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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알파 토크1/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하나님아들 2015. 5. 28. 23:32
알파 토크1/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우리가 집을 지을때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 자체가 안전합니다. 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가 확실히 잡혀 있지 않으면 어떤 발전이나 성과, 업적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인생에는 모든 일에 기초가 필요하다. 집을 지을 때 뿐이 아니라 회사에 입사해서도 그 회사의 기본적인 것부터 배운다. 학문에서도 기초 학문이 대단히 중요하다. 과학도 기초과학이 중요하다. 건물이 올라갈 때에 기초가 튼튼한 만큼 견고한 만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 신앙생활을 더 힘차게 능력있고 활력있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신앙의 근간이요 기본이요 기초가 뭔지 배워야 한다. 우리들의 신앙의 기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지식과 신앙의 기초가 튼튼하면 그 신앙은 얼마든지 앞으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대한 신앙 기초가 잘못 놓이면 신앙은 파산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예수님을 분명히 알아 가는 은혜를 받아 누리기 바란다.


1. 예수님의 존재에 대하여/

공산국가인 구소련의 사전에는 예수님은 ‘결코 존재하지 않은 신화 속의 인물’이라고 설명되어 있다고 한다. 그들이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인데, 이 종교를 믿게 되면 자기들의 신조인 공산주의가 무너질 수 밖에 없었기에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 인물이 아닌 것처럼 꾸며놓은 것이다.

1) (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 신약성경 밖의 증거들/ 예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는 대단히 많다.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의 여러 가지 저술 심지어는 비기독교 자료에서도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 예를 들어
*로마 역사가 타시투스나 수에토니우스:그들의 기록에 보면 간접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존재에대해 인정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예수라 하는 한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기적을 행하는 자였으며, 진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선생이었다. 그의 주위에는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모여 들었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그가 다시 사실 것과 그 밖의 수많은 기적들을 예언한 바와 같이, 그가 죽은지 사흘 째 되는 날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의 이름을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2) (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 신약성서 상의 증거/ 신약성서에 나타난 증거들은 대단히 확실하다.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 F.F. Bruce (그는 맨체스터 대학의 성경비평과 성서해석학 교수였고 지금은 소천함)는 그의 책 <신약성서의 기록은 믿을만한가?>에서 다른 역사적인 책들과 원전을 비교함으로 신약성서가 얼마나 풍부한 원고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증명했다.
여러분의 책 23 쪽 (혹은 학습자용 교재 8 쪽)의 도표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그 도표를 보면서 이 토크를 계속듣기 바란다.

F. F. Bruce 교수는
#캐사르의 갤릭 전쟁에 관한 9 혹은 10개의 사본이 현존하고 있고,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이 케사르 시대보다 무려 약 900년 후에 쓰여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리비의 <로마의 역사>의 경우 20여개의 사본밖에 없고, 가장 일찍 쓰여진 사본은 AD 900년 경의 것이다.
#타시투스의 14권의 역사책은 20개의 사본이 남아있을 뿐.
#투시디데스의 역사는 거의 전적으로 약 AD 900년의 것인 8개의 원고로만 알려져 있다.
#헤로도투스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큰 시간 간격과 비교적 적은 원고의 수에도 불구하고, 이 저서들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고전 학자들은 없다.
#신약 성서에의 경우 우리는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1) 신약의 기록 연대/ AD 40 - 100 사이에 기록됨
(2) AD 350년에 쓰여진 신약전체의 완전한 원고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300년의 기간 간격 뿐임)
신약의 내용을 거의 다 포함하고 있는 3세기의 파피루스
(3) AD 130년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요한복음의 일부가 있다.
(4) 또한 사본의 숫자를 살펴보면, 헬라어(희랍어/그리스어)의 원고가 무려 5,000개 이상이나 되고
라틴어 원고가 10,000개 이상
9300개 이상의 원고가 다른 언어로 쓰여진 원고들이다.

(5) 초대 교부들의 글 속에 36,000개 이상의 인용구절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원전 연구가의 한 사람인 호트는 말하기를, “신약성경은 그것이 의존하고 있는 증거들의 다양함과 풍부함에 있어서 고대 산문 기록 중의 독보적인 존재다.”

