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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토크 5. 왜 그리고 어떻게 기도할까?

하나님아들 2015. 5. 28. 23:30
<알파-토크>

5. 왜 그리고 어떻게 기도할까?

(Why and How Do I Pray?)

사도행전 4:13-22



홍만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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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1.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동구 루마니아에 살아있는 순교자라는 별명을 가진 아주 위대한 분이 한분 계십니다. 리차드 범브란트 박사인데, 이분은 저술가이면서 또 신학교 교수입니다. 원래 혈통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나치가 루마니아를 침공했을 때 가족들을 많이 잃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루마니아가 공산화되고 나서는, 범브란트 박사는 지하조직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도에 잡혀서 투옥을 당하고 그 후 15년 동안 감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어두운 인생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석방이 되고 서방으로 빠져 나와서, 공산권 선교회라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그 노구를 끌고 다니며 복음을 전하셨는데, 지금 생존하고 계시는지 아직 확인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처음에 잡혀서 3년 동안 지하 감옥 독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생각을 나눌 만한 말벗도 없습니다. 읽을 책도 없고, 자기 생각을 써 볼만한 종이나 연필도 없었고, 심지어 지저귀는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파란 풀 포기 하나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조용히 스며드는 햇빛도 구경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지옥 같은 환경에서 3년을 버티면서 혹독한 굶주림을 가지고 시름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매일 주는 것은 더러운 감자껍질을 가지고 만든 스프였는데, 그것도 충분하게 주는 것이 아니었고 일주일에 한번씩 빵 조각을 주는 것으로 연명을 했습니다. 게다가 자주자주 끌려나가서 고문당하고 매질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 악독한 공산주의자들은 범브란트의 정신세계를 파괴하기 위해서, 그리고 영적인 세계를 마비시키기 위해서 스프에다가 매일 마약을 탔습니다. 마약이 든 스프를 계속 먹어대니 점점 정신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심각한 것은 기억력 상실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성경에 있는 내용을 깡그리 잊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신학자로서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연구한 사람이었지만 그 신학적인 지식도 다 날라가 버렸습니다. 14개 국어를 유창하게 할 정도의 탁월한 언어학자였지만 모든 언어를 다 잊어버리고 모국어인 루마니어를 조금 기억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어느날 밤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하나님을 향하여 주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을 외우려고 했는데, 그날 따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하고는 그 다음 내용이 전혀 생각이 안 나는 것이었습니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 당황하고 너무나 서글펐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써 놓았습니다.

"나는 매우 슬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치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땅에 오셨는데 내가 그 분의 기도를 잊어 버리다니"

그리고는 옷 매무새를 고쳐 잡고 하나님 앞에 머리 숙여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내가 주님의 기도문을 다 잊어버렸지만 하나님은 제 마음을 아시죠?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멘."

마약으로 인한 정신적 암흑상태를 2년 동안 버티면서 그는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마약 투여가 중단이 되고 음식이 조금씩 질이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몇 달 지나자 기억력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잊어버렸던 주기도문의 단어 하나하나가 샘이 솟듯이 다시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기절했다가 갑자기 깨어난 사람처럼 잊어버렸던 주기도문을 마음에 담고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사랑과 믿음을 담아 하나님 앞에 기도 드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기도문을 골자로 해서 자신의 마음에 있는 모든 기도를 거기에 첨가하고, 드리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그 기도에 담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매일매일 올렸습니다. 그 회복된 주기도문의 기도를 통해서 그의 메말랐던 심령에 다시 한번 꽃이 피기 시작했고 그의 영혼이 다시 회복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면서 그 혹독한 감옥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그가 쓴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사탄이 성도에게서 마지막으로 빼앗고 싶은 기도가 있다면 주기도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이 주기도문은 우리에게는 중요하고 사탄에게는 너무너무 듣기 싫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세상이 얼마나 바쁩니까?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돌아가는 세상, 조금만 아침에 늦잠을 자도 기도할 틈을 얻지 못하고 문을 박차고 달려나가야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시간이 없어서 기도를 드리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운전대에 앉아서 잠깐이라도 머리 숙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며, 이 주님이 가르쳐 주신 한마디 한마디에다가 우리의 혼을 담고 우리의 믿음을 담고 우리의 뜨거운 열정을 담아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면, 그 날은 기도 없이 시작한 하루라고 하는 딱지는 붙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2. 기도에 대한 오해들




