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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토크2. 예수님은 왜 돌아가셨는가?

하나님아들 2015. 5. 28. 23:31
알파토크2/ 예수님은 왜 돌아가셨는가? 2000.3.19.주.오후2시/ 3.22. 수.오전10. No.1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귀걸이나 목걸이 심지어 팔지에 십자가를 달고 다닌다. 이런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아마도 죄수를 처형하는 교수대나 전기 의자에 달린 줄을 걸고 다닌다면 무척 놀랄 것이다. 사실 십자가는 로마시대에 아주 무서운 죄인을 처형할 때 사용했던 사형 틀이었다. 인류에게 알려져있는 가장 잔인한 사형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십자가 형이었다. 십자가형은 315년 로마가 국교로 공인이 되고 얼마지나서 폐지가 되었다. 왜냐하면 로마인들 조차도 이 십자가형은 너무나 비인간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복음의 상당 부분은 사실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신약성경의 상당 부분은 거의가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교회가 성찬식 예배를 드릴 때에도 예수님의 상처받은 육신의 몸과 흘리신 피에 중심을 두고 있다. 교회 첨탑은 거의가 다 십자가로 장식되어져 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지방에 갔을 때 이렇게 고백했다.
- 고전2:2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 로 작정하였음이라”.
- 고전1:23,24에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거나 세계를 변화시킨 사람들 대부분은 그가 끼친 삶의 영향 때문에 기억된다. 예수님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 가장 크게 세계 역사의 모습을 바꾸어 놓으셨지만 그의 삶보다는 그분의 죽음으로 인하여 더욱 기억되고 있다.

왜 예수님의 죽음이 그토록 주목되고 있는가? 그의 죽음과 소크라테스나 공자, 석가의 죽음과 무엇이 다른가? 순교자들이나 전쟁의 영웅의 죽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는 무엇이 다른가? 그는 왜 죽었는가? 그로 인해서 무엇을 얻었는가? 신약성경에서 “그분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었다고 하는데 그 말의 뜻이 무엇인가?” 저는 여러분에게 여기서 이런 질문에 대해 대답하고자 한다.

1.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뭘까?

가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기독교가 필요 없어요. 나는 무척 행복해요. 나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꼭 예수를 믿어야 하나요?” 과연 그럴까? 우리는 왜 예수님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정직하다면 사도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의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한참 부족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악랄한 살인범이나 강도에 비해서는 깨끗할지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하게 되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게 된다.

작가인 섬머셋 모음이 이런 말을 했다.
“만약 내가 이제 까지 생각한 모든 것과 저지른 모든 행동들을 다 적는다면 사람들은 내가 사악한 괴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했다.

죄의 근원, 죄의 시작은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그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 탕자처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멀리 떨어지게 되어 삶이 엉망이 되어버린 것 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된 우리는 엉망이 되어버린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1) 죄로 인해 오염됨
예수님께서 막7:20-2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개역개정판 막 7장)

야고보서 2:10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개역개정판 약 2장)

2) 죄의 권세 (힘)
나쁜 짓에는 중독적인 힘이 있다. 요8:34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개역개정판)

고약한 성미, 질투, 교만, 자랑, 이기심, 중상모략, 성적인 방탕함에 중독되기도 한다. 우리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사고 방식이나 습관적인 행동에 중독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힘의 종이 된 상태다.

3) 죄의 대가
인간 본성에는 정의를 갈망하는 무엇인가가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아주 악한 자들의 만행이나 몹쓸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분노가 일어나면서 그런 짓을 한 사람들이 잡혀서 벌을 받기를 바란다. 죄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느끼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벌을 받아 마땅한 것은 다른 사람의 죄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다. 어느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우리에게 말한다(롬 6:23).

4) 죄로 인해 분리됨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육체적인 죽음이고, 또 하나는 영혼의 죽음이다.
육체저인 죽음은 영과 육이 분리되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영적인 죽음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도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장벽을 만들어서 하나님과 분리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하는 악한 일들이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장벽을 만들게 한다.