F. F. 브루스는 이 분야의 권위자인 프레드릭 케니언 경의 말을 인용하여 그 증거를 요약했다.
“그렇다면 원래 글이 쓰여진 시기와 그 글이 현존하는 가장 초기의 증거 사이의 간격은 아주 작은 것이므로 사실상 무시할만하다. 그러므로 셩경이 원래 쓰여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졌는가에 대한 의심의 마지막 근거도 이제는 없어졌다. 신약성서의 신뢰성과 완전무결함은 마침내 증명되었다고 해도 좋다.”

이렇게 신약성경과 그밖의 증거로부터 예수님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그렇다면 예수 그분은 과연 누구인가?


2. 예수님은 누구인가 ?.

A. 그분은 완전한 사람이었다.

1. 사람의 몸을 갖고 있었다

1) 피곤함을 느끼셨다.
* 요4: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 요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2) 배고프심
* 마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개역개정판 마 4장)

2.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셨다.
1) 분노를 느끼심
* 막11: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 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개역개정판 막 11장)

2) 사랑하심
* 막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 르라 하시니 (개역개정판 막 10장)

3) 슬퍼하심
* 요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 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개역개정판 요 11장)

3. 인간의 경험을 했다.
1)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심, 2) 지혜를 배우시고, 3) 일하셨고, 4) 부모에게 순종하심




문제 제기/
많은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여기까지만 언급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으로서 예수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위대한 종교지도자로 이야기한다. 또한 위대한 도덕적 선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단지 위대한 종교지도자이며, 도덕적 선생의 모습이 그분의 모든 모습이겠는가? 그분에게 더 보여줄 만한 다른 모습과 증거가 없겠는가? 하는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 뭐라고 하셨나?

A. 자신에 대한 가르침/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셨다

예수님의 매력 중의 하나는 그의 가르침의 많은 부분이 자신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말은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싶다면 반드시 나를 통해야 하고, 나에게 와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도 만날 수도 없다. 그분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어라는 말이다.
“나는 .... 이다”

1. 나는 곧 생명의 떡이다(요6:35).
세상은 온통 굶주려 있다. 20세기 초의 심리학자였던 지그문드 프로이드는 사람들은 사랑에 굶주려 있다고 갈파했고, 그의 제자였던 칼 융은 사람들은 안전함에 굶주려있고, 애들러라는 심리학자는 중요성에 굶주려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내가 바로 생명의 떡이니 너의 허기진 굶주림을 채우고 싶다면 내게 오너라“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철학의 굶주림도, 심리학의 굶주림도, 경제와 정치의 굶주림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2.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
온통 세상이 어두워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둠과 우울함과 환멸, 절망 속에서 걷고 있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갈 곳을 몰라 헤매고 있다. 방황하고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3.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
많은 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한다. 어느 사람은 비행기 타고 가다가 고소 공포증에 걸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이분은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 한번은 자기 친정 어머님이 한국에 살다가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친정부모가 죽었어도 고공 공포증 때문에 다시 말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친정 엄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요11:25-26).

4. 나는 쉼터고 피난처고 안식처다 (마11:28,29)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근심과 공포와 죄의식으로 어깨가 무겁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5. 나를 따르라 (막1:17)
사람들은 자기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지,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막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6. 나를 영접하라 (마10:40)
예수님은 자기를 영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하셨다.
마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7.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다 (요14:9)
* 요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화) 어떤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엄마가 무얼 그리고 있느냐고 물음. 아이는 “하나님을 그리고 있어요.” 엄마가 “바보같은 소리. 하나님을 그릴 순 없어.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러자 아이가 대답했다. ‘음, 그러나 내가 그림을 다 그리면 알게 되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하나님을 보고 싶으냐? 그러면 나를 보라.

8. 인간의 최고의 사랑을 요청하심 (마10:37, 눅14:26)
* 마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 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B. 예수에 대한 간접적인 주장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직접 하나님이라고 직접적으로 주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1. 사람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예수님이 자신이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주장하신 것은 잘 알려져있다. 그 좋은 예가 막2장에 나오는 중풍병자를 고치셨을 때 하신 말씀이다.
막2:5에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종교지도자들의 반응은 ‘이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하는거야? 그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어.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였다.

