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7-3 하늘의 보좌

하나님아들 2014. 5. 3. 12:53

 

3장 하늘의 보좌 (요한계시록4:1~5:14)

 

 

. 이 일 후에(4:1)

 

 

혹자는 일 후에라는 말을 근거로 하여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 기록된 사건들은 모두 앞으로 이루어질 사건들이라고 주장한다. 이유인즉 4장과 5장은 교회가 휴거되고 동시에 주께서 재림하실 바로 그 순간에 되어질 일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이 가장 보편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의 문제점들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1) 만일에 4장과 5장이 모두 장차 일어나게 될 일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교회의 휴거와 같은 중요한 사건이 왜 언급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휴거는 요한계시록 7장과 12, 14, 그리고 15장에 가서야 비로소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여기에서는 그 사건을 말하지 않는가? 혹자는 이리로 올라오라(4:1)는 말씀 속에 교회의 휴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은 바로 그 다음에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4:2)라는 말로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교회의 휴거는 육체적인 것인데 여기에서는 그것을 영적인 것으로 말하고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이 말씀은 결코 교회의 휴거의 해석되어질 수 없다. 2장과 3장이 교회에 관해 말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바로 그 다음에 오게 될 교회의 휴거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도 없을 수 있겠는가?

 

 

(2) 만일에 4 1절 말씀이 교회의 휴거를 말하는 것이라면 4장과 5장 어디에서 우리가 교회를 찾아 볼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은 44절과 10, 그리고 5 8절에 나오는 24장로들이 바로 교회를 상징한다는 비약적인 생각까지 한다. 그들이 결코 교회를 상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후에 논증하기로 하겠다. 지금은 오직 한 가지 질문에 관심을 돌릴려고 하는데 그것은 요한계시록 19 5~22장에 이르기 까지 왜 24장로들 가운데 한 사람도 언급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환난이 이를 때에 교회가 없어지며 왕국의 기쁨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에 이름조차 들어볼 수 없게 된다는 말인가? 어떻게 처음에 나타났다가 마지막에는 이름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일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3) 요한계시록 5장은 어린 양이 하늘에서 받을 영광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이 만일에 미래적 사건이라면 주께서 영광을 받으시기까지 약 2000년을 기다려야 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4) 5 13절에 하늘과 땅과, 그리고 땅 아래에 있는 모은 만물이 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는 말씀은 빌립보서 2 10절 말씀과 완전하게 일치한다. 그가 부활하시고, 또 승천하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셨기 때문에 그는 지금 빌립보서 2 9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영광 중에 나타나신 것이다. 요한계시록 5 13절 말씀이 2000년 후에 되어질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5) 어떻게 5 9절에 나오는 새 노래가 2000년 후에 가서야 불러질 노래란 말인가? 속죄사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6) 5 6절에 나오는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하는 말씀은 원래 이제 막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뜻이었다. 이것이 주께서 승천한 직후의 광경임을 분명하게 증거해준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항상 새로운 것이로되 여기에서는 그것을 이제 막 죽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7) 네 생물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한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노래한 요한계시록 48절 말씀을 24장로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라고 찬송한 요한계시록 11 17절 말씀과 비교해보면, 11 17절에서는 장차 오실자라는 표현이 생략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주의 재림이 결코 4 8절 말씀을 앞설 술 없고 그 후에 가서야 이루어질 사건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8) 5 6절에 보면 하나님의 일곱 영이 온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고 했다. 만일에 성령이 대환난 때에 가서야 보내심을 받을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승천과 더불어 이 땅에 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성령이 주에 의해서 보내심을 받은 것은 바로 교회시대를 원함이었다.

 

 

여덟 가지의 문제들을 생각해봄으로써 우리는 요한계시록 4장 말씀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날마다 펼쳐지는 아주 자연스러운 천국의 전경을 묘사하고 있고, 또 요한계시록 5장은 특별히 어린 idd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5:6)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의 승천 이 후의 장면을 말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이런 전경은 사도 요한을 위하여 반복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일 후에……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4:1), 이것이 일곱 교회에 연결된다기 보다는 오히려 1장에 나타나는 환상에 이어 계속되는 장면이라 하겠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하늘 문이 에스겔을 향하여 열리기도 했으며(1:1), 또 주께(3:16), 스데반에게(7:56), 베드로에게(10:11), 그리고 요한에게 열린 적이 있다(4:1 ; 19:11).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것은 나팔소리가 아니라 나팔소리 같은 음성이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 말은 요한에게 개인적으로 하시는 말씀이다. 이것을 교회의 휴거로 상징해서 해석할 수 없다.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이것은 뒤이어 계속될 예언의 서곡에 해당된다.