2. 하나님이 하시는 일 (하나님이 하시는 일)

우리 모두는 사는 동안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를 내버려두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1) 하나님이 친히 대속하심/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기 위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 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개역개정판 고후 5장)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 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개역개정판 갈 3장)
벧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 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개역개정판 벧전 2장)
* 존 스톳트는 ‘하나님의 자기 대리’라는 말을 썼다. 자기 대리란 이런 뜻이다. 여기 한 예를 들겠다.
# 에네스트 고든이 쓴 책 <콰이강의 다리> -- 이것은 2차 대전 중에 미얀마 철도 작업을 했던 전쟁 포로들이 겪은 실제적인 이야기다. 매일 매일 일과가 끝나면 작업반은 연장을 반납해야 했다. 어느날 일본인 감독관이 삽 하나가 모자란다고 소리를 지르며 누가 가져갔는지 말하라고 했다. 그는 고함을 지르며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나서 연장을 가지고 간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명령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다 총으로 쏴 죽여버리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총을 포로를 향해 겨누었다.

그 순간에 한 포로가 앞으로 나갔다. 차렷 자세로 말없이 서있는 그 병사를 그 감독관은 심하게 총으로 때려서 숨지게 했다. 포로들이 숙소로 돌아간 후 연장을 다시 세워보았을 때 삽의 숫자는 꼭 맞았다. 그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아무 죄도 없는데 대신 앞으로 나왔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신(대리)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으로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앞으로 나오셨다. 대신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셨다. 키케로는 말하기를 십자가는 “가장 잔인하고 저주스러운 고통”이라고 했다.

2) 십자가의 고통/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은 로마 군병의 채찍에 맞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발가벗기운 채로 채찍 기둥에 묶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톱니 모양의 뼈 조각과 납 덩어리가 엮여진 네 다섯 가닥의 가죽 끈으로 된 채찍에 맞으셨다. 3 세기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로마의 채찍질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고통받는 자의 혈관이 훤히 드러나고... 희생자의 근육과 힘줄, 창자는 찢겨져 속이 드러나 보였다.’

예수가 집정관 앞으로 끌려갔을 때 가시관이 그의 이마 위로 씌여졌다. 그는 600여명의 군중들에게 조롱당했으며 얼굴과 머리를 맞았다. 그런 다음 무거운 십자가를 피가 흐르는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했으며, 그가 쓰러지자 구레네 사람 시몬이 그를 대신해 짊어지게 했다.

그들이 십자가가 서게 되는 터에 당도하자 다시 예수를 발가벗겼다. 그리고 예수를 십자가 위에 눕히고 15 cm되는 못을 손목 바로 위인 전박에 박았다. 무릎은 옆으로 비틀어서 아킬레스 건과 경골 사이 발목에 못을 박았다. 십자가는 그를 달리운 채로 들리운 다음에 땅에 미리 파놓은 구멍에 쳐넣었다. 그곳에서 그는 여러 사람들이 조롱하는 가운데 뜨거운 태양열과 견딜 수 없는 갈증 속에 시달려야 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약 6 시간을 매달려 있으면서 그의 생명은 조금씩 사그라져 갔다.

그의 고통 중에 가장 무서운 고통은 육체적인 상처나 십자가의 아픔이 아니고, 또한 자기의 제자들과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한 정서적인 아픔도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를 대신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을 그의 아버지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순간적으로 외면하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분리되는 영적인 고통이었다.


3. 십자가의 결과는 무엇인가?
아름다운 다이아몬드에는 많은 면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에도 역시 많은 단면들이 있다. 십자가 위에서 악한 어둠의 세력들은 무장해체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골2:14하,15에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2)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 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개역개정판 골 2장)
죽음과 마귀의 힘은 패배했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그는 사람들의
세상에 오셨고 고통의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신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의 본을 보이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설명하기 위해 신약성경이 사용한 4개의 이미지에 집중하고자 한다.

1. 첫 번째 이미지/ 법정에서 - 용서와 칭의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롬5:1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라고 했다.
여기서 의롭게 되었다는 말은 법정 용어다. 법정에 섰다가 사면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의롭게 된 것이다.
(예) 두 사람이 있었다. 같은 학교와 대학에 진학하면서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면서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한 사람은 판사가 되고, 다른 사람은 계속 내리막 길을 걸어 범죄자가 되었다. 그 친구가 법정에 서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자기 옛친구가 법관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죄를 범한 친구는 자기의 죄를 인정했다. 판사는 갈등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판사로서 공정하게 재판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 친구를 봐줄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그 친구에게 벌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 죄에 합당한 벌로써 벌금형을 선포했다. 이것이 공의다.