예수님은 중풍에 걸린 사람을 고치심으로 자신에게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는 이 주장은 사실 충격적인 것이었다.

죄용서와 관련해서 영국의 학자요 신실한 그리스도인인 C. S. 루이스의 말을 들어보자. <단순한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주장들 중에 우리의 시선을 끌지 못한 채 지나가기 쉬운 것 중의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너무 자주 들어서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바로 죄를 용서한다는, 어떤 죄라도 용서하신다는 주장이다. 만약 그 말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이것은 너무도 터무니가 없어서 우스울 정도다. 만일에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의 입에서 나온 이 말들은 역사상 어느 인물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사기이며 헛소리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2. 예수님의 특이한 주장/ 그가 언젠가는 세상을 심판하시겠다 (마25:31, 32, 40, 45)
마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예수님은 심판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심판의 기준이 되실 것이다. 즉 심판의 날 우라가 어떻게 될지는 우리가 지금 살아서 그를 어떻게 대했는가에 달려있다.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저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C. 그분의 직접적인 주장

1. 메시아 되심 (막14:61-64)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질문을 받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렇다... 내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은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
대제사장은 분이 나서 자신의 옷을 찢었다. “여러분도 저 사람의 모독적인 말을 다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막14:61-64).

2. 하나님의 아들 되심 (막14:61)
*막14:61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 도냐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 가 보리라 하시니

사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하게 된 것은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즉 하나님이라는 것 때문에 신성모독의 죄로 인해 죽게 된 것이다. 자신이 신이라는 것과 다름없는 주장은 유대인들의 눈에는 죽어 마땅한 신성모독의 죄였다.

한번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 하자 예수님이 물으셨다. “무엇 때문에 나를 돌로 치려고 하느냐?”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했기 때문에 그를 돌로 치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 요10:31-33에 보면,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 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3. 성자 하나님 (요8:58)
* 요8: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4. 도마의 신앙고백 (요20:28)
*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때에 우리 예수님은 그를 돌아보면서 ‘아니, 아니, 그런 말을 하지 말아라.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도마를 향하여 ”너는 나를 보고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고 하시며 늦게야 핵심을 깨닫는 도마를 나무라셨다.

5. 예수님의 적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선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요10:33)
요10: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 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 만약에 누군가가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주장한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다면 그는 시험을 받아봐야 한다. 갖가지 사람들이 갖가지 주장을 해왔다. 누군가가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는 사실만으로는 그가 옳다고 할 수 없다.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 일부는 정신병원에 있다. 그들은 자신을 나폴레옹이나 교황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각기 내가 누구 누구라고 했을 때 어떻게 그들의 주장을 시험해 볼 수 있을까?
예수님의 경우,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셨다. 여기에는 3 가지 논리적인 가능성이 있다.

1) 첫 번째 가능성은 / 그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는 야바위꾼이며 사악한 사기꾼이다.
2) 두 번째 가능성은 / 그가 환상에 사로잡혔거나 실제로 미친 사람이다.
3) 세 번째 가능성은 / 그가 한 말은 사실이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C.S 루이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그의 일생을 두고 우리는 그를 위대한 도덕군자로 보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양자택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분의 말씀대로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든지 아니면 거부하든지 해야 한다. 적당한 도덕군자라는 말은 예수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가 말한대로 하나님의 아들이든지 아니면 반대로 미친 사람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들을 그의 말씀대로 다 믿든지 아니면 전부 부정해야지 중간노선이라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단지 성인, 도덕군자, 기독교의 창시자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4. 그분이 말한 것을 지지하는 어떤 증거가 있는가?

위에서 논의한 대로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평가 3가지 가능성(사기꾼, 미친사람, 하나님의 아들) 중에 어느 것이 맞는지를 평가하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분의 생애에 대한 증거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A. 예수님의 가르침/

* 산상수훈/ (마5:5-7)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의 입술에서 떨어진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고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산상수훈을 좋아합니다. 내 생활신조이죠.”