 

 

 

. 보좌(4:2, 3)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요한이 지금 영적으로 성령에 감동을 받은 것이지 육체적인 현상은 아니다.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는 이 책의 중심이고 또 만물이 주목해야 될 대상이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보여진 것이 바로 그 보좌였다. 왜냐하면 후에 전개될 모든 일들이 그 보좌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서신들 가운데서 말씀하고 있는 그 보좌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4장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은혜의 보좌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보좌는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하는 심판의 보좌이다.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보좌에 앉으신 분은 다른 분 아닌 바로 하나님이다.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벽옥과 다이아몬드라는 해석이 더 좋을 것이다.

보석들 가운데서 가장 밝은 색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다이아몬드다. 그것은 모든 인류가 가장 값진 것으로 생각하는 보석이다. 다이아몬드는 탄소로부터 형성된다. 그것은 때때로 흑암을 밝혀주는 놀라운 복음의 빛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리고 홍보석은 가장 완벽하게 붉은 색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을 나타내기도 한다. 피가 바로 붉은 색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보석들을 색깔로 보아 복음의 빛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된 하나님의 구속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때때로 지상에 나타나 보이는 무지개는 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여기에 나타난 무지개는 보좌를 두르고 있다.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더불어 맺은 언약의 표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만이 아니라 바로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9:12~16). 여기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곧 심판하려고 하시면서도 여전히 언약을 지키시며, 또 약속을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녹보석의 초록색은 푸른 잔디와도 같다. 그성느 이 땅을 수놓고 있는 주요 색깔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심판 중에라도 은혜를 베풀고 또 이 세상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한다고 보겠다. 심판이 이 땅을 스치고 간 후에도 푸른 초목은 또 다시 소생한다(8:11)

 

 

 

. 이십 사 장로(4:4)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24장로들을 영광스러운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에 대한 충분한 그거를 그들이 가지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최근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4 4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24장로들이 각각 보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왕같은 신분으로 통치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들은 5 8절 말슴을 가지고 24장로들이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진 사람들로 나타났으니 그들이 바로 제사장들이라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 9절 말씀은 신자들을 가르켜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여기 나오는 24장로들이 참으로 왕이요 제사장이기 때문에 바로 그들이 영광스러운 교회를 상징한다고 결론을 맺는다.

 

 

이와 같은 해석에 따르면 모든 교회는 함께 휴거되기 때문에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3 10절 말씀이 어떻게 설명되어져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더군다나 24장로들이 그 영광스러운 교회를 상징하지 않는다는 다음과 같은 열 가지의 이유들이 있음도 알아야 하겠다.

 

 

(1) 장로들의 이름은 교회의 이름이 아니다. 만일에 여기 나오는 장로들이 교회를 상징한다면 그것은 모든 교회가 장로들로 이루어졌다는 말과 다름없을 것이다. 역사적인 사실로 보아 하나님은 먼저 천사들을 선택했고(14:12, 28:11~19), 다음에 유대인을 택했으며(11:1~3), 셋째로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한번도 장로와 동일시 한 바 없고, 또한 유대인을 장로라 칭한 바도 없다(에베소서 1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선택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을 위한 것이며, 또 디모데전서 5 21절에서 언급된 택함받은 천사와도 아주 다른 존재를 말한다.)

 

 

(2) 장로의 숫자는 교회의 숫자를 말한 것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교회의 수효는 일곱이거나 아니면 일곱의 배수로 나타난다. 그러나 24 7의 배수가 아니다.