자기가 원한 것을 다 받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도깨비 방망이같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받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에 대해서 기도를 응급처치상자(first-aid kit)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건물마다 비치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소화기입니다. 불이 났을 때 끄는 것, 그 소화기 밑에 보면 '응급시에만 사용하시오' '비상시에만 사용하시오' 써 놓았습니다. 기도란 위급한 일이 닥쳤을 때만 무릎꿇고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럴 때, "주여!" 하며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줄다리기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응석을 부리며 악착같이 당기면 하나님이 주기 싫어도 "오냐, 내가졌다" 하시며 내어주는 것, 그것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증거를 야곱의 얍복강 기도로 얘기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그 본문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에 대한 가장 잘못된 견해는 기도를 종교적인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종교적 의무라고 생각하게 되면 아주 심각한 죄와 잘못에 빠지게 됩니다. 죄의식에 빠지면 기도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억지로 하나님 앞에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 부담이 되어도 하는 수 없이 율법적으로 기도합니다. 이러한 모든 생각들은 기도에 대한 오해입니다. 오늘 저는 이러한 오해들을 벗겨 드리기를 원합니다.


푸는 말






1. 기도란 무엇인가? (What is prayer?)

1)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요 대화이다 ... 마 6:6-7

2) 기도는 아버지를 향한 대화이다 (to the Father) ... 마 6:6, 9

3) 기도는 아들을 통한 대화이다 (through the Son) ... 엡 2:18, 요 15:16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우리의 것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천국 열쇠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천국문을 열 수 있습니다. 예수 이름이 아니면 천국문을 열고 들어갈 자가가 없습니다. 예수 이름만 가져다 대면 천국문이 열리는 만능 키입니다. 권세있는 이름입니다. (마28:18)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름을 부르면 사단이 두려워하고, 무력해집니다. 성령께서는 정확하시기 때문에 믿을 때 역사하고 믿지 않으면 사단이 역사하고 믿을 때에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4) 기도는 성령에 의한 대화이다 (by the Spirit) ... 엡 2:18, 롬 8:26-27




2. 왜 기도해야 하나? (Why pray?)

1) 하나님과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 살전 5:16-17

2) 예수님의 모범이요 명령이기 때문에 ... 막 1:35, 눅 6:12, 마 6:9

3) 기도에는 보상이 따르므로 ... 마 6:6, 요 16:24, 빌 4:6-7

4)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되므로 ... 마 7:7-8

우리가 구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악한 사람으로서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어찌 좋은 것으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좋은 것 중의 가장 좋은 게 무엇입니까?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해결되고, 우리의 죄가 해결되고, 유혹에서 헤어 나오는 것이 해결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늘 좋은 걸 주십니다.

아이들은 사탕은 좋아하지만 약은 싫어합니다. 약을 안 먹으려고 할 때 부모가 어떻게 합니까? "그래, 사탕만 먹어라"고 합니다. 코를 잡고 먹이죠. 코를 잡으면 숨을 입으로 쉬어야 되니까 애가 입을 벌립니다. 그 사이에 먹이면 "으으윽~"하고서 먹는 겁니다. 애가 웁니다. 그래도 부모는 또 약을 먹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이 좋은지 알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결과는 주님께 맡기세요. 그리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3. 언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가? (Does God always answer prayer?)

1) 고백되지 않은 죄가 있을 때 ... 사 59:1-2, 요일 3:21-22

2) 잘못된 동기로 구할 때 ... 약 4:2-3

3) 하나님의 뜻을 오해할 때 ... 요일 5:14




4. 어떻게 기도하는가? (How should we pray?)