미국 신학교수인 버나드 램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그의 가르침들이 더 많이 읽혀지고, 더 많이 인용되고, 더 많이 사랑받고, 더 많이 믿어지고, 더 많이 번역되는 것은 사람이 한 말 중 가장 위대하기 때문이다. .... 다른 어떤 사람의 말도 예수의 말 만큼 호소력을 갖지 못했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사람도 이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들에 대해 예수처럼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한 그런 말씀이었고 대답이었다.

그의 가르침은 모든 서구 문명의 기초가 되었다. 서구의 많은 법 조항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것이다. 사람들이 더 빨리 이동하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지만 2000년이 지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보다 더 좋은 것을 가르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가르침이 정말 사기꾼이나 미친 사람의 것일 수 있을까?

B. 그분이 하신 일/
* 요한복음 10:37,38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 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시는 기적들은 그것만으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10:38) 증거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함께 있기에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기독교는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은 지루하지 않았다.
- 그는 어떤 결혼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 한 아이의 도시락을 받아 수천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으로 늘리셨다.
- 그에게는 자연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어서 바람과 파도에게 명령하여 폭풍을 잠잠하게 하셨다.
- 그는 사람들을 치료하셨다.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듣고 말하게 하셨고,
중풍에 걸린 사람은 걷게 하셨다. 그가 환자들이 있는 곳을 방문했을 때는 38년된 병자가 자기 자리를 거둬 들고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사악한 세력으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셨다. 때로 그는 죽었던 사람을 다시 살려내기도 하셨다.
그의 행동이 그토록 감동을 주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행한 기적 때문만은 아니셨다. 그것은 그의 사랑, 특히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나병환자들, 창녀와 세리들)을 향한 사랑 때문이며, 그러한 사랑은 그가 한 모든 일의 원동력이었다. 그 사랑의 정점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 나타났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괴롭히고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그는 말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눅23:34). 확실히 이것은 악하거나 미친 사람의 행동은 아니었다.

C. 그분의 특성/

* 그분이 구약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심
고대 세계에는 예언이라는 미래를 예측하는 다양한 수단들이 있었다. 그러나 희랍과 라틴의 문학 전반을 통털어봐도 그들이 비록 예언자와 예언이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먼 미래에 이루어질 위대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예언도, 인류를 위해 올 구원자에 대한 예언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마호메트교에서는 마호메트가 탄생하기 수백년 전에 그가 올 것을 예언한 글귀를 짚어볼 수가 없다. 또한 이 나라에 있는 어떤 신흥종교의 창시자들도 그들이 나타날 것을 명확하게 예언하고 있는 고대의 문서를 정확하게 골라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 300개가 넘는 예언을 이루셨으며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의해 선포된 예언들) 그중에 29개의 중요한 예언들을 하루에 -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던 날에 - 이루셨다. 이 예언의 궁극적인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이 아주 똑똑한 사기꾼이어서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임을 보이려고 일부러 이 예언들이 이루어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의 문제점은 그 예언들의 숫자만으로도 그 일은 엄청나게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로, 인간적으로 말해 그는 그 사건들 중 많은 일들에 대해 아무런 통제력을 가지지 못했다. 예를 들면, 그가 정확히 어떻게 죽으리라는 것과(사53장), 그가 묻힐 장소와 심지어 태어날 장소까지(미가5:2) 구약에 예언이 되어 있다. 예수님이 이 모든 예언들을 완성하기를 원했던 사기꾼이라고 하면 그가 태어났어야 하는 장소를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너무 늦었을 것이다.


D. 그분의 부활하심/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육체적으로 부활하신 사건은 기독교의 주춧돌이다. 그러나 그 일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무엇일까? 4가지로 살펴본다.

