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스크랩] 2.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선택과 칭의

하나님아들 2015. 4. 8. 14:54

2.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선택과 칭의

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속사를 세상역사 속에서 진행해 가실 때 필요한 자들을 선택적으로 부르셔서 계시의 도구로 선용하신다. 이때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원하심을 따라 되는 창조자적 주권에 따라서 소명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해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한 때, 오직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성취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9:11).

 

2) 그렇다고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을 상황에 따른 임시조치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필요에 따라 임시변통 적으로 선택하는 즉흥적 발상이 아니란 말이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필요에 따른 임기응변식의 비상 강구책처럼 보일지라도 창세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 주권적인 선택에 따른 후() 성취의 일환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이 사실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한낱 창조자의 횡포와 전횡(專橫)으로 오해될 소지가 없지 않다.

 

3)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식언치 않으시고 무분별하고 소견에 좋을 대로 사사로이 행동하시는 분이 아니시다(23:19). 창세전에 수립하신 작정과 계획에 근거해 만물과 만사를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호리만큼의 차착도 없이 섭리적으로 경영해 가신다(11:36). 하나님을 가리켜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며 처음과 나중 되시는 분으로 설명하는 이유가 이런 사실에 근거한다(1:8, 21:6, 22:13). 결국 역사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내용이며 과정이고 결과일 뿐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앙의 유일한 규범과 삶의 도리로 붙잡고 살아갈 수 있음이 이런 사실에 근거한다.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을 계시 의존적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에 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영원불변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의미이다.

 

4)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를 떠난 기독교 신앙은 사실상 유사기독교일 수는 있어도 정통 기독교일 수는 없다. 바른 신앙관의 정립은 하나님의 본의를 좇아 바르게 해석된 말씀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같은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하면서도 정작 신앙의 내면을 살펴보면 교회적 전통이나 타락한 인간의 종교심을 부추기는데서 나온 왜곡된 열심을 가지고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며 신앙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바울은 이를 영적 안목으로 예리하게 통찰하는 가운데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10:2-3)고 유대인들의 종교적 열심의 허구성을 고발한다. 우리의 신앙적 열심이 과연 성경에 근거한 계시 의존적인지의 여부를 늘 상고하며 확인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5) 이 점에 있어서 베뢰아 교회 성도들의 신앙자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17:11). 본문에서 신사적이란 표현은 편견 없는 객관적인 자세를 가리킨다.

 

6) 그렇다면 왜 막강한 열국 중에 작고 미약하며 보잘 것 없는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세상 가운데서 택자를 부르시는 창조자의 주권적인 선택의 동기를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의 발로에서 찾으신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7:7-8).

 

7) 본문에서 신명기 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서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신 배경을 두 가지 측면에서 기술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의 발로다. 둘째는 이스라엘의 열조와 맺은 언약의 신실한 성취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선행과 공적이 인정돼 그에 상응하는 보상으로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외적인 여건상 이스라엘은 열국에 비해 보잘 것이 없었으며 시종 불순종으로 일관한 패역한 백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과 사랑이 동기유발 된 데서 나온 무조건적인 은혜에 근거해 하나님의 선민 된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8) 3:16과 엡 1:4, 2:8, 5:8과 요일 4:10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택과 속죄와 구원의 동기가 하나님께서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의 결과임을 분명히 기술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를 죄악 중에서 은혜로 구원해 주셨을까. 성경은 아무도 자랑치 못하게 하기 위함이요, 오직 하나님께만 구원의 은혜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선포한다(고전 1:29, 1:4-6, 2:9, 1:6, 17:10).

 

9) 이런 사실에 근거해 성경은 성도의 제일 된 목적과 본분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순종을 통해 영원토록 그 분으로 즐거워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강력히 피력한다(12:13, 고전 10:31, 14:8, 5:10).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까. 성경은 롬 12:2을 통해 이렇게 선포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는 매사에 하나님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의 변화된 신분과 정체성을 의식하며 살아감으로 성령 안에서 성경의 원리가 내게 응하고 내가 성경을 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10) 다시 말해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인가? 이 일이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가? 이 일이 성령님의 소욕을 좇아 행하는 일인가? 등의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해 성경적으로 분명한 답변을 가지고 행하는 삶이야말로 구원받은 성도의 올바른 신앙자세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삶의 방식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 분으로 즐거워하는 순종의 삶의 실질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교리에 대한 성경의 진술을 살펴보고 있다. 위의 논증을 통해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교리의 성격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그 분의 무한하신 사랑에 근거해 택자들에게만 베풀어주시는 차별화된 은혜인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차별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택적 은혜와 택자들의 행동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자.