 

 

(3) 교회는 그리스도보다 먼저 보좌와 면류관을 취할 수 없다. 4 2절에 나타나 있는대로 보좌에 앉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5 6절에 보면 어린 양은 서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4 4절에 묘사되어 있는대로라면 24장로들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보좌에 앉아 있었다. 만일에 그들이 교회를 상징한다면 어떻게 어린 양이 서 있을 동안에 교회가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이 해석에 따르면 5 6절에 나타난 교회는 벌써 면류관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20장에 이를 때까지 주님은 아직 왕으로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어떻게 교회가 주님보다 앞서서 영광을 차지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19 4절 이 후에 24장로들은 더 이상 자취도 찾아 볼 수 없지 않는가? 이 장로들이 참으로 모든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그 영광스러운 교회가 그 이 후에는 어떻게 되어버렸다는 말인가?

 

 

(4) 장로들이 입은 흰 옷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된 것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7 14절에서는 그 흰 옷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희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흰 옷은 장로들이 죄가 없음을 뜻하는 것 뿐이다.

 

 

(5) 24장로들이 부른 노래는 구속의 노래가 아니다. 왜냐하면 4 11절에 나오는 노래는 하나님의 창조를 찬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만을 알고 있을 뿐이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는 것 같다. 그들이 비록 5 9,10절에 언급된 새 노래를 노래하고 있지만 그들은 주께서 그들,즉 모든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이지 결코 자기들을 구원해주셨기 때문이 아니었다.

 

 

(6) 4장에 나타난 모든 현상은 우주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보좌와 일곱 영들을 제외하고서라도 거기에는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있었다. 그 밖에는 아무도 언급된 존재가 없다. 이것은 그 장로들이 우주의 장로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7) 5 8절에 나타나 있는대로 하나님께 기도를 가져다 드리는 일은 교회의 활동이 아니다. 물론 교회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명령받은 것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바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교회더러 다른 사람의 기도를 가져오라고 부탁하지는 않았다. 교회는 결코 이런 권세를 갖지도 못했다. 8 3,4절에 말씀하고 있는 천사는 바로 주님을 가리킨다는 해석에 많은 주석가들이 일치한다. 그가 주님이든, 혹은 아니든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께 가져다 드리는 일이 적어도 천사들에 의해서 수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밝혀진 것 같다. 그러므로 5 8절에 기록된대로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전하는 것은 천사들에 의해서 수행되는 일임에 틀림없다.

 

 

(8) 24장로들이 결코 자기 자신들을 한 번도 교회와 동일시 하지 않았다. 5 10절에 나타난 저희로라는 말은 장로들에 의해서 교회를 상징한 것 뿐이다. 만일에 저희로라는 말이 자기들과 동일시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 장로들은 저희로라는 말대신에 우리로라는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장로들이 말한 내용으로 보아 그들은 자기들과 교회를 상징할 수 없다. 7 13~17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세 부류의 사람들로 구분되어 나타나는데, 첫째가 장로들이고, 둘째는 요한이며, 셋째는 흰 옷 입은 사람들이다. 만일에 24장로들이 교회의 일부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라고 요한에게 묻는 장로의 질문이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24장로들이 전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면 전 교회가 교회의 일부에 관해 질문한다는 것이 어쩐지 불합리하다고 보겠다.

 

 

(9) 요한이 장로 중 하나에게 주여라고 말한 것은 그 장로가 요한보다 더 뛰어난 지위에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7:13~17).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장로가 요한으로 하여금 그런 호칭을 하도록 허락할 수 있겠는가?(22:8,9과 비교해보라).

 

 

(10) 24장로들이 하나님 앞에서 취한 행동은 아주 특이하다. 그들은 결코 지상의 교회처럼 굶주림이나 목마름을 경험하지도 못했으며, 또한 눈에서 눈물을 흘려본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죄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또한 그들은 구원받은 경험에도 외인들이었다. 이 모든 사실들은 그들이 구원받은 교회가 아님을 입증해준다.

 

 

그러면 도대체 이 장로들은 누구란 말인가? 그들은 천사들 가운데서 피택받은 왕이나 장로들, 말하자면 천사들을 다스리고 하니님을 봉사하는 우주의 장로들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와 같은 결론에 도움이 되는 증거들을 찾아보자.