1) 사도행전식 기도 (ACTS)

Adoration(경배), Confession(고백)

Thanksgiving (감사), Supplication (간구)




2) 주기도문식 기도 ...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전번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뱅크웨어에 리젼트라는 유명한 신학교가 있는데 신학교의 학장이신 제임스 휴스턴 박사는 기도를 정의를 하면서 이런 독특한 정의를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우정이다. 󰡒friendship with God󰡓 하나님과의 우정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을 때 이 첫마디가 딱 끝나고 나서 아마도 제자들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야기>// 현대 실존주의 작가 가운데 큰 영향을 끼친 프란츠 카프카는 현대인을 그의 작중 인물들을 통해서 묘사하면서 자주 이 단어를 썼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마치 아버지를 잃어버린 고아와 같다. 아버지를 잃어버린 고아와 같다.”

이것은 프란츠 카프카 자신의 경험을 사실은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일기 가운데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자기 아버지가 있었지만 단 한번도 아버지와 의미있고 친밀한 대화를 나누어본 경험이 없었고 고아처럼 느꼈다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의 문제가 거기에 있습니다. 자기가 믿고 부를 수 있는 아버지를 갖지 못한 현대인들, 요즘 현대 와서 이 동성연애 자들이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 증가되는 원인을 여러가지 이유로 진단하고 설명하지만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여러분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소위 그 게이, 호모, 동성연애자가 되는 것 아세요? 아버지를 잃어버린 고아들, 고아들. 프란츠 카프카의 그 작품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가 성(城) 󰡒The castle󰡓 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 보면 주인공 케이는 척량사인데 계약문서를 가지고 성을 찾아갑니다. 마을을 통과하면서 성을 찾아가서 성에 들어 갈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성에 들어가지 못해요. 작품의 마지막에 그는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마을 주변에서 배회하는 것으로 이 작품은 막을 내립니다.

기독교 문화 평론가들은 그것이 카프카가 어떤 신앙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을 그리워했지마는 그러나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하고 땅의 아버지도 아버지다운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소외된 외로움이 이 작품을 탄생시켰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 성은 신의 존재, 영혼의 고향이 되시는 하나님의 품과 같은 그 무엇인데 끝내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맙니다. 불행합니다.

우리는 기도해보겠다는 마음을 감히 갖지마는 그 하나님 속에 들어가지 못하곤 합니다. 하나님 임재 속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어려워 보이고 멀리 있는 분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주기도문을 가르치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단순한 마음을 가진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있는 어린 아이들이 아빠하고 부르면 왜? 하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처럼, 성경의 하나님은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고백한다면 내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 부를 때마다 내게 다가오시는 하나님!! 기도란 그 하나님과 만남이요 그 하나님과의 교제요 그 하나님과의 대화요 그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감이 바로 기도의 본질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도란 무엇일까요? 기도란 것은 하나님의 그 임재를 구하는 사건입니다.

여러분! 직분자들이 기도를 부담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기도해야 하는데' 하면서 기도하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로 다시 기도에 대해서 깨우치시길 바랍니다. 기도에 대한 생각을 바꾸십시다.

기도는 즐거운 겁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내 모든 마음을 얘기하는 겁니다. 세상에서의 대화는 내 말을 상대편이 오해할 때가 많습니까? 내가 그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됩니까? 그러나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마음이 힘들 때, 주님 앞에 나아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위로해 주십니다.

깊이 하나님 앞에 내 모든 사정을 아뢴 후, 삼십분 혹은 한시간 동안 무릎 꿇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의 어느 상담가도 나를 상담할 수 없는 것을 세미한 음성으로, 격려의 음성으로, 따뜻한 음성으로, 나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이렇게 나아가야 합니다.

"아버지여!" 너무나도 친밀한,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그 아버지에게 내 모든 일을 아뢸 수밖에 없는 그것이 기도라고 주님은 가르쳐 주십니다.




2) 기도는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는 것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영광) - 우리가 기도함으로 할 수 있는 것

나라이 임하옵시며 (권능) - 우리가 기도함으로 마땅히 해야 할 것

뜻이 이루어지이다 (신뢰) - 하나님의 섭리를 펼칠 수가 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의 기도와 차별화 되는 특성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일, 거기에 일차적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그것을 망각하고 우리의 필요, 소원에만 몰두하는 기도를 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기복적 수준의 기도로 타락해 가는 것입니다.