1. 그는 원래 무덤에 들어가 계시지 않았다는 설
부활의 날 아침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에 없었다는 사실을 설명하려는 많은 이론들이 나왔다. 그 중 설득력이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1) 예수님은 십자가 위해서 죽지 않았고 잠시 기절해 있었다는 주장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졌을 때 아직 살아있었으며, 나중에 회복되었다고 주장
반론/ 예수님은 로마의 채찍형을 당하셨고, 십자가에서 6시간이나 매달려 계셨다. 그런 상태에서 그가 설령 살았다고 할지라도 나중에 무련 1.5톤이나 되는 무거운 돌을 치울 수 있었겠는가? 병사들은 예수가 죽은 것을 확인까지 했다. 더구나 어떤 병사는 예수님이 이미 돌아가신 것을 보고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고, 그때에 피와 불이 나왔다고 했다. 이것은 응혈과 혈청의 분리인데 이것은 의학적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강력한 증거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2)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는 설
제자들이 시체를 훔치고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소문을 퍼뜨렸다는 설
<반론> 병사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이론은 심리학적으로 타당성이 없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몹시 실망했고, 꿈을 잃어버렸다. 제자들은 두려워서 한 집에 모여 있었다.

3) 권력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말하는 사람들
아마도 이것도 타당성이 없는 이론일 것이다.

<반론> 만일에 권력자들이 시체를 훔쳤다면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소문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쓸 때 왜 시체를 내놓지 않았겠는가?





E. 그분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예수님의 나타나심이 단지 환상이었을까? 옥스퍼드 사전에 의하면 환상을 이렇게 정의한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외부의 물체를 분명하게 지각하는 것.”

환상은 보통 극도로 긴장하거나 극도로 상상력이 풍부하거나, 몹시 신경질적인 사람, 또는 병을 앓고 있거나 마약을 복용한 사람에게 나타난다. 제자들은 이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않았다. 건장한 어부 출신, 세리 출신, 특히 도마같이 의심 많은 사람이 환각을 일으킬 리가 없다. 환각을 일으키는 사람은 갑자기 그것을 멈출 수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6주 동안에 최소 11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11번 나타나시고 갑자기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은 환각 이론도 타당치 못하다.

더구나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한 증인들이 무려 550명이 넘는다. 한 사람이 환각을 일으키는 것은 가능하고,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이 같은 환각 상태에 빠질 수는 있어도, 550명이 같은 환각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환각은 주관적이다. 마치 유령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져질 수 있었고, 구운 물고기를 드셨으며, 한번은 제자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시기 까지 하셨다. 베드로는 행10:41에서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길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많은 것들을 가르치기도 하셨다.


F. 사회에 미친 즉각적인 영향/ 즉, 교회의 탄생과 교회의 성장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교회가 탄생하여 엄청난 속도로 자라났다. 마이클 그린은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소수의 교육을 받지 못한 어부와 세리로부터 시작하여 이후 300년 동안 그때까지 알려진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것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평화적인 혁명에 관한 완벽하리 만큼 경이로운 이야기다. 이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에게 질문을 던져오는 사람을 향해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단지 돌아가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살아나셨습니다. 당신은 그를 만날 수 있으며,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 실체를 직접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햇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말들을 했고 교회에 참여했다. 그리고 교회는 부활절의 무덤에서 태어나, 온 누리에 퍼져갔다.


G. 시대를 통한 그리스도인들의 경험

수백만이 넘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했다. 그들은 피부색, 민족, 종족, 대륙,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각기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지적으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공통의 경험으로 결속되어 있었다.

영국의 구세군 지도자였던 카라일이 공원에서 설교할 때였다. 그는 “예수님이 오늘도 살아계십니다.”라고 설교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러자 설교자는 “왜냐하면 저는 오늘 아침에도 그분과 30분 동안 얘기했기 때문이죠.”
전 세계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은 오늘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경험하고 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증거는 대단히 광범위하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실제로 가능한 경우는 다음 3 가지로 압축된다.
1)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이든지
2) 아니면 미친 사람이었든지
3) 아니면 그보다 더 끔찍한 존재였을 것이다.
증거를 살펴볼 때 그가 미쳤다거나 악마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의 가르침, 그의 하신 일, 그의 성품, 구약성경의 예언의 완성, 죽음을 정복한 일들을 살펴볼 때 그런 주장들은 터무니 없고 비논리적이고,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출처 : ●…화평동산…●
글쓴이 : 거룩한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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