 

(1) 그들이 금 면류관을 쓰고 보좌에 앉은 것으로 보아 왕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2) 그들은 제사장을 상징하는 흰 옷을 입고 있다( 28장과 레6:10 ; 16:4을 비교해보라). 또 그들이 거문고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며 금 향로를 가지고 잇다.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의 제사장직을 확증하는 물건들이다.

(3) 그들이 천사들 가운데서 선별된 제사장이라는 이유는 그들이 우주의 장로들이기 때문이다. 4장과 5장에서 하나님은 하님으로 나타나며, 주님은 어린 양으로, 성령은 일곱 영으로, 네 생물들은 생명있는 모든 피조물의 대표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리고 24장로들은 피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우주의 장로들로 나타나고 있다.

(4) 천사들이 아니라면 그리스도보다 먼저 금면류관을 쓰고 보좌에 앉을 수 있는 자들이 누구란 말인가? 하나님은 원래 천사들을 임명하여 우주를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러나 천사장 중에 하나가 타락하여 사단이 되어버렸으며, 따라서 사단의 왕국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사단의 모반에 동참하지 아니한 천사들을 하나님이 임명하여 여전히 우주를 통치하고 계신다. 미가엘이 이스라엘 민족을 돌보는 천사장인 것처럼(10:13), 우리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에게도 우리를 돌보는 수호 천사들이 있다(12:15, 18:10, 1:14).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나파을 불 때에도 24장로들은 여전히 앉아 있었다(8:2). 그들은 지금 우주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구속함을 받을 때 그들은 결코 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할 때까지 우주를 통치하되 자기들에게 맡겨진 구획을 통치하닥 마침내 왕궁이 임하면 우주의 통치권을 사람에게 양도할 것이다(11:16~18, 2:5~8). 그러하기 때문에 19 4절 이후에는 24장로들에 대해서 한 마디의 언급도 없는 것이다.

(5) 24장로의 숫자는 제사장의 숫자이다. 다윗시대에 제사장들은 24반열로 나뉘었었다(대상 24:7~18). 제사장의 임무는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거문고는 노래를 위한 것이요 금대접은 기도를 위한 것이었다.

 

 

 

. 보좌의 위치(4:5, 6)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하나님이 지금 심판하려고 하신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타난 보좌는 하나님의 공의의 보좌요, 또 한 심판의 보좌이다.

 

 

보좌 앞에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등불이란 말은 원래 횃불이란 뜻이었다. 등불은 집 안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횃불은 나팔 모양의 그릇에 기름으로 축축하게 적신 황마나 목화의 섬유에 불을 붙인 것이었다. 이것은 주로 야외에서 사용되었다.

 

 

성령님은 삼위 가운데 한 인격이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의 사역과 능력을 근거로 하여 일곱 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횃불의 의미와 완전하게 일치한다( 5:6, 11:2).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왜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다는 말인가? 보좌를 두르고 있는 무지개가 노아언약의 기호이기 때문이다(9:15). 물로써 베푸는 심판은 이미 지나갔고 다시는 바다를 통하여 심판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15장에 의하면 유리 바다는 불이 섞인 것처럼 보였다(15:2).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더 이상 바다가 없을 것이다. 영원한 불못이 있을 것이니 진실로 한 불못이 있을 것이다. 로버트 고(Robert Govett)과 같은 학자는 그 바다가 변하여 영원한 불못이 된다고 했다. 우리는 그것을 불이 섞인 유리 바다라고 말한 15장에서 그것의 중간상태를 목도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이 그럴 듯 한 것 같다. 또 거기에는 한 개의 보좌 밖에 없기 때문에 보좌 가운데라는 말은 보좌 앞에 있는 보다 낮은 가운데 부분을 의미할 것이다.

 

네 생물이 있는데 앞 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눈은 지성을 상징한다. 눈을 감을 때 사람은 세계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앞 뒤에 눈이 가득하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있는 네 생물들이 얼마나 지혜로운 존재들인가를 보여준다.