소원을 기도하는 것이 잘못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의 소원, 우리가 구하고 싶은 것, 기도해야지요. 마땅히 해야 돼요. 그러나 우리의 소원만 기도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소원을 기도해야 되지마는 우리의 기도 속에 관심이 오직 나의 필요, 나의 소원 밖에는 없다면 그것은 기독교적 기도가 아니란 말입니다.

내 필요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일에 관심을 가질 수가 있느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고 그의 통치의 영광이 이 땅에 모든 영역 속에서 드러나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일에 내가 정말 관심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에 관한 본질적 정의 하나는 기도라는 것, 하나님의 사역을 실현하는 혹은 하나님의 사역을 성취하는 방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를 배우는데 그때마다 매우 중요하게 강조하는 성경구절 하나가 있습니다. 이 구절이야말로 기도의 정의를 가장 아름답고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렘29:11-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들을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 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이 시온의 회복을 약속하시면서 ‘내가 이루겠다’ 그러면 이루시면 될터인데 나에게 이렇게 이루어 달라고 구하여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기도가 뭔 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온의 회복을 약속해 놓으시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기도하는 것을!! 왜냐하면 이런 위대한 일은 나 하나님 밖에 할 수 없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 하나님의 액션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그가 약속하신 바를 그가 계획하신 바를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란 단순히 내 생각과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기도란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는 방편입니다. 내가 기도할 때 나는 하나님의 일에 파트너가 되어, 동참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의 기도를 통해서 이땅에 하나님의 뜻을 펼쳐 가십니다.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까?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서 이루어져 간다. 여기에 Christian prayer, 기독교 기도에 아주 중요한 정곡의 핵심이 있는 것입니다.




3) 기도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후반부 -우리에게)




일상적 생존을 위해서 하나님의 도움(양식)

<이야기>// 이해인 수녀의 시 중에 '가난한 새의 기도'라고 시가 있습니다.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 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 주십시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 주십시오/

나의 선택은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내 삶의 하늘에 떠다니는/ 흰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내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새에게 물어 보십시오. 탐욕이 있는가 염려가 있는가 물어 보십시오. 그런 것이 있으면 새는 무거워서 날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늘을 나는데 지장을 받는 무거운 짐이 없습니다. 가볍게 기쁨으로 날 수 있습니다.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이런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님의 가르치신 기도를 드릴 때마다 여러분의 가슴 속에 흠뻑 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기도에 대해서 냉소적인 사람은 ‘기도한다고 양식이 하늘에서 떨어지니?’하고 모욕을 합니다. 물론 기도하는 그 순간 하늘에서 양식이 떨어지지 않을지도, 눈앞에 어떤 제품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가 하나님이 약속한 그대로 약속의 사건이라면 하나님은 우리가 양식을 얻을 수 있는 에너지 주시고 상황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기도는, 성경이 가르치는 성서적 기도는 우리의 기도에서 책임 있는 노력을 그 다음에 요청합니다.

<이야기>// 어떤 사람이 홍수가 나서 지붕으로 대피했지만, 물이 차 올라옵니다. 요. 그런데 이 사람이 지붕에 올라가자 말자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낼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왔사오니 기적을 일으키시사 이 지붕에 서 있는 저를 구출해 주시옵소서󰡓

그 마을이 거의 물에 잠기면서 이제 구명 보트들이 당도합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사람들이 구명보트를 타고 나갑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에게 구명보트가 네번씩이나 왔는데 거절하면서 나는 괜찮다고, 내가 기도했으니까 하나님이 기적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 물이 계속 차오르면서 물 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좀 억울했겠죠?