그런 다음 그는 판사로서의 자리에서 일어나 내려와서 그 벌금에 해당되는 액수의 수표에 사인을 했다. 그는 그것을 친구에게 주면서 자신이 대신해서 벌금을 내겠다고 했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 예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향해서 하신 일을 예로 들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에 대해서 반드시 처벌하셔야 한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내려오서서 우리를 대신해 벌을 받으셨다. 그는 심판자인 동시에 구원자이시다.

그러나 이 예화에도 3가지가 정확하지 않다.
* 첫째는, 우리는 더 나쁜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형벌은 벌금형 정도가 아니다. 죽음이다.
* 둘째는, 더 친밀한 관계다. 단순한 친구 관계가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아버지들이 그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다.
* 세 번째는, 그 대가가 더 컸다. 하나님이 치루어야 했던 대가는 돈이 아니라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그가 죄의 대가를 치루었다.

2) 두 번째 이미지는, 시장에서 일어났다
다른 말로 몸값 - 시장: 구속
빚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빚은 진 사람에게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고대시대에는 누군가가 빚을 지게 되면 그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을 노예로 팔아야 했다. 한 남자가 시장에 서서 자신을 노예로 내놓았다고 가정하자. 누군가 그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당신의 빚이 얼마요?”하고 물었다. 빚진 사람은 “2천만원”이라 했고, 그 손님이 그 돈을 내준 다음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었다고 하자.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몸값”을 치러 그를 구한 것이다.

*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속죄함을 받았다” (롬3:24).
예수님은 막10:45에서 말씀하신대로 “십자가 위의 죽음으로 대속의 값을 치르셨다.”

* 죄의 권세가 깨지다.
우리는 이렇게 죄의 권세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요8:36에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를 잡고 있던 죄의 지배력이 깨어졌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모든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를 가능하게 했다.

3) 세 번째 이미지는, 성전으로부터 왔다.
씻음 - 성전: 정화

구약성경에는 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아주 상세한 율법으로 명시되어 있다.
일반적인 경우 죄인이 속함을 받기 위해서는 짐승을 잡아야 했다. 그 짐승은 가능한 흠이 없는 것이어야 했다. 죄인은 그의 손을 그 짐승 위에 얹고 그의 죄들을 고백했다. 그렇게 하면 죄는 죄인으로부터 짐승에게로 옮겨가고 짐승은 죽임을 당한다.

히10:4에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 줄 수는 없다”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그림 혹은 ‘그림자’일 뿐이었다. 실체는 예수님의 희생과 함께 왔다. 오직 그리스도, 우리 대리자의 피만이 우리 죄를 없앨 수 있다. 왜냐하면 오직 그분만이 완벽한 삶을 살았기에 그분만이 완벽한 희생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피는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해주며 죄로 인한 오염을 없앨 수 있다.
요1:29에 “보라, 새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4) 네 번째 이미지는, 가정이다.
관계 - 가정: 화목

죄의 뿌리도 죄의 결과도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십자가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다. 바울 사도는 그래서 고후5:19에서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 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개역개정판 고후 5장) 라고 했다.

탕자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그의 사랑과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그 관계는 단지 지금의 삶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하늘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것이다. 단지 죄에 대한 형벌이나 죄의 권세, 죄로 인한 오염, 죄로 인한 분리 뿐만 아니라 죄라는 것 자체로부터도 자유로울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십자가 위에서 자기 대리로 가능해진 일들이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시며 보통 아버지들이 자기 자녀 하나 하나와 친해지고 싶어하듯이 우리와 친해지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은 단순히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다. 그는 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 이것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바울은 갈2:20에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쓰고 있다.
우리는 십자가를 개인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그럴 때에 내 삶은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존 윔버의 회개 간증 > 인생의 의문점들, p. 54-56. --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

영접 기도를 하게 하라.
출처 : ●…화평동산…●
글쓴이 : 거룩한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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