 없는 부활한 육신의 몸을 얻게 될 것이다(고전15장).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요일3:2).

한 마디로 천국은 기쁨과 즐거움이 영원하게 지속되는 그야말로 복된 천국이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천국은 지루하고 재미 없고 너무 무료할 것일 것이라 말하며 비웃는다.
그러나 고전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 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신앙이란 1)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받아 들이고,
2) 그 약속들을 굳게 믿는 것이다.


2. 예수님의 업적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내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의로와서,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순전히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이루신 일에 달려있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성취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위의 그분의 업적에 달려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이다.

1) 하나님은 그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죽으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대신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선물로 주셨다.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일 때문에 그는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선물로 주실 수 있게 되었다 (요10:28).

그래서 요3:16에 그분은 우리 대신에 그의 아들을 주어 죽게 하셨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멸망해야 마땅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곤경에 처한 것을 보시고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보내셔서 죽게 하신 것이다. 그 죽음의 결과로 영원한 생명이 주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되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그 자신이 대신 담당하셨다.
-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길을 떠나 길을 잃고 방황하였다.
사53:6에 “우리늠 모두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더니 여호와께서 그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 당시키셨도다.”

-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았다.
사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 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것이 하나님이 멀리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다. 우리와 그분 사이에 죄의 벽이 가로 놓여져 우리가 그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한편, 우리 예수님은 어떤 잘못도 없는 분이셨다. 그는 완벽한 삶을 사셨던 분이었다. 그와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사이에는 어떤 벽도 없었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우리의 죄악)을 예수님께로 옮겨버리셨다(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외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 그 순간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던 것이다. 그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 때문에 그렇게 되신 것이다.

- 이 일로 인해서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 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있던 벽이 무너졌다. 그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죄는 사라졌고 결코 유죄판결을 받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죄는 사라졌고, 결코 유죄판결을 받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은 그래서 롬8:1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일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3. 성령의 증거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그 사람 안에 들어와 사시게 된다. 누구나 그리스도인이 될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시기 위해서 오신다. 롬8:9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신을 가지도록 도와주시는 성령의 여러 가지 역할은 특별히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성령님은 우리의 속 사람부터 변화시키신다.

a. 우리의 성격을 변화시키신다. 갈5:22,23의 성령의 열매를 우리의 인격에서 맺게 하신다. 곧 예수의 성품을 우리의 성품 속에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 할 것은 출생과 성숙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에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성장/성숙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장하게 됨에 따라 과거 예수 믿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가게 될 것이다.

(예) 닉키 검블이 정원에 배나무를 심었다. 자기 친구가 얼마되지 않았는데, 솜으로 된 사과를 만들어 배나무에 매어달아 놓았다. 그것은 의미있는 장난이었다. 니키는 속지 않았다. 열매가 맺는데는 우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또한 배나무에서 사과 나무가 열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b. 우리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에 변화를 주신다.
* 하나님과의 관계에 변화/ 과거 예수를 알기 전에는 ‘예수’라는 말을 들으면 거부감이 왔다.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주제가 예수 이야기가 나오면 꺼버리든가 다이얼을 돌려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로는 소리를 더 잘 들으려고 더 크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을 향한 내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변화/ 과거에는 예수믿는 자들을 만나는 것이 거북하고 불편했는데 지금은 기쁨이 된다. 또한 과거에는 거리를 가거나 신문을 보거나 불쌍한 사람들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어려운 사람이나 예수를 알지 못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눈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 마9:35-36에, “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 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에수를 믿어도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구원의 기쁨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의예로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자들이 많다. 그래서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라고 물으면 대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등으로 대답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알기를 원하신다. 요일5:13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아는 12 가지 방법을 말해주고 있다.

*1/ 우리 생활에 변화가 생긴다.(고후5:17)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2/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새로운 욕구가 생긴다. (요일2:3-5)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3/ 세상 제도를 사랑하지 않는다. (요일2:15-17)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4/ 죄에 대해서 새로운 감각이 생긴다. (요일3:6-9) ---> 양과 돼지의 비유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 느니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 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그리스도인들도 죄를 지을 수 있으나 죄를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죄를 지으면 비참함을 느끼고,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 전까지는 화평을 찾을 수 없다.

*5/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게 된다. (요일3:14)
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 하느니라

*6/ 성령의 증거. 성령은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요일3:24, 롬8:16)
요일3: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 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특별한 느낌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구원의 조건은 느낌이 아니라 믿음이다. 죽음의 대열에 섰던 정죄받은 죄인이 용서를 받았을 때 그의 기쁨과 안도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 사형수로 형장으로 끌려가고 있는데,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죽이지 말고 무죄로 석방을 시키라고 했다면 그 놀라움과 기쁨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 일제 시대 때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내일이면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오늘 8.15 해방이 터진 것이다. 그는 죽음 직전에 살아났다. 이것은 육신적인 죽음에서 건진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그것보다 더 놀라운 영적인 죽음에서 해방받는 것이다.)

어떤 성도가 이렇게 노래했다.
기분과 느낌은 요동하지만 내 주는 여전하시니
너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배워라.
그러면 네 감정이 어떠하든지
예수는 여전히 네 구세주로다.

*7/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된다 (롬8:14)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8/ 하나님 말씀에 대한 새로운 사랑 (벧전2:2)
벧전2:2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만약에 하나님의 자녀라고 신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있든지 영적으로 병든 사람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의 영혼을 먹이는 것을 즐거워한다.

*9/ 성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 (고전2:12)
고전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구원을 받기 전에는 성경을 다른 책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식적인 관점에서 연구했으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거룩한 계시를 해주는 성령에 완전히 의존함으로 성경을 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전에는 무의미하던 성경구절이나 진리가 새로운 뜻을 가지고 나타난다. 또한 전에는 얼음과 같이 차던 말씀이 불과 같이 뜨거웁게 되어진다.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10/ 기도하려는 새로운 욕망 (롬8:15)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중생하기 전에는 교회에 나와서도 의무적으로 기도하지만,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지내는 것이 기쁘기 때문에 기도를 한다.

*11/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새로운 사랑 (막5:18-20)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12/ 주의 징계 (히12:5-8)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 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 결론/ 확신은 교만과 다르다. 우리의 확신의 근거는 감정이 아닌 3가지(하나님의 약속, 예수님의 업적, 성령의 증거)다.
출처 : ●…화평동산…●
글쓴이 : 거룩한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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