그래서 돌아가시자 마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 앞에 항의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기적을 일으켜서 저를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어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 왜 기적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기적을 안주었니? 네 번씩이나 기적을 베풀었는데󰡓 뭐가요?󰡓

󰡒내가 네 번씩이나 네 기도를 응답하고 너에게 구명보트를 보내지 않았더냐?󰡓

기도는 상식적인 우리의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우리의 가정과 직장에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면, 하나님의 나라와 가치가 나타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기도했다면 그 기도에 합당한 노력을 하나님이 주시는 에너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삶의 장에서 땀 흘리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도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신실하게 응답하신다! 이것을 믿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관계적인 평화를 위해서 (속죄)

행복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고 주님은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관계의 평화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이 있어도 아무리 배불러도 인간관계의 상처와 갈등을 경험할 때 살맛이 안납니다. 인간관계가 왜곡되고 갈등과 미움과 분쟁과 어려움이 생길 때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관계의 평화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못지않게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저에게서 상처를 입혀준 사람도 내가 용서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내가 용서를 받고 또 용서를 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또 사람을 향하여 누릴 수 있는 마음의 당당한 평화’

내가 이웃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간단할 것입니다. 충분히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 상처가 아파도, 예리해도, 용서할 수 있는 넉넉한 여유를 주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영적전쟁 신령한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시험)

스위스의 라브리를 중심으로 해서 공동체 운동을 했던 프랜치 쉐이프 박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오늘 우리 시대에, 오늘 우리 시대에 사람들을 죄와 악 속에 물들게 하는 가장 강력한 기독교의, 반 기독교적인 이단 운동이 하나 있다. 기독교 신앙을 본질적으로부터 위협하는, 그리고 많은 사람의 진정한 행복과 경건을 빼앗아가는 무서운 이단 사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속적인 인본주의다,’

영성학자 필립 얀시는 이런 글을 남깁니다.

‘당신이 불행해 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신을 추방하십시요. 신을 거절 하십시요 그리고 기도를 거절하십시요. 그러나 정말 행복해 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당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복귀 시키십시요.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을 배우십시요. 나의 연약성을 내가 안다면, 내가 죄인이고 하나님 앞에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깨닫는다면 나는 그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호흡할 수도 없는 존재 생존이 불가능한 존재, 따라서 그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며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 하나님에 의해서 내가 쓰임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펼쳐가는 그 보람 속에서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면 기도를 배우십시요.“

기도란 바로 나의 도움에 대해서 하나님의 공급을 체험할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이 하나님께 붙들림을 받아 쓰임을 받는 설레이는 모험, 그것이 바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모험이요 기도의 의미인 것입니다.




시험은 test가 아니라 temptation 즉 유혹입니다. 사탄은 지뢰를 매설하고 덫을 놓을 때 그냥 지뢰와 덫만 놓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그 지뢰를 밟고 덫에 걸리게 하기 위하여 미끼를 사용합니다. 그 미끼를 가지고 유혹하는데 시험입니다. 그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고 기도한다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정말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기를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단이 집중적으로 쓰는 덫 몇가지를 말씀드리고 합니다.

'절망'이라는 덫입니다. 사탄이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덫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연단과 훈련 중에 사탄은 언제나 역사 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연단을 하나님의 포기와 심판으로 이해하게 속인 다음, 절망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듭니다. 사탄의 모든 덫과 함정의 목적은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있는 줄을 아는 사탄이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절망'이라는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절망적인 상황은 있을 수 있으나 절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셔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살아있는 동안 당하는 어려움은 각성을 위한 채찍이 아니면 훈련시키시기 위한 연단입니다. 채찍과 연단의 목적은 생명과 구원이지 죽음과 실패가 아닙니다.