 

 

 

. 네 생물(4:7, 8)

혹자는 24장로들이 교회를 상징하는 것처럼, 네 생물들도 역시 교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근본적으로 모든 것을 상징하는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반드시 문자적으로 해적되어야 옳다. 만일에 24장로들이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된다면 이 책 속에 나타나는 다른숫자들은 과연 어떻게 해석 되어져야 할 것인가? 그러한 해석은 대단히 난해할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의 가치를 매우 손상시킬 것이다. 따라서 네 생물들이 상징적이 존재라기 보다는 오히려 피조물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겠다. 24장로들이 인간들의 대표였던 것처럼 네 생물들은 지상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겠다.

 

 

창세기에 나타나는 생물들을 분류해보면 여섯 가지로 나타난다. 수중생물, 공중에 나는 새, 육축, 기는 것, 짐승, 그리고 인간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4 7절에 말씀에 의하면 네 가지 종류 밖에 없다. 첫째로 짐승들 가운데 가장 힘이 센 사자이고(30:30), 둘째로 가축들 가운데서 가장 큰 송아지며, 셋째로 사람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교회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왕국시대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온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다(11:9). 그 때에는 교회 내에서도 구원받은 자와 이긴 자들 사이에 적지않은 갈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에는 그러한 갈등이 더 이상 없게 된다. 왕국시대에 이 땅 윙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기는 하겠지만 그 때에는 더 이상 성령의 세례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개별적으로 믿을 뿐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때에 그들은 타락전 아담의 상태를 회복하게 된다. 그들이 실과를 먹을 것이고 잠도 자고 결혼하고 하고 아이도 낳게 되지만 더 이상 죽음이나 병드는 것이나 죄를 짓고 또 마귀에게 시험받는 일이 없게 된다. 그리고 넷째로 나타나는 생물을 새들의 통수권자인 독수리이다. 기는 것들이나 물고기들이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기는 것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뱀이었고, 또 다른 대표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노아시대에 모든 생물들이 다 심판을 받았지만 물고기들만은 심판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에는 더 이상 바다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물고기들이 그 때에 심판받을 것으로 자명하다. 그러므로 이들 두 종류의 대표가 없는 것 같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세계가 부패하게 되어 마침내는 최초의 상태를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로마서 8 19~22절 말씀에 의하면 모든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들은 영광을 얻을 것이며 피조물들은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부터 놓임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주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회복된다(3:21).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의 효과는 너무나 큰 것이어서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1:20). 히브리서 2 5~9절까지의 말씀을 읽음으로써 우리들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9절에 나타나는 모든 사람이란 말은 차라리 모든으로 해석되어져야 맞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위하여, 심지어 모든 피조물들은 위하여 죽으셨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다같이 구속함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람일 뿐 아니라 모든 창조물 가운데 먼저 나신 분이라고 했다(1:15 3:14)

 

 

네 새물들은 하나님 앞에서 구속함을 받은 모든 생물들을 대표한다. 네 생물들 가운데 송아지와 사람은 청결하다. 반면에 사자와 독수리는 깨끗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들 모두가 더럽다거나 아니면 청결한 것을 구분하지 않고 다같이 하나님 앞에 서있다는 점이다. 사자와 독수리는 성품이 사납지만 송아지와 사람은 온순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에 함께 살아도 모두 평화롭게 살 수 있다.

 

 

구약성경에 보면 두 종류의 천사 무리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성느 바로 그룹과 스랍이었다. 그룹 천사는 네 개의 날개만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스랍 천사는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1:6, 6:2).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네 생물의 얼굴이 바로 에스겔서에서 말하고 있는 생물들과 흡사하다. 또 이 네 생물들은 그룹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있고(1:10), 스랍 천사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룹과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가 하면(출애굽기37 7절에 보면 금으로 그룹을 만들어 성소에 두었는데 이것은 영광의 그룹을 상징했다), 다른 한편으로 스랍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주었다(6:3). 영광은 하나님 자신에게 속한 것이요, 또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네 생물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나타내보이는 것들이다.

 

 

장차 오실자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키는 말이다.

 

 

 

. 찬 양(4:9~11)

 

(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네 생물들이 구속받은 모든 생물들을 태표하기 때문에 감사를 하나님께 돌린 것이다.