 

3. 인간의 행위가 철저히 배제된 선택과 칭의

1) 하나님의 선택과 관련해 살펴 볼 주제는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에 근거한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의 문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전혀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을 뿐 아니라 미치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죄로 말미암아 전인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영적 상태가 스스로 선을 행하거나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수 있는 영적 기능과 능력을 근본적으로 상실한 사실에 근거한다. 때문에 독자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것이 성경의 관점이다(3:10-12).

 

2) 이런 사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의 경우 비록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나 방불함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8:22).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는 데서 찾아진다(12:13). 따라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고 그 분의 말씀을 생명의 도리로 삼아 살아가지 못한다면 이미 하나님과는 무관한자로 곧 영적 사망자란 지적이다. 이런 자의 구원은 외부의 절대 타자(他者)의 도움을 받기 전에는 전혀 불가능한 상태다.

 

3) 사실상 이런 영적 파산자에 의해 시도되는 어떤 행위도 본질상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단절된 전제하에서는 결코 선과 의로 평가될 수 없음이 성경의 증언이다.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향해 달려갈 뿐이라고 역설적으로 선포한다(1:28-32). 다시 말해 세상의 관점에서 제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상대적인 선과 의일지라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에는 결코 미칠 수 없기에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는 한낱 더러운 누더기 옷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성경의 평가이다(64:6). 이런 시각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도 없다고 성경은 전 인류를 향해 엄중히 선포한다(3:11-12). 왜 그럴까? 오직 죄 때문이다. 죄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다. 따라서 죄인으로 정죄 될 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만 인간의 죄는 사면될 수 있다(1:29, 4:25, 5:8, 10:45, 4:12).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원수 된 죄의 빚을 깨끗이 탕감 받을 수 있다.

 

4)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의 정체성은 인간의 행위를 철저히 배제시킨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무한하신 사랑의 발로를 통해서만 일방적으로 베푸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어떤 행위와 노력도 하나님의 선택에 일조를 할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의 행위는 본성 속에 내재된 죄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공의에서 비롯된 진노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5) 다시 한번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관해 살펴보자. 9:10-13은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잉태해 출산한 사건 기록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두 자녀인 에서와 야곱이 쌍둥이로 태어나기도 전, 무슨 선이나 악한 일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주권적인 뜻에 따라서 야곱을 택하여 아비 이삭의 뒤를 이을 언약의 계승자로 택정하셨다. 성경은 이를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에서나 야곱의 생애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릴만한 특별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에서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나 지극히 육신적이었으며 무책임했다. 반면 야곱은 소극적이지만 이기적이었으며 교활하기까지 했다.

 

6) 이들의 행위를 근거로 하나님의 평가가 내려졌다면 야곱에게서 형 에서에 비해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상대적으로 독차지할만한 요소를 발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 아직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 그를 에서보다 사랑하여 언약의 당사자로 선택하신 사실을 성경은 소상하게 기록한다. 하나님의 선택사역에 인간의 행위는 전혀 무관하다. 적극적으로 배제된다. 만일 호리만큼이라도 인간의 행위와 공적이 참작된다면 인간의 전적타락 교리를 성경스스로가 부인하는 셈이 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전적인 부패와 무능은 자연히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의 성격이 오직 무조건적인 은혜에 근거해야 함을 강력히 시사한다.

 

7) 만에 하나라도 인간의 선악간의 행위가 하나님의 선택의 기준으로 작용한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선택적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도말해 주신다. 보다 적극적으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신앙과 삶의 결정적인 동인과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무익한 종의 심정(17:10)이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시해 준다.

 

8)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생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최선의 방편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은혜 됨의 비밀이 이에 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긍휼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며 강퍅(剛愎)하게 할 자를 강퍅하게 하신다(9:18, 11:32). 만일에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행위에 근거한 조건적 선택이 되었다면 우리 중 아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은 택함을 입은 자들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의 무상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가운데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과 그 분의 선하신 뜻을 감당하는 일에 남은 생애를 불사르게 만들 것이다(고후 5:14-15, 6:13-14).

 

7) 무조건적 선택교리는 선택을 입은 자의 생애를 계속해서 섭리적으로 간섭하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일에 선용하신다는 사실을 신앙과 생명으로 붙잡고 살아가게 하는 바 섭리 의존적인 신앙관을 확립시킨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신앙관을 유발시킨다. 이런 신앙관의 확립은 흑암의 세력이 주관하는 세상 가운데서도 늘 승리하며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성도의 진정한 기쁨이 이에 있다. 우리는 천하 만민 중에 천지의 창조자이시며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을 받은 행복한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사실로 말미암아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으로 우리의 마음이 늘 풍성히 넘치기를 소원한다.

 

출처 :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
글쓴이 : 오직 성경으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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