절망적인 상황이 올 때 사탄은 우리에게 절망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의심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라고 유혹할 것입니다. 그 시험에 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가 송구영신 예배 때 배운 것처럼 '생명 주께 있네, 능력 주께 있네, 소망 주께 있네'를 찬송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야곱처럼 하나님께 생명을 걸고 매달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탈선'이라는 덫입니다. 정도를 지키면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탈선을 권면하는데 힘들고 어려워질 때 이 유혹을 뿌리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지뢰밭에서 길을 잃으면 죽습니다. 사탄은 탈선이 사는 길이라고 속이지만 경기가 좋을 때든 경기가 나쁠 때든 탈선은 곧 사망과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평안하면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정도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세상 경기가 어려워지면 어느 정도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도 정도를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탈선의 유혹을 이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삶이 힘들고 어려워져도 길을 잃으면 안 됩니다. 정도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죽으면 죽으리다' 고집을 부리며 하나님의 길을 지키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삽니다. 성공합니다. 승리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간절히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과 덫은 정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경기가 좋을 때 쓰는 덫이 있고 경기가 나쁠 때 쓰는 덫이 있습니다. 경기를 가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생활과 삶이 불안정할 때 걸리기 쉬운 덫이 있고 생활과 삶이 안정되었을 때 걸리기 쉬운 덫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시도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됩니다. 사탄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합니다.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고 사탄의 덫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옛날에 쓰던 쥐덫 중에 철사로 만든 그물상자 모양의 쥐덫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 미끼를 넣어 놓고 쥐가 상자 안에 들어오면 문이 닫히게 만든 쥐덫입니다. 그 쥐덫에 갇혀서도 열심히 미끼를 먹고 있는 쥐가 있습니다. 쥐 중에서도 지능 지수가 아주 떨어지는 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쥐는 쥐덫에 갇히면 불안해서 미끼를 먹지 못합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탈출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지능 지수가 낮은 쥐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탄의 덫에 걸렸는데도 사탄이 준 미끼를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자기가 덫에 걸렸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탈출하려고 생각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우리들 중에도 많습니다.




7)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보호)

악에서 구해 달라는 진실한 기도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악을 악인 줄 모르고 자기가 있는 곳이 덫인 줄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그 기도가 간절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기도와 함께 정말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믿음을 지키고 정도를 지키기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다' 생명을 거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다가도 실수하여 덫에 걸리게 되거든 하나님을 향하여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울부짖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 덫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발버둥질 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동물들은 대부분 밀렵꾼의 덫에 걸리면 벗어나지 못하고 죽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탄의 덫에 걸려도 벗어날 길이 있습니다. 동물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동물들의 생명을 사람에게 허락하셨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사탄에게 허락하신 적이 없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비록 실수하여 사탄의 덫에 걸렸다고 할지라도 그 사탄의 올무와 덫에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5.언제 기도할까?




1) 항상 기도하라 ... 살전 5:17, 엡 6:18

무엇이든지,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기도하십시오.

2) 함께 기도하라 ... 마 18:19

기도는 우리들로 하여금 영적 생활의 최전방에서 서게 합니다. 기도는 답사하지 않은 영토를 최초로 답사하는 입니다. 기도는, 우리들로 하여금 인간 심령의 가장 깊고 가장 높은 행위 속에 들어가게 하는 기도의 "훈련"(실제의 체험) 그 자체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또 생활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의 말을 들어 봅시다.

“은밀하고 열렬한 믿음의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밑뿌리에 있다."

사무엘 차드윅(Samuel Chadwick) 목사의 충고를 들으십시오.

“사단은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선한 행위로 가득 찼습니다. 활동들이 증가되면서 묵상은 축출되고 조직이 강화되면 기도는 기회를 잃었습니다. 악령들은 사악한 행위 속에서처럼, 선한 행위 속에서 일하게 됩니다. 마귀의 관심 중 하나는 성도들을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기도 없는 봉사, 기도 없는 구제, 기도없는 신앙심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열심을 조롱하며, 우리의 지혜를 비웃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무서워 떱니다.

중보기도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하나님은 중보기도하는 자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들을 허락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 사역의 통참입니다.

남은 세월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닫는 말






우리가 죽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 전 까지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시험과 역경은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시험과 역경이 없는 세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기대입니다. 시험과 역경을 일부러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구태여 그것을 두려워하고 회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가난이 싫어. 그러나 가난이 무섭진 않아"

말씀이 평생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도 시험과 역경이 싫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서워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을 무서워하여 도망 다니지는 않겠습니다. 오히려 시험과 역경을 믿음으로 직면하여 싸우겠습니다. 그러나 자만하지는 않겠습니다.

싸우면서 늘 하나님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렇게 살면 오히려 시험과 역경 때문에 저의 삶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 질 것이고, 더 아름다워 질 것이고, 더 강하여 질 것입니다.

시험과 역경에 굴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꿋꿋하게 그것과 직면하여 싸우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싸우되 자만하지 아니하고 늘 하나님께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겸손히 그러나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시험과 역경 때문에 더 아름답고 강인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화평동산…●
글쓴이 : 거룩한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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