 

 

(11)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24장로들은 감사대신 능력을 말했다. 이유인즉 그들은 개인적으로 구원받은 경험이 전혀 없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 생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감사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어떤 질투심을 느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참하여 함께 하나님을 경배했던 것이다.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어떤 사본에서 아주 놀라운 주장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사본에 의하면 주의 뜻대로 있지 않았기에 주께서 지으셨나이다 라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으셨다가 후에 창조했다는 주장이 옳든지, 혹은 그르든지간에 하나님께서 현재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고, 또 그 만물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 누가 책을 펴며?(5:1~4)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책이 있으니: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그러면 그의 손에 들려진 책은 무슨 책인가? 신약성경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교회와 이스라엘과 세상 그리고 우주를 어떻게 구원해주실 것을 바로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한 개의 인이 아니라 일곱 개의 인이 모두 때어져야만 이 책 속에 기록된 것이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이 책이야말로 어린 양이 자기의 보배로운 피로써 이룩해놓은 약속의 책인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다 신약성경 가운데 나타나 있다.

 

 

(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친 것은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잇는 모든 만물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합당한 자가 누구냐는 말은 힘의 문제가 아니라 자격을 논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는 자가 누구뇨? 아무도 합당한 자가 없었다.

 

 

(3)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인을 떼기에 합당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4)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하나님의 계획이 밝혀지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요한이 크게 울었던 것이다. 이 때에 보좌로부터 동정심 많은 한 인물이 나타난다.

 

. 사자와 어린 양(5:5~7)

(5) 유다지파의 사자: 왕들이 유다지파로부터 나왔다. 하나님 앞에서 주님은 어린 양이지 사자는 아니다( 1:29).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주님이 유다지파로부터 나온 바로 그 사자인 것이다. 사자는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왕 같은 존재이다.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요, 또 하나님이 친히 선택한 최초의 왕이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이새의 줄기로부터 나온 한 순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가지가 아니라 그의 뿌리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반차를 따른 왕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금 그 책을 열고 또 친히 당신의 계획을 수행할 수 있는 정복자와 같은 힘있는 군왕을 필요로 하신다.

 

 

(6)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이 장면은 그리스도의 승천을 입증한다. 또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라는 말은 이제 막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라는 말로 해석되어져야 하겠다.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뿔은 권세를 상징한다. 우리는 황소나 염소의 뿔에 힘이 있는 것을 보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 지리니(89:17)라는 표현이나, 주는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18:2)와 같은 표현을 종종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눈은 지성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흑암의 세계에 보내심을 받은 횃불과 같다. 또 하나님의 일곱 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임하여 능력과 총명을 더하실 뿐만 아니라 (11:2), 우리들에게는 주께 더 가까이 나아가 그를 찬송하도록 인도하신다.

 

 

(7)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어린 양이 하나님의 오른 손에서 그 책을 취하셨다. 그 때에 하늘과 땅이 함께 찬송을 발한 것이다. 이제 새 언약의 책이 어린 야의 손에 들렸으니 그것은 곧 열리게 될 것이다.

 

 

 

.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드리는 송영(5:8~10)

(8)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의 초점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다. 거무고는 찬송을 뜻하며 향로는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한다.

 

 

(9)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주께서 이제 막 죽었다가 새롭게 살아나신 것처럼 그들이 지금 새 노래로 노래하고 잇는 것이다.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네 가지로 지상의 것들이 언급되었는데 그 넷이란 수는 바로 이 땅에 속한 숫자이다.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은 24장로들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이 노래할 때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라는 말씀 다음에 우리로라고 하지 아니하고 저희로라고 한 기록을 보아 그것을 알 수 있다.

 

 

(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여기에 기록된 말씀의 내용으로 보아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편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근거로 한 것이지만 역시 그것은 사람의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완성된 속죄사역을 근거로 하지만 실제적으로 현세와 내세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봉사하는 일은 우리의 신앙적 헌신을 통해서 가능케 된다.

 

 

 

.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이 함께 드리는 찬송(5:11~13)

(11), (12)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천사들과 24장로들, 그리고 네 생물들이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천하 모든 만물들이 다 함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떤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리고 있다.

 

 

 

 

출처 : 감추어진 만나
글쓴이 : 요나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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